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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마르크스_ 정치경제학

마르크스의 전쟁관

김승국

마르크스는 전쟁론에 관한 이론적인 저작을 남기지 않았으나, 그의 수많은 정치적 저작 ・논문 ・서간집에는 전쟁에 관한 글이 많다. 역사발전의 주요 계기가 계급투쟁에 있다고 보는 마르크스가 정치의 긴장된 국면인 전쟁을 생생하게 기술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르크스는 모든 전쟁이 본래 사악하거나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전쟁을 배척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어떤 전쟁, 예컨대 억압받는 계급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투쟁한 전쟁은 승인하지만, 위와 반대되는 목적을 지닌 전쟁은 인정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전쟁 자체에서 창조적 ・적극적인 인본적 가치(人本的 價値; human value)를 찾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의하면 ‘human value’는, 생산의 새로운 가능성에 기반을 둔 사회변혁의 압력으로부터 생긴다. 전쟁이 이러한 사회변혁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한, 전쟁은 인간사(人間事)에 있어서 진보적인 요소로 간주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위의 관점을 종합하면, 인간의 조직된 생산력의 심층적인 변혁과 갈등의 연관 속에서만 전쟁은 인식된다. 한편 전쟁은, 정치 ・법률 ・종교 등 이른바 이데올로기 형태(ideological forms) 변혁의 종속변수이다.

마르크스는, 전쟁이 기본적인 사회적 필요(basic social needs), 생산의 사회적 준비(social arrangements)에 기인(起因)한다고 말하면서 ‘자본주의는 전쟁을 의미한다(Capitalism means war)’고 강조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전쟁은 산업의 영원한 파생물(派生物)이다.

1. 진보 전쟁관

마르크스는, 역사를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으로 파악하는 방법론, 역사변화의 주체적 동기를 계급투쟁에서 찾아내는 방법론을, 자신의 전쟁론에서도 채택한다. 그는 전쟁을 ‘사회적으로 누적된 모순을 급격하게 해소하는 수단 ・실마리’로 상정한다. 전쟁과 혁명은 사회적 모순의 급격한 해소라는 점에서 유사할 뿐 아니라, 양자는 내면적으로 상호연관되어 있으며 전자가 후자를 촉진한다. 역사의 진보를 위하여 유럽 전쟁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마르크스는 유럽의 혁명주의자가 꼭 단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진보전쟁은 대(對)러시아 전쟁이라는 의견을 오랫동안 간직했다. 차리즘이라는 반동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유럽에서 진보의 숨통이 끊긴다는 것이다. 유럽의 혁명주의는 러시아 반동정치와의 대립을 피할 수 없으며, 오히려 전쟁을 통하여 이를 해결하자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다.

마르크스는 특히 보불전쟁에서 진보전쟁의 요소를 발견한다. 마르크스의 견해에 따르면, 보불전쟁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자본주의 발전기(發展期)에 있어서 진보전쟁의 최후의 형태이다. 마르크스가 대의명분으로 삼는 것은 유럽 민주주의의 진보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이다. 佐野 學은, 마르크스가 보불전쟁에서 발견한 진보적인 측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① 만약 이 전쟁에서 프랑스가 이겨 나폴레옹 3세의 제2제국이 존속한다면, 프랑스 국민은 반동정치 아래에 묶이고 유럽의 민주주의는 미숙한 채로 머물 것이다. 18년에 걸친 제2제국을 와해시키는 일은 프랑스 국민을 해방시킬 뿐 아니라 유럽의 반동정치 전체에 대한 타격이 되어 노동계급의 혁명운동을 촉진한다.
② 나폴레옹 3세가 승리하면 독일의 민족통일은 더욱 지연되고 독일의 노동운동 ・사회주의 운동은 민족통일 운동을 위해 정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나폴레옹 3세의 패배가 없었다면 독일은 통일될 수 없었으며, 유럽의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발달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반동적인 비스마르크의 검(劍)에 의해서라도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지면 바람직하다.
③ 마르크스는 1870년 12월 13일에 쿠겔만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전쟁이 어떻게 끝나더라도 프랑스의 프롤레타리아는 그 덕분으로 무기에 익숙해진다. 이는 미래에 있어서 최량(最良)의 보증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설령 프랑스가 패배하더라도 프랑스의 노동자가 전쟁기술을 습득한 것은 중요한 획득물이라는 것이다.
④ 마르크스는 보불전쟁을 계기로 국민전쟁[민족전쟁]이라는 범주가 없어지고, 그 대신 계급투쟁이 노골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며 기뻐했다.

2. 방어 전쟁관

전쟁을 방어전쟁과 공격전쟁으로 나누고 전자는 긍정하고 후자는 반동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다. 마르크스는 공격전쟁을 반동적이라고 규정하는 한편 방어전쟁에 관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노동자가 전쟁을 멈출 수 없을 경우 방어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이때의 방어전쟁은 부정(不正)하지 않다. 그러나 방어전쟁의 한계는 모호하며, 군사적 이유를 빙자하여 방어전쟁이 공격전쟁으로 쉽게 전환될 수 있음을 지적한 사람도 역시 마르크스이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만 ‘방어’를 고려해서는 안 되고 다른 민족을 존중하는 정치적 고려가 있어야 진정한 방어전쟁이라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방어전쟁이라는 공식(公式)을 군사에만 한정하여 그것을 절대화하는 일이 잘못된 이유를 지적한 것이다. 한편 마르크스는, 방어전쟁이기 때문에 군사상 필요한 공격적 방법마저 보류해야 한다는 기계적인, 융통성 없는, 마음씨 착한 부처님 같은 생각을 냉소적으로 비판했다. 방어전쟁의 정치적 성격과 군사상 필요한 공격수단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잘못 이해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방어전쟁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군사적인 공격을 취할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불전쟁 당시 쿠겔만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여 ‘군사적으로도 절대적인 수동적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는 1870년 8월 17일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쿠겔만은
방어적 군사작전과 방어전쟁을 혼동하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어떤 폭한(暴漢)이 길거리에서 나를 습격하더라도, 내가 그저 그 사람의 타격을 피할 뿐 그 녀석을 때려눕힐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쿠겔만에 따르면] 내가 공격자로 변(變)하기 때문이다. 변증법에 대한 무지가, 온갖 언어를 통하여 이러한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MEW 33, p.44.) ‘폭한에게 습격당해도 몸을 피하면 될 뿐이며, 폭한을 쓰러뜨리면 나쁘다’는 평가에 대한 마르크스의 풍자는 상당히 흥미롭다.

마르크스의 이러한 풍자는 ‘오른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대라’는 예수의 비폭력적 평화관과 비교된다. 마르크스는 “당신들은 만일 자신이 사기당했을 경우에 이를 법정에 고소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사도(Apostel)들은 그런 행위가 나쁘다고 기록해 놓았다. 당신들은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내놓을 텐가? 아니면 폭행에 대한 소송이 계속(繫屬)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복음서는 이러한 반격을 금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예수의 비폭력적 평화관이 정당방위를 거부하느냐 수용하느냐의 문제와, 정당방어를 인정하는 마르크스의 관점을 종합평가하면 폭력-전쟁-평화에 관한 사고(思考)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3. 세계 전쟁관

유럽의 혁명적 민주주의를 위하여 ‘반동 러시아에 대한 혁명 프러시아의 전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라는 관점에 따라 세계전쟁(Weltkrieg)의 사상을 전개한다. 그는 영국을 끌어들인 세계전쟁을 통해서만 사회혁명이 승리할 수 있다는 인식에 도달한다. 마르크스는 영국 자본주의를 에워싸고 세계전쟁이 일어난다는 인식, 세계전쟁을 통해서만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한다는 인식에 이른다. 유럽의 사회주의 혁명운동은 영국의 부르주아지와의 충돌을, 영국의 산업적인 세계지배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고 마르크스는 판단한다. 세계혁명의 입장을 취한 마르크스는 영국의 부르주아지 지배가 계속되는 한(限) 프랑스 등 대륙 국가들의 사회개량마저 어렵다고 판단한다. 세계전쟁을 통해서만 사회혁명의 최대 장애물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케케묵은 영국은 세계전쟁을 통해서만 분쇄될 것이다. 이 세계전쟁은 영국의 조직된 노동자당인 차티스트 당을 통해서만, 거대한 압박자(壓迫者)에 대하여 유효한 봉기의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 차티스트가 영국 정부의 선두에 서게 된 순간부터 사회혁명은 유토피아의 왕국으로부터 현실의 왕국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영국을 끌어넣은 유럽전쟁은 어떤 전쟁이든지 간에 세계전쟁으로 된다. 이 전쟁은 이탈리아에서도 캐나다에서도 동인도에서도 프로이센에서도 도나우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영국은 나폴레옹시대와 마찬가지로 반혁명(反革命)의 선두에 서게 될 것이며, 18세기의 혁명에 맞선 영국의 죄(罪)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라고 역설한다.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전쟁이라는 마르크스의 구상은 실현되지 않았으나, 마르크스의 역사적 직관력이 돋보인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은 세계전쟁의 부산물이다.’ 1848년의 혁명의 참패를 총괄한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的 의미에서 세계전쟁[유럽전쟁]만이 혁명의 승리를 가져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혁명적 봉기는 비록 그 목표가 계급투쟁과는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혁명적 노동자 계급이 승리하지 않는 한(限) 실패로 끝나지 않을 수 없다. 또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봉건적 반동혁명(反動革命)이 무기를 들고 세계전쟁에서 승패를 판가름하지 않는 한(限) 사회개혁은 하나의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혁명과 세계전쟁[유럽전쟁]의 상호관계를 열정적으로 피력한다. 이는 ‘세계전쟁이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도출되는 객관적 필연’이라는 마르크스 특유의 역사관으로부터 나왔지만 ‘전쟁을 통하여 혁명으로 나아간다’는 실천방침과 연계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단순히 힘에만 의존하는 호전주의자(好戰主義者)가 아니며, 전쟁을 혁명의 수단으로 보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그를 평화 지상주의자라고 부를 수 없다. 다만 마르크스는 현실적으로 전쟁의 발발(勃發)을 좋아하지 않았다.

4. 정의의 전쟁관

전쟁을 절대적으로 나쁜 것으로 간주하는 교조주의적 견해와는 반대로 마르크스주의는 ‘정의로운’ 전쟁과 ‘정의롭지 못한’ 전쟁, ‘반동적’ 전쟁과 ‘혁명적’ 전쟁을 구분한다. 한 나라의 지배 계급이 자기나라의 인민과 다른 나라의 인민을 무장(武裝)으로 억압하고 착취하는 전쟁과, 착취 계급의 지배 영역을 폭력적으로 확장시키고 반동세력의 역량을 폭력적으로 유지하는 데 봉사하는 전쟁은 정의롭지 못하다. 이에 반하여 인민이 국가적, 식민지적 억압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피억압, 피착취 계급이 계급적 질곡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수행하는 전쟁은 정의롭다. 어떤 특정한 전쟁의 성격은 그것이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달라질 수 있다. 즉 정의로운 전쟁이 정의롭지 못한 전쟁으로 전환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전쟁 과정에서 특정 계급 및 사회 집단의 이해가 전쟁의 초기 단계에 다른 계급 및 사회 집단에 의해 주장된 이해와 대립하면서 관철될 때 종종 이런 경우가 나타났다. 어떤 전쟁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이 전쟁의 정치적 내용을 탐구하고 어떤 정치, 어떤 계급의 정치가 그 전쟁을 통해 추구되고 있는가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앞에서 내전이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계급전쟁인 한(限) 그것을 정의의 전쟁(der gerechte Krieg, Just War)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여기에서 ‘마르크스에 있어서 전쟁과 정의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전쟁’과 ‘정의’는 모순관계이다. 그런데 ‘전쟁과 정의는 양립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수용하기 전에 검증할 사항이 있다.
전쟁의 윤리에 관한 일반적 문제 ・원칙적 문제로서 ‘정의의 전쟁은 없다’라는 주장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그 내용이 결코 동일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원칙으로서 이를 주장하는 것, 예컨대 모든 전쟁이 절대악(絶對惡)이라는 주장은 윤리적 원칙에 관한 ‘가치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전쟁을 기도(企圖)하는 인간의 현실을 감안하여 주장하는 입장, 예컨대 모든 전쟁은 이기적 동기(利己的 動機)에 의거한 것이라는 주장<‘전쟁의 대의(大義)를 주창하더라도 그것은 구실(口實)에 불과하다’>은, 인간의 사회적 ・심리적 현실에 관한 ‘사실판단(事實判斷)’으로서 ‘가치판단’에 따른 주장과 다르다.

위의 논의를 가치론적(價値論的) 원칙에 따라 분석하면,
① ‘정의의 전쟁이라고 말할지라도, 정의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없다’는 가치 상대주의의 입장이 있을 수 있다.
② ‘정의는 각 나라마다, 각각의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문화적 상대주의를 표방할 수 있다. 1991년의 걸프戰(Gulf War)에서 나타난 미국 ・유럽의 ‘정의의 전쟁’ 논리와 아랍권(圈)의 ‘정의의 전쟁(성전聖戰; sacred war)’ 논리가 동일하지 않다. 강자(强者)의 쪽에 선 다국적군(多國籍軍)이, ‘근대적 ・서구적’ 가치관에 지나지 않는 것을 보편적 가치로 내세워 ‘비근대적(非近代的) ・비서구적(非西歐的)’인 가치관을 가진 아랍 제국(諸國)을 억누르면서 문화적 상대(우월)주의를 과시했다.
③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전쟁과 정의가 본래 양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정의’는 본디 ‘법’이나 ‘법의 준수’와 관련이 있는 개념이다. 국가의 내부에는 법이 존재하지만 국가와 국가 사이의 분쟁을 해결할 강력한 법체계가 없기 때문에 여러 국가들은 무력에 호소하여 자국의 권익을 주장한다. 이는 ‘사회계약론자들이 말하는 자연상태’이며, 여기에서는 법 ・정의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강자(强者)가 늘 약자(弱者)를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이 통용된다. 그러므로 전쟁과 정의는 양립할 수 없다.

평화 지상주의(Pacifism)는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절대악(絶對惡)’이라고 단정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정의는 존재하나 정의의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만일 다른 나라에 의하여 자국(自國)이 부당하게 침략당했을 경우에도 자국민(自國民)의 방위를 위한 전쟁이 허용되어서는 안 되느냐’는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이 물음에 대한 ‘전쟁 절대악(戰爭絶對惡)’론자(論者)들의 예상되는 두 가지 대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답은, ‘당연히 자위(自衛)를 위한 전쟁일 경우라도 전쟁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대답은 ‘전쟁은 악(惡) 그 자체이다. 그러나 자위를 위한 전쟁은, 그것이 정말로 자위만을 위할 경우 금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대답에서 ‘전쟁은 악(惡)이지만 자위만을 위할 경우 금지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는 Pacifism의 ‘절대 평화’ 신조(信條)가 붕괴될 수 있는 함정이다.

위의 두 가지 대답을 마르크스의 관점에 따라 비판적으로 수정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위를 위한 전쟁일 경우 전쟁은 허용될 수 있다’로 바꾸면 마르크스의 전쟁론에 상당히 접근하게 된다.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위 ・해방을 위한 진보 전쟁, 억압계급에 대한 피억압(被抑壓) 계급의 전쟁, 부르주아지에 대한 임금노동자의 전쟁, 파리코뮨에서와 같은 내전,1789~1871년의 유럽 민족전쟁, 국제프롤레타리아트가 인터내셔널을 중심으로 수행하는 세계전쟁, 차리즘에 대한 전쟁, 혁명적 ・민주주의적 방어전쟁은 정의이다.’ 그러므로 ‘정의의 전쟁은 있을 수 있다.’

마르크스,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는 Pacifism의 전쟁관(‘정의의 전쟁은 있을 수 없다’)을 부정하고 ‘정의의 전쟁은 있을 수 있다’고 긍정하는 측면에서 견해를 같이한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트 해방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수용하는 ‘정의의 전쟁’의 원칙 ・기준과,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가 ‘지상(地上)에 신(神)의 나라를 건설’하는 목표에 따라 인정하는 ‘정의의 전쟁’의 원칙 ・기준이 다르다. 이렇게 다른 원칙 ・기준은 루터의 ‘정의의 전쟁론’과 뮌처(Münzer)의 ‘정의의 전쟁론’을 비교하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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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마르크스가 본 전쟁과 평화」의 제3장 제3절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40호에 실려 있다.
* 김승국『마르크스의「전쟁‧평화」론』(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171~187쪽에도, 위의 글이 실려 있다.
* 기술적인 문제로 각주를 생략했으니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