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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칼럼-에세이

[미완성 습작 (7)] 나가이 다카시(永井隆)의 번제설(燔祭說)

나가이 다카시(永井隆)의 번제설(燔祭說)

 

김승국(평화활동가/평화만들기 대표)

 

 

나가사키에서 피폭 당한 가톨릭 신자ㆍ부락민ㆍ나병환자ㆍ조선인ㆍ중국인은 ‘피폭된 희생양’으로서 고난의 중층화를 겪었다. 그런데 피폭이라는 동일한 체험을 한 나가이 다카시(永井 隆)는, 피폭이라는 고난을 하나님의 섭리로 보는 ‘피폭=번제(燔祭)’설을 주장했다. ‘피폭이라는 천벌을 받았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피폭=번제’설은, 난해한 문제를 낳는다. 지옥 같은 피폭이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졌다는 永井 隆의 역설을, 필자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난제를 풀어갈 셈이다. 
     

 

Ⅰ. 나가이 다카시는 어떤 사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의사이었던 나가이 다카시는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의해 피폭되었다. 그는 피폭된 몸으로 피폭환자들을 극진하게 치료하다가 병상에 누워 숨졌다. 그의 인생역정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나가이 다카시는 1908년 2월 3일, 이즈모 다이샤(出運大社: 일본의 토속 신앙인 神道의 한 계파로 시마네 현에 있는 신사神社)의 신자였던 의사 집안의 5형제 중 장남으로 일본 시네마 현(島根県) 마쓰에 시(松江市)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1928년에 국립 나가사키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 졸업을 일 주일 앞두고 악성 종이염으로 중태에 빠진 것을 비롯, 원폭의 피해를 당한 38세까지 네 번이나 위독 상태를 겪었다. 방사선 전문의로서의 직업병이라 할 백혈병(만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3년밖에 더 살지 못할 것이라는 시한부 인생의 선고를 1945년 6월에 받고도 원폭 투하 후 5년을 더 벼텼으나, 결국에는 두 자녀를 남겨 두고 43세의 한창 나이에 귀천(歸天)하고 말았다.(永井 隆『로사리오의 기도』, 238)

 

 

1932년, 전후 18년간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의학사의 자격을 얻었으나, 계속 나가사키 의대 물리요법과의 조수로서 적을 두고 연구를 계속함. 1933년, 단기 군의관으로서 만주사변에 종군하던 중, 위문대 안에 들어 있던「천주교 교리문답」을 읽었다. 이듬해인 1934년, 귀환하여 우라카미의 독실한 가톨릭 농가의 외동딸 마도리 양과 결혼. 1937년 의대 강사, 1938년 4월 조교수, 1944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44년 1월 교수가 됨. 1945년 8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폭격 당했으며 부인 미도리 여사는 자택에서 즉사함. 1946년 7월, 나가사키 역앞에서 쓰러진 이래 병상에 눞게 됨. 1949년 12월, 나가사키 명예시민의 칭호를 받음. 1951년 5월 1일 오후 9시 50분 선종, 5월 3일 교회장, 14일 나가사키 시민장.(永井 隆『평화탑』, 175~176)

 

* 나가이 다카시의 저서(괄호 안에 저서를 펴낸 시기를 표기함);

 

 

『長崎の鐘』(1946년 8월)
『原子野録音』(1947년~1951년:「聖母の騎士」誌에 연재)
『亡びぬものを』(1948년 1월)
『ロザリオの鎖』(1948년 3월)
『この子を残して』(1948년 4월)
『生命の河』(1948년 8월)
『花咲く丘』(1949년 4월)
『いとし子よ』(1949년 10월)
『乙女峠』(1951년 4월)
『如己堂随筆』(1957년 12월)
『村医』(1978년 4월)
『平和塔』(1979년 11월)
『長崎の花』 上・中・下

 

 

Ⅱ. 나가이의 종교체험

 

 

Ⅲ. 나가이 다카시가 쓴 저서 속의 번제설

 

『長崎の鐘』
* 역사의식 부족. 피폭의 근본원인(일제의 전쟁)에 대한 언급 없고 막연한 원폭 반대(현재의 일본 정부나 일부 반핵평화운동 세력의 태도)
* 반공주의; 미군에 의해 이용됨

 

Ⅳ. 번제설의 난제들


 

高橋眞司『長崎にあって哲學する』(東京, 北樹出版, 2001)
* 199쪽;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永井隆은 ① 섭리 ② 번제 ③ 시련이라고 대답했는데, 이게 ‘우라카미 번제설’을 성립시킨다.

 

 

첫째, 나가사키 원폭의 성격에 관하여, 永井 隆은 우라카미에 원폭이 투하된 것은 우연이나 우발적인 일이 아니라,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8월 9일의 한밤중에 우라카미의 천주당이 불타 오른 것, 천황이 ‘종전의 성단(聖斷)’을 내린 것, 성모의 被昇天의 大祝日에 ‘종전의 대조(大詔)’가 발표된 이러한 ‘이상한 일치’는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天王의 묘한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둘째, 원폭 사몰자(死沒者)에 관하여, 永井 隆은 신의 제단에 올려진 희생 즉 ‘번제’(holocaust)로 본다. 원폭 사몰자는 ‘정치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강요당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죽어야할 곳’을 얻어서 ‘아름다운 최후’를 마치며 ‘더럽게 죽은 어린양’이다. ‘8월 9일, 이 천주당의 번제여! 극도로 비통한 가운데 우리들은 번제가 곱고 정결하며 소중하게 모셨다’는 것이다. [이 고귀한 희생에 의해 세계평화가 다시 찾아온다] 원폭의 타격을 받은 우리들은 행복했다(『ロザリオの鎖』 107쪽).        

 

 

셋째, 겨우 살아남은 자들에게 원폭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永井 隆은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순교, 끊이지 않는 박해, 원자폭탄. 이것들 모두는 결국 종교를 달리하는 사람들에게도, 천주의 광영(光榮)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한 시련이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神이] 우라카미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라카미에 고난을 안겨 주었으며,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결핍을 안겨주셨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은혜의 비를 이 교회 위에 쏟아주시는 천주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를 올리나이다.’

 

원자폭탄은 신에 의해 주어진 ‘시련’이라는 것이다. ‘우라카미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라카미에 고난을 주시는 神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를 올려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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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井 테제>
高橋眞司『長崎にあって哲學する』(東京, 北樹出版, 2001)
* 200쪽; 우라카미(浦上)燔祭說은, 永井隆 속에 단독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관념이나 편견이 결합된 것으로, ‘永井 테제’라고 불리는 총체를 형성한다.

 

 

<천벌 받았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이다>
高橋眞司『長崎にあって哲學する』(東京, 北樹出版, 2001)
* 201쪽; 이러한 생각에 대하여 永井 隆은 ‘천벌을 받아 죽었다면 악한 자들이다. 천벌을 모면하여 살아남은 자들은 신(신사의 신)으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 그렇다면 나의 아내와 아이들은 악한자이었나?’고 묻는다. 永井隆는 ‘나는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원자폭탄이 우라카미에 떨어진 것은 커다란 섭리이다. 신의 은혜이다. 우라카미는 신에 감사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우라카미 사람들이 기독교 신자이어서 신사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천벌을 받았다는 속설을 뒤집는 논리로서 정식화한 것이 ‘우라카미(浦上)燔祭說’이었다.

 

 

  1. 저작 속의 언급

 

高橋眞司 외 편『ナガサキから平和學する!』(京都, 法律文化社, 2009)
* 80쪽; 永井(나가이)의 저작에는 사회ㆍ역사적인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 永井은『長崎の鐘』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終戰ㆍ우라카미 괴멸의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는게 아닐까? 세계 대전쟁이라는 인류의 죄악에 대한 속죄로서 일본 유일의 성지인 우라카미가 희생의 제단 위에서 도살되고 불태워져야할 어린양으로 뽑힌 게 아닐까?” 永井은 다른 곳에서도 원폭투하에 관하여 ‘커다란 섭리’ ‘신의 은혜’ ‘신에 감사를’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이러한 감수(感受)과 논리는, 너무나 기독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원죄 의식이나 그리스도의 수난에서 파생되는 심리적 구조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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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橋眞司『長崎にあって哲學する』(東京, 北樹出版, 2001)
* 194쪽; 永井隆의 저서인『長崎の鐘』(日谷出版社, 1949)와 『ロザリオの鎖』(ロマンス社, 1948)에 ‘우라카미(浦上) 燔祭說’이 기술되어 있다.

 

『長崎の鐘』

 

『ロザリオの鎖』

 

 

Ⅴ. 永井 隆의 번제설 비판

 

 

  1. 카돌릭 측의 옹호

 

 

  2. 高橋眞司의 비판

 

高橋眞司『續ㆍ長崎にあって哲學する』(東京, 北樹出版, 2004)
* 102쪽; 永井 隆의 ‘浦上 燔祭說’은, 그것을 동서냉전이나 전후전치의 더욱 큰 사회적 문맥 속에 위치 지울 경우, 이중의 책임(일본의 전쟁책임ㆍ미국의 원폭투하 책임)을 면제해주는데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원폭투하의 시인, 더 나아가 원자폭탄 그 자체를 긍정하는 길을 열어준다. 왜냐하면 섭리ㆍ번제ㆍ시련의 3요소로 이루어진 ‘浦上 燔祭說’은 원폭의 투하를 ‘신의 섭리’로 보았다. 원폭에 의해 죽은 사람들을 신의 제단에 바쳐진 ‘순결한 어린양’, 즉 ‘번제(holocaust)’로 보았다. 이렇다면 원폭투하는 국제법을 위반하는 전쟁범죄라는 견해가 배제된다. 원폭 사몰사(死沒者)와 생존 피폭자에 대한 배상ㆍ보상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죽은 자[원폭 死沒者]는, 신의 제단에 올려진 ‘번제’이었기 때문이며, 생존자의 고난은 ‘신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시련’이었기 때문이다.

 

 

<우라카미(浦上)燔祭說의 문제점>

高橋眞司『長崎にあって哲學する』(東京, 北樹出版, 2001)
* 201쪽; 우라카미(浦上)燔祭說의 역사적 의의로서 무엇보다 이중(二重)의 면책을 들 수 있다.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투하가 만일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면, 무모한 15년 전쟁(1931~45년)을 개시ㆍ수행하고 전쟁의 종결을 지연시킨 천황을 정점으로 한 일본국가의 최고 책임자들의 책임이 면제된다. 마찬가지로 원자폭탄을 사용한 미국의 최고책임자들의 책임도 면제된다.

 

 

  3. 秋月辰一郞의 비판

永井 隆의 제자인 秋月辰一郞는 자신의 저서『原爆白書』의 말미에 ‘우라카미(浦上)燔祭說의 발상을 공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천주의 시련’이라는 說도 너무 가혹하다.

 

 

Ⅵ. 永井隆의 활동에 대한 평가

 

高橋眞司 외 편『ナガサキから平和學する!』(京都, 法律文化社, 2009)
* 80쪽; 어쩌면 비탄(悲嘆)의 극한에서 종교적 구원ㆍ카타르시스(淨化)를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永井가 의사로서 활동한 것은 평가해줘야할 것이다. 그래도 피폭을 ‘신의 은혜’ ‘인류의 죄악에 대한 속죄’로 간주하는 것은 사회ㆍ역사적 관점으로볼 때 잘못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시대인식을 은폐해버리는 것일 수 있다. 앞에서 인용한 부분의 논리는 미국이 원폭투하를 정당화하고, 더 많은 사망자를 내지 않고 전쟁을 종결시켰다는 논리에도 근접해있다.
永井 隆의 참된 평가는, 종교적ㆍ심정적 분석과 지적ㆍ논리적 분석을 추진하면서 양자에 대한 접근이 교착되는 곳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1. 피폭자 치료에 대한 평가

 

 

  2. 기독교 교인으로서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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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자료>

* 永井 隆 지음, 백태희 옮김『평화탑』(서울, 성바오로 출판사, 1981)
* 永井 隆 지음, 조양욱 옮김『로사리오의 기도』(서울, 베틀 북,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