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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마르크스_ 정치경제학

본원적 축적과 폭력

김승국

우리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계급적대성과 관련하여 화폐의 폭력 ・국가의 폭력 ・자본폭력의 연관성을 밝혔으며, 이를 통하여 마르크스가 파악한 자본주의 사회의 내재적 ・구조적 폭력관계를 규명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의 내재적 ・구조적 폭력이란 넓은 의미에서 자본 폭력의 형태들이다. 이와는 달리 자본의 본원적 축적기(蓄積期)의 폭력은, 자본주의 사회의 내재적 ・구조적 폭력관계의 창출을 도운 ‘원점(原點)’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므로 본원적 축적의 자본은 넓은 의미의 자본폭력이 낳은 조산부, 전 자본주의적(前 資本主義的) 사회 구성체로부터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로의 이행을 도운 과도기적 폭력이었지만, 본원적 축적기의 폭력이 조산부 역할을 마친 뒤의 폭력관계는 자본에 의한 잉여가치의 착취에 기초해 있는 ‘하나
의 독자적인 역사적 사회구성체’로서의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하는 폭력관계이다.

마르크스는 프랑스어판(版) {자본론(Le Capital)}(주1) 제1권 제8편의 「본원적 축적」에서 ‘본원적 축적과 폭력의 관계’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물론 독일어판(版) {자본론}에서도 위의 문제를 다루나, 프랑스어판(版)이 ‘자본의 폭력’을 더욱 생생하게 기술한다.(주2)

마르크스는 “본원적 축적은, 원죄(原罪)가 신학(神學)에서 하는 것과 거의 같은 역할을 경제학에서 하고 있다”(주3)고 밝히면서 본원적 축적의 ‘원죄적인 폭력’을 강조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축적을 단순한 축재(蓄財)로 보아 선행적 축적(先行的 蓄積; previous accumulation)으로 규정한 아담 스미스(Adam Smith)를 추종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본원적 축적에 대한 목가적(牧歌的)인 설명’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아득한 옛날에 사회가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눠진 시대가 있었다. 즉 한편에는 근면하고 총명하며 특히 검약의 습관이 몸에 밴 뛰어난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해가 뜨던 지던 마음이 들떠 노는 불량배가 많이 있었다. 전자가 자꾸 자꾸 富를 축적하였으며 후자가 이윽고 무일푼이 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이후 아무리 쉬지 않고 일해도 자기 자신의 신체로 끊임없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다수 사람들의 빈곤과, 스스로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잘 지내며 노동의 모든 성과를 수취(受取)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富가 생겨났다. 그런데 이렇게 시시한 어린애 속임수가 싫증나지 않게 되풀이되고 있다. 예컨대 띠에르(Thiers) 씨는, 예전에는 저토록 재기(才氣)가 풍부했던 프랑스인을, 이제 이러한 어린애 속임수로 즐겨주고 있다. 그런데 그가 아직도 정치가다운 뻔뻔스러움을 가지고 소유에 관한 사회주의의 불경스러운 공격을 괴멸시켰다고 호언장담하는 저서에서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 분명히 소유의 문제가 한번 화제로 되면 누구나 이러한 알파벳 독본의 지혜만으로, 즉 나이는 들어도 어린 학생과 다름없는 패거리들이 자못 쉽게 이해하는 이 유일한 지혜만을 고집하는 것이 신성한 의무로 된다. 현실의 역사의 연대기에서는 정복이라든가, 예속이라든가, 약탈이라든가, 폭력에 의한 지배가 늘 승리를 차지해 왔다. 이에 반하여 어수룩한 여러 경제학 개론에서는, 어느 시대에도 목가(牧歌)가 지배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노동과 권리 이외에는, 이제까지 어떠한 치부의 수단도 없었는데, ‘금년’만은 늘 예외이다. 그러나 실제로 본원적 축적의 방법은 전혀 목가적인 것이 아니다.”(주4) 이처럼 낭만적인 부르주아 경제학에서는 목가조(牧歌調)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역사에서는 폭력(Gewalt)이 큰 역할을 했다.

마르크스의 설명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의 근저에 생산자와 생산수단의 근원적인 분리가 존재한다. 이 분리는, 자본주의 체제가 한번 확립되면 누진적인 규모로 재생산된다. 그런데 이런 분리가 자본주의 체제의 기초를 이룬다. 이리하여 노동을 그 외적(外的) 조건들로부터 이반(離反)시키는 역사적 운동 그 자체가 부르주아 세계의 전사시대(前史時代)에 속하기 때문에 ‘본원적’이라고 불리는 어떤 축적의 핵심이 된다. ‥‥그러므로 생산자를 임노동자로 전화(轉化)시키는 역사적 운동은 농노제(農奴制)나 산업적 신분제도로부터 생산자를 해방시켰다. ‥‥그러나 새로운 전제군주로 등장한 자본가적 기업주들
의 권력 획득은 영주세력, 동업조합 제도에 대한 투쟁에서 승리한 결과이다. 산업의 기사(騎士)가 칼을 쥔 기사를 대신한 것이다.”(주5)

칼을 쥔 기사가 횡행하던 봉건제 사회에서 산업의 기사가 지배하는 자본제 사회로 이행하는 기간에 본원적 축적이 이루어졌다. 이 본원적 축적을 가속화한 ‘화폐가 한쪽 볼에 핏자국을 띠고 출현했다면,자본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태어난 것이다.’(주6)

본원적 축적은 봉건제 사회의 사회관계에 대한 외적 충격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봉건제 사회의 자기모순으로부터 이루어진 내재적인 결과이었다. 이러한 내재적 결과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인 곳은 영국이었다.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보내면서 ‘본원적 축적의 폭력’을 경험한 마르크스는, 영국에서 이루어지는 ‘이 수탈의 역사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피와 불의 문자로 인류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주7)고 표현했다.

1. 본원적 축적기의 폭력의 두 가지 유형

‘본원적 축적의 폭력’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유형은 경제적 폭력으로서 ‘농민으로부터의 토지수탈(enclosure)’‘차지농업자(借地農業者)의 생성’ ‘산업자본가의 생성’ ‘식민지(植民地)에서의 임노동자의 창출’ 등이다. 둘째 유형은 경제외적-직접적 폭력이다. 두 번째 유형의 폭력은 수탈당한 농민에 대한 ‘피(血)의 입법’ 실시를 통하여 노골적으로 드러났으며 국가권력이 이를 보장해 주었다. 이러한 폭력은 다음의 세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다: ① 시민법, 교육, 전통, 관습 등을 통한 무언의 압력(침묵의 억압) ② 자본가가 내세우는 ‘정의=법’의 등식에 입각하여 벌어지는 시민전쟁(계급투쟁) ③ 경제적 폭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국가권력이 제정하는 각종 악법, 종획운동을 지원하는 종획법(綜劃法), (임금상승을 억누르기 위하여 임금의 상한을 정한) 최고 임금법, (enclosure 때문에 농촌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구빈원이나 자본가들에게 강제노역시킬 수 있도록 허용한) 부랑아 단속법, (파업을 역적으로 다스리는) 파업 금지법, 노동자의 계약파기를 범죄로 규정한 법 등을 통한 ‘법체계의 지배’

2. 자본주의 사회의 조산부(助産婦)로서의 ‘본원적 축적의 폭력’

자본주의 시대를 꽃피운 본원적 축적의 여러 가지 방법은 처음에는 다소 연대기적인 순서로 이루어진다. 몇몇 방법은 노골적인 폭력을 사용했다. 이들 방법들은 예외 없이 봉건적 질서의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로의 전화(轉化)를 폭력적으로 촉진하면서 전환기의 단계를 짧게 하기 위하여 국가권력, 즉 사회의 집중되고 조직된 폭력을 이용한다. 그리고 실제로 폭력이라는 것은 진통기(陣痛期)를 맞이한 모든 낡은 사회의 조산부이다. 폭력이 경제의 대리인이 된 것이다. 하위트(M. W. Howitt)는 기독교적 식민지화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른바 기독교 인종(人種)이 세계의 곳곳에서, 또 자신들이 정복한 모든 민족에 대하여 저지른 만행과 저주받아야 할 잔학함은 세계사의 다른 어떤 시기에도 그 유례가 없으며, 야만하고 무자
비하고 파렴치한 어떤 인종과도 비(比)할 데가 없다.(주8)

마르크스는 ‘폭력으로 얼룩진 본원적 축적의 기독교적 성격’을 설명하면서 식민지 제도가 파렴치하고 잔인하게 이루어진 실례를 네덜란드의 식민지 경영과 영국의 동인도 회사에서 찾는다. 영국 ・네덜란드 등은, 국가권력(사회의 집중적이고 조직된 폭력)을 이용하여 국내외에서 본원적 축적의 여러 계기 ・제도를 중상주의적(重商主義的)인 정책으로 강행하고 ‘봉건적 생산양식으로부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로의 전화과정(轉化過程)을 온실적(溫室的)으로 촉진하고 과도기를 단축’하기 위하여 식민지 제도를 폭력적으로 강행한다.

3. 폭력에 의한 본원적 축적과 ‘부정의 부정’

자본의 본원적 축적의 근저에 직접적 생산자의 수탈이 있으며, 점유자(占有者)의 자기 노동에 입각한 소유의 해체가 있다. 직접적 생산자의 수탈은 냉혹비도(冷酷非道)한 만행과 더불어 행(行)하여지며 그것을 강행하게 한 것은 가장 치욕스러운 동기, 가장 더럽고 가장 가증스러운 비열한 정념이다. 자기 노동에 의거한 개인적 소유, 즉 개개의 자립한 노동자와 노동의 외적 조건들을 이른바 접합시킨 이러한 소유는, 타인의 노동의 착취에 입각한, 즉 임노동제에 의거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에 의하여 축출된다.(주9)

이와 같은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은 변증법적 양상을 보이며 부정(否定)의 계기(契機)와 ‘부정의 부정’의 계기를 낳는다. 이러한 변증법적인 구도를 (본원적 축적으로 비롯된) 자본주의적 축적의 조산부인 폭력의 측면에서 조명할 경우, 독립생산자의 개인적 소유를 부정하는 단계(제1의 부정 단계)에서 폭력(Gewalt)의 계기가 발생한다. 즉 본원적 축적이 제1의 부정의 단계에서 폭력의 계기를 잉태하며,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계급투쟁 양상에 따라 전쟁(내란 ・봉기 ・혁명)이 발생할 수 있다.(주10)

이러한 구도를 그림으로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그림 3 참조).
* <그림 3.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과 폭력-전쟁-평화의 계기>는 생략합니다.

위의 그림과 같이 자기 노동에 의거하는 독립생산자의 개인적 소유를 ‘본원적 축적의 폭력’에 의하여 부정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사적소유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폭력에 의한 제1의 부정의 과정을 자본가 계급의 측면에서 보면, 자본가 계급이 독립생산자의 개인적 소유를 수탈하는 형식으로 되며, 이에 따라 富의 축적, 즉 자본의 집중(자본 축적)이 이루어진다. 자본축적의 강도가 강해질수록(식민지 제도 등에 의한 상업전쟁 ・식민지쟁탈 전쟁 등) 전쟁의 계기가 발생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 계급과의 계급투쟁에 의한 전쟁(시민전쟁, 내란, 봉기, 혁명)의 계기가 발생한다.

이러한 부정의 과정을 살펴볼 때, 폭력-전쟁의 계기를 제공한 쪽은 자본가 계급이다. 이는, 부정(否定)의 과정을 노동자 계급의 측면에서 살펴볼 때 명백해진다. 본원적 축적의 폭력에 의하여 개인적 소유를 수탈당한 독립생산자는 끝내 노동력밖에 갖고 있지 않은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고 빈곤의 축적을 가져온다. 그러나 폭력에 의하여 프롤레타리아에게 빈곤의 축적을 강요한 자본가 계급의 생산방식은 스스로 질곡에 빠짐과 동시에 노동자 계급의 반항을 불러일으켜 전쟁(혁명)의 계기를 유발한다. 이와 같이 독립생산자의 개인적 소유가 부정되는 과정을 노동자 계급의 측면에서 살펴보았을 경우에도 전쟁의 계기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전쟁의 계기를 자본가 계급의 측면에서 바라보든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고찰하든, 독립 생산자의 개인적 소유를 부정한 ‘자본축적(본원적 축적)의 폭력이 전쟁을 유발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가정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의 계기를 유발한 자본가 계급의 자본축적은 ‘부정의 부정’을 거쳐 프롤레타리아 해방의 계기를 가져온다. 이 해방의 계기는 본원적 축적-폭력-전쟁의 계기와 대비되는 의미에서 ‘평화의 계기’라고 부를 수 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이러한 해방의 계기-평화의 계기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질곡과 더불어 시작된다.

이제 수탈당할 자(者)는, 독립적인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 즉 일군(一軍) ・일대(一隊)의 임노동자의 두목이다. 이 수탈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의 작용에 의하여 완수된다. 이 시기에 사회진화의 모든 이익을 횡탈(橫奪)하고 독점하는 자본의 전제군주의 수(數)가 감소함에 따라 빈곤 ・억압 ・노예상태 ・타락 ・착취가 증대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증대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기구 자체에 의하여 차츰 차츰 훈련되며 통일되고 조직되는 노동자 계급의 저항도 증대한다. 자본의 독점은, 이 독점과 더불어 또 그 독점의 비호 아래에서 성장하고 번영해온 생산양식의 질곡으로 된다. 노동의 사회화와 그 물질적 수단의 집중은, 어느새 자본주의적 외피 속에 머물 수 없는 시점(時點)에 도달한다. 그 시점에서 이 외피는 산산조각 분쇄된다. 자본주의적 소유의 최후의 종(鐘)이 울린다. 이번에는 수탈자들이 수탈당할 차례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조응하는 자본주의적 취득은, 독립한 개인적인 노동의 필연적인 귀결에 지나지 않으며 개인적 소유의 제1의 부정을 이룬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계의 갖가지 자태변환(姿態變換; la métamorphose)을 지배하는 숙명에 따라 스스로 자기 자신의 부정을 낳는다. 이것은 부정의 부정이다. 이 부정은 노동자의 개인적 소유를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의 획득물, 즉 협업(協業) 및 토지를 포함한 모든 생산수단의 공동 점유에 입각한 노동자의 개인적 소유를 재건하는 것이다. 개인적 노동의 목적이었던 세분화된 사적 소유를 자본주의적 소유로 전형(轉形)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이미 집단적인 생산양식에 의거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소유의 사회적 소유로의 자태 변환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 ・노력 ・고통이 필요하다. 이전에는 소수의 횡령자에 의한 대중의 수탈이 문제였으나, 이번에는 대중에 의한 소수의 횡령자의 수탈이 문제이다.(주11)

소수의 횡령자에 의한 대중의 수탈(否定) 단계에서 대중에 의한 소수 횡령자의 수탈(부정의 부정) 단계로 이행하기 위하여서는 지난(至難)한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지난한 과정 중의 하나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해방 투쟁(전쟁)이다. 즉 부정 <제1의 부정 단계의 부르주아지의 폭력(Gewalt)>을 부정하는 ‘부정의 부정’ 단계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강력(Gewalt)에 의한> 계급투쟁-프롤레타리아트 해방전쟁을 상정할 수 있다. 본원적 축적의 폭력이 유발하는 제1의 부정 단계의 ‘폭력의 계기’에는 대중들에게서 평화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없으나(부르주아 계급에게만 약속되는 평화), 프롤레타리아 해방(프롤레타리아의 평화)을 전제로 한 ‘부정의 부정’ 단계의 계급투쟁(프롤레타리아트 해방전쟁)에서 평화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의 ‘전쟁과 평화의 변증법’이 적용됨을 확인할 수 있다.

위의 마르크스의 ‘전쟁과 평화의 변증법’을 계급적인 시각에서 재조명하면, (본원적 축적의 폭력에 의하여 수탈당하는) 제1의 부정의 단계에 있는 계급, 즉 즉자적(卽者的) 계급이 마주치는 폭력의 계기를 먼저 상정할 수 있다. 이어서 ‘부정의 부정’ 단계에 있는 계급, 즉 대자적(對者的) 계급은 역사의 주체로서(주체적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해방 투쟁(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여기에서 즉자적 계급의 ‘폭력의 계기’를 부정한 대자적 계급의 계급투쟁(프롤레타리아트 해방전쟁)의 적극적인 의미를 마르크스는 강조하고 있다. 대자적 계급의 해방전쟁을 통하여 프롤레타리아에게 평화를 안겨줄 수 있다면, 이 평화는 ‘부정의 부정’을 통하여 지양(止揚; aufheben)된 것이다.
즉 제1의 부정 단계에서의 폭력의 계기를, 부정의 부정 단계의 계급투쟁(프롤레타리아트 해방전쟁)을 통하여 지양함으로써 얻은 평화가 진정한 평화임을 마르크스는 역설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모순,즉 군사무기와 전쟁에 의한 인류의 존망의 위기로 표현되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대자적 계급의 실천을 통하여 평화의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을 마르크스가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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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프랑스어판 {자본} 제작에는 마르크스가 직접 참여하였으며 이는 그가 {자본}을 좀 더 수정하여 프랑스 독자들에게 최대한 알기 쉽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어판을 준비하던 시기는, 노동자 권력을 수립하려는 첫 시도이었던 파리코뮨이 실패하고 난 후였다. {자본} 1권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사람은 죠제프 로이(Joseph Roy)였는데 그의 저작이 너무 직역이었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수정작업을 하였다. 마르크스는 단순히 (로이의) 번역을 수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당부분을 새로 집필하였다. 프랑스어판은 독일어 1판 ・2판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또는 그것은 마지막으로 수정한 1890년의 독일어 4판과도 차이가 있다. 독일어 2판과 그 이후의 판들은 전체 7편 2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프랑스어판은 총 8편 33장으로 되어 있다. ‘이른바 본원적 축적’이라는 제목을 가진 24번째 장이 프랑스어판에서는 ‘본원적 축적’이라는 제목이 붙어 독립적인 편, 즉 8번째 편을 구성한다. {자본} 1권의 프랑스어판 속표지에 ‘저자에 의하여 완벽하게 수정되었다’고 쓰여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마르크스는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본} 프랑스어판을 자주 인용하였는데, 그 때마다 거기에 담겨 있는 각각의 주제들은 다른 판본에서보다 더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자본} 1권의 번역자들에게 프랑스어판을 함께 사용하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구소 지음, 김라합 옮김, {칼 마르크스 전기}(서울: 소나무, 1989) 2권, 584~ 585쪽>.

(주2) 파리코뮨의 영웅적 비극(英雄的 悲劇) ・인민 대중의 권력 창출의 좌절을 경험한 마르크스는, 파리코뮨 직후에 {자본론} 프랑스어판을 발간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시대적 경험이 반영된 [자본론] 프랑스어판을 통하여 폭력 개념을 더욱 명확히 한다. 특히 그가 프랑스어판 제8편(「본원적 축적」)에서 자본주의의 ‘원죄적 폭력’을 총괄적으로 설명한 것은, 혁명가 마르크스의 공적이다.

(주3) マルクス 지음, 林直道 편역 {資本論第1卷フランス語版}(東京: 大月書店,1976) 127쪽. [Marx {Le Capital}(Paris: Éditeurs, Maurice Lachatre et Cie,1872~1875)]
(주4) 위의 책, 128~129쪽.
(주5) 같은 책, 129~131쪽.
(주6) 같은 책, 194쪽.
(주7) 같은 책, 130쪽.
(주8) 같은 책, 183쪽.
(주9) 같은 책, 196~197쪽.

(주10) 마르크스는, ‘하나의 경제적인 힘(잠재력: Potenz, force)’=‘새로운 사회를 낳는 조산부’=‘폭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의 폭력장치인 군대(본원적 축적에 있어서 ‘하나의 경제적인 힘’=폭력을 행사하는 주체 중의 하나가 군대이다)에 의하여 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한편 이 군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강력(强力)’의 충돌에 의하여 전쟁(내란 ・봉기)이 일어날 수 있는데, 파리코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11) マルクス 지음 林直道 편역, 위의 책, 198~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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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마르크스가 본 전쟁과 평화」의 제2장 제3절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40호에 실려 있다.
* 김승국『마르크스의「전쟁‧평화」론』(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111~123쪽에도, 위의 글이 실려 있다. 
* 김승국『마르크스의 「전쟁‧평화」론』(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119쪽에 <그림 3.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과 폭력-전쟁-평화의 계기>가 실려 있으니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