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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칼럼-에세이

일본 평화대회 참가기 (3)

김승국   

 
지난해 12월 7~9일에 일본 평화대회가 열린 이와쿠니(岩國)의 기지 현황과 기지반대 운동(주민투표)의 양상을 기술한다.


이와쿠니 기지는 제국의 군대가 줄곧 주둔한 곳이다. 1938년 일본 제국의 해군이 이와쿠니에 비행장을 건설한 다음 1940년에 해군항공대가 발족했다. 그 당시 이와쿠니는, 일제의 군대가 한반도·중국 대륙을 점령하는 후방기지 역할을 했다.


이와쿠니는 야마구치(山口) 현의 동쪽 끝에 있으면서 히로시마 현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육상의 요충지일 뿐 아니라, 일본 최대의 내해(內海)인 ‘세토 내해’의 길목에 있는 해상의 거점이다. 이런 탓인지 일본의 패전 직후인 1945년 9월에 미군 해병대가 이와쿠니에 주둔함으로써 일본 제국주의의 기지이었던 이와쿠니가 미국 제국주의의 기지로 탈바꿈했다(1957년부터 일본 해상자위대가 공동사용하기 시작함으로써 미·일 동맹군의 기지가 되었음)



이와쿠니 기지와 한반도 

 

미·일 동맹군의 요새가 된 이와쿠니 기지가 한반도의 근거리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불길한 느낌을 준다.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미 해병대가 이와쿠니 기지에서 맹활약하며 한반도(특히 북한)에 상륙하는 훈련을 하는 걸 생각할 때마다 몸서리쳐진다.


이와쿠니 기지와 한반도의 악연은 한국전쟁 때부터 시작된다. 한국전쟁 당시 이와쿠니 기지에서 매일같이 미군 전투기들이 한반도를 향해 출격하여 남한군을 지원하고 북한·중국군에 맹폭격을 가함으로써, 한반도가 군사적으로 분단되는데 일조했다.


한반도의 분단선(DMZ)을 긋는 데 힘을 보탠 이와쿠니 기지의 역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미·일(해양세력)과 중국·러시아(대륙세력)의 격돌이 일어나곤 하는 한반도의 가까이에 있는 이와쿠니 기지가 오늘날 한반도 분단체제의 확장에 공헌하고 있다. 이와쿠니 기지가 현재 미·일 동맹군의 북한 공략을 위한 최전방 기지로 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와쿠니 기지의 변신 과정을 살펴보자. 1987년 7월 이와쿠니 기지의 주력기이었던 ‘F-4 팬텀’이 ‘FA 호넷(Hornet)’으로 바뀌고 1989년에 해리어(Harrier)Ⅱ 12기가 배치되었다. '호넷’ 전투공격기는 미 해병대의 주력 전투기로서 대륙세력(중국)·북한에 대한 공격 때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특히 소련이 붕괴되어 탈냉전의 분위기가 배어나기 시작한 1989년에 ‘해리어’와 같은 공격형 전투기가 배치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탈냉전의 분위기가 고조되어가던 2002년 2월에 미군 대형 수송헬기 ‘CH 53D’ 8대가 이와쿠니에 배치되었다. ‘CH 53D’를 대량 배치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전쟁에 즉각 투입될 태세를 갖춘 것이다.


이렇듯 이와쿠니의 상공은, 미국의 한반도(북한) 공략을 위한 하늘로 변모했다. 필자가 일본 평화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와쿠니 역에 내린 시각(2006년 12월 7일 오후 2시)에 이와쿠니의 상공은, 거대한 전투기 편대가 마하의 속도로 진입할 때 내는 굉음으로 진동했다. 전투기들이 이착륙할 때 터져 나오는 굉음·폭발음(爆發音)으로 기지 주변에 폭죽이 터진 듯했다. 이 굉음은 1차적으로 이와쿠니 시민들에게 소음 공해를 줄 뿐만 아니라, 한반도 민중을 제2차적인 피해자로 내정하고 있다. 굉음이 커지고 잦을수록 북한에 대한 공격연습의 강도가 증가함을 말해주고,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분쟁 가능성이 높아져 한반도 민중 전체가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와쿠니에 체류하는 12월 7~9일 내내 들리는 이와쿠니 상공의 굉음은, 한반도의 ‘박빙의 평화’마저 역겨워하는 듯했다. 그 때가 마침 중국의 중재로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북-미간 물밑접촉이 이루어질 기간인 탓인지, 이와쿠니 상공의 굉음이 6자회담을 훼방하는 폭발음처럼 들렸다. 미국이 6자 회담에 진지하게 임했다면, 이와쿠니 등의 주일미군 기지에서 북한공격 연습을 중단했어야 마땅하다. 이와 달리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열리는 즈음에 주일미군 기지에서 북한 윽박지르기를 지속했으니 6자 회담이 성공할리 없다. 우스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6자회담의 장래를 점치기 위해 이와쿠니 기지에 들러 북한을 향한 공격연습 여부를 점검해야하지 않을까? 이와쿠니 상공에서 울리는 폭발음의 데시벨(decibel)을 재면서 6자 회담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필자가 강조한 내용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독자들을 위해 두 가지 중차대한 사항을 알린다. 첫 번째는 1997년 6월부터 이와쿠니 기지에 활주로를 하나 더 만드는 공사에 착공한 사실이다. 현재 미 해병대가 주로 사용하는 활주로도 부족하여 활주로를 신설한다는 것이다. 2008년 완공 예정인 새 활주로 공사를 위해 이와쿠니 해변에서 10년간 간척사업을 벌였다. 이 공사에 필요한 흙·건설자재를 채취하기 위해 이와쿠니 주변에 있는 거대한 산 하나가 사라졌다. 이와쿠니가 2008년 이후 거대한 활주로 2개를 지닌 초대형 기지가 되는데, 이 활주로들이 한반도(북한)·중동(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을 향해 뻗어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두 번째, 주일미군의 재편(GPR; Global Defense Posture Review)에 따라 아츠기(厚木) 미군기지(일본의 수도권에 있음)에 있는 항공모함 탑재기 57대·미군 1,600명을 2014년까지 이와쿠니의 새 활주로 주변으로 이동하려는 계획이다. 이 계획대로 되면 미군기 130대(일본 자위대의 전투기 제외)와 활주로 2개를 보유하는 아시아 최대의 기지로 격상된다. 여기에서 항공모함 탑재기가 이동한다는 이야기는, 항공모함이 이와쿠니 주변에 들락거린다는 것을 뜻한다. 더 나아가 오키나와의 후덴마(普天間) 기지에서 공중 급유기 KC-130이 이와쿠니로 옮겨오면, 이와쿠니를 중심으로 (한반도·중동 등에서의) 전쟁에 즉각 동원할 총체적인 준비가 완료된다.


앞으로 8년 뒤에 한반도의 앞마당 이와쿠니에 아시아 최강의 미군기지가 들어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와쿠니를 아시아 최강의 기지로 강화하려는 미일 동맹의 재편이 한반도 평화통일의 족쇄로 될 게 거의 틀림없는데, 우리들은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갖고 있는가?


외교 안보를 걱정한다는 관료·국회의원, 평화통일의 주문을 외우는 운동가들 그 어느 쪽으로부터도, 이와쿠니의 아시아 최막강 기지화(基地化)-(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미일 동맹 재편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들이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남북한의 갈등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에, (한반도에서 500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와쿠니에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줄 군사적인 움직임·미일동맹 재편이 맹렬하게 일어나고 있다.

 

주민투표에서 승리

 
 
이와 같이 미일 동맹에 대한 뾰족한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한 한국민에 앞서 이와쿠니 현지의 주민들·일본의 평화 운동가들이 분투하고 있다. 이들은 한·일 민중의 평화적 생존권 확보와 한반도·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이와쿠니 기지 재편 반대운동을 끈질기게 전개 중이며, 그 일환으로 2006년 3월 12일에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주일미군 재편의 현장인 이와쿠니 기지의 확장,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아츠기 기지의 항공모함 탑재기 57대를 이와쿠니로 이동하는 계획에 대하여 시민들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가 지난해 3월에 진행된 것이다. 주일미군 재편과 관련되어 처음으로 열린 이와쿠니 주민투표는, 일본 평화운동의 운명이 걸린 승부이었다.


결론을 미리 말하면, 주민투표는 이와쿠니 시민들의 승리로 마감했다. 주민투표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분발한 시민들의 활동·대중적인 평화운동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면 운동의 치열함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민투표 운동은, 이와쿠니와 비슷한 형태의 미군기지 재편(GPR)이 이루어지는 평택·대추리의 상황과 비교평가될 수 있다. 평택과 달리 이와쿠니의 시장이 기지확장에 반대하면서 주민투표를 선도한 점이 우선 눈에 띤다. 보수성이 강한 평택시장·평택 시의회 의원들이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에 찬성하는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이와쿠니 주민투표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투표율 59%를 확보하는데 힘겨웠다. 시장·시의회·NGO·주민들이 손을 잡았음에도 투표율 과반수를 겨우 넘겼다는 것은 일본 사회의 보수층이 얼마나 두꺼운지, 기득권의 방해공작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실감케 한다(미·일 정부는 이와쿠니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할 테니 주민투표에 불참하던지 기지확장에 찬성하는 쪽을 선택하라고 종용했다).


보수의 장벽을 넘어 이와쿠니 시민의 과반수가 기지확장에 반대하는(투표율 59%·투표자의 89%가 기지확장에 반대) 결과를 얻어낸 것은 쾌거이다. 이러한 쾌거를 달성하기 위한 운동전략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투표율 높이기 운동이고, 두 번째는 기지확장 반대를 유도하기 위한 운동이다. 투표율이 50% 이하일 경우 주민투표가 무효로 되므로, 투표율 제고를 위한 운동에 주력했다. {주민투표를 성공시키는 모임} 등의 시민운동 조직이 앞장서서 ‘3.12 GO!(3월 12일에 투표장으로 가자!)’ 캠페인을 전개했다.


투표일 당일 이와쿠니의 관광지인 금대교(錦帶橋) 광장에서, ‘3.12 GO!’라는 문자를 인간 띠로 그리는 집회를 여는 등 시민지향적인 방법을 총동원했다. 또 기지확장 반대의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노조·평화단체·지역운동 단체가 총동원되어 전국적인 성원을 이끌어 냈으며 날마다 거리 서명·전단 나누어주기 활동을 했다. 그 결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 이와쿠니 시내의 일부 다방(찻집)·수영장·이발소의 옥내외에 투표 참가권유 전단을 내거는 일이 생겼다.


활동가들이 거리에서 손 마이크로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으며, 길거리에서 기타 연주회를 열거나, 골목마다 선전차가 누비고 다니며 홍보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山根郁이라는 주부(35세)는 3개월 난 아들 녀석을 주인공으로 삼은 8단 만화(갓난아이가 성인들에게 주민투표 참여를 요청하는 내용의 만화)를 유권자들에게 배포하면서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물론 주민투표는 법률적인 강제력이 없어서, 승리한 측이 이와쿠니 기지 재편(아츠기 기지로부터 항공모함 탑재기의 이동)을 막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힘으로 이와쿠니 기지 확대-미일 동맹군 재편의 예봉을 꺾은 점은 평화운동사에 길이 남을 것이며 평택·대추리에서도 이런 운동방법을 채택할 만하다. 그리고 평택·대추리와 이와쿠니 양쪽의 운동단체·활동가들이 교류하면서 상호지원하는 길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국민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라도 이와쿠니 기지확장 반대운동을 성원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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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66호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