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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도시-평화 마을/3세계 숍

[커피 장사 수기 (14)] 개업 노이로제

커피 장사 수기 (14)

 

개업 노이로제

 

김승국(커피공방 뜰의 점장)

 

오늘 저녁에 정신과 의사가 바리스타 교육을 받겠다고 왔는데...내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그 분이 화가 나서 돌아갔다.

 

보통 때 같으면 바리스타 교육생이 오면 등록금을 내라고 요청한다. 교육생이 이 요청에 응하면 교재를 준 뒤에 곧장 교육에 들어가는데, 오늘 저녁에는 너무나 정신이 혼미한 나머지 그러한 절차를 생략한 채 약20분간 그 의사와 잡담 아닌 잡담을 한 뒤에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는 듯이 빈둥빈둥 먼 산 보듯이 침묵을 지켰더니 이상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 의사와 단둘이 있는 저녁의 어두움 속에서 그 의사는 너무 민망한 듯 지겨운 듯 가만히 앉아서 바리스타 교육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나로부터 커피 공부하자는 이야기도 없이 침묵만 흐르는 고통의 시간이 30분 이상 흘렀다.

 

드디어 그 의사가 답답한 듯 말문을 열며 “나는 바리스타 공부하러 왔는데 선생님은 공부 가르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딴전만 부리는 이유가 무어냐”고 물자마자 ‘아차!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생각하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바리스타 교육 지망생 중에 등록도 하지 않고 한두 번 공부한 뒤 공부하러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당신이 등록하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시간 때우기를 했다”고 둘러내니 그 의사가 너무나 어의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갔다. 자기를 ‘등록도 하지 않고 한두 번 공부한 뒤 공부하러 나오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한데 대하여 무척 자존심이 상한 표정으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엘리트인 의사의 자존심을 건들었으니 큰 일 났다고 생각하여 뒤늦게 수습하려고, 그 의사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내가 요즘 ‘개업 노이로제(개업에 따른 마음의 고통이 심하여 의식이 너덜너덜해짐)’에 걸린 탓에 제 정신이 아니어서 그런 실수를 했으니 넓은 마음으로 관용을 베풀어 달라. 혹시 마음이 풀리면 다시 와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으시라...”고 사정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었다.

 

정신과 의사가 나에게 바리스타 교육을 받기 이전에 나의 개업 노이로제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치료해달라고 부탁해야할 상황이다. 프로이트(Freud), 융(Jung), 라깡(Lacan), 푸코(Foucault)와 같은 학자들의 저서에 ‘개업 노이로제’란 용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나는 개업과 관련한 신경증․우울증이 심해져 오늘 저녁때와 같은 정신착란 현상을 보였다. 그 것도 정신과 의사 앞에서 그런 짓을 했으니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이러한 개업 노이로제가 더욱 심해지면 정신이 망가질 것 같다. 자본주의 시장 구조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 같은 자영업자가 개업 노이로제에 시달리다가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거칠게 말하면 자본주의 시장구조가 나에게 개업 노이로제를 제공한 것이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금융기관(제일은행과 삼성카드회사의 빗발치는 빚 독촉)-시장(소비시장의 냉각에 따른 매상 부진이 주는 스트레스)-국가(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한 자영업자의 급증이 우리 가게 주변에 커피숍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게 만듦)-고객(주변에 새로 생긴 커피숍으로 물밀듯 빠져나가는 고객들)이 나를 협공하는 바람에 내가 설 땅이 점차 줄어들어 ‘개업초반부터 가게가 망하면 어떻게 되나 노심초사하는’ 개업 노이로제를 유발한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실감이 나지 않을까봐, 하루의 영업일지를 보면서 개업 노이로제에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① 아침 9시 30분. 가게 문을 열고 마수도 하지 않은 시각에 제일은행으로부터 900만원 대환대출 이자를 내라고 독촉하는 문자 메시지가 연달아 울린다. 거의 스토킹 수준의 전화가 열나게 걸려온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15차례나 울린 적이 있어서 그런 문자 메시지가 울릴 때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심장이 뛴다. 내가 은행 빚을 갚지 않고 도망간 죄인이 된 듯한 착각이 일어날 때도 있다.

 

② 이른 아침부터 우울증이 걸릴 듯 신경이 날카로운데 10시 30분에 냉난방기 회사의 직원이 와서 “인테리어 업자 때문에 2개월 봉급을 못 받았으니 당신 가게의 냉난방기를 뜯어가겠다”고 위협하여 날카롭게 신경전을 벌였다.

 

③ 냉난방기 회사 직원을 겨우 달래서 돌려보내자마자 10시 40분경 삼성카드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까지 밀린 카드대금 569,000원을 입금하지 않으면 법적 처리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겁이 잔뜩 났다. 법적 처리 운운하며 위협하는 전화에 대한 방어전을 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몰인정한 시장, 몰인정한 삼성카드회사․제일은행이 나의 숨통을 계속 죄고 있어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다. 은행의 야누스 행각(예금하러 은행에 갔을 때 미소 짓는 여직원과 너무나 달리 험악한 얼굴로 다가오는 대출창구)이 노이로제를 강화하는 심리적 메카니즘 중의 하나이다.

 

개업 초반부터 지속되는 금융기관-시장-국가-고객의 협공에 따른 개업 노이로제가 우심해지면, 오늘 저녁때 정신과 의사에게 드러낸 것과 같은 정신착란 현상이 재발되곤 한다.

 

정신과 의사에게 사죄의 전화를 걸며 수습했지만 실패한 뒤 정신이 혼미해진다. 정신 나간 듯 몸을 가누지 못할 것 같아서 담배도 피워보고 커피도 마셔보았지만 진정이 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만병(암 등)의 원인이라는데, 심각한 스트레스를 주는 개업 노이로제가 무의식 속에 파고들어 심리적인 병이 악화되면 심신이 멍들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가게 문을 닫았다.(201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