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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마르크스_ 정치경제학

중기 마르크스의 폭력 개념― {요강}을 중심으로

김승국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이하 {요강})을 집필한 시기는, 마르크스의 폭력(전쟁 ・군대) 개념의 형성에 있어서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다. 마르크스가 이 단계에서 전쟁 ・군대 ・국가에 관하여 많은 것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여러 개념들의 상호연관 속에서 마르크스의 폭력(전쟁 ・군대) 개념이 한층 명확해진다. 마르크스가 1857~1858년에 저술한 {요강}은 {자본론} 구성을 위한 연구노트집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르크
스 자신이 1858년 11월 12일자의 편지 속에서 라쌀레(Lassalle)에게 말한 바와 같이 ‘15년에 걸친 연구의, 내 생애의 가장 좋은 시절의 성과’였다. 확실히 {요강}은 ‘중기(中期) 마르크스’의 가장 훌륭한 성과였으며 이 저작에서 전개된 연구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장려(壯麗)한 연봉(連峰)을 이루고 있다. {요강}의 서론에 해당하는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序說({Einleitung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이하 {序說})은 미완성이지만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의 방법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 {序說} 제3절의 끝부분에 있는 「경제학 구상(plan)」은 특히 유명하다. 「경제학 구상」은 하부구조-상품생산, 사회적 분업, 자본의 문제를 자본제 생산양식의 일반적인 기초로 삼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부르주아 사회의 국가형태로의 총괄’이 보태져 상부구조와의 연관성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단적으로 말하면 유물사관과 정치경제학 비판 사이의 관계에 관한 문제이다.(주1)

앞에서 논술한 「경제학 구상」의 여러 문제들을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본원적 축적’(주2)에 있어서 폭력의 발현형태는, 자연발생적인 공동체의 경우와 비교하여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것은 사원령(寺院領) ・공유지(共有地) ・국유지의 강탈, 봉건적 자영농민 보유지(保有地)의 탈취, 국가에 의한 강력한 재정적 지렛대 이용 등의 광범한 영역을 갖는다. 여기에서 ‘경제적인 힘(Potenz, force)’으로서의 폭력이 다원적으로 나타난다. 물론 폭력이 다원적으로 나타나지만, ‘경제적인 힘’으로서의 폭력 그 자체의 역사적 ・사회적 성격은 어디까지나 경제발전의 단계에 의하여 규정된다. 그런데 경제적 발전의 단계 ・조건에 대응하며 나타나는 ‘경제적인 힘’으로서의 폭력의 발현형태는, 어떤 때는 현재성(顯在性)을 어떤 때는 잠재성(潛在性)을 강하게 보임으로써 여러 가지 자태를 지닌다.(주3)

이어서 {요강} 단계에 있어서 본원적 축적과정의 폭력의 역할에 관한 마르크스의 이해(理解)를 거듭 살펴보기로 한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본원적 축적이란, 봉건적인 생산양식이 자본제적 생산양식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매개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순경제적(純經濟的)인 탈바꿈을 매개하는 것은, 봉건사회의 태내(胎內)에 이미 존재하는 시민적 생산양식의 자기발전이다. 이 탈바꿈을 매개하는 것은, 바로 ‘사회의 집중적이며 조직적인 폭력’=국가권력이다.(주4)

마르크스는 {요강}Ⅲ의 「자본주의적 생산에 선행하는 제형태諸形態(Formen, die der kapitalistischen Produktion vorhergehen)」(이하 「諸形態」)의 끝부분에서 ‘사회의 조직적 폭력=국가권력’에 관한 주목할 만한 서술을 한다: “예컨대 헨리 7 ・8세 등의 각 정부는 역사적 해체과정의 조건으로서 나타났으며, 자본의 존재를 위한 조건의 창설자로서 나타났다.”(주5)

그러면 가치 법칙의 실현이, 이 단계에서 헨리 7 ・8세 등의 정부-국가권력을 요청한 이유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에 착안한 平田淸明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헨리 7 ・8세 등의 정부-국가권력이 동원한 폭력은, 그 자체로서는 ‘구사회(舊社會)=봉건사회’의 폭력이다. 그러나 시민적 영유능력(領有能力)=지배력의 보완으로서 그 자체가 하나의 경제적인 힘(force)이다. 이 폭력이 구사회(舊社會)의 폭력인 한(限), 그것은 아직 토지소유의 지배형태이며 그 자체로서는 ‘신사회(新社會)를 잉태한’ 모태(母胎)의 경제외적(經濟外的) 지배력이다. 그러나 이 경제외적 지배력이 신사회를 낳는 구사회 전체의 조산부(助産婦)인데, 이는 시민적 영유=지배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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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竹村民郞  「マルクスにおける暴力-戰爭槪念」 {經濟學批判ヘの契機} (東京: 三一書房, 1974). 46~47쪽.
(주2) 자본의 ‘본원적 축적(本源的 蓄積; die ursprüngliche Akkumulation)’을 ‘원초적 축적(原始的 蓄積)’ 또는 ‘시원적 축적(始源的 蓄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원적 축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성립에 있어서, 그 전제조건을 이루는 자본과 임노동의 계급관계(자본관계)를 역사적으로 창출하는 자본축적을 말한다.
원래 자본축적은 잉여가치를 전제로 한 것이며 잉여가치는 자본주의적 생산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은 한편으로는 대자본을 가진 상품생산자를,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노동력을 팔아 생활하는 임노동자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운동은 순환논법적(循環論法的)으로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제자리 돌기에서 탈출하려면 ‘본원적’ 축적,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결과’가 아니라 그 ‘출발점’인 축적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宮川實 지음, 두레 편집부 옮김 {資本論解說Ⅰ} (서울: 두레, 1986), 399쪽>.
(주3) 竹村民郞 「マルクスにおける暴力-戰爭槪念」, 위의 책, 53쪽.
(주4) 竹村民郞 「マルクスにおける暴力-戰爭槪念」, 같은 책, 53쪽.
(주5) 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EW 42, pp.414~415.
(주6) 平田淸明  「マルクス硏究におけるフランス語版<資本論>の意義」(上) {思想} 539號 (1969年 5月),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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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마르크스가 본 전쟁과 평화」의 제2장 제2절에 해당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