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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정신분석학의 입장

핵무기 체계와 집단적 무의식

김승국

북한 핵보유선언과 관련된 핵무기 체계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인식의 지평을 더욱 넓히기 위하여 핵무기 체계를 떠받드는 집단적 무의식 세계를 다룰 필요가 있다. 북・미 사이에 겉으로 표명되는 의식만으로 북・미간 핵갈등의 전체상(全體像)을 투시할 수 없으며, 무의식을 포함한 전체상을 투시하지 않고는 북・미간 핵갈등의 해소를 위한 투철한 대안을 내올 수 없다.

무의식(Unconsciousness)이란, 의식되지 않는 신경과정, 즉 생리적 활동・반사(反射)를 가리킨다. 의식에 대하여 무의식이 대비된다. 무의식은 ‘의식 밖’의 영역이다. 어떤 시기에 의식되지 않는 정신현상이 무의식이다. 그때 의식되지 않지만 의식화하려고 노력하면 의식할 수 있다. 이것을 전의식(前意識) 또는 잠재의식(Subconsciousness)이라고 부른다. 프로이트(Freud)에 의하면, 의식에 영향이 미치지만 꿈의 상태 또는 정신분석이라는 방법에 의하지 않고는 의식적으로 되지 않는 것을 무의식이라고 부른다. 융(Jung)에 의하면 마음의 심층(深層)에, 개인의 체험에만 의존하지 않고 원시(原始)부터 종족적 경험의 집적(集積)에 기원을 둔 원형적인(archaic) 집단적 무의식이 있다.(주1)

원형적인 집단적 무의식에서 ‘원형(Archetype)’(주2)은 원시 유형・원형(原型) 등으로 번역된다. 원형은 융이 사용한 개념으로 인류의 원시시대부터 지속되어 온 정서적(情緖的) 내용을 갖는 보편적인 사고관념의 유형(Pattern)을 말한다. 융은 무의식을 개인적 무의식・집단적 무의식(집합적무의식)으로 나눈다. 집단적 무의식이란 개인적 무의식의 더욱 깊은 곳에 있으며, 개인들이 개별적 존재로서 생활사적(生活史的)으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인류의 마음이 전체의 역사를 통해 획득한 인류적 무의식이다. 이 집단적 무의식은, 민족・문화・개인적 의식을 초월한 인간의 뇌 구조의 동일성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집단적 무의식 속에서 신화・전설・예술 등에 거듭 나타나는 모티브(Motiv)가 원형이다.

집단적 무의식은 잠재된 의식이고 억압된 것이므로 원형을 내포하고 있다.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에서 소프트웨어를 용이하게 꺼낼 수 있듯이, 인간의 이성에서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을 쉽게 꺼낼 수 없다. 컴퓨터의 비유를 계속하면, 하드 디스크의 프로그래밍을 다루거나 검색・재(再)프로 그래밍을 위한 특별한 훈련을 거쳐 원형에 접근하게 된다. 컴퓨터의 프로 그래밍에 해당되는 것이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이다.

그러면 집단적 무의식 속에 집합적으로 들어 있는 어떤 원형을 A(Archetype)라고 상정해보자. 그때 어떠한 자극(S: Stimulus)이 어떠한 원형<집단적 무의식이라는 블랙박스(black box)의 내용>을 통하여, 어떠한 반응(R: Response)을 끌어낼까에 관하여 명시적인 가설이 필요하다.

이 가설을 북・미간 핵공방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북・미간 핵공방을 에워싼 S-A-R 관계망

S(자극): 미국이 북한에 대하여 핵전쟁을 일으키려는 자극을 준다. 이에 북한이 미국・일본을 향한 핵무기 개발용 미사일 또는 핵무기를 발사하려고 노력함으로써 미국・일본에 자극을 준다.

A(원형=핵무기와 관련된 집단적 무의식): 미국・북한・남한 모두 ‘우리 국토는 神(또는 조상)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토지’라는 인식의 원형을 지니고 있다. 미국・북한・남한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세력)은 ‘신성한 토지 위에 핵무기가 날아와 대지의 아들딸인 민중의 평화적 생존권(생명권)을 해치면 안 된다. 비핵-생명평화를 원형으로 삼는 사회구성체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다.

R(반응): ‘미국과 북한이 비핵-생명평화에 관한 인식의 원형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도덕적・실정법적인 제재를 가(加)해야 한다’는 국내외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

위의 ‘S-A-R’ 3자간 관계망에서 일상사의 도식은 S-R이다. 그런데 S-R의 2자간 관계망만으로 북・미 핵공방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 6자 회담조차 속도를 못내는데 어떻게 북・미간의 갈등이 해소되겠는가? 그래서 S-R 도식에 A(핵무기와 관련된 집단적 무의식)를 끼워 넣어 S-A-R의 3자간 관계망을 형성하면서 북・미간 갈등을 원초적으로 해소할 길을, 집단적 무의식 속에서 찾아보자는 것이다.

국제정치 질서에서 S-R 도식은 ‘강자(미국) 독식’의 구조이다. 미국의 세계패권 전략에 따라 임의의 국가・민족을 선택하여 자극(S)을 가하며 전쟁을 일으키면 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의 경우가 그렇고 북한과의 내정된 전쟁도 이와 유사하다.

S-R은, 미국이 주인이고 북한은 노예로 전락할 수 있는 일방적인 구도이다. 자극을 주는 주도권을 미국이 쥐고 있으며 자극을 받는 북한이 실족하면 노예로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의 자극을 받는 북한이 미국의 노예로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기 위하여 치열하게 저항할 때(이 저항의 수단 중의 하나가 핵무기 개발이다), S-R은 쌍방 통행의 구도가 되는 가운데 ‘주인과 노예의 생사를 건 싸움’으로 이행하면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이루어진다.3) 최근 북・미간의 끝없는 핵공방은 바로 이러한 쌍방 통행의 ‘주인-노예의 싸움판’을 말해준다. 세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 싸움판의 겉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핵공방의 깊숙한 배후에 있는 ‘핵무기 관련 집단적 무의식’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북・미간의 ‘주인-노예 싸움판’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겉모습만 관찰하는 데 그칠 것이다.

그래서 북・미간 핵공방의 배후에 있는 ‘핵무기 관련 집단적 무의식’을 꿰뚫어 보기 위하여, 집단적 무의식 이론의 대가인 프로이트(Freud) ・융(Jung)의 이론을 원용한 여러 학자의 견해를 원용한다.(2005. 4. 19.)<이하 생략>

*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핵문제』(파주, 한국학술정보, 2007) 175~191쪽을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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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프로이트의 견해에 따르면 무의식은 개인적인 성질일 뿐이다. 어느 정도 표면에 있는 무의식층은 명백히 개인적이다. 우리는 그것을 개인적 무의식(das persönliche Unbewußte)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개인적 무의식은 개인의 경험이나 습득에 의하지 않고 태어날 때부터 있는 더 깊은 층의 토대 위에 있다. 이 더 깊은 층이 소위 집단적 무의식(das kollektive Unbewußte)이다. 나는 ‘집단적’이란 표현을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이 무의식이 개인적이 아닌 보편적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개인적 정신과는 달리 모든 개인에게 어디서나 똑같은 내용과 행동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며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는, 초개인적 성질을 지닌 보편적 정신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심적(心的) 존재는 오직 의식될 수 있는 내용이 있음으로 해서 인식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용을 증명할 수 있는 한에서만 무의식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개인적 무의식의 내용은 주로 이른바 정감이 강조된 콤플렉스인데, 이것은 정신생활 가운데에서 개인적으로 친숙한 내용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은 소위 原型들(die Archetypen)이다.<C. G.융 지음/한국 융 연구원 C.G.융 저작 번역위원회 옮김 원형과 무의식 (융 기본 저작집 2)(서울, 솔출판사, 2002) 105∼106쪽>
집단적 무의식의 관념에 절대적인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는 원형(Archetypus)의 개념은 정신 속 어디에나 보편적으로 있고, 널리 퍼져 있는, 어떤 일정한 형식들(Formen)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신화학적 연구에서는 이것들을 ‘주제(Motiv)'라 부르고, 원시인 심리학에서는 레비 브뢸의 ‘集團表象(representations collectives)'에 해당되며, 비교 종교학 영역에서는 후베르트(Hubert)와 마우스(Maus)에 의해 ‘상상의 범주들’이라 정의된다. 아돌프 바스티안(Adolf Bastian)은 그것들을 일찍이 ‘기본적 또는 원초적 사고’라고 이름하였다.<C. G.융 지음 원형과 무의식 (서울, 솔출판사, 2002)156∼157쪽>

(주2) 영어 사전에 나와 있는 ‘Archetype'의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① 原型 ② 元型(인간의 정신 내부에 존재하는 조상이 경험한 것의 흔적). 이 연구에서 거론하는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은 주로 ‘原型’을 지칭하지만, 조상의 체험・민족의식의 원형을 이야기할 때는 ‘元型’을 말한다. ‘原型’ ‘元型’ 모두 일정한 ‘꼴(型)’만을 지칭할 우려가 있으므로, 형상의 의미가 들어 있는 ‘原形’을 내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