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쟁-안보-군사/군사전략, 군사기구

미국 쪽 억지 전략 ・북한 쪽 역억지 전략의 한계

김승국

1. ‘억지’의 뜻풀이와 북・미 심리전의 향방

‘억지(Deterrence)'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

  ① 자신이 힘을 행사할 수 있음을 나타내면서 적이 공격을 통해서 얻는 이익보다 보복으로 입게 되는 손해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일정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② 억지란, 상대방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를 취할 때 상대방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박탈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상대방의 행위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③ 상대방이 핵공격을 시도할 때 핵보복을 가하는 태세를 취함으로써 상대방으로부터 핵공격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억지’이다.
  ④ 억지는 ‘공격하지 말라. 네가 공격하면 우리가 보복하겠다’는 것이다. 후자에 더욱 큰 무게를 두면 ‘싸우려면 먼저 공격하는 것이 좋고 또 그렇게하면 보복의 위협이 없어서 유리하다’는 논리, 즉 선제 공격론으로 변질된다. 이럴 경우 ‘억지’는 수비적인 개념이 아니라 공세적인 개념으로서 상대방이 얌전히 굴지 않으면 언제든지 선제 핵공격을 가하겠다는 위협이다.
  ⑤ ‘deter'라는 영어 단어 속에 ‘까불면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위협이 내포되어 있다. 싸움을 말리는 자가 싸움 당사자보다 더욱 큰 힘의 우위를 보이며 제어하는 경우도 억지에 해당된다. 깡패・조폭(조직 폭력배)들이 우람한 체격을 드러내며 상대방을 위협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끽소리 못하게 하는 ‘평정’도 이에 해당된다. 깡패들이 상대방의 뺨을 후려치는 폭력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 분위기를 압도하는 폭력도 ‘억지’이다.
  ⑥ 위와 같은 ‘억지’의 일상적인 쓰임새를 국제정치에 확장한 미국이, 북한 등에 ‘깡패국가(Rogue state)’라는 낙인을 붙인 다음 깡패국가들의 뺨을 후려칠 듯한 자세, 즉 북한에 대한 (핵)전쟁을 일으킬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렇게 폭력적인 억지를 부리는 미국이야말로 깡패국가・조폭국가임을 망각하게 하는 마취제가 ‘억지’라는 말 속에 들어 있다.

억지의 영어식 풀이는 “A psychological process of influence exerted by one party on another by manipulating the latter's perception of threat, costs, and benefits. Deterrence can be accomplished by denial(of the opponent's capacity to attack successfully) or by punishment(after the fact of attack, which the opponent is incapable of preventing)”(주1)로서, 심리전의 요소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위의 ‘심리전’은 북한의 2 ・10 선언(2005년 2월 10일의 핵무기보유 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 2 ・10 선언은 북・미 핵공방 심리전의 압권이다. 2・10 선언을 통해 미국이 대북 위협감을 크게 느낄수록 2 ・10 선언의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2 ・10 선언의 핵심인 역억지 전략(Counterdeterrence strategy: 북한이 핵무기를 가짐으로써 미국의 공격을 억지할 수 있다는 억지 전략의 북한판: 미국의 대북 핵억지・핵전쟁 기획에 역행하는 逆抑止 전략)의 성공 여부는, ‘2 ・10 선언이 미국으로 하여금 얼마나 큰 위협감을 느끼게 했는가’에 있다.

북한이 2 ・10 선언을 통하여 대미 역억지력을 행사함으로써 일정한 효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을 공격함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북한으로부터의 보복을 통해 입을 손해가 더 크다는 점을 미국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대북 압살책동을 중단하게 할 정도에 이르렀는지는 미지수이다. 2 ・10 선언에 위협감을 느낀 미국이 대북 압살 정책을 포기할 정도가 되어야 북한의 역억지 정책이 성공하는데, 오히려 미국이 대북 포위망을 조밀하게 좁혀가고 있으므로 2 ・10 선언의 효과는 반감되고 있는 듯하다.

역억지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의 선제공격(제1격)을 받아 심한 피해를 입게 되더라도 살아남아 적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줄 수 있는 보복공격(제2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파멸의 위험을 무릅쓰고 반드시 이를 발동시킬 의지가 있음을 적이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은 역억지 전략이 성공하기 위한 기본 조건을 채우기 위해, 미국에 치명적인 손해를 줄 수 있는 보복공격 능력을 보유하기 위해 대륙간 탄도탄과 핵탄두 개발을 향해 맹진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쏟을 것이다. 이 천문학적인 국방비는 인민의 굶주림을 희생양으로 조달될 것이다. 대미(對美) 역억지력을 위한 국방비 증액과 인민의 밥통 줄이기가 북한 핵전략(역억지 전략)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한편 핵개발용 국방비가 인민의 밥통(욕구)을 억지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억지(對人民 억지)이다. 핵과 관련된 북한 정권의 입지는, 대미 역억지와 ‘인민의 창자를 줄이는 억지(對人民 억지)’ 사이에 놓여질 것이다.

인민의 창자가 북한의 핵개발 대행진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저항하면 대미 역억지 전략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북한 정권은, ‘핵개발에 나선 선군정치의 후유증으로 인한 경제적 고난’을 인민들이 참을 수 없는 임계점에 이르기 직전까지, 미국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 위한 핵능력을 배양(핵실험・핵무기 양산 등)할 것이다. 인민의 창자를 담보로 한 대미 역억지 전략은, 북한의 파멸 위험을 무릅쓴 극약처방이다. 이런 극약처방에 자극을 받은 미국이 대북 적대 정책을 포기하고 대북 화해로 나오면 성공일 텐데… 부시 정권이 존재하는 한 그런 기대는 성급하다. 바로 여기에서 북한 쪽 역억지 전략의 한계를 감지할 수 있다.

앞에서 ‘한계’란 역억지 전략의 유효성・신뢰성의 한계를 말하는데, 이를 검증하기 위해 ‘억지 전략의 모순이 역억지 전략의 모순을 유발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려한다. 가해자인 미국 쪽 억지 전략의 모순이 피해자인 북한 쪽 역억지 전략의 모순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가해자 측의 억지론이 한계를 갖고 있으므로 피해자 측의 역억지론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연동효과를 심층적으로 살피기 위해 핵억지 전략의 특징부터 언급한다. (2005. 4. 25.)<이하 생략>

*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핵문제』(파주, 한국학술정보, 2007) 198~215쪽을 참조할 것.
=======================
<註>
(주1) Lester Kurtz 편 {Violence, Peace, & Conflict} 제2권(San Diego, Academic Press, 1999) 591쪽.

'전쟁-안보-군사 > 군사전략, 군사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시 정권의 핵전략  (0) 2009.05.10
일본 위협론  (1) 2009.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