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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안보-군사/칼럼-에세이

IAEA를 발가벗긴다

김승국


Ⅰ. IAEA를 고발하는 리터의 증언


1991년부터 1998년까지 7년간 이라크의 무기사찰 현장에서 가장 유능한 미국인 주임 사찰관으로 활약했던 스콧트 리터(Scott Ritter)씨. 이제 그는 자신의 옛 직장인 IAEA를 고발하는 ‘배신자(?)’가 되었다. 그가 IAEA에 반기를 든 이유 속에 IAEA의 모순이 깃들어 있다.그는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뿐 아니라 제조시설 ・수송체계의 모든 것을 밝혀내 폐기하는 일에 전심전력했으나, 1998년 유엔 무기사찰단(UNSCOM)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심하다고 느껴 이에 항의하기 위해 사표를 냈다. 이라크와 UNSCOM은 미국의 스파이 용의를 에워싸고 갈라져 사찰 중단과 함께 미국 ・영국군의 대규모 공습 ‘사막의 여우 작전’으로 급진전되었다.


그 이후 리터 씨는 자신의 체험과 데이터에 근거하여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대량파괴무기가 현재 이라크에 있다는 주장이 무리’라고 지적하면서 ‘근거도 없이 이라크 공격으로 돌진하는 미국 정부’를 엄혹하게 비판했다. 리터 씨는 CIA직원으로서 옛 소련의 군축사찰에 참가한 뒤 해병대 정보장교로서 걸프전에 참전했다. 2000년 대통령 선거 때 부시를 지지한 토박이 공화당원이지만, 현재는 부시 정권의 이라크 진공계획을 확실한 데이터에 기반하여 견제하는 ‘가장 힘겨운 논객’이 되었다.


부시 정권의 ‘저격수’로 돌변한 리터를 흉내 내듯 리터의 상관이었던 한스 블릭스조차 부시의 말을 듣지 않고 있다. 블릭스는 최근 미국 정부와 이견을 보이며 ‘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의 조건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를 미국에 보내고 있다. 그는 부시의 연설과 모순되는 발언을 계속하면서 부시를 괴롭히고 있다. 블릭스는 ‘이라크가 과학자를 숨긴 증거도 알카이다와 연계된 증거도 없다.’고 말함으로써 부시 정권의 뒷덜미를 잡고 있다.

* 출처=[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58호(2004.1.5)]


Ⅱ. IAEA의 군산복합체 인맥: 한스 블릭스


1. WPF에 나타난 한스 블릭스


2006년 6월 23~28일에 캐나다의 밴쿠버(Vancouver) 시에서 열린 세계평화 포럼(WPF: World Peace Forum 2006)에 한스 블릭스(Hans Blix)가 귀빈으로 참석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혹시 동명이인(同名異人)의 평화운동가가 WPF에 참석했나 하고 뒷조사를 했는데 진짜 IAEA 사무총장이었던 한스 블릭스가 평화운동가의 탈을 쓰고 나타난 것이다.(주1)

‘IAEA의 군 ・산 복합체 인맥의 거두’(주2)이었던 그가 평화운동가로 변신한 ‘둔갑술’은 손오공도 범접하지 못할게다.


2. 줄타기의 명수 ‘한스 블릭스’
 

국제무대에서 수십 년간 생존의 방법을 터득한 한스 블릭스. 그는 전 세계적인 반전운동의 고양, 유럽 국가의 반기 등을 지켜보면서 ‘막가파’ 부시 정권을 무조건 지지하다가는 앞으로 인생이 망가질 것이라 직감을 했을 법하다. 국제외교의 동향을 감지하는 후각이 뛰어난 그는 ‘부시 정권에도 이견을 보이고 후세인 정권도 문제아라는 암시’를 줌으로써 절묘한 양비론을 취하며 줄타기를 한 듯하다.


그런데 줄타기의 명수인 한스 블릭스의 천적이 나타났다. 한때 그와 함께 이라크의 무기사찰에 임했던 스콧 리터가 한스 블릭스의 행각에 일침을 놓았다.


스콧 리터는 2004년 1월 29일 한스 블릭스 유엔 감시 ・검증 ・사찰 위원회(UNMOVIC) 위원장이 27일 유엔 안보리 보고 시 미국을 돕기 위해 중요한 내용을 누락시켰다고 주장했다. 리터는 TSF 라디오 회견에서 “블릭스 위원장의 보고는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촉진시키기 위한 것으로 이는 그가 부시 행정부에게 베풀 수 있는 최선의 호의.”라고 강조했다. 리터는 특히 “블릭스 위원장은 액체 탄저균이 생산된 지 3년이 되면 무용지물이 되는 점을 설명하지 않았으며, 지난 93-98년 사이에 생산된 화학탄들은 품질이 아주 좋지 않아 이라크 측이 이를 숨겨 두었다 해도 제대로 써먹을 수 없다는 점도 고려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합 뉴스 2004.1.30)

*출처=[평화 만들기] 50호(2004.1.5)의 기사 「IAEA를 발가벗긴다(5)」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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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1) 1) WPF가 열린 6일 동안의 반핵 프로그램 중에서 이채로운 것은 한스 블릭스(Hans Blix)가 WPF 무대에 등장한 점이다. 스웨덴 출신의 한스 블릭스는 클린턴 정권 때까지 국제 핵 산업계를 쥐락펴락한 ‘군(軍) ・산(産) 복합체’의 거두이었다. 그는 국제원자력 기구(IAEA)의 사무총장으로서 북한 핵문제에 깊이 관여하여 북한 지도부를 궁지에 몬 장본인이다. 1993년 북한 핵 위기 때 대북 특별사찰을 주도하다가 북한이 응하지 않자, 유엔 안보리에 북한 핵문제를 회부하여 대북 군사제재를 꾀하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이윽고 대북 군사제재에 앞장선 미국이 1994년 북한과의 전쟁 일보 직전까지 나아갔다.
이처럼 ‘죽임의 상인(군 ・산 복합체, 핵 산업계)의 대리인’ 노릇을 한 한스 블릭스가 부시 정권(네오콘?)과의 불화로 IAEA를 떠났으며, 현재 야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이라크의 대량파괴 무기를 트집 잡아 이라크 전쟁을 기획한 부시 정권은, IAEA와 합동으로 이라크에 대한 대량파괴 무기 사찰을 실시했다. 이라크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루머를 국제적으로 유포한 부시 정권은, 이라크의 핵무기 보유 여부를 사찰하기 위해 IAEA ・미국 정부의 특별사찰 팀을 바그다드에 보냈다. 이라크는, 특별사찰 팀의 일반 군부대 사찰까지 허용하는 등 상당히 협조했다. 그런데 이라크 전쟁까지 건너다보며 움직인 한스 블릭스의 사찰 팀은 잔인했다. 특별사찰 팀이 얼마나 후세인 정권을 못살게 굴었는지… 후세인의 집무실 ・친위부대 사령부에 핵물질을 감추어 놓았다고 호들갑 떨며 후세인 정권의 안방까지 뒤지려고 덤벼들었다. 권부의 안방까지 사찰 팀에게 공개할 수 없었던 후세인은 한스 블릭스 팀의 잔인한 특별사찰 제의를 거부했으며, 이에 대한 괘씸죄로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벌인 듯하다. 만일 북한이 후세인 정권처럼 호락호락하면 김정일 위원장의 집무실 ・부부 생활하는 이불 속까지 뒤지며 핵사찰을 강요할지 모른다. 북한이 미국 주도의 특별 핵사찰을 철두철미하게 거부하는 저변에, (우물쭈물 핵사찰을 수용한 끝에 전쟁의 구렁에 빠져 패전한 뒤 사형당한) 후세인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결의가 있는 듯하다. 어쨌든 한스 블릭스는, (부시 정권의 암시적 명령에 따라) 이라크의 대량파괴 무기 사찰을 빙자하며 이라크 전쟁을 유도한 일등 공신이다. 그런데 ‘부시 정권이 이라크에 실제로 대량파괴 무기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대량파괴 무기를 없앤다는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켰다.’는 논의가, 이라크 전쟁 이후 불거져 나왔다. 이렇게 ‘이라크 전쟁의 명분 없음’이 드러나자 부시 정권이 밀리기 시작했다. 국제동향에 대한 후각이 뛰어난 한스 블릭스는 이때부터 ‘이라크에 대량파괴 무기가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이라크 전쟁을 강행한 부시 정권’을 향하여 포문을 열었다. 이윽고 지난 미 대통령 선거 때 공화당 후보인 부시에게 화살을 날리며 “이라크에 대량파괴 무기가 없었다.”는 고백을 했다. 부시 정권과 결별한 대가로 IAEA로부터 정리해고(?)된 한스 블릭스는, 스웨덴에 ‘Weapons of Mass Destruction Commission’이라는 평화 NGO를 차려 놓고, 이 단체의 대표 자격으로 WPF에 참석했다. ‘죽임의 상인’의 대리인이었던 한스 블릭스. 그가 회개(지난 시절 죽임의 상인들을 위해
봉사했던 잘못과 관련된 석고대죄)하기는커녕 평화의 전도사인양 부시 정부의 핵정책을 비난한 인터뷰 기사(http://www.worldpeaceforum.ca/live)를 보고 구역질이 났다. 핵 산업계의 거두에서 평화 전도사로 변신한 그의 모습 뒤에 숨겨진 칼날이 두려웠다. ‘변신의 귀재’ 한스 블릭스가 WPF의 귀빈이 되었음을 축하해야 할지… 그의 과거사를 심판하자고 제의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김승국 「세계평화포럼에 다녀와서 (2)」 [평화 만들기] 240호(2006.7.19)]


(주2) IAEA는 원자력 산업계와 ‘죽음의 상인’ 군 ・산복합체(軍・産複合體)에 둘러싸여 있다. IAEA가 세계평화를 위해 북한 등에 대한 핵사찰을 실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IAEA와 군 ・산복합체의 유착관계를 살펴보면 이런 주장이 허구임이 드러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IAEA의 군 ・산복합체 인맥 중에서 우선 한스 블릭스를 소개한다. 스웨덴 출신인 한스 블릭스는 전직 IAEA 사무국장이었으며 지금은 유엔 이라크 무기사찰단의 단장이다. 그는 1981년부터 IAEA의 핵심을 차지한 ‘IAEA 마피아의 거두’이다. 그는 1992년 5월 북한의 핵시설을 시찰한 다음 북한의 핵 의혹 문제에 불을 붙인 ‘1994년의 한반도 전쟁위기’의 장본인이다. 그가 공부한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은 유명한 국제적 우라늄 카르텔, 핵물질 지배자들의 소굴이다. 그는 IAEA에 발을 디뎌놓기 전에 법률가(변호사)이었다고 한다. 미국 ・유럽에서 변호사란 직업은 산업의 대리인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조국인 스웨덴과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인 아시아 브라운 보웰사는 세계 최대의 중공업 메카이고 원자력 메카이다. 한스 블릭스는 1986년 IAEA의 원자력 안전부장인 모리스 로젠(전 제너럴 일렉트릭의 원자로 설계사)과 함께 체르노빌 원자로의 사고현장을 헬리콥터로 단시간에 시찰한 후 “그 정도는 위험이 없다. 특히 소련 외에는 위험이 없다.” “체르노빌 사고는 브뤼셀의 축구장에서 일어난 비극보다도 사상자 수가 적다.”는 등의 말을 서슴지 않았다. 나아가 1986년 8월 25~29일에 걸쳐 빈의 IAEA본부에서 개최된 가장 중요한 ‘체르노빌 폭발사고 국제토론회’에 전 세계의 원자력 관계자를 소집해 놓고 그 회의의 의장에 루돌프 로메치를 지명했다. 그 회의는 소련의 허위보고를 전 세계의 과학자가 그대로 인정하게 하는 ‘쇼’나 다름 없음이 뒷날 드러났다. 그는 아직도 체르노빌 사고의 진상을 밝히지 않고 전 세계를 다니며 핵 산업 안전론을 계속 선전하며 핵 산업계의 충실한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다.
* 자료 출처: 조임숙 「IAEA의 군산복합체 인맥」 [말] 1994년 10월호 126~127쪽/ [평화 만들기] 50호의 「IAEA를 발가벗긴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