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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마르크스_ 정치경제학

마르크스의 전쟁에 대한 관점

김승국

마르크스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延長)이다’는 클라우제비츠(Klausewitz)의 전쟁관을 수용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전쟁이란 국내 혹은 국제체계에 있어서 계급 간의 무력(폭력) 대결이다. 전쟁이란 무력(폭력) 수단에 의한 계급정치(Klassenpolitik)의 연장이다.

전쟁이란 계급투쟁의 한 형태로서 제(諸) 사회계급의 계급정책의 수단이라고 정의할 때, 이 전쟁은 어떠한 원인에서 발생하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우리의 견해에 의하면 역사상의 일체의 충돌은 생산력과 교통형태의 모순 속에 그 원인을 가지고 있다”(MEW 3, p.73.)라고 말한다. 그리고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인격적 표현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고 한다면 전쟁은 이들이 의도하는 계급적 이해의 대립에 원인을 가지는 것이 된다. 이는 곧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내재하는 운동법칙, 그중의 하나로서 ‘경쟁’의 자연법칙이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적 경쟁으로부터 엥겔스는 ‘사회전쟁(der soziale Krieg)’ 개념을 연역해내고 있다<이해영 편 {엥겔스 연구}(서울: 녹두, 1989), 163쪽>.

엥겔스는 영국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통해 다음과 같이 ‘사회전쟁’ 상태를 묘사한다: “이 나라에서는 사회전쟁이 완전히 발발하였다. 각자는 각자에 대립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과 투쟁한다. ‥‥평화적인 방법으로(auf friedlichem Wege) 자신의 이웃을 이해하는 일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모든 격차는 위협과 자구(自救; Selbsthülfe),그리고 판결에 의해 해결된다. 각자는 타인을, 길에서 쓸어 내거나 기껏해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할 수단으로서, 적(敵)으로 간주한다.”<Engels {Die Lage der arbeitenden Klasse in England} MEW 2, p.359>.

본질적으로 ‘사회전쟁’ 상태에 있는 근대 부르주아 사회를 지배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에 대하여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생산물과 모든 활동이 교환가치로 해소되는 것은, 생산 내부에 (역사적으로) 고정된 모든 인격적 의존관계(die persönlichen Abhängigkeitsverhältnisse)의 해체를 상정함과 동시에 생산자 상호간의 보편적인 복종도 상정한다. 각 개인의 생산은 모든 타자(他者)의 생산에 의존할 뿐 아니라, 자신의 생산물을 자신을 위한 생존수단으로 변경함으로써 타자 전체의 소비에 의존한다. ‥‥이와 같은 상호의존은, 교환이라는 영속적인 필연성이나 보편적인 매체로서의 교환가치 속에서 표현된다. 경제학자들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각 사람은 자신의 개별이해(個別利害)만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만인의 개별이해, 즉 보편적 이해에 도움이 된다.’ 요점은 개별 이해의 개별적 추구에 의하여, 개별 이해의 총체(總體), 즉 보편적 이해가 실현되는 것이 아닌 데 있다. 오히려 이러한 추상적인 문구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각 사람은 타인의 이해의 충족을 다투어 방해할 것이며, 보편적 긍정(die allgemeine Affirmation)이기는커녕 보편적 부정(die allgemeine Negation)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으로 끝날 것이다.”<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EW 42, pp.89~90.170>

엥겔스도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개별 자본가들은 여타의 모든 자본가들과의 투쟁에 열중해 있으며 개별 노동자들은 여타의 모든 노동자들과의 투쟁에 열중해 있고, 노동자 대중이 필연적으로 자본가 대중에 대항해 싸워야만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모든 자본가들도 또한 노동자들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이러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 상태하에서 그리고 이러한 일반적인 혼란과 상호 착취 상태하에서, 오늘날의 부르주아 사회의 본질이 나타나고 있다.”<Engels {Zwei Reden in Elberfeld} MEW 2, p.536.171>

이러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의 또 다른 표현이 바로 ‘경쟁(Konkurrenz)’이다. ‘탐욕의 전쟁’에 다름 아닌 ‘경쟁’의 대립물은 독점이다. 그러나 경쟁은 독점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유 경쟁은 하나의 불가능’으로서 경쟁은 ‘우리 모든 삶의 관계를 관철하고 인간의 예속상태를 완성’하였으며, 사적 소유로부터 출발한 ‘자본과 노동 간의 분열은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인간의 분열 속에서 완성’되어 결국 이 분열은 첨예화될 것이다.

홉스를 연상케 하는 이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전쟁상태로 말미암아 자본과 노동이라는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이자 계급이해의 현실적 담지자로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유혈적(blutig)’ 충돌은 불가피하다(MEW 2, p.504). 이것은 다름 아닌 내전상태이며 [고용주들과 노동자들이 불행하게도 서로 영구전쟁永久戰爭 상태에 있는(in ewigem Kriegszustand); MEW 23, p.451.] 이러한 부르주아 사회의 일상적인 내전상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존재하는 한 불가피하다.

자본주의적 경쟁을 ‘사회전쟁’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이러한 인식은 국가 간의 전쟁에 있어서도 연장되어 적용된다. 즉 ‘한 국가 내부에서의 계급대립이 소멸됨과 아울러 국가들 상호간의 적대관계도 소멸’(MEW 4, p.479.)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 간 전쟁의 원인은 국내의 계급갈등에 존재하는 것이 된다<이해영 편 {엥겔스 연구} 163~164쪽>.

마르크스는 계급과 경제라는 분석 틀을 전쟁론에 도입한다. 전쟁이 자본의 모순에 기인하는바, 전쟁을 자본의 논리와 연관시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노동일(勞動日)’을 에워싸고 자본가 계급과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 벌어진 투쟁을 상정하면 ‘자본과 전쟁의 상관성(相關性)’이 쉽게 풀린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에서 노동일의 표준화는 노동일의 한계를 둘러싼 투쟁, 다시 말하면 총자본가(總資本家; Gesamtkapitalist), 즉 자본가 계급과 총노동자(總勞動者; Gesamtarbeiter), 즉 노동자 계급 사이의 투쟁으로 나타난다.”<Marx {Das Kapital} MEW 23, p.249>.

“어떤 생산부문에서의 노동일 규제의 역사와, 다른 생산부문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 규제를 둘러싼 투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고 나면 개별 노동자, 즉 자기 노동력의 ‘자유로운’ 판매자로서의 노동자는 아무런 저항력도 없이 굴복해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표준 노동일의 제정은 장기간에 걸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다소 은폐된 내전의 산물이다.”<Marx {Das Kapital} MEW 23, p.316>. 그러므로 마르크스에 있어서 ‘자본이 유발하는 전쟁’은 강력한 고발의 대상이며, 전쟁의 정당성 문제가 중대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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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마르크스가 본 전쟁과 평화」의 제3장의 도입부분으로,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40호에 실려 있다.
* 김승국『마르크스의「전쟁‧평화」론』(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132~136쪽에도, 위의 글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