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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마르크스_ 정치경제학

제3항으로서의 화폐 ・자본과 폭력

김승국

마르크스가 지적하듯이 상품군(商品群) 속에서 특별한 하나의 상품을 제외 ・배제하는 사회적 행위를 제3항 배제라고 명명(命名)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2항 대립 관계로 요약되는 상품세계에 대항하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것이 제3항이다. 근대 경제의 화폐 그리고 화폐의 전화형태(轉化形態)인 자본은 틀림없이 제3항적(的) 존재자이다. 따라서 제3항 배제는 어떤 세계의 질서(cosmos)가 형성될 때 발동하는 일반적인 구성의 논리라고 말할 수 있다<今村 仁司 {理性と權力} (東京: 勁草書房, 1990), 51쪽>.

물적(物的) 의존관계(주1)를 근본으로 삼는 근대 시민사회의 경제에서 제3항 배제의 폭력은, 物과 物 사이의 관계로 이전되며, 직접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상품세계의 구조형성은, 사회관계의 물상화(物象化; Verdinglichung, reification)와 더불어 폭력의 작용도 물상화시켜 인격적 의존관계(주2)에 내재하는 폭력을 물적(物的) 세계로 옮기는 메커니즘이 된다.

어쩌면 여기에 근대 자본주의의 ‘합리성’의 근거가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물상화(物象化)된 합리성은, 폭력의 물상화와 폭력의 제도적 내재화(內在化)에 기인한다. 배제효과에 의하여 생성된 근대 화폐 ・자본은, 제3항 배제의 각인을 최후까지 지연시킨다. 즉 제3항으로서의 화폐 ・자본은, 질서의 형성자임과 동시에 이 질서가 근원에 있어서 반복하는 제3항 배제의 담당자이기도 하다. 자본제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도처(到處)에서 자본은 제3항 배제효과를 확대 재생산한다. 자본주의 경제를 다루는 가치적(價値的) 세계에 들어가는 모든 존재자는, 사람일 수도 있고 物일 수도 있으며, 가치형태(형식)를 취한다. 상품세계, 즉 가치적 세계가 제3항 배제 효과라는 폭력의 산물인바, 가치형태를 띠는 존재자도 예외 없이 폭력의 산물이라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가치는 사회관계의 물상화이다. 물상화되고 제도화된 가치적 지평은, 폭력이 도래하여 폭력이 배양되는 지평이다<今村仁司 {理性と權力}, 51~52쪽>.

今村 仁司는 다음과 같이 집약하여 설명한다: “제3항배제 효과는, 상품세계에서 제3항 상품(화폐)이 배제되는 순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 효과를 촉구하고 기동(起動)시키는 국면도 있다. 마르크스의 가치형태론에 즉(卽)하여 말하면, 이는 제2의 ‘전개된 가치형태’의 국면이다. 이 국면을 교환론(交換論)의 시각에서 보면 여러 物이 서로 교환하는 무한의 시리즈를 보여주는 데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제3항 배제의 시각에서 보면, 이 국면이야말로 제3항 배제의 동인(動因)을 낳는 장면이다. 이는 여러 상품이 서로 타자를 제3항화하는 무한의 게임을 전개하는 국면이다. 홉스의 말을 빌려서 말하자면, 이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 즉 전쟁 상태이다.”<今村仁司 {理性と權力}, 53~54쪽>

제2의 가치형태는 바로 홉스가 말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가치론적 표현이며, 제3의 가치형태는 이 전쟁상태에서 튀어나오는 제3항 배제의 생생한 현실을 가치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경쟁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전개되는 전쟁상태에서 만인은 언제나 제3항화의 운명에 사로잡힌다<今村仁司 {理性と權力}, 55쪽>.

언뜻 보기에 비폭력적(非暴力的)이고 평화로운 시민적 관계에도 근원적으로 제3항 배제라는 사회형성 폭력의 각인이 찍혀 있다. 이 각인을 한 몸에 지닌 것이 화폐이다. 결국 화폐는 자본제 생산양식(구조)의 주요한 담당자인 자본으로 변환(Metamorphose)된다.

근대의 자본은 화폐에 결정(結晶)된 제3항 배제를 전반화(全般化)한다. 바꿔 말하자면 자본이란 전반화한 경제적 희생양(bouc émissaire, scapegoat)이며, 전반화한 제3항 배제운동이다<今村 仁司 {排除の構造}, 119쪽>. 근대 시민사회의 역
사적 특이성은, 제3항 배제효과를 시공간적(時空間的)으로 특정화 ・국소화(局所化)하지 않고 오히려 전반화하여 인간 전체 ・자연 전체를 제3항 배제효과의 권내(圈內)에 포섭하는 데 있다<今村仁司 {理性と權力}, 168쪽>.

근대 시민사회가 제3항화 폭력(물리적인지 아닌지를 물을 것 없이)을 사회관계의 그물코의 구석구석까지 삼투시키므로, ‘전반화’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앞에서 자본이 경제적인 ‘bouc émissaire’라고 언급했는데, ‘émissaire’라는 단어 속에 이미 ‘배제’의 뜻이 깃들어 있으므로 ‘제3항 배제의 운동체(運動體)’로서의 자본이 다시금 상정된다. 그러므로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轉化)’를 제3항 배제의 논리에 따라 표현하면, 이는 ‘배제된 제3항으로서의 화폐’에서 ‘전반화한 제3항으로서의 자본’으로의 전화이다<今村仁司 {理性と權力}, 151쪽>.

화폐가 자본으로 전화하고 자본이 제3항 배제의 논리를 내재화하여 자립할 때, 자본의 논리를 통하여 제3항 배제의 논리가 사회 전체에 관철된다. 화폐가 자본으로 변환됨에 따라 ‘화폐의 폭력’도 ‘자본의 폭력’으로 전환(Verwandlung)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만큼 제3항 배제의 폭력을 구석구석까지 전파하는 사회는 없다. 이런 측면에서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다른 어떤 사회보다도 본질적으로 폭력적인 사회이다.

상품형태론(가치형태론)은, 자본제 생산양식의 기본 형태이다. 상품적 사회관계가 제3항과 폭력을 내재시키고 있음(사회관계에 내재하는 폭력)이 명백해졌기 때문에, 자본제 생산양식도 제3항과 폭력이 근원적으로 내재하도록 만든다. 생산양식 운동의 토대는 제3항화와 폭력이다. 제3항 배제 ・폭력의 논리는 끝내 사람과 사람 사이의 투쟁, 계급과 계급 사이의 투쟁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사회존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면 가장 근원적인 현상인 투쟁 ・전쟁을 제외할 수 없다. 자본제 생산양식뿐 아니라 다른 생산양식의 경우에도 근원적 폭력(사회관계에 근본적으로 내재하는 폭력)과 투쟁 ・전쟁의 ‘본연의
모습’을 철학적으로 규명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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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물적(物的) 의존관계란 근대의 개인, 분업 ・교환이 전면적으로 발달한 사회에 있어서 개인들의 관계를 뜻한다. 이 관계에서는 인격에 의존하는 공동체가 해체되고, ‘물건(物件)’이 참된 공동체가 된다. 즉 보편자(ein Allgemeines)로서의 교환가치(특히 화폐형태)가, 인신(人身) 등의 협소한 인간관계를 해체시키고, 개인들을 보편적인 물적(物的) 상호의존 관계 속으로 편입시킨다<田畑 稔 지음 {マルクスとアソシエ-ション} (東京: 新泉社, 1994). 197쪽>.

(주2) 인격적 의존관계란 상품교환이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 있어서 개인들의 의존관계를 뜻한다. 이 관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개인들이 비자립적(非自立的)이다. ② 개인들의 관계는 신분 귀속자(身分歸屬者)로서, 즉 하나의 규정성(Bestimmtheit) 속에 있는 개인에 불과하다. ③ 이 규정성이 개인의 인격적 제한으로 현상하며, 규범 ・충성 ・권위 등에 의하여 자신을 규정한다. ④ 사회적 권위가 ‘인격의 위에 선 인격’이라는 형태로 현상한다<田畑 稔 지음 {マルクスとアソシエ-ション} (東京: 新泉社, 1994).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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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마르크스가 본 전쟁과 평화」의 제2장 제3절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40호에 실려 있다.
* 김승국『마르크스의「전쟁‧평화」론』(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86~90쪽에도, 위의 글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