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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마르크스_ 정치경제학

「마르크스가 본 전쟁과 평화」의 서론

김승국

1. 문제 제기

‘폭력 ・전쟁 ・평화’는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본질적인 현상이므로 사회철학적 탐구의 대상이다. 이 때문에 고대부터 수많은 철학자들이 ‘폭력 ・전쟁 ・평화’의 핵심에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근대 이후에 마키아벨리(Machiavelli) ・홉스(Hobbes) ・루소(Rousseau) ・헤겔(Hegel) ・마르크스(Marx) ・프로이트(Freud) 등이 ‘폭력 ・전쟁 ・평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들 가운데서 헤겔과 마르크스는 변증법적인 시각에 따라 ‘폭력 ・전쟁’ 문제를 다룬다.

헤겔은 ‘사회적 현실이 폭력과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모순이라는 말로 집약하고,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으로 요약한다. 사회적 현실의 변혁이란, 헤겔의 경우에는 모순의 지양이며 마르크스에 있어서는 계급투쟁에 의한 계급의 폐기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모순’이나 ‘계급투쟁’이라는 폭력현상, 권력 ・지배 ・억압 ・전쟁을 포함한 폭력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에 응답한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에 의하여 계급착취라는 폭력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주1)

이와 같이 (전쟁을 포함한) 폭력 현상을 분석하는 일은 평화를 추구하려는 시도와 연결된다. 폭력의 역사적인 누적과정을 고려함으로써 비로소 ‘평화’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폭력 메커니즘(mechanism)의 본질이 정밀하게 파악되어야 전쟁관 ・평화관도 제대로 정립될 수 있다. 참된 평화상태를 이룩하는 길은 폭력적 현실에 대한 이해 ・탐구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폭력의 부재(不在)’로서의 평화를 강조한다. 마르크스의 ‘평화’는 계급착취 ・계급차별 ・억압 ・학정 ・빈곤이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상태를 뜻한다. 그는, 갈퉁(Johan Galtung) 등의 비판적 평화연구가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구조적 폭력’이 제거된 ‘적극적인 평화’를 지향한다. 그는 ‘단지 전쟁이 안 일어난 상태’를 의미하는 ‘소극적인 평화’에 머물지 않고 ‘구조적 폭력이 부재하는 평화체제’를 사회변혁의 목표로 설정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마르크스에 있어서 ‘Gewalt’의 핵심을 파악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전쟁 ・평화 사상을 명확히 이해하는 데 있다. 본 연구는 ‘Gewalt’에 관한 마르크스의 이해를 중심으로 폭력 ・전쟁론을 살펴보고, 이에 기초하여 평화론을 전개하려고 한다.

마르크스에 있어서 전쟁과 평화의 상호관계를 해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Gewalt’는, 다른 사람의 의도에 맞서 자신의 특정한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권력수단을 투입할 때 등장한다. ‘Gewalt’는 이해관계를 에워싸고 계급 사이의 힘의 대결이 벌어지는 역사 속에서 나타난다. ‘Gewalt’는, 특정계급의 힘을 바탕으로 다른 계급의 힘을 고의적으로 억누르고, 다른 계급의 이해(利害)에 맞서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정치적인(특히 국가의) 권력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Gewalt’의 성격과 역사적 역할은 늘 그 계급의 사회적 ・역사적인 위상에 따라 결정되며, 그 계급의 이해관계 속에
서 ‘Gewalt’가 적용된다.(주2)

발리바르(Balibar)는, {마르크스주의 고증 사전(Dictionnaire critique du marxisme)}의 기고문에서 ‘Gewalt’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자세히 평주하고 있다: ‘Gewalt’는 제도화된, 형식적으로 정당한 권력으로서 통치(Regierung, gouvernement), 규제(Regulierung, régulation)에 종속된 행정(Verwaltung, administration)을 전제하는 헌법적 권력, 특히 3권 분립적 공권력(三權 分立的 公權力; die öffentliche Gewalt/pouvoirs publics) 형태의 주권(Souveränität, souveraineté)인 동시에 제한적 규칙도 없고 정당성 문제에도 무관심한, ‘공문구(空文句) 없는’ 폭력(violence ‘sans phrase’), 제약(contrainte) 또는 강제(force)이기도 하다.(주3)

‘Gewalt’는 사유화될 수 있고 특정 소수인에 의해 독점될 수도 있는 생산수단, 행정수단, 전쟁수단, 재정수단, 수단화된 인간조직(관료체제, 군대, 경찰) 등 온갖 수단에 기초한 도구적 강제력을 뜻한다.

‘Gewalt’는 다시 ‘경제외적(經濟外的)’ 물리적 强權(즉 폭력)과(무산자에 대한 경제적 생활수단 및 생산수단 소유권자의) ‘경제적’ 비폭력적 강권(非暴力的 强權)으로 준별될 수 있다.(주4)

이와 같이 ‘Gewalt’는 경제외적인 물리적 폭력관계와 경제적인 비폭력적 관계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이며, 계급관계에서 힘이 적용되는 구조와 관련이 있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은 ‘Gewalt’의 용법에 따라 부르주아지의 ‘Gewalt’는 ‘폭력’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Gewalt’는 ‘강력(强力)’으로 번역한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저서에서 ‘Gewalt’의 영역과 ‘Macht’의 영역이 중복되는 경우가 있으며, 실제로 마르크스 자신이 ‘Gewalt’와 ‘Macht’를 혼용하기 때문에, ‘Gewalt’를 해석할 때 ‘Macht’와의 관련성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공산당 선언}은 (부르주아 계급의 공동사무를 처리하는 하나의 위원회에 불과한) ‘Staatsgewalt’에 관하여 기술하는데(MEW 4, p.464.), 이 ‘Staatsgewalt’는 제도화된 권력(Macht)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국가폭력’이 아닌 ‘국가권력’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마르크스가 자주 사용하는 ‘die öffentliche Gewalt’도 ‘형식적으로 정당한 권력(Macht)’과 연계되어 있으므로 <‘공적(公的) 폭력’이 아닌> ‘공권력(公權力)’으로 풀이하는 것이 좋다.

2. 근대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전쟁 ・평화의 사상

근대를 주도적으로 이끈 부르주아지는 자본축적의 상징물인 대포를 앞세워 중세기의 성벽을 무너뜨렸고 그 자리에 근대 부르주아 국가를 세웠다. 그런데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부르주아지의 폭력(Gewalt)이 동원되었고, 부르주아지와 절대왕정 사이에 끊임없는 분쟁 ・전쟁이 계속되었다. 시민혁명을 주도한 부르주아지는 ‘자유’‘평등’ ‘민주주의’를 내걸고 절대왕정을 타도하는 전쟁에 나섰으나,절대군주들은 정규군 강화 ・영토분할 전쟁으로 맞섰다. 따라서 자유・평등을 추구한 근대 부르주아 사상은, 필연적으로 ‘평화’라는 가치도 아울러 정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문주의에 기초한 전쟁 ・평화론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에라스무스(Erasmus)는, 절대군주가 전쟁을 통치의 유력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평화에의 호소(Querela Pacis)}에서 전쟁은 우매한 행위이며 민중이 전쟁의 피해자라고 말한다. 그는 {자유의지론(Diatriba de libero arbitrio)}을 통하여 인도적인 입장에서 전쟁을 죄악으로 규정하며, 자유의지에 따라 평화를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토마스 모어(Thomas More)는 {유토피아(Utopia)}에서 노예가 존재하는 공산주의적 이상사회를 묘사하나, 유혈에 의한 승리를 치욕으로 삼고 있으며 전투행위를 하지 않고 승리하는 것을 가장 명예로운 것으로 여긴다.

당시 유럽에서는 절대주의 체제 아래에서 근대적 국제사회가 형성되어 시민혁명 ・나폴레옹 전쟁이 전개되었던 격동의 정세가 펼쳐지며, 이에 따라 전쟁과 평화에 관하여 수많은 주장이 전개된다. 프랑스의 王인 앙리(Henri) 4세(1553~1610)는 서유럽 제국(諸國)이 종교적인 관용에 근거한 평화유지를 위하여 국제적인 연맹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이를 위한 ‘대계획(大計劃; grand design)’을 제창한다.

그로티우스(Grotius)는 1625년 {전쟁과 평화의 법(法)에 관하여(De jure belli ac pacis)}에서 전쟁을 자연법에 어긋난 것으로 규정하고 평화를 매개로 자연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1743년에 {유럽의 영구평화(永久平和) 초안(Projet pour rendre la Paix perpétuelle en Europe)}을 펴낸 셍 삐에르(Saint Pierre)는, ‘계약설(契約說)’의 입장에서 전쟁을 회피하고 평화로운 세계국가의 연합을 건설하며, 이 연합을 통하여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기술한다. 절대주의 국가 사이에서 영구평화를 이룩할 방안을 고찰한 셍 삐에르는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군주나 대신(大臣)들의 이성에 의지할 수 없으므로 현상유지가 긴요하다고 강조한다.

셍 삐에르의 {유럽의 영구평화 초안}을 요약한 루소의 {셍 삐에르의 영구평화 초안 발췌문(Extrait du Projet de la Paix perpétuelle de l’Abbé de Saint Pierre)}은, 인도적인 입장에서 평화론을 전개하면서 평화를 통하여 자유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루소는 셍 삐에르의 견해를 비판하고 영구평화를 위하여 정부는 전제적(專制的)이 되어서는 안 되며,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에 근거하여 정부가 구성되어야 하며 민주주의에 의하여서만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셍 삐에르와 루소를 염두에 두고 획기적인 평화론을 제기한 칸트(Immanuel Kant)는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에서 평화를 위한 세 가지의 확정조항(주5)과 ‘상비군 폐지 ・전쟁채권 발행 금지 ・다른 국가에 대한 폭력적 간섭 금지’ 등 여섯 가지의 예비조항을 제시함으로써 도덕적인 시민사회 건설을 위한 평화론을 전개한다.

평화에 관한 이념과 윤리를 주장한 철학자는 많았지만, 평화문제를 철학의 과제로 생각한 전형적 철학자는 칸트였을 것이다. 그는 {영구 평화론}에서 철학과 평화문제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으로 간파하고 있다. 칸트에게 평화의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이면서도 현실을 초월하는 당위적인 문제였다. 법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이면서도,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였다. 칸트에게 평화는 인간의 이성이 가진 보편적 이념이면서 동시에 법과 정치적 과정을 통하여 실현되고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었다.(주6)

3. ‘과학적’ 사회주의와 전쟁 ・평화의 사상

마르크스의 방대한 저작 중에서 ‘전쟁 ・평화’를 단일한 주제로 설정한 것은 없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세계관을 정립하는 가운데 ‘전쟁 ・평화’ 문제에 집요하게 매달렸다는 사실을 그의 저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전쟁 ・평화’를 사회철학적으로 다룸으로써, ‘전쟁 ・평화’ 문제가 피안(彼岸)에서 차안(此岸)으로, 부르주아지에서 프롤레타리아트로, 관념에서 현실로 끌어내려졌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 중심의 민주주의를 주창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민주주의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통하여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마르크스 사상의 대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은] 인민주권을 승인함과 더불어, 노동자 계급의 지도성(指導性), 노동자 계급의 단결의 결정적인 의의를 강조한 점에 있다. [마르크스는] 민주주의를 계급투쟁의 하나의 형태로 파악하여 정치적 상부구조 및 이데올로기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경제구조에 있어서도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그는] 노동의 자유와 노동의 권리 ・노동의 사회화와 대공업의 의의를 강조하고, 자본주의적 소유의 폐지 ・사회주의의 실현을 지향함과 더불어 인민민주주의, 즉 노동자 계급의 권력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것을 주장한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私的 所有)와 계급의 폐지를 지향하며 생산수단의 공동점유(共同占有)를 기초로 한 개인적 소유를 재건하고, 사회주의를 공산주의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민주주의의 완전한 발전을 목표로 한다.(주7)

‘과학적’ 사회주의는, 근대 민주주의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으며 근대 민주주의의 전쟁 ・평화의 사상도 계승 ・발전시킨다. ‘과학적’사회주의의 전쟁 ・평화의 사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먼저 {전쟁론}의 저자로서 유명한 클라우제비츠(Klausewitz)의 명제를 계승하여 ‘전쟁은 다른 수단을 이용한 정치의 계속이다’라고 주장한 점을 들 수 있다. 경제에 대한 집중적 표현이 정치이며 정치의 집중적 표현이 ‘군사(軍事)’이므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지배계급의 욕구가 전쟁의 기초를 이룬다는 것이다. 즉 전쟁은 계급투쟁의 한 형태이며 지배계급이 수행하는 전쟁이 있는 반면 이에 대항하여 피지배계급이 수행할 수밖에 없는 전쟁도 있는데, 전자는 정의롭지 못한 전쟁(不正義의 전쟁)이고 후자는 인민의 저항권 ・혁명권(革命權)을 행사하는 정의의 전쟁이다. 피지배계급의 저항전쟁(抵抗戰爭)은 정의의 전쟁으로서 지지를 받지만, 인민이 전쟁의 주요한 피해자이자 희생자인 점이 명백하다. 피지배계급은, 지배계급이 도전한 전쟁에 대한 저항권 ・혁명권의 발동으로서 불가피하게 수행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만 정의의 전쟁에 나선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 ・근로인민만이 전쟁을 폐지하라고 요구할 수 있으며, 폐지할 능력을 갖고 있다. [마르크스 등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전쟁의 근원에는 사적 소유의 추구가 있으며, 자본주의 ・제국주의가 전쟁의 경제적 기초이므로 제국주의가 지속되는 한 전쟁의 가능성이 존속한다. 따라서 전쟁이 없어지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자본주의 ・제국주의가 폐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르크스에 있어서] 평화를 추구하고 보장하는 것은 노동이다: “새로운 사회의 국제규칙은 평화이다. 왜냐하면 이 새
로운 사회의 국민적 지배자는, 어디에서나 동일한 원칙 ―노동! ―이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사회의 개척자야말로 국제노동자협회이다.”(MEW 17, p.7.) 약술하자면, 사적 소유 ・자본주의로부터 전쟁이 태어난다. 이에 반(反)하여 노동, 노동의 담당자인 노동자 계급의 정치로부터 평화가 탄생한다. 전쟁 ・평화의 대립의 배후에 자본 ・노동의 대립이 있다.(주8)

4. 본 연구의 구성과 방법론

본 연구는 크게 세 부분, 즉 「마르크스의 폭력 개념」, 「마르크스의 전쟁론」, 「마르크스의 평화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르크스의 폭력 개념」은 「마르크스의 전쟁론」의 도입부분에 해당되며, 이 때문에 마르크스의 전쟁개념을 포괄하고 있다. 본 연구는 마르크스의 폭력 개념을 설명하면서 마르크스의 전쟁론을 기술하고, 이를 마르크스의 평화론과 연결시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본 연구는 엥겔스(Engels)의 폭력 개념 ・전쟁론 ・평화론도 다루고 있으나, 마르크스가 엥겔스의 전쟁론 ・평화론을 종합 ・수렴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마르크스를 엥겔스의 대변자로 내세웠다. 그러나 엥겔스의 전쟁론 ・평화론을 특별히 언급할 때에는 엥겔스의 이름을 병기(倂記)하거나 엥겔스의 논지를 따로 밝혔다.

  1) 마르크스의 폭력 개념

제2장 「마르크스의 폭력 개념」은 마르크스의 저서를 중심으로 폭력 개념을 정립하는 데 주력한다. 이 장에서 말하는 폭력 개념은 ‘전쟁’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마르크스의 방대한 저서를 3등분하여, 초기의 저서 중에서는 {독일 이데올로기(Die deutsche Ideologie)} {철학의 빈곤(Misère de la philosophie)} {공산당 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을, 중기의 저서 중에서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이하 {요강})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Einleitung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을, 후기의 저서 중에서는 {자본론(Das Kapital)}을 분석함으로써 마르크스의 폭력 개념을 정립하고자 한다.

이처럼 세 시기로 나누어 폭력 개념을 설명하는 이유는, 마르크스가 각 시기마다 ‘폭력’을 설명하는 메커니즘이 다른 데 있다. 즉 초기 저서인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사적 유물론(史的 唯物論; historical materialism)을 정립했으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관계설정이 미흡한바, 폭력 개념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교통형태(Verkehrsform)를 도입하는 데 그친다. 한편 중기의 저서 {요강}은 {자본론}의 예고편답게 정치경제학의 구도에 따라 폭력 개념을 설명하면서 ‘경제적인 힘(force)’을 분석도구로 삼는다. 그리고 후기의 저서 {자본론}의 가치형태론에서 마르크스는 ‘화폐의 폭력 ・자본의 폭력’ 구조를 설명한다. 이처럼 마르크스는 초기 ・중기 ・후기 저작에 따라 폭력 개념을 정립하는 수단을 달리하면서 폭력에 관한 이론을 정교하게 가다듬는다. 위의 저서 이외에도 마르크스가 신문기고문 ・연설문 ・편지를 통하여 폭력 ・전쟁에 관하여 언급한 부분이 많으나 본 연구에서는 크게 다루지 않는다.

제2장 제1절 1.의 「교통형태와 폭력」은 {독일 이데올로기}의 ‘교통형태’가 전쟁을 포함한 개념임을 밝히고, 생산력과 교통형태(생산관계)의 모순이 전쟁 ・계급충돌 ・사상투쟁 ・정치투쟁 등으로 드러나는 점을 고찰한다. 또 분업구조와 소유형태가 바뀜에 따라 전쟁의 양상도 바뀌는 점을 강조하면서 폭력 ・전쟁과 사적 소유의 관련성을 확인한다. 더 나아가 폭력 ・전쟁에 관한 세 가지 규정, 즉 소유형성적 계기(所有形成的 契機; 폭력 ・전쟁이 소유의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계급형성적 계기(階級形成的 契機; 폭력 ・전쟁은 계급형성의 정치적 계기를 이룬다), 소유전변적 계기(所有轉變的 契機; 폭력 ・전쟁은 소유형태의 전환에서 중요한 계기를 이룬다)의 변증법적인 상호 규정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어서 ‘정치적 폭력[정치 권력]이란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한 계급의 조직된 폭력이다’라고 밝힌 {공산당 선언}을 분석하면서 ‘부르주아지의 폭력(Gewalt)을 지양(止揚; aufheben)할 프롤레타리아트의 강력(强力; Gewalt)’에 관하여 설명한다.

제2장 제2절 「중기(中期) 마르크스의 폭력 개념」은 정치경제학에 관한 주요 저서인 {요강}을 중심으로 설명되고 있다. 마르크스는 {요강}에서 사회구성체(社會構成體)가 바뀜에 따라 폭력의 형태도 바뀐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정치경제학의 구도에 따라 폭력을 설명하는 마르크스는 {요강}에서 ‘경제적인 힘(force)으로서의 폭력’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이어서 마르크스는 사회의 집중적이며 조직적인 폭력으로서의 국가권력에 관하여 조명한다.

제2장 제3절 「후기(後期) 마르크스의 폭력 개념」은 {자본론}을 통하여 집약된다. 본 연구는 먼저 {자본론} 1권의 상품 ・화폐론을 분석함으로써 ‘화폐와 폭력’의 상호관계를 규명하며, 이를 통하여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내재하는 폭력(자본주의의 내재적 폭력)을 이끌어낸다. 본 연구는 가치형태론을 중심으로 ‘화폐의 폭력’이 발생하는 경로를 밝히는데, 마르크스의 네 가지 가치형태 도식에서 폭력의 요소를 발견함으로써 ‘화폐의 폭력’ ‘자본의 폭력’이 근원적인 폭력(사회관계에 근본적으로 내재하는 폭력)임을 규명한다. 그리고 폭력으로 얼룩진 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과정을 분석하는 가운데 ‘폭력은 새로운 사회를 낳는 조산부’임을 확인한다.

본 연구는 프랑스어판 자본론(Le Capital) 제1권 제8편 「본원적 축적」을 통하여 영국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폭력을 설명하면서, 자본의 폭력이 전쟁의 본질적인 원인임을 강조한다.

제2장 제3절 3. 3)의 「폭력에 의한 본원적 축적과 ‘부정(否定)의 부정’」은 마르크스의 폭력 개념을 변증법적으로 해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부르주아지의 Gewalt와 이를 지양할 프롤레타리아트의 Gewalt를 대비하고 있다. 또한 ‘본원적 축적과 폭력’에 관한 논리 전개를 이어받아 폭력 ・전쟁의 계기를 설명함과 동시에 ‘부정의 부정’을 통한 평화의 계기를 설명한다. 즉 개인적 소유를 부정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형성되고 이때 폭력 ・전쟁의 계기가 발생하는데, 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다시 부정(부정의 부정)하는 사회적 소유를 통하여 평화의 계기(프롤레타리아트 해방〓프롤레타리아트의 평화)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Gewalt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마르크스의 폭력 개념」은, 부르주아지의 폭력과 프롤레타리아트의 강력(强力)을 이원화(二元化)하여 설명하되 이를 ‘프롤레타리아트의 Gewalt’로 지양하는 논리적 구도에 따라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도에 입각한 ‘전쟁과 평화의 변증법’이 본 연구의 전편(全篇)에 걸쳐 전개되고 있다.

  2) 마르크스의 전쟁론

제3장 「마르크스의 전쟁론」은 마르크스의 전쟁에 관한 방법론을 정립함으로써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계급정치(Klassenpolitik)의 연장(延長)’임을 확인한다. 이어서 마르크스가 고대 ・중세의 전쟁과 당대의 전쟁을 어떻게 평가했고 전쟁의 원인을 어떻게 규명했는지를 파악함으로써 마르크스 전쟁론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 장은, 마르크스의 진보 전쟁관 ・방어 전쟁관 ・세계 전쟁관 ・정의의 전쟁관을 기술하는 가운데 마르크스의 전쟁에 관한 관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제3장 제2절 2. 4)는 마르크스의 전쟁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파리코뮨에 대한 관점을 분석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과 전쟁’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내전 형태를 띤 파리코뮨이 국가기구를 양(量)에서 질(質)로, 변증법적으로 전화(轉化)한 점, 파리코뮨을 통하여 전쟁양식이 변화한 점, 파리코뮨이라는 전쟁형식을 통하여 부르주아 사회의 억압적 기구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으로 대체된 점 등을 논증함으로써 ‘진보전쟁은 정의의 전쟁이다’는 등식을 확인하고자 한다.

  3) 마르크스의 평화론

마르크스가 평화에 관하여 본격적으로 다룬 단일한 저서는 없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서 곳곳에서 ‘혁명에 의한 평화’를 언급한다. 그렇다면 혁명에 의하여 평화를 창출할 수 있나? 혁명과 평화는 짝짓기 할 수 있나? 혁명은 내란을 상정하는데, 이는 전쟁을 통한 평화의 길을 찾는다는 뜻인가? 이러한 의문은 마르크스 평화론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임과 동시에 사회철학적인 과제이다.

마르크스는 ‘혁명에 의한 평화’를 이룩하는 데 프롤레타리아트의 강력(强力)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 강력은 ‘혁명에 의한 평화’의 동력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혁명론을 폭력혁명론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요소가 있다. 마르크스가 비록 프롤레타리아트의 강력에 의한 혁명을 강조했으나, 그는 혁명의 평화적인 이행에 큰 비중을 둔다.

여기에서 마르크스 평화론의 독특한 모습이 돋보인다. 마르크스는 더 나아가 ‘자유인의 연합(Verein freier Menschen)’이 주체가 되어 ‘혁명에 의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평화의 주체를 명백히 설정한다.

제4장은, 부르주아적인 평화론과 마르크스 평화론의 차이점, 평화와 진보의 변증법적인 관계, 계급사회에서의 평화에 관하여 기술한다. 이 장은, 각인(各人)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결합사회(Assoziation)론에 입각한 마르크스의 평화론이 ‘현실 속에서 실천 가능한 평화’를 지향하고 있음을 논증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노동’과 평화, ‘계급’과 평화, 평화혁명과 폭력혁명, 국제평화와 민족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제4장 제2절 3의 「평화혁명과 폭력혁명」은, 평화혁명과 폭력혁명의 분기점에 있는 ‘Gewalt’의 다의성(多義性)에 주목하면서, ‘폭력 ・평화 문제의 상관성(相關性)’에 대한 복합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본 연구는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史的 唯物論)에 입각하여 마르크스의 폭력 ・전쟁 ・평화론을 변증법적으로 정립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점에 주력하고 있다: 첫째, 폭력 ・전쟁 ・평화에 관한 형이상학적 ・관념적 ・부르주아적(的)인 해석을 배제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적인 해석을 선택한다. 둘째, ‘전쟁과 평화의 변증법’을 전개하는 방편으로 계급사회에서의 전쟁 ・평화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전쟁 ・평화문제의 계급적 성격을 드러내기 위하여 노력한다. 셋째, ‘폭력 ・전쟁’이 소유 ・분업 문제와 깊은 연관을 갖고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소유론과 전쟁 ・평화론이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드러내고자 한다. 넷째, 마르크스의 전쟁론과 ‘정의의 전쟁론’을 논리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정의에 관한 철학적 논의와 전쟁 ・평화론의 연관성을 탐구한다. 다섯째 전쟁 철폐 ・평화 확보의 매개항(媒介項)으로 ‘노동’을 설정함으로써, 노동이라는 삶의 구체성을 통하여 전쟁 ・평화문제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즉 노동의 주체를 프롤레타리아트로 상정하는 마르크스의 논리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의 시각에서 ‘전쟁・평화’ ‘혁명과 평화’문제에 접근한다. 여섯째, 전쟁의 원인이 자본의 폭력에 있음을 명백히 함으로써 자본의 측면에서 전쟁 ・평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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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今村仁司 지음 {批判への意志}(東京: 勁草書房, 1989), 30쪽.
(주2) Georg Klaus, Manfred Buhr 편 {Marxistisch-leninistisches Wörterbuch der Philosophie} (Hamburg: Rowohlt, 1972), ‘Gewalt’항(項), 2권, p.453.
(주3) 발리바르 지음, 윤소영 옮김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서울: 문화과학사, 1995) 190쪽. [Étienne Balibar {La philosophie de Marx} (Paris: Éditions La Découverte, 1993)]
(주4) 황태연 ・엄명숙 지음 {포스트 사회론과 비판이론} (서울: 푸른산, 1992), 125쪽.
(주5) ① “시민적 체제는 공화적이어야 한다.” ② “국제법은 자유로운 여러 국가의 연방조직에 의거해야 한다.” ③ “세계 시민법은 보편적 우호의 조건에 제한되어야 한다.”
(주6) 이삼열 지음 {平和의 哲學과 統一의 實踐} (서울: 햇빛출판사, 1991), 25~26쪽.
(주7) 芝田進午 편 {戰爭と平和の理論} (東京: 勁草書房, 1992), 10~11쪽.
(주8) 芝田進午 편, 위의 책, 1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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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마르크스가 본 전쟁과 평화」의 서론이다.
* 김승국『마르크스의 「전쟁‧평화」론』(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9~24쪽에도 위의 글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