본문 바로가기

평화연구(이론)-평화학/평화경제론

평화 경제의 관계론

김승국

Ⅰ. 요한 갈퉁의 평화 경제

평화학자인 요한 갈퉁(Johan Galtung)이 {平和を創る發想術}의 32∼41쪽에서 언급한 ‘평화 경제’를 아래와 같이 풀이한다;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상품으로 취급하는 서양식 경제에 평화가 깃들기 어렵다. 평화가 깃들게 하려면 인간의 경제활동에 평화적인 발상을 도입하는 평화 경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평화 경제를 에워싸고 세 가지 차원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① 세계경제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보는 시각 ② 개개인이 살아가는 데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basic needs)’은 무엇인가? ③ 이 중간(세계경제와 개인의 중간)에 있는 기업이 평화를 지향하는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는가?

평화 경제를 말할 때 우선 ‘이게 없으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것, 즉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에 관하여 검토해야 한다. 평화란 모든 인간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무엇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인가? 예를 들어 먹는 것, 타인과의 의사소통, 안전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돈은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 돈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인식시키는 게 자본주의의 마술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크게 나누면 ① 생존 ② 행복 ③ 귀속성 ④ 자유이다. ‘생존’은 물론 육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식료품․물․주거․위생 등)인데, 전쟁․고문이 이러한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이다. ‘행복’은 가난해도 가족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 쾌활한 기분으로 지내는 것이다. ‘귀속성’이란 지역이나 여러 인종들 사이에서 안심하는 모습으로 함께 지내는 감각을 지닌 상태이다. ‘자유’란 부당하게 체포되거나 구속되지 않고 사상과 신조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네 가지(생존․행복․귀속성․자유)를 두루 만족시키는 (평화로운) 경제체제가 이상적이다. 가난했던 봉건 시대 사람들은 나름대로 생존․행복․귀속성을 확보했으나 자유는 누리지 못했다. 현대 사회(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유는 확보되지만 생존․행복․귀속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자유의 경우에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4가지 요소(생존․행복․귀속성․자유)의 균형을 이루는 평화 경제에 비교적 성공한 사례가 1970년대 이후의 북유럽
이다. 이처럼 평화 경제를 선도하는 지역(북유럽 등)의 ‘평화 지향적인 기업경영(peace business)’ 모델-평화로운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화 경제를 생각할 때 기업 차원의 peace business가 중요하다. peace business는 ‘기업 안의 평화로운 관계’와 ‘사회 속에서의 평화로운 관계’를 상정할 수 있다. 기업 안의 평화로운 관계는 주주․경영자․노동자․소비자가 서로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주․경영자․노동자․소비자 사이의 대화․소통이 필요하다.

peace business의 두 번째 덕목으로 ‘사회․다른 기업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들 수 있다. 이윤 추구를 생각하면서도 평화적인 제품을 만들고 평화적인 거래를 하는 게 peace business에 성공하는 길이자 평화 경제의 조건이다. 거래관계가 평화적일지라도 무기를 제품으로 내놓으면 평화 경제라고 말할 수 없다. 평화적인 제품을 취급해도 거래관계가 착취이면 안 된다.
평화 경제에는 인간적인 거래관계가 필요하다. 리카도(Ricardo)라는 경제학자는 “제3세계가 선진국에 값싼 노동력․값
싼 원료를 제공하며 교역하면 제3세계의 경제적 이익이 늘어난다.”라고 말했지만 노동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노동자의 고통은 노동자의 소비력 감소를 가져와 결국 기업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소비자로서 자신들이 만든 것을 살 만큼의 임금을 벌게 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게 평화 경제의 목표이다.

Ⅱ. 평화 경제를 위한 관계론

요한 갈퉁이 말하는 평화 경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평화로운 관계(이하 ‘평화관계’), 평화 지향적인 생산관계(이하 ‘평화적인 생산관계’)를 이룩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인간사회의 평화관계, 경제 주체(주주․경영자․노동자․소비자) 간의 평화적인 생산관계를 수렴하는 관계론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평화 경제를 위한 관계론’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1. 간디의 비폭력적인 경제관계

간디는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에서, 마을 스와라지(Village Swaraj)의 비폭력 경제에 관하여 역설한다. 그는 비폭력적인 경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산업주의․중앙 집중화된 산업체들 그리고 불필요한 기계들을 배제하였다. 그는 산업주의의 온상인 도시를 마을 착취의 매개체로 보았다. 그는 강제와 무력이 없고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 스와라지(마을 자치)’를 꿈꿨다. 그는 판차야트(선출된 몇 명으로 구성되어 마을 일을 돌보는 마을회의) 라지, 즉 완전한 정치권력을 가진 비폭력적이고 자족적인 경제 단위인 마을 스와라지의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마을 스와라지는 재산 중심인 서양 경제와 달리 인간 중심이다. 그것은 생명의 경제이다. 인도의 70만 개의 마을들은 하나의 공화국(마을 공화국) 혹은 전권을 가진 판차야트로서 농업․수공업(마을 산업)을 통해 독립적이고 자급자족하는 비폭력(Ahimsa) 경제 공동체를 이룬다. 정치적 독립․경제적 자립․달마(Dharma)․아힘사의 기반 위에 세워질 마을 스와라지의 기본 원칙은 ① 사람 우위의 완전 고용 ② 생계를 위한 노동 ③ 평등 ④ 신탁(信託) ⑤ 탈중심화 ⑥ 스와데시<반영(反英) 민족해방운동의 목표로서 제창된 국산품 애용> ⑦ 자급자족 ⑧ 협동 ⑨ 불복종 ⑩ 종교의 평등 ⑪ 판차야트 라지 ⑫ 나이탈림(수공업 일을 통한 국민교육)이다.

위와 같이 간디는 마을 스와라지의 비폭력 경제가 잘사는 평화의 핵심임을 강조한다. 그는 마을 스와라지의 잘사는 평화를 위해, 무소유의 경제학을 설파한다. 간디의 경제관을 기술한 아지뜨 다스굽따의 {무소유의 경제학}의 주요 부분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① 간디는 스와라지에서 자립․자존의 경제관을 정립했다 ② 경제와 윤리의 관계는 양방통행으로 같은 것이다. 경제적 개념들에 윤리적 의미가 부가되어야 하며, 윤리 역시 고상한 곳에서 내려와 ‘좋은(善) 경제학’이 되어야 한다 ③ 이웃의 원리(principle of neighbourhood)에 입각한 스와데시 ④ 참다운 인도적(humane) 경제학 ⑤ 참된 경제(true economics) ⑥
농촌 실업을 해소하기 위한 물레 잣기 ⑦ 달마와 아르카(富)의 합일 ⑧ ‘인간은 이마에 땀을 흘리고 나서야 자신의 빵을 가질 수 있다.’는 ‘빵-노동설(the doctrine of bread-labour)’ ⑨ ‘내 것이란 내가 잠시 맡아둔 것일 뿐이다.’는 보관인 정신론(the theory of trustship) ⑩ 노동자와 자본가는 동반자이다 ⑪ 토지는 모두의 것이다 ⑫ 촌락 산업의 진흥

필자는 위와 같은 간디의 발상이 노자(老子)의 ‘소국과민(小國寡民) 평화 공동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한다.

① 소유 중심의 자본주의를 넘어 잘사는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 무소유 경제학의 과제가, 한국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 ② 무소유 경제학의 기반이 되는 마을 스와라지를 한국에서도 이룰 수 있는가? ③ 신자유주의-한미 FTA의 재앙이 몰아쳐 오는 한국 농촌․농업․농민이 잘사는 평화를 구가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마을 스와라지를 도입할 필요는 없을까? ④ 마을 스와라지를 통해 마을(지역 자치체)의 평화를 보장할 길은 없을까? ⑤ 간디의 비폭력적인 인간관계(비폭력관계)를 통하여 한국 사회 구성체가 변혁의 길로 나아가고, 더 나아가 한반도가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갈 방도는 없을까?

마을 스와라지의 잘사는 평화를 위한 간디의 무소유 경제학이, (불평등한 소유체계로 짜인) 한국 자본주의를 지양하는 평화 경제의 밑거름이 되길 희망한다. 이러한 희망을 실현하는 데 한국 자본주의의 소유체계․생산관계의 변혁이 선결 과제이며, 이 과제를 논의하기 위한 방편으로 마르크스의 생산관계를 거론한다.

  2. 마르크스의 생산관계

인간은 그들의 생활을 사회적으로 생산함에 있어서, 자신의 의지와는 독립적으로 불가피하게 일정한 관계, 즉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단계에 조응하는 제 생산관계에 들어선다.({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경제적인 소유관계에 의하여 구성된다. 자본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력만을 소유하는 반면, 부르주아는 생산수단을 독차지한다. 소유관계는 역사적으로 사적 소유(개인적 소유)와 사회적 소유의 두 형태로 존재해 왔다. 부르주아지의 사적 소유는 폭력(Gewalt)을 낳기 때문에, 이 폭력을 지양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강력(Gewalt)에 의한 계급투쟁-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게 마르크스의 지론이다.

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지론을 평화 문제와 연결시킨 필자의 박사학위논문 「마르크스가 본 전쟁과 평화」의 일부를 발췌하면서 약간의 해설을 곁들인다.

① 자본주의의 사적 소유가 개인적 소유를 부정하는 단계(본원적 축적에 성공한 자본가 계급이 독립생산자․무산대중을 수탈하는 단계)에서는, 부르주아지에게만 평화가 약속되므로 대중들에게서 평화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무산대중이 소수 횡령자(자본가 계급)를 수탈하는 ‘부정의 부정’ 단계의 계급투쟁(프롤레타리아트 해방전쟁)에서 평화의 가능
성을 찾아볼 수 있다. 즉 부정의 부정을 통하여 ‘모든 생산수단의 공동점유에 입각한 노동자의 개인적 소유를 재건’함으로써 평화를 쟁취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의 ‘전쟁과 평화의 변증법’을 인지할 수 있다. 이처럼 부정의 부정 단계의 계급투쟁(프롤레타리아트 해방전쟁)을 통하여 얻은 평화가 진정한 평화임을 마르크스는 강조한다.

② 마르크스는 진정한 평화를 위해 자유인의 연합인 ‘Assoziation’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유인들의 연합(Verein freier Menschen)’, 자본주의의 노동 방식인 통합노동(combined labour)이 아닌 연대노동(결합노동, associated labour)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자유로운 결사(die freie Assoziierung der Arbeiter)’, 즉 ‘Assoziation’으로서의 ‘공산주의’는 세계적 규모로 실현될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의 실현에 의하여 국가는 사멸하고 인간의 자기소외가 극복되어 땅(지상)에 평화가 깃든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평화 구상은 ‘(세계 공산주의) 혁명에 의한 평화’이며 ‘Assoziation’이 이러한 평화의 담지자(Träger)이다.

③ 평화의 유력한 주체인 프롤레타리아트 스스로 ‘고한노동(苦汗勞動)’ 성격을 불식시킬 수 없는 ‘labour’를 제작․창작․창조활동 내지 유희의 뉘앙스를 포함한 ‘Work’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평화를 구가할 수 없다. 필요노동(필요노동 시간)의 극소화와 자유 시간의 극대화를 통하여, 즉 labour의 극소화와 Work의 극대화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 때 마르크스 방식의 평화 경제가 가능하다.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하는 labour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나라가 아닌, 자유롭게 각기 개성적인 제작-창조활동(Work)에 흥겨워하는 ‘평화의 나라’에서 평화 경제를 수립할 수 있다.

④ 마르크스는 고타강령 비판 에서 “공산주의 사회의 보다 높은 단계에서 개인이 노예와 같이 분업에 의해 예속되는 상태가 소멸되고 이에 따라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소멸된 뒤, 노동이 단지 생활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제1차적인 생활욕구로 된 뒤,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도 증대하고 협동적인 부(富)가 모두 샘처럼 분출하게 된 뒤-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좁은 지평은 완전히 극복되고 사회는 자기의 깃발에 ‘각 사람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각 사람에게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라고 쓸 수 있다.”라고 밝히면서, 협동적인 부(富)에 의한 평화 경제를 예견한다. 이 협동적인 부(富)가 샘처럼 분출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분업노동(특정한 직업)이라는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는데, 그러한 노동이 아닌 필요에 따라 소비물자를 분배받는 사회가 가장 평화로운 사회이다.

  3. 주역의 대대관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인 생산관계를 정(正)-반(反)-합(合)의 유물변증법적으로 지양하는 평화 경제를 예견했다. 이와 달리 동양의 사고체계를 대표하는 주역(周易)은,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의 변증법적인 순환을 나타내는 대대관계(對待關係)에 관심을 갖는다(대대관계는 상반하는 타자를 배제의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존재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로 요구하는 관계로서, 주역의 64괘에 대대관계가 잘 나타나 있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생산관계 모순’에서 ‘모순’은, 서로 배제(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트를 배제하는 생산관계,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를 배제하는 생산관계)하고 2항 대립(부르주아지라는 項과 프롤레타리아트라는 項이 대립함)하는 관계이다. 그러나 주역의 음양(陰陽) 개념은 ‘2항(음과 양의 2항)이 대립하면서도 상보적인 대대관계’를 강조하는 데 특색이 있다.

이를 평화 경제와 연결 지어 말하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2항 대립 속에서 평화 경제의 가능성을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데 비하여, 주역의 대대관계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2항이 대립하면서도 상보적인 평화 경제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여기에서 후자(주역의 대대관계 속에서 평화 경제의 가능성을 발견함)에 주목한 김경동 교수는 「易經의 원리와 노사관계의 사회화」라는 논문에서 ‘대대관계에 의한 노사 평화’를 논술한다; “노사관계라는 것이 가장 원초적인 수준에서부터 근로자와 사용주(종업원과 경영자)의 양분관계이며, 그것이 본질적으로 변증법적인 음양관계임을 알 수 있다. 둘은 서로 하나가 없이는 존재이유가 없음으로 해서 상호 보완적, 호혜적인 관계에 있는 동시에 그 관계는 본질상 갈등적이고 모순을 내포하는 것이다. 노사관계가 보기에 따라서는 그 나름의 성격을 지니는 것임에 틀림없겠으나, 그것이 원초적으로 음양적 변증법의 관계라는 인식은 매우 긴요하다…역경의 태극 원리를 노사관계의 맥락에서 되새겨 보면 현실적으로 유용한 시사점이 분명히 있다. 근본적으로 갈등성향을 띤 노사관계 속에서 근로자나 경영자가, 정치적, 경제적 혹은 기술적인 측면의 이해관심의 그 어느 영역에서든지, 어떤 한계를 넘어 스스로를 주장하고 내세우고 이득을 얻으려 하고 권위를 독점하고 하는 따위의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지혜가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극히 미묘하고 불안정한 노사관계 체계의 균형이 깨뜨려지게 되기 때문이다. 노사관계의 체계가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조화와 평화를 이룩하려면 그 체계의 참여자들 사이에는
갖가지 차원에서의 균형이 필수적이다. 하나의 움직이는 균형으로서의 노사관계 체계 속에서 그 어느 쪽도 한계를 넘어 뻗어 나갈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그 원리이다.”(김경동, 1988, 102․105)

위와 같은 김경동 교수의 대대관계에 의한 노사평화가 평화 경제로 이어지는 계기를 발견하는 게 중요하지만, 노사평화가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이러한 계기를 발견하기 어려운 측면이 상존한다.

Ⅲ. 평화 경제에 성공한 사례

앞에서 설명한 간디․마르크스․주역을 통한 평화 경제의 관계론은 이상적이고 고답적(高踏的)인 느낌을 준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세상, 전갈의 늪지대를 연상케 하는 세계화 시대의 국제 정세에서, 이상적인 평화 경제 관계론이 적용될 여지가 많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위의 평화 경제 관계론이 통용되는 공동체를 만들어 평화경제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성공한 사례는 있다. 국가별로 보면 덴마크와 코스타리카가 여기에 해당되고, 국가군(國家群)으로 보면 북유럽 나라들과 유럽연합(EU)에서 성공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1. 덴마크의 평화 경제

덴마크의 평화 경제에 관하여 요령 있게 설명한 갈퉁(Johan Galtung)의 {ガルトゥング平和學}196쪽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① 북유럽의 패권을 에워싼 프러시아와의 전쟁(1864년)에서 패배한 데 이은 유틀란트 반도 남부의 할양을 계기로, 덴마크 국민들은 패권전쟁의 잘못을 깨닫고 ‘밖(해외)으로 확장하지 않고 안(국내)을 잘 가꾼다.’는 ‘내발적(內發的) 발전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이에 착안한 엔리코 달가스는 다수의 빈농을 조직했으며, 1866년에 히스 협회를 설립하여 유틀란트 반도
북부의 황무지에 나무를 심었다. 히스 밖에 자랄 수 없는 1백만 에이커의 황무지는 풍요로운 삼림․농경지로 변했다. 그 결과 비가 많이 내리게 되어 기후가 온화해지고 토양이 비옥해졌다. 풍부한 유기질의 토양은, 식물을 건강하게 만들었고 이윽고 동물․인간을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② 협동조합운동에 의한 경제번영이다. 원래 이 지역은 소농민(小農民)이 많은 토지이었으나, 1870년이 되자 이 지역의 경작농민들이 러시아․ 미국의 대규모 경영과의 국제경쟁에 패배하여 곤경에 빠졌다. 곤란에 직면한 소농민들은 1882∼1899년에 7백 개의 낙농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고립된 경작농민에서 협동조합형 낙농농민으로 탈바꿈했다. 그 덕분에 그들은 국내 낙농 생산액의 70%를 지배했을 뿐 아니라 영국의 유제품(乳製品) 시장을 지배하는 등 발군의 국제경쟁력을 갖췄다.

③ 이러한 경제적 기반 위에서 소농민․도시서민을 개명적(開明的)이고 진보적인 시민으로 기르기 위한 평생학습 운동이 꽃을 피웠다. 원론적인 진보파 교육가인 그룬트비의 영향 아래에서 ‘민중학교’가 각지에 개설되어, 학생 수가 1866년의 1천 명에서 1914년에 8천 명으로 늘었다. 그들이, (농민을 모체로 하는) 좌익정당을 약진시키는 지주가 되었다.

④ 좌익정당과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민주당이 낙농동맹을 결성한 뒤 1901년에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덴마크를 ‘평화와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복지국가’로 바꿨다. 이 덕분에 덴마크는 빈부의 격차가 비교적 적으며 연대감(連帶感)이 있는 나라가 되었다.

⑤ 곤란할 때일수록 민족의 진가가 시험받는다. 1941년에 덴마크는 독일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그러나 가혹한 점령 아래에서도 반(反)유대주의를 고취하는 친(親)나치 세력은 거의 뿌리내리지 못했고, 덴마크에 있던 8,500명의 유대인들이 숨어 지내다가 그중 9할이 이웃의 중립국가인 스웨덴으로 도망쳤다. 2차 대전 말기에 노르웨이와 함께 (독일군에 대한 협력을 거부하는) 비폭력 저항 운동이 장대(壯大)한 규모로 전개되어 점령․ 지배를 와해시켰다.

  2. 군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의 평화 경제

코스타리카는 (미국의 준식민지 국가인) 파나마와 (미국에 의해 혁명이 좌절된) 니카라과의 틈바구니에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입김에서 자유스럽지 않았다. 미국의 개입으로부터의 자유가 평화를 약속해 주는 제3세계 나라들과 거의 비슷한 국제적인 환경을 지닌 코스타리카. 이러한 코스타리카가 ‘자주(미국의 입김으로부터의 자유)에 의한 평화-평화 경제’를 구가한 내막을 알 필요가 있다.

코스타리카는 평화를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간 역사를 지니고 있다. ①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② 1838년 중남미 연방에서 탈퇴 ③ 1890년 중남미에서 처음으로 완전 자유선거 실시 ④ 1948년 6주간의 내전. 내전종결 후 군대의 폐지를 선언 ⑤ 1949년 11월 평화헌법 시행 ⑥ 1955년 여성에 의한 투표 개시 ⑦ 1980년 유엔 평화대학 창설 ⑧ 적극적인 영세 비
무장 중립 선언 ⑨ 아리아스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앞에서 보듯이 코스타리카는 민주주의, 평등, 평화를 위한 행진을 계속해 왔다. 그중에서도 스위스처럼 영세중립국을 선포한 것이 이채롭다. 영세중립의 대명사인 스위스는 실제로 무장국가이며, 최근에 유엔에 가입하면서 보통국가로 되었다. 이와 달리 코스타리카는 비무장 영세중립의 원론을 철저하게 지키며 군대를 폐지했다.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는 “항구적인 제도로서의 군대를 금지한다. 다만 공공질서의 감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찰력은 보유한다. 대륙 간 협정에 의하거나 국가방위를 위해서만 군대를 조직할 수 있다. 경찰력․군대는 어느 경우이든 문민권력에 종속해야 하며, 단독․공동심의와 성명․ 선언 발표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대를 금지한 코스타리카의 평화헌법 12조는 교전권을 부인한 일본의 평화헌법 9조보다 더욱 강력한 평화의 의지를 드러낸다. 일본도 평화헌법을 갖고 있고 코스타리카에도 평화헌법이 있다. 그러나 두 나라의 평화헌법의 제정 과정이 다르다.

일본은 점령국가 미국에 의해 평화헌법이 만들어진 반면, 코스타리카는 국민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평화헌법을 만들어 냈
다. 또 일본은 평화헌법 아래에서 자위대라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데 비하여, 코스타리카에는 국경 경비대 등 필요 최소한의 인원이 있을 뿐이다.

코스타리카는 명실 공히 군대․군부를 폐지했다. 군부의 쿠데타가 독재정권으로 이어진 중남미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코스타리카 국민들이 결심한 것이다. 군부를 만들면 국민을 해칠 우려가 있다. 군대를 가진 정부가 국민에게 가하는 폭력을 제한하기 위해 평화헌법을 만들었다.

정부․국민이 큰 의견 차이 없이 ‘군대를 갖지 않는 것이 최대의 방위력임’을 상호 인정하므로 평화헌법이 유지되는 것이다.
코스타리카의 인구는 34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코스타리카에는 근대산업에 필요한 지하자원이 거의 없다. 그래서 당연히 국가재정 기반이 취약하다. 예전에는 농업국가로서 환금(換金) 작물로 외화를 벌어들였으나, 최근 세계시장에서 농산물 가격이 떨어져 국제경쟁력이 저하되었다.

이렇게 나라 살림이 여의치 않은 코스타리카는 국방비를 거의 없앤 국가재정의 여유분, 즉 군비를 축소한 평화배당금(peace dividend)을 경제발전에 전용함으로써 평화 경제를 꽃피우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중남미 국가 중에서 가장 소득수준이 높고 사회복지가 충실한 가운데 생태환경을 모범적으로 가꾸는 나라가 되었다(코스타리카는 생태관광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생태․평화 지향적인 경제발전을 통해 사회복지를 충실히 하는데 군대 폐지가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코스타리카에 군대가 없는 대신 ‘경비대’가 있다. 즉 시민 경비대 4,300명과 지방 경비대 3,200명이다. 합계 7,500명이 북부, 남부지구의 국경경비를 포함하여 코스타리카 전 지역을 지키고 있다. 이를 위해 초계정 7척과 세스나기 4대 이외에 최소한의 자위용 소화기(小火器)는 있으나, 탱크와 기관총은 1대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럼 코스타리카의 국방비의 변화와 이에 따른 국민 1인당의 부담액을 살펴보자.
1985년도 국방비=3,800만 달러(국민 1인당 부담액=15 달러)
1993년도 국방비=3,400만 달러(국민 1인당 부담액=11 달러)
1994년도 국방비=3,600만 달러(국민 1인당 부담액=11 달러)

이렇게 국방비도 줄고 국민 1인당 부담액도 감소하는 추세이다. 한국의 국민 한 사람이 부담하는 국방비에 비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그래서 그런지 코스타리카의 하늘에는 전투기가 전혀 떠다니지 않고 땅에서도 국방색 군복을 입은 현역 군인들을 볼 수 없다. 물론 예비군도 없다.

코스타리카의 역대 대통령들은, 비(非)군사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피땀을 흘려 가며 자국의 정책을 다른 나라에 호소하는 가운데 비무장 영세중립을 주변국들로부터 인정받았다. 코스타리카의 정치 지도자들이 적극적인 평화 외교를 펼치면서 ‘영세 비무장 중립 선언’을 제도화함으로써 ‘군사비 부담이 없는 평화 경제’를 이룩한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3. 북유럽 국가들

옛날에 북유럽은, 호전적인 바이킹 때문에 폭력․전란(戰亂)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노르웨이를 둘러싸고 스웨덴․덴마크가 다퉜다. 여기에 북방의 영토 확대를 노린 프러시아가 시비를 걸어왔다.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지금의 북유럽 땅은, 전쟁이 일어나리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평화지역’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경험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 경제적 기반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노르딕 밸런스(Nordic Balance)’에 있다. 노르딕 밸런스에 관한 김진호 교수의 논문 「북유럽 평화체제로서 노르딕 밸런스」를 통해, 북유럽 국가들이 평화 경제를 이룩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럼 「북유럽 평화체제로서 노르딕 밸런스」를 요약하면서 평화 경제와의 연결 지점을 찾아본다.
‘노르딕 밸런스’란 말은 노르웨이의 외무장관이었던 랑게(H. Lange)가 처음으로 쓴 표현이며, 브룬트랜드(A. O. Brundtland)에 의해서 이론화되었다. 랑게는, 북유럽 국가들이 각기 독립적인 안보정책을 추구해 나가면서 전체적으로는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이 말은 북유럽 국가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중심개념이며, 특히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안보정책 결정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르딕 밸런스’는 이 지역의 ‘세력균형’과 동일시되고 있는데, 그것은 동구와 서구의 양극화와 2대 초강대국의 대결이 이 지역에서 완화되어 균형을 잡고 있다는 뜻이다.

노르딕 밸런스 이론의 제1요소는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최저조건에 의한 나토(NATO) 가맹이다. 이들 양국은 국내에 외국기지를 인정하지 않고 평시에 핵의 도입을 인정하지 않는다. 제2요소는 중무장 비동맹을 모토로 삼는 스웨덴의 외교정책이고, 제3요소는 소련과의 우호․협력․상호 원조조약의 틀을 유지하는 핀란드의 중립정책이다. 이처럼 (소련과의 잠재적인 군사동맹적 성격을 갖는) 핀란드가 동쪽에 있으며, (나토 가맹국인) 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가 서쪽에 존재하며, (중립정책을 취하는) 스웨덴이 가운데에서 완충작용을 하는 노르딕 밸런스의 구도가 평화체제․평화경제라는 쌍생아를 낳은 것이다.

북유럽 5개국은 노르딕 밸런스를 유지하며 ‘중립-비동맹-비핵지대화’ 정책을 펼친 끝에 평화 경제를 이룩했다. 다시 말하면 노르딕 밸런스→중립․비동맹․비핵지대화 정책→군비축소에 의한 평화 배당금 조성→평화 배당금을 복지․교육․경제 기반시설 확장에 전용→평화 지향적인 경제발전→평화 경제의 선순환(善循環)에 성공한 것이다.

  4. EU

경제협력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의 모범 사례가 EU이다. EU식 평화 경제의 모체가 된 것은 슈망(Schman)계획이다. 1950년 5월 9일에 프랑스의 외무부 장관인 슈망이 ‘독일․프랑스의 해묵은 자원전쟁터이었던 루르(Ruhr)․자르(Saar)지방의 석탄․철강생산을 공동으로 고위당국 권한의 규제 아래에 놓자’는 ‘슈망 플랜’을 발표한다.

석탄과 철강은 무기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전략물자이다. 불행하게도, 이 전략물자가 풍부하게 매장된 루르․자르지역(프랑스․독일의 접경지역)을 에워싼 쟁탈전이 제2차 대전으로 이어지고 2차 대전 이후 유럽의 분단(철의 장막)을 가져왔다. 따라서 루르․자르 지역의 전략물자인 석탄․철강을 공동개발하자는 제안은 ‘2차 대전의 구원(舊怨)을 청산하고 경제협력을 통한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제안’으로 여겨졌다. 전략물자를 공동관리 아래에 두고 프랑스․독일 및 기타 가맹국을 구속하는 결정권을 갖는 새로운 최고기관을 설립하자는 제안이야말로 ‘평화유지에 불가결한 유럽연방으로 나아가는 최초의 실질적인 기반’을 구축한 것이었다. (슈망 선언)

슈망의 제안에 따라 1953년에 출범한 ECSC(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부전(不戰)공동체로서 EU통합의 효자 노릇을 했다. 군비증강․전쟁용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많은 석탄․철강 산업을 ECSC라는 부전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여 유럽통합의 길을 연 발상이 빛난다.

2001년 12월 14∼15일 라켄(Laeken)에서 개최된 유럽이사회가 채택한 ‘EU의 장래에 관한 라켄 선언’에서 강조하듯이 “과거(2차 대전)의 악령과 결별하기 위해 시도된 것이 석탄철강공동체이었다. 이게 다른 경제활동 분야(농업 등)로 점차 확대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물자․인력․서비스․자본을 포섭하는 단일시장을 구축하는 데까지 이르러 1999년에는 단일통화도 도입되었다. 2002년 1월 1일에는 유로(euro)가 3억 명의 유럽인 사이에 일상적으로 유통되는 통화로 진척되었다. 이렇게 EU의 모습이 갖춰졌다.

당초의 경제․기술적인 협조관계가 겹겹이 쌓여 유럽의회의 직접보통선거가 이루어져 공동체의 민주적 정당성이 비약적으로 강화되었고, 이는 정치동맹의 구축으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회정책․고용․난민․이민․경찰․사법․외교정책 및 공통의 안전보장․방위정책 분야에서도 협력관계가 모색되었다. EU의 역사는 성공의 역사이다. 오늘날까지 반세기 동안 유럽은 평화를 유지해 왔다. 지금 유럽의 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 및 그 이후에 정착된 유럽의 인위적인 분단이라는 유럽 역사의 암흑의 1장(章)에 최종적인 막이 내려질 것이다. 이제 유럽은 유혈과는 무관한 하나의 커다란 가족을 이루는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평화 경제의 성공 사례를 예시했는데, 실패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겠다. 이러한 뜻에서 평화를 상실한 경제발전 사례를 기술한다.

Ⅳ. 평화를 상실한 경제발전(개발) 사례

  1. 제3세계의 난개발로 인한 비평화(peacelessness)

개발이란 인간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틀이다. 유엔은 개발의 요소로서 의식주와 의료, 학교교육을 중시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의 달성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로서 젖먹이 어린이의 생존율, 수명, 문맹률 등을 ‘PQOL=Physical Quality of Life’(신체적인 생활의 질)이라고 부른다. (Galtung, 2004, 35)

PQOL은, 잘사는 평화의 유엔식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PQOL의 정도가 낮은 개발은 잘사는 평화를 보장하기 어려운 비평화를 초래하며, PQOL의 정도가 높은 개발은 잘사는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 후자(인간을 위한 개발)가 바람직한데도, 전자를 선택하는 제3세계 국가들이 허다하다. 제3세계의 비평화를 가져오는 개발은 대개의 경우 악성개발(maldevelopment)이다. 악성개발을 하면 할수록 비평화체제가 강화되어 잘사는 평화의 길이 보이지 않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이처럼 지속가능한 평화(잘사는 평화)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설상가상으로 신자유주의 물결까지 엄습하는 사태가 멕시코․한국 등에서 전개되고 있다.

  2. 신자유주의-FTA로 인한 비평화(非平和) 경제: 멕시코와 한국의 경우

    1) 멕시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1994년 1월 1일 멕시코 남동부의 치아빠스(Chiapas) 주에서 농민들에 의한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사빠띠스타 민족해방군(EZLN)이 신자유주의-FTA(멕시코의 경우 NAFTA) 추진세력에 맞선 무장투쟁을 선언했다. NAFTA라는 사망 진단서를 받은 민중들이 살아남기 위해 무기를 든 것이다.

EZLN의 전쟁 선언문․라칸돈 정글의 선언 등에 ‘신자유주의로 인한 비평화’가 집약되어 있다. “오랫동안 우리는 배고픔과 질병으로 고통을 받아 왔으며, 단 한 조각의 땅도 일자리도 건강도 교육도 민주주의도 독립도 평화도 정의도 없이 우리 조국의 부를 남의 나라에 약탈당하는 그러한 현실에 처해 있었다. 우리는 자유롭게 민주적으로 우리 자신의 정부를 뽑을 권리도 없고, 외국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지도 못하며,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을 위한 평화나 정의도 누리고 있지 못하다…우리는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변화의 길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우리가 이렇게 헛되이 죽어 갈 수만은 없어서 무기를 들었다…전쟁을 초래한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영속시키려고 아우성인데 어떻게 평화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정부 청사와 토지와 큰 사업체를 가진 영주들, 그 저택에 살고 있는 오만함이 아직도 전쟁과 우리 민족의 죽음을 부르짖고 있는데…어떻게이 땅에 평화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그들은 우리의 존엄한 죽음으로 포장된 길 위에서 우리 주민들에게는 전쟁일 뿐인 평화로 우리를 다시 끌고 가려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항복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이 정당하고 고귀한 평화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전쟁을 위한 옷으로 갈아입을 것입니다…다시 정의의 손도끼를 예리하게 갈 것이며, 다시 한 번 우리의 땅에서는 탄약 냄새가 날 것입니다…우리의 그림자가 뛰어 넘지 못할 담은 없으며…우리의 그림자는 전쟁을 불러들인 사람에게는 고통을, 우리 민족에게는 죽음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평화가 선의와 함께 우리의 식탁에 앉을 때까지 더 많은 피와 눈물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때문에 ‘잘사는 평화의 길’을 완전히 차단당한 치아빠스의 농민들은 EZLN과 함께 무기를 들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다. 일자리․땅․주택․식량․건강(의료혜택)․교육․독립․자유(해방)․민주주의․정의․평화의 11가지 사항이다. 이 11가지 요구사항은 인간으로서 잘사는 평화를 누리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며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인데도 멕시코의 민중들은 향유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FTA(NAFTA)로 인한 비평화 경제(peaceless economy, 평화 경제의 역행)체제’에 있으며, 이 체제는 한국 사회에도 적용된다.

    2) 한국의 ‘신자유주의-FTA 비평화 경제’

한국 사회가 아직 멕시코처럼 무장투쟁이 일어날 상황은 아니지만, 신자유주의-FTA로 고난받는 민중들의 마음속에 봉기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 듯하다. 신자유주의-FTA에 대한 심리적 봉기 상황이 주로 농민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농민을 대변하는 농민운동단체의 각종 문건은, 평화적인 시위의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의 뿌리에 있는 ‘신자유주의-FTA로 인한 비평화 경제체제’가 작동되는 구조를 분석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Ignacio Ramonet 등이 저술한 Abécédaire partiel et partial de la mondialisation의 서문은 ‘신자유주의로 인한 인류 공동체의 파괴’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현재 국가의 구조․전통적인 사회구조가 당치도 않은 방식으로 파괴되고 있다. 특히 남반구의 나라들에 현저하나 세계 곳곳에서 국가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무법지대․통치불능의 대혼란(카오스)이 일체의 법적인 규제를 벗어난 채 확대되는…야만 상태에 의해 함락된 국가가 되었다. 범죄조직, 마피아 연결망, 종교적․민족적인 광신주의, 금융투기, 대규모의 오직(汚職), 새로운 역병(에이즈, 사스 등), 극도의 오염, 이상 기후, 온실효과(지구 온난화), 사막화, 핵무기 확산 등 새로운 형태의 위험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혼란의 주요한 책임은 의심할 바 없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있다. 1989년 11월의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의 새로운 역사 시대의 중요한 특징을 이루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이다. 그 힘은 지극히 강력하며, 그 때문에 우리들은 국민국가․주권․국경․독립․민주주의․복지국가․시민권과 같은…근본적인 개념들을 다시 정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의 극단적인 자유주의 국면에서 세계화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바꾼다. 세계화는 예전부터 있던 공동체를 해체하고 사람들을 ‘고독한 군중’으로 분해한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상품화함으로써 인간 공동체를 해체하고 사람들을 고독한 군중으로 분해하는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평화 지향적인 경제(평화경제)를 일으킬 수 없다.

Abécédaire partiel et partial de la mondialisation 의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항목은 새로운(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자괴(自壞)까지 예고한다. “이러한 새로운 자본주의에서는 비생산적인 가치밖에 낳지 않는 금융시장이 기업경영의 절대적인 지배자가 된다. 기업은 주가의 상승과 주주의 최대 이익을 만들어 내는 데만 집중함으로써 생산물․서비스 생산의 사회적 측면을 놓치는데, 노동자는 이를 위해 쓰다 버린 도구가 된다…이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불평등을 증대시킨다. 더 나아가 지구자원을 급속하게 파괴하는 지속 불가능한 발전을 추진함으로써 거의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까지 이른다. 이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는 위기의 심화와 보조를 나누며 세계를 제패하려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의 자괴는 불가피할 것이다.”

새로운(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자괴를 예고한 Ramonet의 논의가 한국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고 본다. 한국도 ① 국내의 신자유주의 기업이 주가의 상승과 주주의 최대 이익을 만들어 내는 데만 집중함으로써 생산물․서비스 생산의 사회적 측면을 놓치고 ② 노동자는 신자유주의를 위해 쓰다 버린 도구가 되고 ③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불평등을 증대시키고 ④ 자원을 급속하게 파괴하는 지속 불가능한 발전을 추진함으로써 거의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까지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심화된 끝에 거의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서 평화 지향적인 경제(평화 경제)의 싹이 자라날 수 없으므로, 평화 경제를 위한 신자유주의 극복운동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
[참고 자료]

* 김경동 {노사관계의 사회학} (서울, 경문사, 1988)
* 김승국 「마르크스가 본 전쟁과 평화」(숭실대 박사논문, 1996)
* 김진호 「북유럽 평화체제로서 노르딕 밸런스」, 제주대 평화연구소, {동아시아 논총} 제15권 제1호(2004년)
* 마하트마 간디 지음, 김태언 옮김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Village Swaraj)}(대구, 녹색평론사, 2006)
* 아지뜨 다스굽따 지음, 강종원 옮김 {무소유의 경제학(Gandhi’s economic thought)} (서울, 솔, 2000)
* Johan Galtung․藤田明史 편저 {ガルトゥング平和學}(京都, 法律文化社, 2003)
* Johan Galtung 지음, 京都 YWCA ほーぽのぽの 옮김 {平和を創る發想術}(岩波ブックレット No.603, 2004)
* Ignacio Ramonet 외 {Abécédaire partiel et partial de la mondialisation}(Plon, 2003)
-----------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294호에 실린 필자의 글「잘사는 평화 (4) 」(2007.10.6)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