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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마르크스_ 정치경제학

국가의 기본적 형태성

김승국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우리가 최초에 자본주의 국가의 단순범주로서 제시한 것이 상품생산 관계에 내재해 있는 법적 관계가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닌 모순에 매개되어 정치적으로 집약되어 표시된 것이고, 또 이를 통한 화폐의 자본에로의 전화란 그와 같이 집약된 정치적 계기에 의해 매개된 정치경제적 운동 과정임이 밝혀졌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제기되는 문제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이러한 정치적 계기가 어떠한 ‘형태’를 지니고 행사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파슈카니스(Paschukanis)의 고전적 질문, 즉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그 이전의 모든 사회구성체에서의 정치적 강제력 체계와는 달리 사회와 분리된 공적 권력체계라는 특수한 형태를 지니는가<Eugen Paschukanis {Allgemeine Rechtslehre: Versuch einer Kritik der juristischen Grundbegriff}(Frankfurt/M, 1970)>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그가 이러한 질문을 던질 때 염두에 둔 자본주의 국가형태는 ‘의회적 민주제’였다는 사실이 지적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의 사회로부터의 상대적 분리 내지 국가형태의 특수화 문제는 국가의 형태가 의회적 민주제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넘어서는, 자본주의 국가의 기본적 형태규정에 관계되는 문제이다<김세균 편역 {자본주의 위기와 파시즘}(서울: 동녘, 1987), 34쪽>.

그런데 자본주의 국가가 형태적으로 사회와 분리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상품사회’로서 이중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임노동자라는 노동력상품 소유자를 끊임없이 재생산시킴으로써 자기증식 운동을 행한다는 사실에 있다. 즉 자본은 임노동을 인격적 ・신분적인 강제나 직접적인 폭력을 통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대등한 상품 소유자들 간의 합의에 입각한 계약관계의 ‘형식’을 빌려 지배한다. 그러나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자본은 자기를 재생산시킴에 있어 실제로는 정치적 강제력의 체계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즉 자본이 자기 스스로 정치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으나 그러면서도 정치적 강제력을 필요로 한다는 이 모순이 국가의 사회로부터의 상대적 분리를 가져오고, 또 이를 통해 사회의 ‘곁’과 ‘밖’에 그러한 정치적 강제력을 행사하는 특수심급으로서의 국가기구가 세워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사회가 다름 아닌 상품생산 사회인 이상 국가의 형태적 특수화 역시 필연적이며 또한 자본은 사회와 상대적으로 분리된 그러한 특수심급을 통해 정치적으로 노동을 지배한다<김세균 {자본주의 위기와 파시즘} 35쪽>.

이와 같이 국가는 상품관계에 들어온 화폐소유자와 노동력소유자 모두로부터 분리된 형태, 즉 사회의 ‘곁’과 ‘밖’에 세워진 특수한 공적 권력체계라는 형태를 취한다. 이 특수한 공적 권력체계는 정치적 폭력의 합법적인 독점체(獨占體)로 나타나면서 직접적으로 인신(人身)을 구속하거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한다. 한편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아무리 증대할지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의 형태적 분리가 기본적으로 유지 ・재생산된다. 이와 함께 ‘자본논리의 자본의 경제적 논리와 자본의 정치적 논리로의 중첩’이 이루어진다. 계급투쟁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국가’ 안에서 자본의 정치적 논리가 관철되면서 정치적 폭력이 드러나는데, 이러한 정치적 폭력의 매개항으로 제3항 배제의 논리를 원용할 수 있겠다. 즉 제3항 배제의 논리에 의하여 사회의 ‘곁’과 ‘밖’에서 국가의 정치적 폭력이 발현되는 구조를 밝힐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관계는 상품관계와 임노동에 대한 착취관계를 포괄하는데, 폭력으로 점철된 자본의 지배가 이 관계들을 감싸 안으면서 총괄한다. 한편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적인 화폐권력, 화폐의 폭력을 통하여 운동하는 가운데 착취관계를 완결하지 못하므로 <사법체계(私法體系)를 보호하는 강제력으로서의> 정치적 폭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과거에는 경제적인 성격을 지닌 폭력이 이제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닌 폭력으로 바뀐다. 이에 따라 정치적 폭력관계가 자본주의적 상품관계에 내재되고, 자본주의적 상품관계를 유지 ・재생산시키는 정치적 폭력관계가 필요해진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생산은 당사자들 간의 직접적인 폭력행사를 배제하는 상품-화폐 관계에 의하여 매개되기 때문에 상품교환 관계에 참여하는 모든 당사자들로부터 분리된 특수한 권력장치로서의 국가가 등장하게 된다. 즉 사회의 ‘곁’과 ‘밖’에서 자본주의의 상품생산 관계를 보호하기 위하여 ‘정치적 폭력’을 제3항으로 배제한 국가가 창출되는 것이다.(주1)

그러므로 제3항 배제의 논리를 통하여 국가의 내재적인 폭력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즉 상품-화폐 관계의 폭력이 창출될 때 화폐형태라는 제3항이 배제되는 논리를 적용하여 내재적 폭력을 규명한 방식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정치적 폭력(계급 적대 속에서도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정치적 지배를 가능케 하는 자본의 정치적 폭력)이 창출될 때, 국가의 정치적 폭력체계 내지 국가라는 제3항이 배제되는 논리를 적용하여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하는 계급 적대적인 폭력구조를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파악한 자본주의 사회의 내재적 ・구조적 폭력에 관하여 본 연구에서 서술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생산과정에서 임노동의 잉여가치를 직접 착취하는 자본의 폭력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폭력의 기초를 이룬다. 이와 같은 의미의 자본의 폭력은, 좁은 의미의 자본의 폭력이다.
둘째, 자본주의 생산은 상품-화폐 관계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본의 폭력은 유통과정을 지배하는 화폐의 폭력을 매개로 하여 관철된다.
셋째, 자본의 폭력은 정치과정에서 사회의 ‘곁’과 ‘밖’에 선 특수한 공적 권력체계라는 형태성을 띤 국가권력을 통하여 발현되는데,이 국가권력은 기본적으로 사법체계(私法體系)를 강권적(强權的)으로 보장하는 권력의 성격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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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이와 같이 국가가 제3항 배제에 의하여 빠져 나왔기 때문에 국가만이 정치적 폭력을 독점적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제3항 배제에 의하여 창출된 ‘국가’의 폭력은 자본주의 사회에 깊이 내재되어 ‘비가시적(非可視的; invisible)’이므로 <부재적 현전(不在的 現前)>, 이러한 폭력을 감지(感知)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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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마르크스가 본 전쟁과 평화」의 제2장 제3절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40호에 실려 있다.
 * 김승국『마르크스의「전쟁‧평화」론』(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107~111쪽에도, 위의 글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