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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마르크스_ 정치경제학

마르크스의 고대 ・중세의 전쟁에 대한 평가

김승국

만약 우리가 {序說(정치경제학 비판 서설)} 그 자체의 원문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실제로 ‘사회구성체’와 그 ‘경제적 토대’ 또는 ‘경제적 구조(Struktur)’ 사이의 관계에 대한 해명, 즉 생산양식의 연구를 통해 구성된 해부학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회구성체는 제 계급 간의 제1의 ‘모순’의 장으로서, 그것을 마르크스는 투쟁 ・전쟁 ・대립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그 ‘모순’은 ‘한마디로 억압자와 피억압자’({공산당 선언})로 이루어지며 ‘때로는 공개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은폐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것은 마르크스가 용어법에 이르기까지 제1의 모순과 혼동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인 제2의 ‘모순’ 형태와 관련된다. 그는 제2의 ‘모순’ 형태를 ‘적대(antagonism)’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개인적인 적대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즉 개인 간의 투쟁이 아니라 적대적인 구조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어떤 일정한 생산양식에 전형적인 경제적 토대 내부에 있다. 그리고 그 항들(terms)은 ‘생산력의 수준’과 ‘생산관계’라고 불리는 것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적대는 하나의 혁명적인 단절의 효과를 갖는 것인데, 한 생산양식으로부터 다른 생산양식으로의 이행(경제적 사회구성체의 전진적인 모든 시기들), 따라서 사회구성체 전체의 변형까지도 결정하는 것은 이 효과이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연구를 경제적 구조 내부에서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영역의 수준이나 이 ‘적대’의 단계에 한정시키려고 한다.(주1)

마르크스에 있어서 사회구성체의 모순은 투쟁 ・전쟁 ・대립 ・적대의 형태로 드러난다. 마르크스는 더 나아가 ‘여기에서 서술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되는 점들에 관한 주의 사항’을 환기시키며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전쟁은 평화보다 더 일찍 이루어졌다(Krieg früher ausgebildet wie Frieden). 전쟁에 의하여, 또한 군대 등의 내부에서 임금노동 ・기계 등의 일정한 경제적 관계들이 부르주아 사회 내부에서보다 더 일찍 발전되는 방식이 완성되었다. 생산력과 교통관계(교류관계: Verkehrsverhältnis)의 관련 역시 군대 안에서 특히 명백하다.”(주2)

마르크스는 여기에서 ‘전쟁’에 대한 엄밀한 규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요강(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의 전쟁 개념을 확정하는 데 있어서 위의 ‘주의사항’에 따라 총괄하는 것이 불가분한 전제이다.
 
{요강}의 전쟁 개념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거슬러 올라간 지점에서 고려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요강}Ⅲ의 「자본주의적 생산에 선행하는 제형태諸形態(Formen, die der kapitalistischen Produktion vorhergehen)」 (이하「諸形態」)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諸形態」의 전쟁개념이 무엇인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독일 이데올로기}의 ‘분업의 여러 가지 발전단계’ 연구를 바탕으로 삼은 마르크스는 「諸形態」에서 3가지의 공동적(共同的) 토지소유 형태의 특징, 즉 ① 동양적 또는 아시아的 형태 ② 고대적(古代的) 또는 그리스 ・로마的 형태 ③ 게르만的 형태를 총괄한다. 마르크스는 인류사(人類史)의 발전단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명제를 내건다: “대체로 말하여 경제적 사회구성(Gesellschaftsformation)이 진보하여 가는 단계로서 아시아적 생산양식, 고대적 생산양식, 봉건적 생산양식, 근대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을 들 수 있다”(주3)

여기에서는 논의의 편의상 ① 원시공동체 ② 고전적 공동체 ③ 게르만的 공동체에 걸쳐 「諸形態」의 전쟁 개념을 추출(抽出)한다.

1. 원시 공동체에 있어서 전쟁의 존재 형태

원시공동체의 생산관계의 기초는 생산수단의 공동적 소유이다. 마르크스는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유란 본원적으로 자기에 속한 것으로서, 자기의 것으로서, 인간 고유의 삶의 모습과 더불어 전제된 것으로서, 자연적 생산조건에 대한 인간의 관계 행위에 다름 아니다.”(주4) 원시공동체에 있어서 토지는 공동의 재산이었으며 ‘노동수단이나 노동재료를 제공하고 거주지, 공동단체의 기지(基地)도 제공하는 거대한 작업장이었으며 병기창(兵器廠)이었다.(주5)

따라서 이러한 공동체적(共同體的) 토지소유를 기본으로 하는 원시공동체의 생산력 발전에 있어서 폭력에 의한 타인의 토지 탈취-전쟁은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다. 원시공동체에 있어서 전쟁은 ‘하나의 정상적인 교통형태’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작은 공동체는 서로 독립 병존하며 초목처럼 생명을 유지하고, 그 공동체 속의 개인은 그에게 할당된 분유지(分有地)에서 가족과 더불어 독립한다. (한편 공동의 비축, 이른바 보험을 위한 일정한 노동 및 공동체 자체의 경비에 충당하기 위하여, 즉 전쟁, 제사(祭祀) 등을 위한 일정한 노동을 지출한다.)”(주6)

마르크스는 공동노동의 관리, 수장적 재산관리(首長的財産管理; das herrschaftliche Dominium)에서 ‘부역(賦役) 등에로 이행하는 현상의 기초’를 발견한다. 이러한 정체적(停滯的)인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도 일정한 발전이 있었다. 즉 “인구와 수요의 증가, 전쟁이나 교역과 같은 외적 교통(外的 交通; der äußere Verkehr)의 확장과 더불어 가족 안에 잠재해 있던 노예제가 비로소 서서히 발전한다.”(주7)

그리고 농업 ・공업이 조화를 이루며 자급자족하는 아시아的 형태와 전쟁의 관계에 관하여 말하자면, ‘오로지 토지소유 ・인공관개(人工灌漑)가 유력하므로 정복전쟁이 그리스 ・로마만큼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다.’(주8) 바꾸어 말하면 많은 공동체의 아버지인 전제군주가 여러 공동체의 위에서 군림하는 아시아的 농업사회에서 전쟁이 공동체적 소유관계를 거의 분해시킬 수 없었다.

2. 고전적 공동체에 있어서 전쟁의 존재형태

고전적 공동체의 경제적 기초는 소농민경영(小農民經營)과 독립한 수공업 경영이다. 그리고 고대세계에 있어서 대규모의 협업은 직접적인 지배 ・예속관계-노예제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즉 원시공산제 사회에서 노예제 사회로 발전하면서 ‘공동노동에서 사적 노동(私的 勞動)에로의 발전’이 이루어진다. 이와 관련하여 {요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개인(個個人)의 재산이 사실상 공동노동 ―예컨대 동양의 용수로(用水路)와 같은 ―에 의하여서만 이용되는 일이 적을수록, 또 역사적인 운동 ・이동이 종족의 순수하게 자연발생적인 성격을 파괴하는 일이 많을수록, 또 종족이 최초의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딴 곳의 토지를 점령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새로운 노동조건 속으로 뛰어들어 개개인의 정력(精力)이 점점 더 발전할수록, 종족의 공동적 성격이 외부를 향하여 점점 더 소극적인 통일체(統一體)로 나타난다. 이런 일이 나타날수록 드디어 개개인이 토지 ―개별적인 분할지(分割地; Parzelle) ―의 사적 소유자(私的 所有者)가 되고, 그 토지의 개별적인 경작이 그와 가족의 손으로 되돌아가는 조건을 부여받는 일이 많아진다. 공동체는 ―국가로서 ―한편으로는 자유평등한 사적 소유자 상호관계, 외부에 대한 그들의 결합인 동시에 그들의 보장이기도 하다.”(주9)

마르크스는 ‘역사적 운동이나 이동’ 더 나아가 ‘딴 곳의 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쟁을 선진적(先進的)인 그리스 ・로마의 원시공동체에서 예증(例證)하며, 이러한 전쟁이 고전적 공동체 성립의 전제를 이루는 계기임을 밝힌다.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면 “전쟁은 생존의 객관적 조건을 점취(占取)하기 위하여 존재하며 그 점취를 유지하고 영구화(永久化)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거대한 공동적共同的 임무(die große Gesamtaufgabe)이며 거대한 공동적 노동(die große gemeinschaftliche
Arbeit)이다. 가족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당장 군사적으로 군제(軍制) ・병제(兵制)로 편제되며, 소유자로 존재하는 조건 중의 하나이다.”(주10)

마르크스에 의하면 전쟁은 공동체의 노동이다. 고전적 공동체의 생산관계의 특징을 드러내는 공동체는, 공동체 구성원의 군무(軍務) 등의 형태를 띤 잉여노동에 의하여 보장받는다. 그것은 富를 생산하는 노동 ―이것에 의하여 공동체 구성원은 자신을 재생산한다 ―에 있어서의 협업이 아니라, 공동체 안팎의 단결을 유지하는 (가상적이거나 현실적인) 공통의 이익을 위한 노동에 있어서의 협업이다.(주11)

{요강}을 잘 읽어보면 이 ‘고전적 공동체’를 유지 ・재생산하는 조건들이, 동시에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파괴조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개인들이 각자 상당한 경작지를 점유해야할 경우 인구 증가가 방해요소로 된다. 이러한 장애를 예방하려면 식민(植民)을 해야 하고 식민은 정복전쟁을 필요로 한다. 그와 더불어 노예제 등이 생긴다. 예컨대 공유지(公有地; ager publicus)의 확대가 일어나며, 그와 더불어 공동단체(共同團體)를 대표하는 귀족이 생긴다. 이처럼 낡은 공동단체의 유지는 그것의 기초를 이루는 조건들의 파괴요소를 지닌 채 반대물(反對物)로 전회(轉回)한다.”(주12)

지금까지 그리스 ・로마의 고전적 공동체 형성이 노예제로 귀결하는 과정을 개괄하고, 고전적 공동체에 있어서 전쟁의 존재형태를 확인했다. 여기에서 한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 없는데 전쟁이 노예제를 직접적으로 성립시킨 것이 아니라, 전쟁에 의하여 비로소 방대한 노예의 공급이 실현된 점이다.(주13)

3. 게르만的 공동체에 있어서 전쟁의 존재형태

게르만적 공동체를 문제 삼을 경우 {독일 이데올로기}의 다음과 같은 문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봉건제적 발전은 그리스나 로마와는 대조적으로 로마의 정복과 당초에는 그것에 수반된 농업의 확장 및 보다 광활한 대지 위에서 시작되었다. 붕괴하는 로마제국의 마지막 몇 세기, 그리고 야만족에 의한 로마제국은 상당 부분의 생산력을 파괴시켰다. 그에 따라 농업은 침체되었고 산업은 판매부족으로 쇠퇴하였으며 교역은 마비되거나 치명적으로 붕괴되어 농촌에서나 도시에서나 인구가 감소했다. 이 기존의 관계와 이것에 따라 조건 지어진 정복의 조직방식은 게르만 병제(兵制)의 영향하에서 봉건적 소유를 발전시켰다.”(주14)

이 게르만的 소유형태의 특징은, 개개의 가족장(家族長)이 먼 길의 안쪽에 떨어진 삼림 속에 정착하는 고립된, 자립적인 가족거주에 있다. 그것은 같은 종족 이외의 가족거주와의 동맹과, 이를 상호보증하기 위하여 수시로 벌어지는 전쟁, 종교, 법률적 조정 등을 위한 회합에 의하여 보증된다. 이러한 공동체는 이들 개인적 토지소유자들 자체의 상호교섭 가운데에서만 존재하게 된다.(주15) 이처럼 게르만的 공동체에서도 전쟁은 생산 ・분배에 있어서 경제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이 자명해진다.

지금까지 「諸形態」의 전쟁 개념을 정립한 끝에 게르만的 공동체의 전쟁형태를 규명하기에 이르렀다. 「諸形態」에 있어서 ‘전쟁’을 한마디로 총괄하면 “재산을 확보하기 위하여, 재산의 신규획득을 위하여 자연발생적인 공동체가 수행하는 가장 본원적인 노동(die ursprünglichste Arbeit) 중의 하나이다.”(주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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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알튀세르 지음 김진엽 옮김,『자본론을 읽는다』(서울: 두레, 1991), 260쪽.
(주2) Marx {Einleitung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EW 13, p.639.
(주3) Marx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Vorwort} MEW 13, p.9.
(주4) 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EW 42, p.399.
(주5) Ibid., p.384.
(주6) Ibid., p.385.
(주7) Marx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MEW 3, p.22.
(주8) 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EW 42, p.401.
(주9) 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EW 42, p.387.
(주10) Ibid., p.386.
(주11) 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EW 42, p.388.
(주12) Ibid., pp.401~402.
(주13) 竹村民郞 「マルクスにおける暴力-戰爭槪念」 {經濟學批判ヘの契機}(東京: 三一書房, 1974). 51쪽.
(주14) Marx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MEW 3, p.24.
(주15) Ibid., pp.391~392.
(주16) Ibid.,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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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마르크스가 본 전쟁과 평화」의 제3장 제2절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40호에 실려 있다.
* 김승국『마르크스의「전쟁‧평화」론』(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140~147쪽에도, 위의 글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