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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도시-평화 마을/3세계 숍

[커피 장사 수기 (11)] 사설 대부업체에 전화를 걸지 않은 이유

커피 장사 수기 (11)

 

사설 대부업체에 전화를 걸지 않은 이유

 

김승국(커피공방 뜰의 점장)

 

아침에 가게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마룻바닥에 사설 대부업체의 전단지 여러 뭉치가 떨어져 있다. 20페이지 정도의 메모지 맨 앞에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 받을 수 있다는 광고 문안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우리 가게뿐만 아니라 길거리에도 이러한 전단지를 물 뿌리듯 살포하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사설 대부업체의 전단지가 홍수처럼 넘쳐난다.  

 

 

위의 전단지에서 보다시피 (담보 제출을 요구하는) 은행의 문턱이 높아 고민하는 소상공인들을 유혹하는 문구가 나열되어 있다. ‘선이자도 없고 수수료도 없다’는 문구가 맨 처음에 눈에 띄도록 편집되어 있다. 선이자와 수수료를 떼고 대출해주던 관행이 사라진데는, 사설 대부업계의 과잉경쟁이 내재하고 있는 듯하다.

 

이른 아침이나 지난밤 늦게 전단지 돌리는 알바생들이 문틈으로 깊숙이 끼워 놓은 것들을 2~3일 동안 모아 놓으면 아래의 사진과 같다.

 

 

위의 사진과 같이 사설 대부업체가 한두 군데가 아닌 것을 보면 업체 간 과당경쟁을 눈치 챌 수 있다. 무엇이든지 장사가 되면 몰려드는 특성을 고려하면, 사설 대부업이 호황인 게 분명하다. 조그마한 사무실을 하나 내고 누구나 이러한 홍보지를 돌리면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걸려오기 때문에 해당 업체들이 난립하는 게 아닐까? 극심한 불황에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우리 동네와 같이 상권이 미약하여 소상공인의 숫자가 적은 지역에도 대부업체가 넘칠 정도이니 놀랄 일이다. 1년 6개월 전에 우리 가게 문을 열었을 때에는 거의 없던 대부 홍보용 메모지 묶음이 갈수록 늘어나 쌓여간다. 메모지 묶음의 맨 위에 있는 홍보지를 뜯어내면 깨끗한 탁상용 메모지 뭉치가 나타나기 때문에 활용가치가 있다. 이 메모지 뭉치가 얼마나 많이 쌓이는지...낭비할 정도로 써도 항상 남아 있다.

 

내가 대부업체에 전화를 걸지 않는 첫 번째 이유

 

나도 한때 급전이 필요하여 메모지에 기록되어 있는 업체로 전화를 걸려고 했으나 어머니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그만두었다. 바느질 품삯을 받아 가계의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님이 목돈이 필요할 때 일수돈을 즐겨 사용하셨는데, 하루라도 늦게 일수돈을 내면 엄청나게 시달렸다.

 

우리 집의 든든한 기둥뿌리인 모친이 일수돈 업자 앞에서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변제가 늦어지는 상황을 구구하게 설명하며 꼭 갚아드리겠다는 통사정하는 어머님의 굽실거림이 눈에 거슬렸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 때 일수돈 받을 사람은 거만한 태도로 위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으며 돈 빌린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 장부를 만지작거렸다. 그 장부의 내용을 훔치듯 읽어보면 ‘최복순’(어머님의 존함)이라는 페이지에 막도장(매일 매일 돈을 변제할 때마다 막도장을 찍어준다)이 드문드문 찍혀 있다. 돈이 없어서 일수돈 업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막도장 찍힌 공간이 성길수록 어머님에 대한 압박의 강도가 세질 게 틀림없다.

 

그나마 그 당시에는 일수돈 업자가 누군 인지 통성명할 정도이어서 대부업자가 심하게 굴지 않았다. 한 다리 건너면 사돈의 팔촌인 좁은 지역사회에서 일수돈 밀렸다고 횡포를 부리면  평판이 나빠지기 때문에 대부업자들이 꾹 참고 위협적인 언사만 늘어놓고 되돌아갔다.

 

두 번째로 전화를 걸지 않은 이유

 

내가 두 번째로 대부업체에 전화를 걸지 않은 이유는 대부업체의 강도 높은 횡포에 있다. 어머님이 고난당하던 당시에 일수돈과 관련하여 그나마 인간적인 숨통이 트여 있었기 때문에, 요즘같이 일수돈 빌려 쓰다가 신세망치는 일은 없었다. 예전의 연체이자 계산 방식과 다른 듯, 요즘에는 연체이자가 원금을 상회하기 시작하면 집안 살림이 거덜 나는 쪽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더욱이 대부업계의 주변에 폭력(악성 채무자를 위협하는 해결사들의 폭력성)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소문(이러한 소문이 근거 없는 낭설이기를 바란다)이 나로 하여금 전화를 걸지 못하게 한 직접적인 이유이다.

 

 

<사진 설명; 위의 두 개의 사진 속의 계산방식 속에 패가망신의 비밀번호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나에게 신체적인 위협이 털끝만큼이라도 예상됨을 무릅쓰고 급전을 빌릴 정도로 아직까지 내몰려 있지 않아서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위협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급전을 빌리는 사람들도 무지기수로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많으니까 대부업체가 난립하듯 우후죽순으로 늘어나지 않았을까? 많으면 많을수록 급전의 수요가 늘어나 요즘같이 대부업의 성황을 이룬 게 아닐까?

 

실제로 대부업체에 전화 거는 사람들의 일부는, 자본주의 시장질서에서 급전직하하기 일보직전에 놓여 있다.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매달려 있던 마지막 발판을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대부업체의 돈을 빌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연체이자의 덫에 빠지면 마지막 발판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려 ‘자본주의 시장에서 영원히 탈락하여 다시 기어오를 수 없는 지옥행’이 기다린다. 마지막 발판을 놓아버려 길거리로 나선 노숙자의 생활 쪽으로 서서히 다가선다.

 

지금 같은 극심한 불황에 노숙자 되기는 의외로 쉽다. 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나 같이 자영업을 하다가 돈줄이 막히면 마지막 수단으로 대부업체의 급전을 빌려 쓰고도 장사가 잘 안되면 급전의 연체이자가 원금보다 불어나 도저히 갚을 길이 없어진다. 마지막 발판을 스스로 놓아버린채 길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

이런 원초적인 불안감이 상존하므로 애써서 대부업체에 전화를 걸지 않았다. 

 

전화를 걸지 않은 세 번째 이유

 

나의 경우 가게의 운영자금이 부족하여 카드 돌려막기 끝에 카드회사의 대출(카드 론)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런데 카드 론의 이자 압박이 심각하여 고통을 받았다. 겨우 아는 분으로부터 돈을 빌려 카드 론의 원금과 이자를 재빨리 변제했으니 다행이었다. 불행하게도 카드 론의 대출금액이 불어나거나 연체이자가 급증하게 되면 카드 론을 갚기 위해 대부업체에 손을 내밀어 얻은 급전으로 카드 론의 위기를 넘기는 수밖에 없다. 카드 론의 위기가 대부업체의 급전으로 이전되지만, 급전의 위기는 카드 론으로 막을 수 없으므로 위기를 돌파할 수단이 사라져 자본주의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나로 하여금 대부업체에 전화 걸지 않게 한 세 번째 이유가 ‘위기의 연속 끝의 퇴출’에 있으므로 보다 근본적이다.

 

프레카리아트가 공모할 방도를 찾아보자

 

‘위기의 연속 끝의 퇴출’은 나에게 근본적인 불안을 안겨준다. 불안한 나의 상황을 잘 표현한 용어로 ‘프레카리아트(Precariat)’(주1)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불안한 시대의 프레카리아트를 포획하려는 그물망의 그물코 중의 하나가 대부업체이므로, 나와 같은 자영업자의 생활에 근본적이다.

 

필자가 예전에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는 명령 보다 ‘만국의 Precariat여 공모하자!’는 호소가 중요하다.>는 내용의 글을 쓴 일이 있다. 여기에서 ‘위기의 연속 끝의 퇴출’ 직전에 놓여 있는 프레카리아트의 사회적 공모가 시급한데, 어떻게 공모할지 잘 모르겠다. 공모할 방도를 대중적으로 찾아보자!(201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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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1) 프레카리아트에 관한 필자의 글을 보려면, 평화만들기(http://www.peacemaking.kr) 352호의「만국의 Precariat여 공모하자!」를 접속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