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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마르크스_ 정치경제학

마르크스의 폭력 개념에 대한 비판적 검토

김승국

마르크스의 폭력 개념의 핵심은, 계급투쟁에 의하여 계급차별이라는 폭력을 극복한다는 데 있다. 이처럼 ‘폭력이 폭력을 극복할 수 있다’,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Gewalt가 부르주아지의 Gewalt를 극복할 수 있다’는 다소 역설적인 표현이, 마르크스의 폭력 개념에 내포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이 역설을 비교적 낙관적으로 다루었으나, 바로 그 역설에서 비극적인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최후의 정치적 강력(强力)에 의하여 일체의 계급지배적 폭력을 비교적 단기간에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폭력이 폭력을 극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에 내재하는 폭력 형태의 본질을 대단히 심층적인 지점에서 인식하지 않고 폭력을 극복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사후(死後) 100년의 마르크스주의는, 폭력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소홀히 했으며, 오히려 무비판적(無批判的) ・맹목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폭력에 편승하여 그것을 가속화했다고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가 폭력현상의 역사적 형태를 하나 더 덧붙였다는 점에서 역사학자의 흥미를 끈다. 인류의 비극이 하나 더 증가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주1)

위와 같은 비극이 탄생한 원인은, 마르크스의 ‘Gewalt’ 개념을 왜곡한 데 있다. 마르크스 사후(死後)의 이론가 ・실천가들 중 일부가 (부르주아지의 Gewalt를 지양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Gewalt가 지니는 ‘평화의 동인(動因)’을 살리는 데 실패한 사례(주2)가 이를 증명한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Gewalt에 폭력지향적인 측면과 평화지향적인 측면이 공존하고 있음을 망각한 채, 폭력지향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킨 나머지 또 다른 폭력을 유발했다. 이들은 마르크스가 평화지향적인 Gewalt를 강조했음을 간파하지 못한바, 평화지향적인 Gewalt를 통하여 평화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프롤레타리아트的 Gewalt를 현실에 적용하는 데 실패한 근본원인은, ‘폭력’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데 있다. 폭력 현상이 다기(多岐)하기 때문에 ‘모호함’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사상사(思想史)가 ‘폭력’이라는 말을 모호하게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폭력’은 권력 ・강제력 ・힘(力) 등의 동의어를 갖고 있다. 폭력・권력 ・강제력 ・힘(力)이라는 말은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구별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운데, 마르크스의 ‘Gewalt’를 실천에 옮기면서 발생한 왜곡도 이러한 지점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의 ‘Gewalt’의 용법에서 모호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에 있어서 ‘권력(Macht)’과 ‘폭력(Gewalt)’ 사이의 구분이 정확한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전통적으로 권력과 폭력의 관계에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권력이란 폭력의 현시적(顯示的) 형태’라는 것이며, 둘째는 ‘권력이란 폭력의 완화된 형태’라는 것이다. 어떠한 유형도 권력과 폭력을 동일시(同一視)하고 있다. 그런데 아렌트(Hannah Arendt)는 두 가지 전통적인 사고양식을 비판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권력과 폭력은 서로 다른 것이다. 현실적으로 권력과 폭력이 결탁하여 나타나는 일이 많을지라도 권력과 폭력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렌트의 ‘폭력’을 ‘도구의 행사에 의한 공동체의 파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아렌트의 ‘폭력’은 물리적 폭력이다. 아렌트의 폭력론은, 매우 좁게 제한된 인간행동만을 가리킨다. 이 이론에 의하면 물리적 폭력의 극단적인 형태가 전쟁이다.(주3)

마르크스가, 아렌트와는 달리 권력과 폭력을 구분하지 않고 종합적으로 판단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으나, 권력과 폭력의 구분선(區分線)이 모호한 데 따르는 부작용을 모면할 수 없다.

‘권력’이란 일종의 강제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능력에 따라 일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원칙도,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한(限) 강제의 한 형태이다. 따라서 이 원칙은 권력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다.(주4)

마르크스가, ‘능력에 따라 일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원칙에도 강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예상한 끝에 ‘권력(Macht)’이라는 말을 사용했는지 의문스럽다. 사회주의의 최대 강령인 위의 원칙에도 강제가 잠재되어 있다고 지적할 정도로 인류사회에는 폭력이 내재화(內在化)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이 내재화된 폭력을 분석하기 위하여 ‘Gewalt’를 도입한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Gewalt’가 구현되는 자본의 권력(경제적 권력) ・국가권력(정치적 권력)을 포괄하는> ‘Macht’를 언급하면서 (아렌트처럼 권력과 폭력을 구분하지 않고) ‘Gewalt’와 ‘Macht’를 혼용한다. ‘Macht’에 강제력(force)의 요소가 있으므로 ‘Gewalt’와 수평적인 동치관계(同値關係)가 형성될 수 있다고 마르크스가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마르크스에 있어서 ‘Macht’는 ‘Gewalt’의 발현형태이므로 수직적인 관계형성이 불가피하다. 여기에서 ‘Gewalt’와 ‘Macht’ 중 어느 것을 상위 개념으로 상정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떠오른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에 있어서 ‘Gewalt’가 유개념(類槪念)이고 ‘Macht’가 종개념(種槪念)이라면, ‘Gewalt’와 ‘Macht’의 종차(種差)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마르크스는 이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채 폭력 개념을 정립했기 때문에 혼란을 가중시켰고,이 혼란이 사회주의 실천과정에서의 혼선 ・왜곡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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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今村 仁司 {批判への意志} 30~31쪽 참조.
(주2) 반체제인사에 대한 억압,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지에 의한 학살, 동유럽의 반(反)소련 운동에 대한 무력진압, 아프가니스탄 침입 등.
(주3) 今村 仁司 {批判への意志} 150~151쪽.
(주4) 古賀英三郞 {國家・階級論の史的考察} (東京: 新日本出版社, 1991) 65쪽.
(주5) 마르크스의 적자(嫡子)인 레닌마저 이러한 혼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레닌은 엥겔스가 ‘Macht’로 표기한 것을, 자의적(恣意的)으로 ‘Gewalt’로 해석하면서 양자를 혼동한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 제1장 제3절 「국가-피억압계급을 착취하기 위한 도구」의 모두(冒頭)에서 (엥겔스가 국가를 총괄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언급한) ‘사회의 상부에 위치한 권력(Macht)’(MEW 21, p.165.)을 ‘사회의 상부에 위치한 특수한 공권력(die besondre, über der Gesellschaft stehende öffentliche Gewalt)’으로 치환하면서 ‘Macht’와 ‘Gewalt’를 동일시(同一視)한다.
레닌의 이러한 오해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즉 국가가 화해 불가능한 계급대립의 산물이고 사회의 상부에 위치하면서 ‘사회로부터 자기 스스로를 점점 소외시키고 있는 ‘권력(Macht)’이라면, 피억압 계급의 해방은 명백히 폭력혁명 없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배계급에 의하여 창출되었고 이러한 ‘소외’를 체현하고 있는 국가권력 장치(Apparates der Staatsgewalt)를 파괴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레닌 지음, 김영철 옮김 {국가와 혁명}(서울: 논장, 1988), 19~20쪽
이와 같이 레닌은 국가의 폭력(Gewalt)기관에 관하여 해설하기에 앞서 Macht가 곧 Gewalt라고 말함으로써, Macht와 Gewalt의 혼동[同一視]을 자초한다<津田道夫, 위의 책, 74~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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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마르크스가 본 전쟁과 평화」의 제2장 제3절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40호에 실려 있다.
* 김승국『마르크스의「전쟁‧평화」론』(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127~131쪽에도, 위의 글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