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이야기
김승국(평화 활동가/ 평화만들기 발행인)
1945년 8월초 히로시마ㆍ나가사키에 투하된 핵무기로 말미암아 인류의 역사가 바뀌었다. 핵무기에 의존하는 핵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핵 시대는 핵무기에 의해 인류가 절멸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인간ㆍ자연의 대량학살(genocide)을 예고하는 핵무기. 삼라만상이 무차별하게 파괴되는 핵 겨울을 재촉하는 핵무기. 이러한 핵무기에 관한 공부를 통하여 삶과 죽음, 살림과 죽임에 대하여 근원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핵무기 체계에 대하여 심층적으로 논의할수록 생명평화의 가치를 절감하게 된다. 모든 살아있는 것을 전면 부정하는 ‘핵 시대의 문명’을 넘어 ‘비핵(非核) 평화의 문명’을 여는 생명평화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핵무기와 관련된 평화교육을 원탁토론의 형식으로 전개한다<앞의 평화교육 주제(‘징병제와 양심적 병역거부’ ‘이라크’ 등)와 동일하게 원탁토론을 실시하면 되므로, 원탁토론의 구체적인 방법과 그에 따른 학습 지도안은 생략한다>.
핵무기 체계와 관련되어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핵무기의 종류ㆍ위력, 핵실험, 핵폭발의 영향, 핵무기에 의한 피해, 핵 억지(억제)론, 핵을 통제하는 체계(유엔ㆍ국제원자력기구IAEAㆍ핵확산금지조약NPT,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 핵전략, 핵 군비확장, 핵 테러리즘, 핵우산, 핵 전쟁의 구도, 핵무기 정책, 핵과 국제정치, 비핵지대’와 같은 주제를 애써 피하고, 생명평화의 측면에서 토론을 진행한다. 핵무기와 관련된 평화의 발상ㆍ평화의 감수성을 높이는 것을 평화교육의 목표로 설정한 원탁토론을 진행한다.
그러나 토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핵무기 체계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므로, 핵무기에 관한 기초자료를 제공한다. 이 자료를 참가자(학생)들이 미리 읽으면 토론거리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Ⅰ. 핵무기에 관한 기초 자료
1. 시청각 자료들
생명평화의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도움이 되는 시청각 자료가 많은데 그 중에서 영화『검은 비』, 만화 『맨발의 겐』, 동영상『히로시마 어머니들의 기원』(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의 「평화누리 TV」에 실려 있음)을 보기 바란다.
Ⅱ. 핵무기와 관련된 논제
핵무기와 관련된 평화교육에 참석하는 학생들은, 아래와 같이 질문하는 논제(論題)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모둠토론 시간에 거론하며 원탁토론에 임해주길 바란다.
1. 죄와 벌
1) 히로시마ㆍ나가사키에 떨어진 핵무기는 일본 제국주의의 죄악을 심판하는 무기이었나?
한국의 일부 인사들은 “히로시마ㆍ나가사키의 피폭자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명하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죄악에 대한 천벌로 핵무기 세례를 받은 게 아니냐”는 반문을 던지는데, 여러분들(평화교육 참가자들)은 이에 동의합니까?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2) 반일감정에 휩싸인 민족주의 경향의 발언인가?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일본인ㆍ일본의 반핵운동가들은 ‘히로시마ㆍ나사사키에서 목숨을 잃은 피폭자들의 생명을 경시하는 발언이다. 반일감정ㆍ민족주의 경향을 지닌 한국인들이 피폭의 의미를 잘못 파악한 채 극언을 서슴지 않는다’고 반발하는데 여러분들은 이에 동의합니까?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이러한 일본인들의 반발에 대하여 대개의 한국인들은 ‘너희 일본 놈들이 일제 강점기에 죽인 조선 사람의 숫자, 수탈해간 것들을 계산하면 당신들 피폭자의 죽음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맞받아칠 것인데, 여러분들은 이에 동의합니까?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2. 차별의 문제
1) 피폭이 순간에도 드러난 조선인 차별
1945년 피폭 당시 히로시마ㆍ나가사키에 조선인 강제연행 노동자 등이 많이 거주했으며, 그들은 일본인들로부터 민족차별을 당하며 기구한 삶을 영위하다가 일본인과 함께 핵무기 세례를 받았다. 히로시마ㆍ나가사키에 핵무기가 떨어지자마자 아수라장이 되어 일본인과 조선인을 구분할 수 없었으며 모두들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서로 살아남으려고 아귀다툼하는 순간에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밀치고 먼저 살겠다고 아우성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너무나 순간적인 핵 지옥의 상황이어서 사실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우나, 당시 일본사람들의 조선인 멸시 태도로 보아 그러한 정황이 발생했을 개연성이 있다.
2) 조선인 피폭자에 대한 차별
관습처럼 내려오는 일본인의 조선인 차별은 피폭자의 묘지를 만드는데도 적용되었다. 동일한 피폭자인데, 조선인들의 묘지는 찬밥신세이다. 일본인 피폭자의 묘지는 잘 가꾸어 반핵평화의 성지로 만들었는데, 조선인 피폭자의 묘지는 평화공원의 귀퉁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그나마 옛날에는 히로시마 평화공원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지금도 나가사키 폭심지 부근에 있는 조선인 피폭자 묘지의 비석이 화장실 부근의 귀퉁이에 외로이 서 있다.
3) 조선인 피폭자의 치료
이러한 조선인 차별의식이 작동된 탓인지, 조선인 피폭자에 대한 보상ㆍ치료ㆍ피폭 증명서 발급 문제에서 일본인 피폭자와 확연히 다른 차별을 받고 있다.
3. 가해자ㆍ피해자의 교차
아래와 같이 가해자ㆍ피해자의 입장이 교차하는 장면을 토론의 소재로 삼아 활기찬 논쟁을 벌이면 좋겠다.
1) 첫 번째 장면; 가해자 일본에 대한 책임추궁
일제 식민지배의 피해자인 한국인이 가해자인 일본을 향해 ‘너희들이 조선인들에게 못된 짓을 너무나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피폭이라는 천벌을 받은 것이다’고 말하며 치고받는 장면을 상정할 수 있다.
2) 두 번째 장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일본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피해자 입장에 선 한국인들의 위와 같은 문제 제기를 겉으로 수용하는 가운데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상당수는 ‘자신들도 핵의 피해자임’을 은근히 드러내려고 할 것이다. 자기들의 생활주변에서 목격하는 피폭자ㆍ피폭자 가족의 고난을 생각할 때 ‘일본의 민초들도 피해자’라는 말이다. 피폭자들 대부분이 민초들이므로 무고한 피해자라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국가ㆍ일제의 지도부(천황 등)가 가해자이며, 일본의 민중들은 이들 가해자들로부터 수난(징병ㆍ전사ㆍ전쟁물자 징발ㆍ공습의 피해)을 받았기 때문에 피해자라는 것이다. 천황 주도의 태평양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미국이 투하한 핵무기의 피해를 받은 민초들이므로 ‘가해자의 죄’로부터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 제국주의 전체를 보면 일본이 가해자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천황을 비롯한) 전쟁 주도세력이 가해자이고 민초들은 오히려 피해자(특히 피폭자는 확실한 피해자임)라는 말이 되는데, 여러분들은 이에 동의합니까?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3) 세 번째 장면; 히로시마ㆍ나가사키의 원폭(原爆) 기념관에서
이처럼 일본인이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피해자 의식에 사로 잡혀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히로시마ㆍ나가사키 시내에 있는 원폭(원자폭탄ㆍ수소폭탄) 기념관은 ‘일본이 피해를 당했다는 점’을 증명하는 전시물로 가득하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ㆍ중국인 등에게 가혹한 죄악을 저지른 사실을 증명하는 전시물은 찾아볼 수 없다. 가해자 의식이 부족한 것이다. 가해자 의식은 거의 없는 반면에 피해자 의식은 강한 입장에서 원폭 기념관을 세운 것이다. 오사카의 평화 박물관을 제외한 일본의 거의 모든 피폭 관련 기념관ㆍ박물관ㆍ자료관은 ‘일본이 핵무기의 피해자이므로 두 번 다시 핵무기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반핵평화 운동 논리를 펼친다. 피해자 입장의 반핵평화 논리인 것이다. 가해자 의식에 바탕을 둔 반핵평화 논리가 부족하다. 일본의 반핵평화 운동집단은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의 입장에서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그들의 운동력이 일본국민들의 피해자 의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한ㆍ일 양국 간에 피해자(한국인의 입장)-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일본인의 입장)의 구도가 교차하는 것을 여러분들(평화교육 참가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4) 네 번째 장면; 미국의 입장에서
* 미국은 끝까지 저항하는 일본(독일은 일찍이 항복했다)을 항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핵무기를 투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사실인가? 일설에 의하면 1945년 초부터 일본의 전쟁지도부는 항복을 검토하고 있었고, 미국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왜 핵무기를 투하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나오는 즉답은 ‘맨해튼(Manhattan) 계획을 통해 핵실험을 마친 미국이 이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고 싶은 유혹ㆍ욕구(실전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ㆍ핵의 위력ㆍ핵의 피해 상황ㆍ피폭자의 병리현상을 파악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이러한 욕구에 따라 두발의 핵폭탄을 일본에 투하했다’는 것이다.
한편 일제(일본 제국주의)의 항복을 받아낸다는 명목 아래에서 핵폭탄을 투하했으므로 충분히 명분이 있다는 것이 미국 쪽의 설명이다. ‘일본 군국주의 타도’라는 정의감에 따라 인류의 적인 일제를 핵무기로 징벌한 정당한 전쟁(정의의 전쟁)ㆍ성스러운 전쟁이었다는 미국 쪽의 주장에 여러분들은 동의합니까? 핵무기 투하를 명령한 트루먼 대통령의 “원자폭탄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는 말 속에 성전(holy war)의 의미가 깃들어 있는데, 핵무기 투하를 성전으로 보는 견해에 여러분들은 동의합니까?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 이처럼 미국의 입장에서는 핵투하가 정당한 전쟁행위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역시 가해자의 멍에를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일제가 항복할 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핵무기를 투하한 죄악은 심판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국은 가해자이다. 일제라는 가해자를 징벌하기 위해 핵무기를 투하했다고 변명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분명히 가해자이다. 미국이 가해자로써 핵무기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수많은 피해자(피폭자)를 낳았다. 여기에서 가해자 상호간의 관계<일제라는 가해자(조선인을 가해한 세력)와 미국이라는 가해자 사이의 적대관계>의 수난자가 된 피폭자의 구조적(이중적)인 피해를 인식할 수 있다.
5) 다섯 번째 장면; 스미소니언 박물관 앞에서
미국의 스미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은 2003년 8월18일 에놀라 게이(Enola Gay;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B-29 폭격기)를 복원해 일반인에 공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에놀라 게이의 전시를 앞두고 일본의 원자폭탄 피해자들과 평화단체들이 거세게 반대했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인 쓰보이 수나오는 ‘우리에게 에놀라 게이는 원자폭탄과 같다. 그 비행기를 전시하는 것은 원폭 피해자에 대한 모욕이자 원자폭탄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히로시마에 살고 있는 시인 구리하라 사다코(栗原貞子)는 “원폭투하가 자비라고 말할 수 있다면/ 황군의 20만 명 난징 학살도/ 나치의 600만 명 독가스 학살도/ 자비이다”라고 썼다(『아사히 신문』(1994.11.19). 히로시마 원폭피해자 연합 등 일본의 반핵 단체들은 스미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에 이메일을 보내 “에놀라 게이의 일반 공개는 원자폭탄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에놀라 게이의 전시를 둘러싼 두 나라의 ‘스미소니언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1994년 2차 대전 종전 50주년을 앞두고 ‘(되풀이돼서는 안 될) 마지막 행동: 원자탄과 2차 세계대전 종전’이란 제목으로 전시회를 준비했다. 당시 박물관은 에놀라 게이 전시와 파괴된 히로시마 등의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을 준비했다.
이 전시 계획에 대해 미국 참전군인단체 등은 2차 대전 당시 수많은 미국 군인들의 희생을 무시하고 침략자인 일본을 거꾸로 피해자로 만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조종사 폴 티베츠(Paul Warfield Tibbets Jr.)는 원폭 피해상황에 초점이 맞춰진 것을 보고 “모욕적”이라며 맹비난했다. 그는 다른 2명의 폭격기 탑승자들과 함께 2005년 원폭 60돌 기념식에 참석해 “원자폭탄의 사용은 역사적으로 필요했다. 우리는 후회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원자탄의 사용은 전쟁의 조기 종식을 가능케 했다”며 “추가적인 피해와 무고한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폴 티베츠만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미국 시민들의 상당수가 ‘원자폭탄 투하가 일본의 침략전쟁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아시아에서 많은 인명을 구했다’고 생각하며 원자폭탄 사용의 정당성을 주장한다.(주1)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일본의 피폭자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Ⅲ. 생명평화의 관점
위와 같은 가해자-피해자의 공방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핵무기의 인류 절멸(genocide) 가능성 즉 핵무기에 의한 ‘죽임’을 문제 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핵무기의 사용(핵무기 투하)에 따른 가해자-피해자 공방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맴도는 한계를 넘기 위해, (자연-인간의 공멸을 초래할) 핵무기 체제의 反생명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면서 반핵평화의 논리를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1. 사다코의 종이 학
이러한 측면에서 먼저 ‘사다코의 종이 학’ 이야기를 화두로 던진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었을 때 사다코는 네 살이었다. 원폭이 떨어진 바로 그 시각 사다코는 오빠 시게오와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에 있었다. 그곳에서 사다코는 잠결에 한 줄기의 섬광을 보았고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훗날 자신의 삶에 비극을 초래할 거라곤 자신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은 비록 전 재산을 잃었지만 가족이 모두 무사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어느 날, 사다코는 힘든 자전거 릴레이 대회를 끝내고 이유도 모른 채 앓아눕는다. 그리고 그것이 10년 전에 원폭에 의한 후유증 때문임을 모두가 알게 된다.
사다코는 천 마리 종이학을 접어 소원을 빌면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오직 종이학 접기에 열중하지만 끝내 다 접지 못하고 열네 살의 짧은 삶을 마감한다(카를 브루크너, 2005, 283).
이 사다코의 종이 학 이야기가 일본 전국에 전달되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히로시마 평화공원 안에 사다코의 종이 학을 상징하는 동상이 있으니 꼭 견학하길 바란다.
2. 에놀라 게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미국의 B-29 폭격기인 '에놀라 게이'는 해체된 지 43년 만인 지난 2003년 복원되어 버지니아 주 챈틸리에 있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항공우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스미소니언 논쟁에서 보다시피, 동일한 물체인 에놀라 게이를 놓고 찬반 논쟁(미국쪽 인사들은 대체로 ‘정의의 전쟁론’의 입장을 나타냈고, 에놀라 게이의 전시에 반대했던 일본쪽 인사들은 ‘반전의 논리’를 따랐다)이 격렬했으며 찬반 논쟁의 중요한 화두중 하나가 ‘에놀라 게이의 원폭 투하 때문에 미국ㆍ일본의 수많은 시민들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이다. 이는 핵과 관련된 생명관의 차이를 반영하는 문제이므로 심각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1) 스미소니언 박물관 논쟁과 관련하여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에놀라 게이 전시계획에 반대한 미국의 참전용사들. 이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덕분에 자신과 전우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핵무기의 은공(恩功)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이들은 원폭 투하 몇 주 전에 오키나와 전투에서 12만3천명의 미군과 일본군이 숨진 사실을 예로 들면서, 만약 일본이 끝까지 항복을 거부해 일본 본토에 미군이 상륙했을 경우 양쪽 군인과 민간인 수백만 명이 희생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폭 투하가 제2차 대전을 빨리 끝내게 해서 결과적으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원폭으로 인해 전쟁을 빨리 끝냈기 때문에 많은 미군ㆍ일본인의 생명을 구했다’는 트루먼 대통령의 관점으로 이어지는데, 여러분들(평화교육 참가자)은 동의합니까?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2) 클린턴 대통령의 발언
클린턴 대통령은 1995년 4월7일 텍사스 주 댈러스 시에서 열린 미국 신문편집인 협회 대회에 참석해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것에 대해 사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아니오”(No)라고 일축했다. 그는 트루먼 대통령의 원폭 투하 결정에 대한 정당성을 묻은 질문에도 “트루먼이 제시했던 사실에 입각해 본다면, 그렇다(Yes)”고 대답했다(조지 H.W. 부시 대통령도 1991년에 ‘원자폭탄이 미국인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토 히로시마현 원폭 피해자단체 협의회 이사장은 “원폭 투하를 정당화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3) 원폭투하 조종사의 견해
앞에서 이토 히로시마현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 이사장은 “원폭 투하를 정당화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했는데, 정작 에놀라 게이의 조종사 폴 티베츠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다.
그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에놀라 게이 전시계획이 원폭의 피해상황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어서 모욕적이라고 비판했다. 티베츠는 다른 2명의 폭격기 탑승자들과 함께 2005년 원폭 60돌 기념식에 참석해 “원자폭탄의 사용은 역사적으로 필요했다. 우리는 후회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원자탄의 사용은 전쟁의 조기 종식을 가능케 했다”며 “추가적인 피해와 무고한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는데, 여러분은 이러한 견해에 동의합니까?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3. ‘죽음의 재’는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위협한다(김승국, 1991, 48-49)
히로시마ㆍ나가사키의 원폭피해는 700~800렘의 방사선 피폭에 의하여 공동체 구성원 전원이 거의 한 달 이내에 죽거나 다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핵 지옥’을 연상케 하는 히로시마ㆍ나가사키의 상처가 미처 아물기도 전에 ‘비키니 섬의 비극’이 일어났다.
1) 핵실험의 비극
1954년 3월 1일 마셜 군도의 비키니 섬에서 ‘캬슬 테스트’라고 불리는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이 있었다. 때마침 이 곳 부근에서 조업하고 있던 일본 어선 제5 후쿠류마루(第5福龍丸)가 ‘죽음의 재’를 맞고 귀향하게 되어 비키니의 비극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 제5 후쿠류마루 선원들이 귀국하자마자 사망자가 나왔는데, 이 사망자의 사망원인이 ‘핵실험에 의한 죽음의 재’에 있음이 밝혀져 일본 전국이 발칵 뒤집혔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반핵평화 운동이 활성화된다.
1977년에 유엔총회에 보고된 바로는 1976년까지 핵실험에 의하여 145메가톤 상당의 죽음의 재(방사성 낙진)가 뿌려졌다. ‘죽음의 재’가 유발한 암이나 유전 장애에 따른 사망은 2,000년까지 15만 명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핵실험은 이처럼 명백한 피해를 내고 있다. 그러나 1950년대 (미국의) 네바다 실험장에서의 핵실험에 의하여 인근 주민ㆍ군인의 백혈병이 늘어났다는 예를 제외하면, 그 대부분은 자연적인 발병과 뒤섞여 식별할 수 없는 상황이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의 ‘죽음의 재’도 틀림없이 방사능 양의 증가에 기여했을 것이다. 핵발전소에서 나온 ‘죽음의 재’의 피해는 원폭의 방사능에 못지않다. 또 원자로나 재처리 공장 및 (핵물질) 저장시설 등에 다량으로 축적된 방사능의 양은 지구를 방사능에 찌든 ‘죽음의 혹성’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양이다.
4. 존 웨인은 누가 죽였나?(히로세 다카시, 1991, 199-217ㆍ232ㆍ237ㆍ240-247)
존 웨인이 영화 촬영한 유타 주(洲)의 세인트 조지 시(市)는 네바다 주(洲)와의 접경지대에 있다. 네바다 사막에서 실시한 대기 중 핵실험은 대단히 광범위한 지역에 죽음의 재를 뿌렸는데 유타 주에도 이 죽음의 재가 날아갔다. 당시 미국정부는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 죽음의 재가 확산되지 않도록 했다. 네바다 근처, 특히 할리우드가 있는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를 피하기 위해 바람이 캘리포니아 주를 향해 불 때는 단 한 번도 실험을 하지 않았다. 이 원칙은 또 네바다 주 내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에도 적용되었다. 이렇게 네바다 주의 서쪽 캘리포니아와 남쪽 라스베가스가 제외되면 북동쪽에 펼쳐지는 부채살 모양의 지역만이 개방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북동쪽으로 바람이 불 때만 원폭실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네바다 주와 애리조나 주의 일부와 유타 주 전역에만 죽음의 재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세인트 조지는 죽음의 재가 쏟아지는 핵 실험장에서 아주 가까운 위치에 있다. 실험장의 북동쪽은 이렇게 위험한 곳이었지만 지금까지 말한 것은 모두 종이 위에 그린 평면적이고 단순한 거리와 방향에 대한 설명에 불과하다. 실재의 지역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들쑥날쑥한 상태를 입체적으로 설명해보자. 이 지대의 형상을 머리에 그려 보기 위해 말 발굽(馬蹄)을 앞에 놓아보자. 말 발굽의 중심부는 광활한 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그 중심 남쪽에 핵실험장이 있다. 이 일대는 거의 불모의 사막지대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런 기복이 있는 말발굽 안으로 영화「정복자」의 로케를 하기 위해 존 웨인 일행이 들이닥쳤다. 세인트 조지 시는 바로 말발굽 끝에 위치하고 있는데 로케 팀은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서 말 발굽 안으로 들어왔다.
죽음의 골짜기(Death Valley)는 100여 년 전 금광을 찾아 나선 사나이들이 이 사막지대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차례로 죽어간 데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말 발굽의 한가운데서 그것도 바람이 북동으로 부는 날만 골라서 원폭을 터뜨렸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죽음의 재’는 세인트 조지를 향해서 흘러가다가 로키산맥의 높은 벽(3,999m가 넘는 산맥)에 막혀 세인트 조지에 낙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정복자」로케이션이 있었던 스노우 캐넌처럼 바람이 불어 닥치기 쉬운 골짜기는 죽음의 골짜기로 돼버렸다. 죽음의 재는 산골짜기에 특히 많이 쌓였다. 버섯구름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간 죽음의 재는 눈과 비에 젖어서 산골짜기에 더 많이 쏟아졌다.
드디어 1954년 6월에「정복자」로케 팀은 방사능 오염이 가장 심했던 스노우 캐넌으로 들어와 생활을 시작했다. 주연배우[존 웨인] 이외에 스텝ㆍ캐스트 220명, 시부윗트족 인디언 300명, 900명의 엑스트라 등 모두 1천 4백 명이 넘는 대집단이 90일 동안 함께 생활했다. 수잔 헤이워드[영화「정복자」의 여자 주인공]는 무용감독 로버트 시드니에게 6주간이나 칼춤 렛슨을 받았고 존 웨인의 얼굴 몇 센티 거리를 두고 칼이 스쳐 지나갈 만큼 아슬아슬한 춤을 추었다.
영화의 장면은 절반이 야외의 활극으로 짜여져 있었다. 기간은 6월에서 8월 한참 더울 때, 장소는 유별나게 더운 유타 사막지대, 촬영은 모두 야외. 그런데 거기는 죽음의 재가 내려쌓인 곳이다. 시대 고증을 담당한 에어린 머레이가 “칭기즈 칸 부족은 모두 말을 타고 있다. 도보 군대는 한 사람도 없다”고 요구함에 따라 말을 탄 군인들이 모래먼지를 일으키는 대활극이 벌어졌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래먼지를 가슴 가득히 마셨다. 시대 고증가는 또 다음과 같은 점도 요구했다. “몽고 부족은 절대로 의복을 바꿔입지 않는다. 또 물귀신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목욕을 절대 안한다. 그래서 100m나 멀리 있어도 그들에게서 악취가 풍겼을 정도다.”
영화 스크린에서까지 고약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해도 존 웨인 일행은 무지하게 더러운 모습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는 서로 모래먼지를 끼얹어 아주 더러운 몰골로 분장했다. 존 웨인은 이러한 행위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더욱더 자부심을 가졌다.
클라이막스 장면의 촬영은 10일간이나 계속되었다. 스노우 캐넌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그리하여 그 전 해에 감행된 ‘더티 해리’ 핵실험으로 오염된 모래 속에서 전개된 90일간의 로케이션은 막을 내렸다. 스탭과 캐스트 220명 시브윗트족 인디언 300명에게는 벌써 해답이 나왔다. 그러나 이들의 2배에 가까운 나머지 900명의 엑스트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아마 틀림없이 [존 웨인과] 똑같은 피해[죽음]가 있었을 것이다. 총인원 1천4백여 명의 영화 관계자는 핵폭발의 ‘섬광’과 ‘폭풍’과 ‘열선’이 아닌 ‘죽음의 재’를 체내에 섭취함으로써 불행[암 발병ㆍ사망]을 맞아들인 것이다.
스펙터클 영화「정복자」와 서부영화「네바다 스미스」두 작품에 나온 존 웨인과 스티브 맥퀸은 모두 비슷한 경과를 겪으면서 죽어갔다. 두 사람은 핵 실험장 근처에서 촬영을 했고 그리고 암에 걸렸다.
「정복자」로케이션 팀은 60톤이나 되는 모래흙을 스노우 캐넌에서 헐리우드의 스튜디오로 운반했다. 이것은 단순한 모래흙이 아니라 30발의 원자탄 실험이 3년 동안 뿌려놓은 죽음의 재 바로 그것이었다.「정복자」의 추가촬영이 끝난 다음 그 모래흙은 어디로 갔는가. 모래흙은 헐리우드 일대에 적당히 뿌려졌으며,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재도 그 일대에서는 방사능이 검출된다.
헐리우드에는 화려한 영화스타와 그들의 가족, 그리고 명작을 만들어내 유명한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 작곡가 등이 살고 있다. 그들은 간혹 [죽음의 재가 쌓여 있는] 로케이션장까지 영화스타들과 동행했으며 헐리우드의 스튜디오를 관리하기도 했다.
존 웨인만이 죽음의 재를 마시고 죽은 게 아니다. 네바다의 핵 실험장 부근에서 촬영 중 죽음의 재를 마시고 암에 걸려 사망한 유명한 배우 68명의 명단(‘헐리우드 왕가의 골짜기’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로케이션장에 갔던 제작자ㆍ각본가 등의 스텝들에서도 수 많은 암 사망자가 확인된다.
5. 북한 핵 문제와 생명평화(김승국, 2007, 97-104)
핵무기 앞에서 온 생명이 자유스럽지 못하다. 강남에 사는 부자이든 서울역 지하의 노숙자이든 핵에 의한 대량 학살(genocide) 앞에서 평등하다. 핵은 이승과 저승의 거리도 주지 않는다. 핵 앞에서의 삶과 죽음은 이렇게 밀착되어 있다. 죽은 목숨인지 산 목숨인지 알아차릴 수 없는 핵문명의 생활세계(Lebenswelt)에, ‘핵에 의한 죽음의 일상화’가 만연되어 있다. 이러한 만연 때문에 핵에 의한 죽음의 자각증세가 사라져, ‘핵에 의한 죽음의 불감증’이 심각한 정도에까지 이른다. 죽음의 경고가 일상화되면 죽음에 대하여 무감각해진다. 핵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핵보유선언 이후에 나타나는 남한 사회의 핵 불감증은, 이러한 ‘죽음에 대한 무감각’을 대변한다.
1) 핵에 의한 ‘민족간의 상호 학살’ 일어날 수도
북한의 핵무기보유 선언은, 북한 당국이 미국에 역공을 가하려는 사생결단의 승부수이다. 그러나 이 승부수 역시 ‘민족간의 상호 학살<최악의 경우 북한의 핵무기가 남한의 민중을 죽이고, (북한의 핵공격을 되받아치는) 한・미 연합군의 핵무기가 북한 인민을 죽이는 민족간의 상호 학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핵에 의한 민족간의 상호 학살’을 근원적으로 예방하는 방안을 남북공조로 논의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에서 우선되어야 할 것은 민족・민중・시민・인민의 생명 그리고 이들 생명의 먹이사슬에 놓여 있는 생명체(동식물)ㆍ 자연환경의 ‘살림’이다.
그러면 한반도의 인간ㆍ자연을 모두 파괴할지 모르는 북・미 핵 공방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언급함으로써 논의를 촉발하고자 한다.
2) 북・미 핵공방의 최악의 시나리오
주한미군 사령부는 이미(1990년대 초에)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대응책을 검토하여 보고서로 만들었다. 이 보고서에는 북한의 핵개발을 막는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로 예방적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을 거론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국제적 문제로 비화시켜 북한에 압력을 넣는 방법으로서 ‘예방적 폭격’을 전략적 위협수단(strategic bluffing)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 상원 군사위 소속 티모드 워드 의원(민주당)의 정책 보좌관 제프시브라이크 씨는 “북한이 국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핵무기를 보유하려고 할 경우 예방폭격과 같은 시나리오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1981년에 있었던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에 대한 이스라엘의 예방폭격을 전례로 들었다.
3) 북한 핵시설 파괴에 따른 피해의 규모(한국군의 비밀 보고서)
1998년 북한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1999년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됐을 당시, 한국군 당국이 영변 핵시설을 공습 등으로 파괴했을 경우의 예상 피해 범위를 전문기관들에 비밀리에 의뢰해 모의실험(시뮬레이션)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모의실험 결과 우선 영변의 8메가와트(열 출력) 연구용 원자로와 5메가와트(전기출력) 실험용 원자로 등 2개의 원자로가 공습 등으로 완전 가동중 동시에 파괴됐을 경우 사람들이 방사선으로 입는 피폭 피해범위는 최대 500∼1,400 킬로미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변 핵시설 반경 10∼50 킬로미터 내에 있는 사람들은 2개월 내 80∼100%가 사망하며, 30∼80킬로미터 지역은 20% 정도만이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됐다. 서울은 영변에서 250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 영변에서 400∼1,400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도 방사선 선량이 5렘(rem)으로 국제 방사선 연간 피폭 허용 권고치의 10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또 파괴 후 5년 뒤까지도 반경 700킬로미터 지역이 방사능 오염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개의 원자로 외에 재처리 시설, 핵폐기물 저장시설 등 영변의 모든 핵시설이 함께 파괴될 경우 피해는 더 커져 반경 50킬로미터 이내 주민의 25%가 수 시간 내 사망하고 한반도 전역의 토양오염이 5∼10년간 지속될 것으로 분석됐다. 피해 범위는 파괴 당시의 풍향・풍속 등 기상조건, 원자로 가동상태, 파괴 수준에 따라 차이가 크다.
4)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의사’의 조사 결과
‘콘 플랜 8022’ 작전 계획에 따라 미국이 ‘땅속을 관통하는 핵무기(RNEP: 벙커 버스터 핵무기)’를 북한・이란의 핵시설에 사용할 경우, 수백만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미군 병사・주변 지역의 수백만 명이 급성・만성 장해를 입을 것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IPPNW(핵전쟁방지 국제 의사회)의 미국 가맹 조직인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의사’가 위와 같은 조사결과를 밝히면서 RNEP의 개발에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표명했다. RNEP는 땅속 깊이 있는 표적을 파괴하는 능력을 가진 핵무기이다.
북한의 영변에 있는 플루토늄 제조시설이나 이란의 이스파한에 있는 핵저장 시설에 RNEP를 투하할 경우를 상정한 펜타곤의 모의실험 결과는 다음과 같다: ① 영변에 RNEP를 투하한 뒤 40시간 이내에 50만 명이 즉사하고 방사성 물질이 일본에까지 도달하여 5백만 명이 피폭(被爆) 당하며 ② 이란의 이스파한에 RNEP가 떨어지면 48시간 이내에 3백만 명이 즉사하고 방사성 물질이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까지 날아간다.
5) 미국의 반핵단체인 ‘천연자원 보호협회’의 보고
미국의 반핵단체인 천연자원 보호협회(NRDC)는 영변이 아닌, 북한의 해・공군 기지 등 군사시설을 미국이 핵무기로 공격했을 경우 북한 주민 25∼135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한 적이 있다.
6)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이 경우는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의 단계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대륙간 탄도탄을 이용하여 발사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미국이 1945년 8월 전투기(전폭기)에 핵무기를 싣고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한 것과 같은 작전을 고려할 수 있겠다. 그럴 경우 핵폭탄을 실은 북한의 전투기(전폭기)가 격납고에서 나오자마자 미국의 선제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핵무기가 북한 땅에서 폭발하게 되어 북한 지역을 중심으로 제2의 체르노빌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전투기가 활주로를 떠나는 데 성공한다면 남한 땅을 향할 것이다. 이 경우도 두 가지 사태가 예상되는데, 남한 땅을 향하는 도중에 한・미 연합군의 미사일에 명중될 때 방사능[죽음의 재]이 DMZ 상공에 뿌려질 것이다. 이와 달리 북한의 전투기가 서울을 폭격할 경우 서울과 수도권은 제2의 히로시마・나가사키가 되어 남한 사회가 파멸될 것이다.
남한 사회의 총체적인 파멸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미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메가톤의 핵무기가 서울의 명동에 떨어질 경우 ① 경복궁・성균관대학・서울역 등 반경 2.4킬로미터 이내 지역이 완파되고 모든 사람이 죽는다. ② 신촌・용산・왕십리 등 반경 4.6킬로미터까지의 시민의 절반이 죽고, 살아 남아도 3도 이상의 화상을 입는다. ③ 반경 6.9킬로미터까지 인구의 50%가 즉사, 40%가 재기불능의 외상을 입으며 은평구・여의도・도봉구・
청량리까지가 포함된다. ④ 그 밖의 지역도 6.9킬로미터 이내와 같은 피해를 입는다.
그런데 요즈음 핵탄두 하나에 거의 수십 메가톤을 장전하므로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따라서 20메가톤의 핵폭탄이 서울 명동에 떨어진다고 가정하면 서울대학교・가리봉동・김포공항은 물론 경인 지역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보아야 하며 비록 1메가톤일지라도 3만 3천 제곱 킬로미터의 지역에서 적어도 1주일간은 사람이 생활할 수 없으며 북한 지역도 예외일 수 없다. 따라서 핵폭발 앞에서 남・북의 분단장벽도 이념의 차별도 정치제도의 차이도 따질 겨를이 없다. 물론 핵폭발에 동반하여 일어나는 방사능 낙진이 일본・중국・러시아로 번져 동아시아에 ‘핵의 쓰나미’ 현상이 생길 것이다.
Ⅳ. 핵무기와 神
1945년 8월 9일 이른 아침에 가톨릭 사제의 기도가 올려진 뒤 핵폭탄 ‘Fat Man’을 싣고 출격한 조종사는, 당초의 목표지인 고쿠라(小倉; 규슈 북부의 도시)를 찾았다. 그러나 짙은 구름으로 인한 시계 불량으로 기수를 나가사키로 돌려 나가사키 시내의 ‘우라카미(浦上) 천주교 성당’ 위에 핵폭탄을 투하했다. Fat Man을 실은 조종사가 기도의 기운을 받고 출격한 뒤 가톨릭 성당 위에 핵폭탄을 던졌는데, 마침 그 시간에 우라카미 천주교당에서 미사를 보고 있던 신자들이 핵 세례를 받아 숨졌다. 조종사가 근무했던 테니슨 기지의 가톨릭 교회당에서 시작된 조종사의 일과가 나가사키의 우라카미 성당 위에서 끝났다. 신(神)의 가호(加護)로 핵무기를 정확히 투하하도록 도와달라는 조종사의 기도가 실현되었으나, 신의 가호(?)를 받은 핵폭탄이 다른 나라(일본)의 가톨릭 신자들을 집단 살해했다.
기독교 국가 미국이 핵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의 담당자들 상당수는 기독교 신자이었을 것이고, 그들은 핵개발의 과정마다 ‘이 사업을 꼭 성사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빌었을 것이다. 특히 1945년 7월 16일 최초의 원자폭탄이 완성되어 뉴멕시코 주의 알라로고드에서 인류 최초의 핵폭탄 실험에 성공했을 때, 맨해튼 계획의 관련자들은 두 손 모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이렇게 감사의 기도 속에서 탄생한 미국의 핵무기는 본래 나치 독일(히틀러 정권)의 핵 개발 움직임에 맞서 개발되었다고 한다.
원폭투하의 목적은 일본의 항복을 재촉하기보다는 전쟁의 종식과 그에 따른 점령의 주도권을 소련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소련이 참전하기 전에 원폭을 투하한 것이라는 해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원폭투하는 전쟁의 종결이라기보다는 소련에 대한 냉전전략의 시작이었다는 논쟁도 있다.(후지와라 기이치, 2003, 68)
그런데 논쟁의 옳고 그름을 떠나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미국은 왜 핵무기를 독일 등의 유럽을 향하여 발사하지 않았을까? 혹시 독일 등이 서양세력이어서 그 쪽을 향해 핵무기를 쏘면 미국과 동일한 서양세력에 대한 핵공격으로 낙인찍힐 것을 우려한 것이 아니었을까? 특히 기독교를 믿는 서양세력에 대한 핵공격은 역사적인 죄악으로 남기 때문에 동양에 있는 히로시마ㆍ나가사키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의문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원폭 투하를 결정한 트루먼 대통령의 ‘원자폭탄에 대하여 하나님에게 감사한다’는 언급이 지니는 의미를 잘 새겨보면 이러한 의문이 헛된 망상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핵무기를 투하하기로 결정한 미국 대통령, 핵무기를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는 미국 지도층(대통령 이하의 고관들)의 핵 신앙(하나님의 이름으로 핵무기를 경배하는 핵무기 숭배 신앙)은 한갓 신화가 아닌 미국 외교ㆍ안보 정책의 근간이 되어 내려오고 있다.(주2) 핵 신앙에 빠져든 수많은 전략가ㆍ외교관ㆍ학자들이 ‘핵 관련 군(軍)ㆍ산(産)ㆍ학(學) 복합체’를 이끌며 ‘핵 신성(神聖) 가족’을 이루었다.
핵 신성가족에게 핵은 단순한 전쟁도구라기 보다 일종의 신흥종교를 대표하는 신(神)으로 등장한다. 그러한 신흥종교에 최초의 신학 체계와 첫 마녀사냥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반공주의다. 그러나 냉전이 테러와의 전쟁으로 바뀌면서 미국인의 이분법인 사고방식은 공산주의 소멸 이후에도 지속되며, 새로운 세기에 ‘악[북한 등의 악의 축(axis of evil)]’이 요란하게 복귀하고 종교에 대한 의존 추세가 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해진다. 언제나 그렇듯이 펜타곤은 미국의 신성한 신전이다. [펜타곤의 핵 정책의 근간인]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NCND; Neither Confirm Neither Deny] 정책은 사실 핵무기를 대상으로 펜타곤이 미국 국민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했다. 미국 국민은 펜타곤의 핵무기에 대한 강박적 숭배에 대해 ‘묻지도 말하지도’ 말아야 했던 것이다.(제임스 캐럴, 2009, 15ㆍ658)
펜타곤 주변에 포진한 핵 신성가족들. 핵무기를 물신화(物神化)하는 핵무기 사도(使徒)들, 핵 전도사들을 포함한 핵 신성가족들이 핵무기와 하나님(神)을 연계시키는 사고방식이 문제이다.
여러분들(평화교육 참가자들)은 핵 신성가족들의 사고방식이 기독교 신앙에 맞는 것인지 아닌지를 따지면서 원탁토론에 임해주기 바란다. 핵 신성가족들은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핵 신앙을 강화하므로, 여러분들이 핵 신성가족의 신앙에 도전할 경우 하나의 신학논쟁이 이루어진다. 신학논쟁에서 여러분들이 지지 않으려면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반박해야할 것이다. 여러분들이 핵 신성가족와 논쟁할 때 인용할 성경 구절을 생각하기 바란다.
1. 트루먼 대통령
맨 먼저 핵 신성가족의 원조인 트루먼 대통령에 관하여 기술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우리는 항상 원자폭탄의 사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구두선처럼 외치고 다녔다.
트루먼 대통령은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까지 핵무기를 투하한 이튿날인] 1945년 8월 10일 라디오를 통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핵폭탄을 가진 미국이 바야흐르 세계평화에 특별한 책임을 지는 나라가 되었다. 일본이나 독일이 아니라 미국이 ‘그 책임을 지게 된 것을 신(神)에게 감사하고 신께서 인도하시길 기원한다”고 매듭지었다.(栗林輝夫, 2008, 12)
2. 핵무기 전도사; 슐레진저와 키신저(제임스 캐럴, 2009, 499-501)
제임스 슐레진저와 헨리 키신저는 핵무기의 힘과 국력이라는 그 두 종류의 권력을 다른 모든 정부 관료들과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이해했고, 두 사람 모두 미국이 핵무기를 통해 초대강국으로 성장하면 베트남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누렸던 세계 1등 국가의 위치를 되찾을 생각뿐이었다. 슐레진저와 키신저는 핵무기 전도사였다. 그들은 핵무기를 사용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싶었고 핵전쟁에서 확실히 이기고 싶었다. 슐레진저와 키신저는 하바드 동기였다. 정부 관료로서 서로 경쟁자이고 군비제한에 관해 심각하게 의견 차이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두 사람은 핵무기에 관한 기본 관점에서만큼은 노선을 같이 했다. 1973년 7월에 닉슨 행정부의 국방장관으로 슐레진저가 레어드의 뒤를 이으면서 권력의 정점에서 키신저와 합류하게 되자 핵무기 전도사들은 마침내 반신반인의 경지에 도달한 것 같았다.
3. 사도 가족(제임스 캐롤, 2009, 679-682)
‘사도 가족’이란 냉전 종식 후에도 냉전의 전통을 성역화한 일련의 사람들을 말한다. NSC-68 선언을 주도한 니체(Paul Nitze) 같은 사람이 바로 사도 가족이다. 니체는 국가 존재를 위한 열핵무기 사용의 이론적, 도덕적 정당화인 군사 비망록을 작성했다. 펜타곤은 니체에 의해서 열핵무기를 위한 기구로 거듭났다. 그때부터 미국의 지도자들이 감히 핵무기 군사문화의 유산에 반하는 시도를 하려고 할 때마다 니체는 ‘현존 위험’을 경고하며 그런 재고들을 국가적 배신행위로 만들었다. 재고는 불가능했다.
1969년에 니체는 그런 정통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 사도 가족 만들기를 시작했다. 두 명의 대학 졸업자를 발굴해 내어 탄도탄 요격 미사일에 우호적인 논리들을 찾게 했다. 알다시피 그들은 폴 울포위츠와 리처드 펄이다[두 사람 모두 부시 정권을 이끈 네오콘NeoCon의 원조임]. 니체를 거쳐 형성된 사도 가족이 2000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조지 W. 부시와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 갔다. 니체에게는 울포위츠가 있었다. 군 장성들을 압도했던 민간인 전략가 울포위츠는 펜타곤이 미국 행정부를 지배했을 때 펜타곤을 지배했었다. ‘네오콘(신보주주의자)’이라고 알려진 그 집단의 인사들은 역사상 모든 제국이 그랬듯이 불가피하게 다가올 제국(미국)의 승리를 촉진하기 위해 ‘윌슨식 이상주의와 레이건식 강건함을 기묘하게 결합한’ 이념가들이었다.
1992년에 클린턴이 백악관에 입성하기 직전, 울포위츠는 냉전 종식 후 최초의 구체적 군사 전략의 공표로 기록될 ‘국방계획 지침서’를 작성했다. 이에 따르면 펜타곤의 ‘첫째 목표’는 ‘새로운 적의 도래를 방지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군사력에서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하는 세계의 감시자가 될 것이었다. 세상에는 미국의 권력만 존재할 것이었다. 미국이 전통적으로 순응(완전 순응은 아니었지만)했던 국제적 협력이라는 외교적 꿈은 울포위츠의 비전 속에서 일명 ‘전방 배치’라는 워싱턴의 전 세계로의 일방적 확장으로 대체되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전방 배치’란 이미 세계 곳곳에 존재하던 미군 기지의 유지에 만족하지 않고 확장하겠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곧 국방, 예산과 핵무기 보유량을 이전보다 더 늘리겠다는 뜻이다.
4. 네오콘-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핵전쟁 대망론
제국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성격을 가장 확실하게 파악하는 방법은 핵전쟁을 대망하는 사람들의 이념, 즉 네오콘 ・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주류인 부시 정권의 ‘핵 제국주의’에 접근하는 길이다. 이 길을 찾기 위해 미국에서 핵전쟁을 대망하는 사람들의 사고 유형을 추적해본다.
(1) 핵전쟁 대망론자들의 ‘핵무기를 통한 아마겟돈 전쟁’
아래는 ‘핵무기를 통한 아마겟돈 전쟁을 대망하는 핵전쟁 대망론자들(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취재한 Grace Halsell의 저서를 요약한 것이다.
* 내가 이스라엘 성지순례 도중 오엔이라는 인물을 만났는데 그는 ‘무슬림들이 신성시하는 이슬람 사원을 파괴해야 하고, 핵전쟁 아마겟돈을 통해 지구라는 혹성을 파괴해야 한다’고 말했다(Grace Halsell, 17쪽).
* 미국의 전직 참모총장인 죤・베시 장군은 펜타곤에서 기도회를 열었는데, 그는 소련과의 핵전쟁을 통해 그리스도의 재림이 앞당겨진다고 말했다. 이로써 소련에 대한 선제 핵공격을 결단해야 할 군사지도자들 사이에 린제이와 비슷한 사고방식이 널리 보급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Grace Halsell, 18쪽).
* 1984년 양겔로비치社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핵무기를 동원하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우리들 자신의 손으로 지구를 파괴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 사람이 39%에 이르렀다. 이 조사가 정확하다면 8,500만 명의 미국인이 아마겟돈 전쟁으로서의 핵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Grace Halsell, 20쪽).
* 미국의 수백 개의 성서 연구소, 10만 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신학교의 교사・학생 중 8∼9할이 ‘天國 移送(rapture: 휴거.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면 그리스도에 의해 천당으로 올라갈 사람들만 구원받아 천국으로 이송된다. 그러므로 천국이송을 믿는 사람들은 핵전쟁을 통한 지구촌의 붕괴를 환영한다)과 핵전쟁 아마겟돈을 믿고 있다(Grace Halsell, 27쪽). 이들은 ‘예수가 재림하기 전까지 이 땅에 평화는 없다. 재림 이전에 평화가 온다고 설교하는 교의는 모두 이단이다. 그것은 신의 말씀에 반하는 반(反)기독교적인 것이다’고 말한다(Grace Halsell, 28쪽).
* 아마겟돈이 종국에 이르러 수백만 명의 전사자 시체가 켜켜이 쌓이면, 주 예수가 敵그리스도[기독교 근본주의자가 볼 때 敵 그리스도는 북한 등의 불량국가이다]를 ‘불과 황으로 끓는 못’에 내던진다(Grace Halsell, 51쪽).
* 에스겔서 39장 2절에 따라 ‘소련군의 6분의 5가 아마겟돈 전쟁의 최후단계에 섬멸될 것이다. 신이 마무리하는 최후의 대살육은 에스겔서 39장 4절・17절∼8절에 걸쳐 묘사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19장 17∼8절, 마태복음 24장 28절에 의하면 아마겟돈의 뒤에도 동일한 살육이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서 공산주의(북한 등 악의 축 국가)의 위협이 근절・멸종된다(Grace Halsell, 56쪽).
* 레이건 대통령과 천계적 사관(天啓的 史觀; 요한 계시록대로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역사관)의 관련을 연구한 안들 랑그(워싱턴에 있는 기독교 연구소 조사부장)는 “레이건이 대통령 취임 이후에 천계적 사관을 버렸다고 하더라도 취임 이전에 그것을 믿고 있었다. 레이건은 천계적 사관을 갖고 아마겟돈 전쟁설을 신봉하고 있었다”고 말했다[부시 대통령도 레이건과 비슷하게 아마겟돈 전쟁설을 믿고 대북 핵전쟁을 기도하고 있지 않았을까?] 레이건과 아마겟돈 전쟁설에 관하여 기자회견을 한 내용이 당시 미국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그 기자회견에서 랑그는 “신(神)이 사전에 핵전쟁 시나리오를 작성했다고 개인적으로 믿는 대통령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몇 가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지요. 예컨대 그 대통령이 가상 적대국과의 무기삭감 교섭의 유효성을 진지하게 믿을 수 있을까? 핵전쟁의 위기가 임박했을 때 그 대통령이 신중・냉정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그러기는커녕 그가 선제공격용 버튼을 누르고 싶어 안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버튼을 눌렀을 때 ‘신(神)이 성서 속에 사전에 예정한 세계 최종 전쟁의 시나리오’를 실연(實演)하는 데 자신(레이건)의 손을 빌리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랑그의 설명에 의하면, ‘천계적 사관론자(天啓的 史觀論者)들, 즉 아마겟돈설의 신봉자들은, 성서를 미래에 대한 예언집으로 정독하는 성서 근본주의자(기독교 근본주의자)이다. 기독교 신우익(新右翼)의 천계적 사관론자(天啓的 史觀論者)들은, 성서는 지구규모의 핵전쟁・천재지변・경제공황・사회적 혼란 등이 이어진 뒤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실현됨을 예언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Grace Halsell, 63∼4쪽)
캘리포니아 주의 상원의장이었던 제임스・밀즈가 1985년 8월 Sandiego Magazine 에서 들려준 말을 들어보자. ‘재림에 관하여 성서에 분명히 쓰여 있는 것은, 재림이 언제 이루어질까를 누구도 모른다는 것 아닙니까?’라고 그가 일침(一針)을 가하자, 레이건은 날카롭고 드높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예언대로 되어가지요. 에스겔서에는 불과 유황이 신(神)에 역행하는 자들의 머리 위에 비처럼 내리붓는다고 쓰여 있어요. 이것은 그들이 핵무기로 멸망당한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아요. 그 핵무기는 현재 존재하지만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Grace Halsell, 72쪽)
2) 핵전쟁 대망론자들에 대한 평론(김승국, 2007, 143-144)
레이건이 보기에 신(神)에 역행하는 사상은 공산주의이며 신(神)에 역행하는 자는 공산주의자이고 신(神)에 역행하는 정치세력은 소련이다. 그러므로 에스겔서에 나오는 불과 유황의 현대판인 핵무기로 소련을 멸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레이건은 소련을 ‘사탄의 나라’로 보았다. 그는 1983년에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다. 마치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 국가로 부르듯이… 레이건이 자신의 신앙심에 따라 악의 제국 소련을 핵무기로 멸망시켜야 한다고 확언했듯이, 부시 역시 자신의 신앙에 따라 북한이라는 악의 축 국가를 핵무기로 싹쓸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레이건의 군사예산에 대한 자세, 핵무기 감축 제안에 대한 낮은 관심은 ‘요한 계시록에 따라 이스라엘 군대와 미군이 소련을 멸망시켜야 한다’는 신앙심과 관련이 있다. 그가 보기에 아마겟돈은 비무장 상태의 세계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핵무장을 가속화하여 악의 제국을 멸망시켜야 한다. 이런 사고방식에 따라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미국은 엄청난 핵군비 확장을 한 끝에 쌍둥이 적자(재정적자, 무역적자)를 유발했다.
레이건과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요한 계시록에 따른 핵전쟁 대망론의 선봉에 서서 악의 제국인 소련을 핵무기로 멸망시키려 했다. 이런 끔찍한 발상은 클린턴 정권 때의 잠복기를 거쳐 부시 대통령 시절에 다시 도진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소련에서 북한으로 바뀌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레이건과 성서 근본주의 세력이 요한계시록에 따른 핵전쟁 대망론의 선봉에 서서 악의 제국 소련을 핵무기로 멸망시키려 했다’는 문구를 ‘부시와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 요한계시록에 따른 핵전쟁 대망론의 선봉에 서서 악의 축 국가인 북한을 핵무기로 멸망시키려 한다’로 바꾸면 된다. 부시 정권은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의 지척에 있는 네오콘(Neo Con)과 함께 악의 축 국가들을 섬멸하는 핵전략인 ‘NPR(Nuclear Posture Review; 핵태세 수정 보고)’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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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1) 이러한 주장은 미국 대통령의 첫 번째 히로시마ㆍ나가사키 방문길을 막는 결과를 가져왔다. 핵이 없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중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11월 12일 일본을 방문하면서 히로시마ㆍ나가사키를 찾아갈 생각을 했으나, 원자폭탄 사용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미국 시민이 많은 상황을 고려하여 중단한 것 같다. 미국의 보수세력은 일본의 수상ㆍ천황이 진주만을 방문하지 않았는데 굳이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ㆍ나가사키를 방문할 필요가 있다는 반대의견을 내놓는다. 이러한 보수세력의 견해를 따르면, 미군의 최고 사령관인 오바마 대통령이 원폭투하 작전을 실시한 퇴역군인을 칭송하게 된다. 원폭투하의 역사적인 재평가를 입 밖에 내는 것조차 용이하지 않은 분위기를 오바마가 무시할 수 없다. 히로시마ㆍ나가사키에 간 오바마의 추도가 ‘일본에 대한 사죄’로 받아들여질 경우, 미국 의회 등에서 강한 비판이 나오므로 더욱 삼간 것 같다.
(주2) 미국의 경우 어떤 당이 정권을 잡든 언제나 군비경쟁이 그것을 멈추려던 시도를 능가했고, 따라서 장거리 폭격기와 지상 발사 미사일과 핵무기를 장착한 잠수함 등으로 구성된 거대한 육해군 복합 공격력이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증강되었다. 그 결과 국가 안보라는 목적은 거의 신화적인 집착으로 전락했다.(제임스 캐롤, 2009,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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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자료 목록>
* 김승국 지음『한국에서의 핵문제• 핵인식론』(서울, 일빛, 1991)
*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핵문제』(파주, 한국학술정보, 2007)
* 그레이스 할셀(Grace Halsell) 지음, 越智道雄 옮김『核戰爭を待望するひとびと』(東京, 朝日新聞社, 1991)
* 히로세 다카시 지음, 김원식 옮김『누가 존 웨인을 죽였는가』(서울, 푸른산, 1991)
* 후지와라 기이치(藤原歸一) 지음, 이숙종 옮김『전쟁을 기억한다』(서울, 일조각, 2003)
* 제임스 캐럴(James Carroll) 지음, 전일휘• 추미란 옮김『전쟁의 집(House of War)』(파주, 동녘, 2009)
* 栗林輝夫 지음『原子爆彈とキリスト敎』(東京, 日本キリスト敎團出版局,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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