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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도시-평화 마을/3세계 숍

[커피 장사 수기(100)] 여심(女心) 읽기

커피 장사 수기(100)

 

여심(女心) 읽기

 

 

김승국(커피공방 뜰의 점장)

 

 

우리 가게의 주요 고객은 여성이다. 40대 중후반~50대 초반의 주부들이 손님의 대다수이어서 이들 여성들의 마음, 즉 여심(女心)을 아는 게 중요하다. ‘여심 읽기’가 영업의 핵심이다. 나 같이 둔감한 남자에게 여심 읽기란 고행에 해당된다. 통 크게 사람 만나는데 익숙한 내가 섬세한 감성으로 커피를 마시는 여성 손님의 마음을 읽어내는 건 철학 원전을 강독하는 것보다 어렵다.

 

 

우선 남성 손님과 여성 손님을 비교하면 여심 읽기가 수월할 것이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남성 손님들은 커피를 대강 대강 주문하고 여성들에 비하여 커피 맛에 민감하지 않다. 간혹 막걸리 마시듯 커피를 마시는 남자 손님들도 있다. 한 모금 한 모금 천천히 음미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여성손님들에 비교하면 너무 거칠다. 남성 손님들은 주로 비즈니스 관계의 이야기를 하러 커피 숍에 들르지만, 여성들은 친밀감(이른바 스킨 십)을 강화하러 온다. 몸으로 부대끼면서 스킨 쉽을 강화할 수 없으니까 말로 친화력을 높인다. 수다를 떨며 상대방과의 친밀감을 나눈다. 수다를 떨며 교감한다. 수다가 소통의 수단이다. 남성을 상대로 수다를 떠는 것은 싱겁다. 그래서 같은 여성들끼리 수다를 떤다. 남성들은 너무 단순하여 수다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수다를 떨지 모르는 ‘단무지 남성(단순무지한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면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신경 끄고 자질구레한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서로 번다하게 늘어놓으며 주고받고 밀고 당기는 수다의 세계에 남자들은 들어갈 줄 모른다. 단순무지해서 그렇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지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수다를 떠는 재미를 남자들은 모른다. 그래서 남자는 단순한 동물이다. 남자는 생긴 것부터 단순하다. 이에 비하여 여성들은 생긴 것, 몸단장하는 것, 신체 구조가 미묘하며 복잡하다. 여성의 몸보다 마음이 훨씬 복잡하다. 그래서 여심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커피 장사를 하기 어렵다. 수다 떠는 여심의 깊이를 모르면 여성 손님을 끌어내기 어렵다.

 

 

수다 떠는 여성들의 언어생활을 이해해야한다. 무슨 언어를 사용하며, 여성들이 수다 떨 때는 언어 구조, 수다를 문장으로 풀었을 때의 문장구조 등까지 심층분석하면 여성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여성들의 언어는 감성적이며 생활 지향적이어서 남성 손님들의 언어와 다르다. 남성들은 거창하게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드러내며 거대 담론을 즐기지만, 여성들은 미세한 일에 신경 쓰며 미세 담론을 수다로 풀어내는 기술이 있다. 남성 손님은 이성적인 대화를 나누는 경향이 있지만, 여성 손님들은 감성적인 대화를 수다 형식으로 풀어내는데 익숙하다.

 

 

여성들은 커피 숍에 와서 그냥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도록 유도하는 발언을 즐긴다. 이야기 보따리를 주고받는 의식을 커피 숍에서 하는 것이다. 그런 의식을 주기적으로 하지 않으면 입안에서 군둥내가 나서 스트레스가 쌓인다. 남성들이 술집에 가서 음주하며 큰 소리로 떠들어내는 가운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면, 여성들은 수다 공동체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래야 한(限)이 풀린다. 아직도 사회적으로 완전히 해방되지 않은 여성들의 스트레스는 남성들의 스트레스보다 심하다. 그리고 여성들의 심리가 복잡하므로, 스트레스도 훨씬 중층적으로 쌓인다. 그래서 중층적으로 쌓인 스트레스는 실오라기 하나씩 풀어내며 수다 떠는 ‘수다 의식(儀式)’이 여성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단 집안에서는 이러한 수다 의식을 거행할 수 없으니 커피 숍이 좋다. 커피 숍이 ‘수다 의식을 집행하기 좋은 분위기’를 지녔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분위기를 많이 탄다. 분위기 있는 곳에서 수다 의식을 집행하고자 한다. 그래서 수다 의식을 집행하기에 안성맞춤인 분위기를 조성한 커피 숍이 성공할 확률이 높으며, 이러한 점을 나는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단무지 남성(단순무지한 남성)인 나는 여심 읽기의 능력이 부족하여 거칠게 인테리어를 했다. 여성들이 마음 놓고 수다 공동체를 만들기 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인테리어에 주력한 것이 아니라, 학교 교실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를 했으니 여성 손님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근에 부랴부랴 여성들이 자유롭게 수다 떨 수 있는 분위기로 바꿨다. 개업 1년이 지나서야 겨우 여심 읽기의 초보단계에 들어서서 여성들의 수다 방(房)을 조성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여성 지향적인 분위기로 전환했어도 부족한 것 같다. 수다 의식을 집행하고 싶은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좀 더 여심 읽기 훈련을 거듭한 뒤에 여성 손님들이  ‘수다 의식을 집행하기 좋은 분위기’가 무엇인지 깨달아야할 것 같다.(201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