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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칼럼-에세이

세계 평화포럼이 ‘반핵’을 주창한 배경

김승국

 

세계 평화포럼(이하 ‘WPF’)의 프로그램 중 반핵(핵무기 반대 · 핵무기 철폐)에 관한 것이 많았으며, 반핵운동에 주력하는 일본인들이 대거 참가했다.

그러면 WPF가 ‘반핵’을 주창한 배경을 더듬어 본다;

① 캐나다 국민들 · 뱅쿠버 시민들의 반핵에 대한 관심이 높다. 1960년대부터 뱅쿠버 시민들은 반핵운동을 열심히 해왔으며 캐나다 정부는 핵무기 철폐를 위한 중견국가 그룹을 주도하고 있다.

② 이 것만으로 설명이 불충분하다. 결정적인 것은, 핵무기의 존재의미가 없는 탈냉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이 최첨단 · 소형 핵무기(사용 가능한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 소련 사이의 핵개발 경쟁으로 점철된 냉전이 종식되었기 때문에 핵무기의 존재이유가 없고 반핵운동도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아직도 지구상에는 28,000발의 핵무기가 존재한다. 냉전시대에 비하여 핵무기의 숫자는 줄었지만 핵무기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어 냉전시대 못지않은 핵무기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③ 미국의 새로운 핵정책인 '핵 태세 수정(NPR; Nuclear Posture Review)'에서 뜻하는 바와 같이, 미국은 선제 핵공격 능력을 중시한다. 북한 등 ‘불량국가(Rogue State)’에 대한 핵 선제공격은 핵전쟁을 예고하고 있으며, 이를 감행하려는 ‘불량한 미국’의 호전적인 핵정책이 세계평화를 가로막는 화근이다.

④ 냉전시대에 없었던 새로운 무기체계인 ‘미사일 방어망(MD; Missile Defense)’이 부각되고 있다.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개발중인 MD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유형의 핵무기 경쟁이 전개되고 있다.

⑤ MD 시스템은 핵무기 · 전자무기를 우주공간으로 확장시키는 ‘우주 군비확장’을 초래한다. 이라크 · 북한의 대량파괴 무기 확산을 우려하는 미국이 우주 공간으로 대량파괴 무기를 확산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⑥ 북한 등 불량국가의 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한 사용가능한 핵무기 · 벙커 버스터 핵폭탄을 개발중이다.

⑦ 북한 핵 문제가 세계적인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⑧ 북한 핵문제와 유사한 이란의 핵문제가 불거져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⑨ 북한 ·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군사공격을 고려하는 한편 인도 · 일본 · 이스라엘의 핵개발에 면죄부를 발행하는 ‘미국의 이중기준’이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⑩ 미국 스스로 (전 세계의 핵무기 관리체계)인 NPT(핵무기 확산 금지 조약)를 무너뜨리고 있다.

 

반핵 관련 프로그램 소개

 

위와 같은 10가지 배경만으로도 ‘반핵’이 WPF의 주제가 될만하다. WPF에서 북한 핵문제가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점이 유감스럽지만, WPF 참가자들은 아래에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반핵평화의 길을 모색했다(프로그램의 이름은 생략하고 프로그램의 핵심주제 · 내용을 중심으로 설명함);

 

<2006년 6월 23일의 반핵 관련 프로그램>


① {Abolition 2000}의 연차총회에서 핵군축 운동의 전략을 논의했다. {Abolition 2000}은, 90개국의 2천여 NGO가 핵무기 철폐를 위한 연대운동을 전개하는 국제조직이다.

② 이날 밤 Orpheum 극장에서 열린 WPF 전야제 행사에서 ‘핵무기 폐기’ 관련 연설이 있었다.

 

<2006년 6월 24일의 프로그램>


① WPF 개막총회의 주요 의제로 ‘핵무기 근절’이 들어갔다. 뱅쿠버의 이웃 도시인 Burnaby의 시장이 ‘핵무기 절멸을 위한 지구적 차원의 캠페인’이라는 주제로 연설을 했다.

 

<2006년 6월 25일의 프로그램>


① 하루 종일 열린 ‘청소년의 날(Youth Day)' 행사의 일환으로 ‘청년과 핵군축’이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서 ‘핵무기가 확산되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핵군축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열띤 논의를 했다.

② ‘우주 공간의 핵무기 없애기’라는 주제 아래 “미국 주도의 군비경쟁이 우주로까지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핵무기가 우주에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해야한다”고 결론 내렸다.

③ 21세기의 평화구축을 위한 핵무기 근절 방안을 강구하는 토론회. 탈냉전 시대임에도 미국 등이 핵무기 위협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구촌 곳곳에 핵전쟁의 악몽이 재현되고 있는 바, 이를 막아내야 한다.

④ 이날 열린 세계평화 시장회의에서 일본인 피폭자가 시장들 앞에서 피폭의 참상을 증언했다.

 

<2006년 6월 26일의 프로그램>


① 보건 전문가들이 핵전쟁의 참화로부터 건강한 지구를 지켜내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② 핵문제 · 핵무장 국가 · 핵전쟁 지향적인 국가를 국제법정으로 끌고 나와 심판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③ 프랑스의 ‘핵전쟁 게임’에 대한 냉혹한 비판을 가한 심포지엄.

④ 일본의 반핵단체 중심으로 비핵지대화 관련 회의에서 ‘비핵지대가 설정되지 않은 동아시아를 비핵지대로 만드는 작업’에 대하여 열띤 대화를 나눴다.

⑤ 캐나다 정부의 미사일 방어망(MD) 관련 정책을 다뤘다. 미국으로부터 MD정책에 참여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캐나다 정부가 미국과 거리를 두고 있는데, 이러한 관계 속에서 평화 NGO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탐색했다.

⑥ 캐나다의 {Pugwash(과학자 중심의 국제적인 반핵 운동 단체)}가 주도한 토론회. 유능한 인재들이 핵군축 관련 논쟁을 유발하여 끈질긴 문제제기를 하고 논쟁의 공통기반을 만들어내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를 위한 홈페이지를 운영하여 반핵의 논의를 확산하자고 다짐했다.

⑦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문제를 다뤘다. 핵 확산을 막고, 안전하며 청결한 에너지를 얻기 위한 비결을 찾았다.

⑧ 유엔 안에서 국제법 · 외교를 통한 핵폐기 전략을 찾아보자는 논의. 유엔 군축회의 · 안보리 결의 1540호 등에서 교훈을 발견하자고 제창했다.

⑨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핵무기가 굴러다니는데도 핵문제가 ‘평화 · 정의’와 동떨어진 사안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비판했다. 핵 · 핵군확 · 핵무기의 우주 배치 등을 사회정의와 연결시키는 방안을 숙의했다.

⑩ ‘캐나다 정부는 우주의 무기화(武器化)를 방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가운데, 우주무기를 에워싼 캐나다 국민 · 정부의 전략적 행동을 내오자고 의견을 모았다.

⑪ 핵 관련 영상물(비디오)을 보면서 토론했다.

⑫ 이란의 핵위기 관련 토론회. ‘이란의 핵개발 논란의 진상, 미국의 이란에 대한 핵 선제공격 가능성, 이란의 핵문제와 NPT 체제, 이란 핵과 중동의 평화’ 등을 에워싸고 열띤 논의를 했다.

⑬ 이날 저녁의 평화 음악회에서 반핵 의식을 고취시키는 음악을 선보였다.

 

<2006년 6월 27일의 프로그램>


① 핵무기가 없는 세상을 이룩하는데 있어서 과학자의 역할을 논의했다. 과학자들이 핵무기 제조의 원리를 제공했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이 핵군축의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② 피폭자들의 국제적인 네트워크 만들기. 히로시마 · 나가사키의 피폭자, 전 세계 우라늄 광산 · 핵실험장의 피해자 현황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피폭자 지원체계를 지역 · 국내 · 국제적 차원에서 만들어가자고 의지를 모았다.

③ 핵무기 발사 버튼에서 손을 떼게 만들자. 일촉즉발의 핵무기 발사체제로부터 미국 · 러시아를 떼어놓는 방법을 모색했다.

④ 영국의 Trident 핵무기 체제에 저항하고 비핵세계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

⑤ 우주공간의 '별들의 전쟁(Star Wars)' 관련 활동가들의 보고회.

⑥ 다시 고개 드는 원자력 발전의 경향을 비판하는 토론회. 1968년 체르노빌 사건 이후 원자력 발전이 퇴조했다. 그러나 기후 변화의 공포 때문에 원자력 발전 논의가 재개되는 움직임을 쐐기 박자고 의견을 모았다.

 

<2006년 6월 27일의 프로그램>


① 핵무기 프로그램이 건강 · 환경에 주는 영향을 논의했다.

② 시장 · 국회의원 · NGO가 평화활동을 공유하는 회의체를 만들자는 회의.

③ 군사기밀 · 핵 관련 비밀을 폭로한 사건에 대한 대응방안을 협의했다. 이스라엘의 핵무기 관련 비밀을 폭로하는 바람에 옥고를 치룬 바누누(Mordechal Vanunu)씨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④ 무차별 살상무기인 열화 우라늄탄의 해악과 열화 우라늄탄의 감축 방안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있었다.

⑤ 국회의원 · 국회 차원의 핵군축 방안을 강구했다.

 

<2006년 6월 28일의 프로그램>


① 아침 일찍 일본의 Peace Boat가 뱅쿠버 항에 입항하여 다양한 반핵 활동을 전개했다.

②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핵군축에 참여하는 길을 모색하는 가운데 평화의 문화를 조성하자는 취지의 토론회. 이 토론회에, Peace Boat에 승선한 대학생들이 참여했다.

③ 평화 활동가들이 핵군축 운동방향을 논의했다.

④ 핵군축에 나서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 권고를 협의했다.

 

한스 블릭스의 등장

 

6일 동안의 반핵 프로그램 중에서 이채로운 것은 한스 블릭스(Hans Blix)가 WPF 무대에 등장한 점이다. 스웨덴 출신의 한스 블릭스는 클린턴 정권 때까지 국제 핵 산업계를 쥐락펴락한 ‘군(軍) · 산(産) 복합체’의 거두이었다. 그는 국제원자력 기구(IAEA)의 사무총장으로서 북한 핵문제에 깊이 관여하여 북한 지도부를 궁지에 몬 장본인이다. 1993년 북한 핵위기 때 대북 특별사찰을 주도하다가 북한이 응하지 않자, 유엔 안보리에 북한 핵문제를 회부하여 대북 군사제재를 꾀하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이윽고 대북 군사제재에 앞장선 미국이 1994년 북한과의 전쟁 일보직전까지 나아갔다.

이처럼 ‘죽임의 상인(군 · 산 복합체, 핵 산업계)의 대리인’ 노릇을 한 한스 블릭스가 부시 정권(네오콘?)과의 불화로 IAEA를 떠났으며, 현재 야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이라크의 대량파괴 무기를 트집 잡아 이라크 전쟁을 기획한 부시 정권은, IAEA와 합동으로 이라크에 대한 대량파괴 무기 사찰을 실시했다. 이라크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루머를 국제적으로 유포한 부시 정권은, 이라크의 핵무기 보유 여부를 사찰하기 위해 IAEA · 미국 정부의 특별사찰 팀을 바그다드에 보냈다. 이라크는, 특별사찰 팀의 일반 군부대 사찰까지 허용하는 등 상당히 협조했다. 그런데 이라크 전쟁까지 건너다보며 움직인 한스 블릭스의 사찰 팀은 잔인했다.

특별사찰 팀이 얼마나 후세인 정권을 못살게 굴었는지...후세인의 집무실 · 친위부대 사령부에 핵 물질을 감추어놓았다고 호들갑떨며 후세인 정권의 안방까지 뒤지려고 덤벼들었다. 권부의 안방까지 사찰팀에게 공개할 수 없었던 후세인은 한스 블릭스 팀의 잔인한 특별사찰 제의를 거부했으며, 이에 대한 괘씸죄로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벌인 듯하다.

만일 북한이 후세인 정권처럼 호락호락하면 김정일 위원장의 집무실 · 부부생활하는 이불 속까지 뒤지며 핵 사찰을 강요할지 모른다. 북한이 미국 주도의 특별 핵사찰을 철두철미하게 거부하는 저변에, (우물쭈물 핵사찰을 수용한 끝에 전쟁의 구렁에 빠져 패전한 뒤 미군영창에 갇힌) 후세인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결의가 있는 듯하다.

어쨌든 한스 블릭스는, (부시 정권의 암시적 명령에 따라) 이라크의 대량파괴 무기 사찰을 빙자하며 이라크 전쟁을 유도한 일등 공신이다. 그런데 ‘부시 정권이 이라크에 실제로 대량파괴 무기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대량파괴 무기를 없앤다는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켰다’는 논의가, 이라크 전쟁 이후 불거져 나왔다.

이렇게 ‘이라크 전쟁의 명분 없음’이 드러나자 부시 정권이 밀리기 시작했다. 국제동향에 대한 후각이 뛰어난 한스 블릭스는 이 때부터 ‘이라크에 대량파괴 무기가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이라크 전쟁을 강행한 부시 정권’을 향하여 포문을 열었다. 이윽고 지난 미 대통령 선거 때 공화당 후보인 부시에게 화살을 날리며 “이라크에 대량파괴 무기가 없었다”는 고백을 했다.

부시 정권과 결별한 대가로 IAEA로부터 정리해고(?)된 한스 블릭스는, 스웨덴에 {Weapons of Mass Destruction Commission}이라는 평화 NGO를 차려 놓고, 이 단체의 대표 자격으로 WPF에 참석했다.

‘죽임의 상인’ 대리인이었던 한스 블릭스. 그가 회개(지난 시절 죽임의 상인들을 위해 봉사했던 잘못과 관련된 석고대죄)하기는커녕 평화의 전도사인양 부시 정부의 핵정책을 비난한 인터뷰 기사(http://www.worldpeaceforum.ca/live)를 보고 구역질이 났다. 핵산업계의 거두에서 평화 전도사로 변신한 그의 모습 뒤에 숨겨진 칼날이 두려웠다. ‘변신의 귀재’ 한스 블릭스가 WPF의 귀빈이 되었음을 축하해야할지...그의 과거사를 심판하자고 제의해야할지 망설여진다.

 

일본인들의 조용한 발걸음

 

한스 블릭스 못지않게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일본인들 수백 명이 WPF에 참석하여 조용한 활동을 전개한 점이다. 일본인들은 세계 어디를 가도 사뿐 사뿐 걸어 다니며 자료 · 정보 챙길 것 다챙기며 실속을 차린다. 한국인들이 요란하게 떠들며 허장성세로 지내다가 본질을 놓치는 것과 대비된다. 특히 한국의 일부 운동권 인사들이 국제대회에 참석했을 때 낮에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지내다가(영어 회화에 뒤지므로 어쩔 수 없이...), 해가 질 무렵부터 눈이 반짝이기 시작하여 밤 새워 술타령한 다음 그 다음날의 토론회장에서 꾸벅꾸벅 조는 행각과 비교하면, 일본인들은 선량학생이다. 아니 선량학생을 넘어 모범생이다. 국제대회장에 소그룹으로 (미리 준비한) 소형 통역기를 들고 다니며, 토론회장에서 나온 이야기를 깨알 같은 글씨로 받아쓰는 모범생(받아쓰기 派)이 일본인 활동가들이다. 글씨를 받아쓰는 게 귀찮은 듯, 아예 녹음기를 책상머리에 놓는 ‘녹음 派’도 더러 있다. 귀가하여 녹음기의 버튼을 열심히 앞뒤로 눌러가며 받아쓰면 되니까...

이처럼 일본인 운동가들은 볼펜 · 녹음기 · 통역기로 무장한 채 토론회 전체를 미세하게 베끼는 ‘현미경 式 국제연대 운동’을 즐긴다. 그런데 한국의 운동가들은 달랑 볼펜 한 자루만 지닌 채 국제회의장 한 가운데 망원경을 갖다 놓고 팔짱 낀 채 토론회의 총론을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한국 운동가의 ‘망원경 式 국제연대 운동’과 일본 운동가의 ‘현미경 式 국제연대 운동’의 대비도 재미있지만, 두 형태의 운동이 공존하는 국제회의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한데...이번 WPF에서는 그런 기쁨을 누릴 기회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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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40호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