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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마르크스_ 정치경제학

계급투쟁과 폭력

김승국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강력한 힘은, 부르주아지의 폭력(Gewalt)을 부정한, 부르주아지의 폭력과는 질적으로 다른 정의로운 강력(强力; Gewalt)이다. 그러므로 전자(부르주아지)의 Gewalt와 후자(프롤레타리아트)의 Gewalt는 질적으로 다른 내용을 갖는다. 전자의 Gewalt가 지양된 것이 후자의 Gewalt이기 때문이다. 후자의 Gewalt는 반체제(反體制) 행위, 봉기, 내란, 화염병, 바리케이드, 파업 등으로 나타났으며, 프롤레타리아트 군대 ・인민군대 ・병사 소비에트 등의 조직으로 결집되었다. ‘부르주아 사회의 집중되고 조직화된 폭력인 국가권력’을 붕괴
시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강력(强力)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를 잉태하는 새로운 사회의 조산부’이다.

프롤레타리아의 강력에 의한 변혁은 ‘현존하는 것에 대한 가차 없는(주1) 비판(die rücksichtslose Kritik alles Bestehenden)’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현존하는 것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은 이론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즉 현실적 투쟁과 결합되고 그것과 동화(identifizieren)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die Kritik der Waffen)을 대신할 수 없으며, 물질적인 폭력(die materielle Gewalt)은 물질적인 강력(die materielle Gewalt)에 의해서 전복되지 않으면 안 되기”(주2) 때문이다. 또한 이것을 위해서는 “철학이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 자신의 물질적인 무기(die materielle Waffe)를 발견하듯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철학 속에서 자신의 정신적인 무기(die geistige Waffe)를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주3)

이처럼 자본주의의 물질적 폭력을 파괴하기 위하여 물질적 무기[强力]를 손에 쥔 프롤레타리아트는 ‘비판’ ‘철학’이라는 정신적인 무기를 매개로 변혁-계급투쟁(전쟁)에 나선다.

계급투쟁의 역사에서 폭력이 어떠한 역할을 하느냐는 것은 철학의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이때의 폭력은 특정 계급 ・세력이 자신들의 의지를 다른 계급 ・세력에게 강요하고, 다른 계급의 이익에 반하는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정치적, 특히 국가적 강제수단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폭력의 성격과 역사적 역할은 항상 자신들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계급의 사회적, 역사적 지위에 의해 규정된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사용하는 폭력도 궁극적으로는 항상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게 사용하는 폭력이다. 마르크스주의는 폭력과 관련하여 결코 추상적이고 비역사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다. 마르크스주의는 폭력을 마키아벨리(Machiavelli)的이거나 무정부주의적으로 찬미하고 이상화하는 것에 대해서 뿐 아니라 소부르주아적으로 도덕자인 체하면서 폭력 자체를 저주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폭력은 계급 대립이 형성된 이래로 사회적 삶과 역사 발전의 불가피한 현상이며 그것은 계급 적대가 세계적 차원에서 소멸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제까지 인민의 삶에 있어서 중대한 문제들은 항상 폭력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이때 모든 폭력행사는 계급투쟁 및 계급이해와 관련해서 파악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폭력[强力]이 혁명적 계급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행사된다면, 폭력[强力]은 진보적이고 혁명적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폭력[强力]은 마르크스가 언급했던 것처럼, ‘새로운 사회를 잉태하고 있는 모든 낡은 사회의 산파’이다. 반면 반동적 계급의 이익과 반동적 계급 지배를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은 반동적 역할을 수행한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반동적인 지배계급에 대한 피억압 계급의 투쟁, 사회주의 혁명에 있어서 혁명적 폭력[强力]행사의 필연성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노동자 계급의 당이 지도하는 군대를 보유해야 한다. 이러한 군대는 사회주의를 겨냥한 모든 공격에 대해 가차 없이 반격해야 한다. 이때 폭력[强力]은 노동자 계급, 근로대중, 역사의 진보를 위해서 사용된다. 사회주의적 변혁과정에 있어서 혁명적 폭력[强力]에 관한 문제는 사회주의 혁명이 유혈 행위 및 내전과 항상 결부될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 계급은 혁명의 평화로운 발전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물론 그러한 발전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의 문제는 주로 반동 세력의 행태에 의해서 규정된다. 사회주의적 변혁이 내전 상황과 결부되었던 이제까지의 모든 경우, 예컨대 파리코뮨 등의 내전 상황은 자신들의 입장을 유지하거나 회복하기 위해 유혈테러로까지 나아갔던 반동세력에 의해 야기되었다. 물론 폭력[强力]행사는 사회주의 혁명의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레닌(Lenin)이 말하듯이 ‘폭력은 자신들의 지배를 다시 확립하려는 자들에 대하여 효과적이다. 그러나 그로써 폭력의 의미는 소멸되며, 더욱 중요한 것은 감화력과 모범이다. 혁명적 폭력[强力]은 혁명의 특정한 발전 단계에서만, 일정한 특수 조건하에서만, 필연적이고 합법칙적인 혁명의 방법이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폭력[强力]을 강조하는 한편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는 방법이 반드시 폭력적일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주4)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조직, 근로대중에 대한 설득 ・교육이 혁명에 있어서 본질적이므로 혁명적 강력(强力)이 반드시 우선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마르크스에 있어서 혁명적 강력은 계급해방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평화’가 더욱 효과적인 수단이라면 굳이 ‘강력’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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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여기에서 ‘가차 없다’는 말은 도달할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또한 존재하는 권력과의 투쟁도 마찬가지로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쓰인 것이다<오이저만 지음, 윤지현 옮김 {맑스주의 철학 성립사}(서울: 아침, 1988), 62쪽.[Teodor Ilyich Oizerman {The Making of the Marxist Philosophy}]>.
(주2) Marx {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Einleitung} MEW 1,p.385.
(주3) Ibid., p.391.
(주4) W. Euchner 지음 {Karl Marx}(München, 1983), p.116.
(주5) 프롤레타리아트 ・부르주아지 사이의 힘의 대결상태에서 역학 관계가 프롤레타리아트 쪽에 유리하다면, 변혁을 바라는 사람들의 힘이 매우 강하다면,강력(强力) 대신 평화(사회주의에로의 평화적 이행)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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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마르크스가 본 전쟁과 평화」의 제2장 제3절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40호에 실려 있다.
* 김승국『마르크스의「전쟁‧평화」론』(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123~127쪽에도, 위의 글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