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화 운동/칼럼-에세이

일본 평화대회 참가기 (2)

김승국

 
지난번에는 일본 평화대회[2006년 12월 7~10일 일본의 이와쿠니(岩國)에서 열린 ‘米·日 군사동맹 타파, 기지 철거 2006년 일본 평화대회 in 岩國·廣島’]의 주요 발제자의 발언을 전달했다. 이번에는 일본 평화대회에 참석한 청중들의 발언을 대회 일자·장소에 따라 구분하여 기술한다. 청중들의 자유로운 발언이므로 발제자들보다 더욱 진솔하고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내용이 많아서 호소력이 강하다. 청중들의 신원을 밝히는 것보다 육성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발언을 인용하는 데 주력했으며, 일부 인사의 경우 이름·직함이 생략되는 경우가 있다.

 

♦ 12월 8일 밤의 개막집회

 

이날 밤 이와쿠니의 시민회관에서 약1.2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개막집회에 참석한 木下眞里 씨(38세)는 “앞으로 아츠기 기지의 항공모함 탑재기가 이와쿠니 기지로 옮겨올 때의 소음(탑재기의 엄청난 소음)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런 고통을 이와쿠니 시민들에게 안겨주어서는 안된다”며 열변을 토했다.

개막집회의 발언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山崎政則 씨(가네가와 현의 요코스카에서 운전수로 일하는 노동자)의 비통한 이야기이었다. 올 1월 그의 사랑하는 부인(56세)이 미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山崎政則 씨가 무대 위에 올라가 ‘요코스카 주둔 미군이 그의 부인을 살해하는 과정’을 설명할 때 장내의 일부 참석자들은 흐느끼듯 울었다.

그럼 山崎政則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06년 1월 3일 나는 휴무이었지만 아내는 일하러 나갔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에서 아내가 미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유흥비가 떨어진 미군 병사가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마침 아내가 그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병사는 길을 묻는척하다가 갑자기 아내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살인행위를 10여 분 간 했는데, 아내를 구타하고 벽에 부딪치고 짓밟고 발길질했다. 이렇게 악독한 범행을 방범 비디오가 촬영한 것이 있어서, 재판정에 그 비디오를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비디오를 보면 아내가 벽에 부딪치는 소리, 처를 짓밟는 소리가 들린다...갈비뼈가 6대 부러지고 내출혈 현상이 일어났다. 살인한 미군은 아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지갑을 빼앗아 달아났다. 내가 아내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엄청나게 잔혹한 모습으로 숨이 끊겨져 있었다. 얼굴 전체가 마치 햄버거 같이 되어버렸다...이게 사람 죽이는 훈련을 받은 미군병사가 벌인 짓 아닌가요?! 법정에 제출된 비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도와주세요!’ ‘그만 둬!!!’라는 아내의 목소리를 일생동안 잊지 못할 겁니다. 아내를 죽인 미군병사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미군 병사 한 사람만 벌을 받으면 끝날 일인가요! 본인·본인의 처와 같은 희생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기지(미군기지)가 없어져야 합니다. 기지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합니다. 그런데 일본·미국 정부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나는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사람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거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런 뜻으로 (일본·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재판에서 승리할 때까지 투쟁할 겁니다.”

 

♦ 12월 9일의 분과토론회

 

이날의 일본 평화대회는 이와쿠니 시·甘日 시(이와쿠니의 인근에 있는 도시)의 여러 회의장에서 두개의 대형 심포지엄과 10개의 분과 토론회가 하루 종일 열렸다. 이들 토론회 중 두개의 심포지엄·제3 분과 토론회·제10 분과 토론회장에서 나온 이야기를 전달한다.

 

  1) 제1 심포지엄(주제; 「미군기지의 강화」)

 

이와쿠니, 오키나와, 요코스카, 한국, 괌 등의 기지를 에워싼 실태가 중심적인 화제이었다. 괌에서 온 기나타 씨(챠모로 민족운동 단체의 대표자)는 “미군기지 때문에 챠모로 원주민의 토지를 빼앗겼으며, 괌의 주민들이 기지 오염으로 암·선천성 질병에 걸려 있다”고 말했다. 한국 측의 강정구 교수는 주한미군의 재편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한국에서는 주일미군까지 참가하는 대규모 합동훈련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기지반대 운동을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벌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키나와 현의 大西照雄 씨(나고 헬리콥터 기지신설 반대협의회 대표)는 나고 시의 헤노코에 미군의 V형 기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에 관하여 “제트기가 안전하게 착륙하기 위한 Hook가 설치되어 전투기가 날아올 위험성도 있다”며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요코스카의 평화운동가인 今野宏 씨(요코스카를 핵항공모함 기지로 만들려는 미·일 정부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주민투표를 추진하는 단체의 공동대표)는 “핵 항공모함의 입항을 용인한 요코스카 시장이 획득한 6만표에 육박하는 서명을 주민투표 추진세력이 얻었다”고 역설했다.

2006년 3월 달 이와쿠니의 주민투표를 성공시킨 야마구치 현 평화위원회의 久米慶典 대표이사는 “지방자치제 단체장들이 이구동성으로 ‘일본 정부에 속았다. 60년 전에 기지가 생긴 뒤로 좋은 일이란 한번도 없었다’면서 국가를 상대로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이런 국가가 기지 관련 경제진흥 대책을 운운하고 있다. 거짓말을 폭로하며 논쟁하는 일과 기지반대 운동이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다”고 설파했다.

 

  2) 제2 심포지엄(주제; 「일본의 진로」)

 

히로시마 현 노동자 학습협의회의 二見伸吾 사무국장은 “일본 헌법 제9조는 전쟁을 위헌으로 간주하는 최고의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가 일본헌법을 모방하면서 분쟁 해소에 나서고 있는데 일본은 거꾸로 깃발을 내리려[헌법 제9조를 개폐하려]하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吉岡吉典 전직 참의원은 군사동맹에서 벗어나 유엔헌장에 입각한 평화의 국제질서로 나아가는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미일 동맹의 움직임을 비판했다. 그는 “헌법 개악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무조건 동조하는 입장을 국가체제가 굳히려는 것이다”고 말했다.

 

  3) 제3 분과 토론회(주제; 「아시아의 평화와 야스쿠니 史觀·기지·안보를 생각한다」)

 

제3 분과 토론회는 아시아의 평화라는 관점에서 야스쿠니 신사(야스쿠니 신사의 역사관),주일미군-자위대 기지 문제,안보 문제(미일 동맹, 주일미군기지 재편 등)를 심층적으로 논의하는 자리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66명의 참가자들이 끈질기게 앉아서 진지한 토론을 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발언을 소개할 수 없으므로, 중요한 화제를(북한 핵실험, 북한 체제, 일본이 조선 땅 등에서 가해자로서 벌인 전쟁, 평화운동의 전개방법 등)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이 분과 토론회 초반의 압도적인 화제는 북한 문제이었다.

 

      ① 북한 문제·한반도 관련 발언들

 

* 후쿠시마 현에서 온 활동가; “북한의 핵실험 뒤 일본 정부가 엄혹한 경제제재를 실행하고 있지만, 경제제재는 평화적 해결 수단이 아니다. 경제제재의 희생자는 결국 북한 인민이다”
* 고찌 현의 {평화 자료관} 소장; “북한의 미사일 발사·핵실험 뒤 일본 시민들의 조총련계 학생들에 대한 이지메가 부쩍 늘었다. 북한 핵실험을 놓고,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바라보는 관점과 한국인의 관점이 다른 것 같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북한에 대한 위협인식이 크지 않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북한에 대하여 커다란 공포심을 갖고 있다. 일본인들의 북한 공포심은, 북한 위협론을 부풀리는 매스컴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 오사카에서 온 변호사; "북한의 일본인 납치는 범죄이며,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범죄국가이다”
* 70대의 노인 참가자; “조선인 강제연행 특히 종군 위안부 문제에 관하여 이야기하련다. 일제시대의 일본군 80~90%가 종군 위안부과 성관계를 가졌다. 이들은 패전 뒤 종군 위안부와의 성관계를 자랑하듯 ‘조선 여성들을 용감하게 정복(?)했다’는 무용담을 내뱉듯이 말하곤 했다”
* 60대의 활동가; “일본 제국주의 때문에 한반도가 분단되었음을 일본인들이 잘 알아두어야 한다”

 

      ② 야스쿠니 신사 관련 발언

 

* 야스쿠니 신사 반대운동을 하는 60대 초반의 활동가; “나는 야스쿠니 신사의 박물관인 遊就館을 안내하는 평화활동을 하고 있다. 遊就館의 전시물을 보면 일본이 벌인 전쟁의 첫 번째 희생자가 아동임을 알 수 있다. 아동·여성의 생명보호라는 관점에서 일제의 전쟁을 바라보면서 야스쿠니 사관을 재조명해야한다. 그리고 일본의 헌법개악 움직임과 야스쿠니 참배의 흐름이 연결되어 있음을 직시해야한다”

 

      ③ 미일 동맹·주일미군기지 재편 관련 발언

 

* 오사카 평화위원회 회원; “일본 언론들은 한결같이 미일안보가 중요하므로 국익의 관점에서 주일미군 기지의 재편을 바라보야 한다고 설교한다. 주일미군기지 재편에 대한 반대운동은 사실상 국익론에 대한 운동이다. 여기에서 아시아 속의 일본국익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살펴보아야한다”

 

      ④ 반기지 평화운동 관련 발언

 

* 80대의 할아버지 활동가; “미군기지가 있는 각 지역에서 운동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의 위기를 말하고 있으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오히려 지금이 운동의 호기이다. 그리고 지난 10년간의 운동경험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 군대생활을 한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빨리 죽어야 운동이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 오카야마 현에서 온 활동가; “인터넷을 통한 평화운동을 전개했으면 좋겠다. 나는 블로그를 통한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성과가 크다”
* 후쿠시마 현의 젊은 의료 생협 활동가; “본인은 헌법 제9조의 개악을 저지하는 모임을 만들고 싶은데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 현재 일본 운동권의 주류는 60대 이상의 노인들이어서 운동의 지평이 넓혀지지 않는다. 앞으로 젊은이들이 대거 운동에 참여해야하는데 만만치 않은 일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소비 지향적 가치관에 심취하여 세상 돌아가는 데 관심이 없는바, 그들을 운동에 끌어들이기 매우 어려우며 젊은이들에게 평화의 가치를 전파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4) 제10 청년 분과 토론회(주제; 역사인식을 공유하면서 미래를 열어 나아가자)

 

* 李室根 씨(재일 조선인 피폭자; 강사)는 일제가 조선인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은 사례를 열거했다. 그는 ‘폭력이나 핵무기가 없는 우호적이며 평화적인 동북 아시아를 실현시켜 나아가자’고 일본인 참석자들에게 제안했다.
* 鹿田正夫 씨(88세; 강사)는 자신을 전쟁의 가해자로 규정하면서 쓰라린 전쟁체험을 피력했다. 일본군의 잔학한 중국침략을 고발한 그는 “우선 일본 정부가 식민지 정책의 잘못을 사죄한 다음에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겠다고 서약한 헌법’을 수호해야한다”고 역설했다.
* 山根勝 씨(61세; 강사)는 “나는 조선땅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가 여동생과 나를 데리고 피난 다니다가 여동생은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그래서 나는 전쟁을 강하게 증오한다”며 자신의 전쟁체험을 술회했다.
----------
*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65호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