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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도시-평화 마을/3세계 숍

[커피 장사 수기 (94)] 빈대떡 사먹을 형편도 못 된다

커피 장사 수기 (94)


 

빈대떡 사먹을 형편도 못 된다

 

 

김승국(커피공방 뜰의 점장)

 

 

오늘은 그믐날이어서 그런지 손님들이 거의 찾아오지 않는다. ‘돈 없으면 빈대떡이나 구워먹지...’라는 노래 구절이 있는데....오늘 수입이 너무 작아서 빈대떡 사먹을 형편도 되지 않는다.

 

 

저녁 9시경에 가게 문을 좀 일찍 닫고 중국 음식점에 가서 2,000원짜리 짜장면 곱빼기를 먹고 일찍 취침하고 내일 아침에 궁색한 가게 구석에서 초라한 새해 맞이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아니 너무 한심해서 막걸리 한잔이라도 걸치면 화려한(?) 세밑을 즐기고 싶었다.

 

 

막걸리 한잔 마시며 추위를 이기며 깊은 잠을 자고 싶은데 술집에 가서 막걸리와 안주를 주문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게 안 되면 돈을 좀 들여 4,000원짜리 돈가스를 들고 가게로 돌아와서 돈가스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셔도 좋을 듯한데...

 

 

안주를 곁들인 막걸리를 술집에서 마시려면 5명 이상의 손님이 와야 하는데...영업마감 시간이 되었는데도 5명은커녕 한명도 오지 않는다. 결국 오늘 매상은 5,000원. 자장면 곱빼기에 막걸리를 자격 상실. 

 

 

그래도 막걸리 한잔을 걸친 채 그믐날 밤을 넘기고 싶어, 1,000원짜리 짜장면을 포장해달라고 부탁한 뒤, 롯데 슈퍼에 가서 900원짜리 막걸리 한 병을 사가지고 가게로 되돌아왔다. 밥통에 있는 밥과 짜장면을 섞어 짜장밥을 만든 뒤, 그걸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 걸쳤다.

 

 

개업 이후 최초로 가게 안에서 짜장밥 막걸리를 마시며 제야(除夜)를 앞두고 있다. 짜장밥을 안주 삼은 막걸리 타령 속에 지겨운 2011년이 지나간다. 풍찬노숙 장소인 가게의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씁쓸한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2012년 새해엔 가게 안의 풍찬노숙에서 해방되길 기원하면서 짜장밥과 막걸리를 위장 속으로 쑤셔 넣고 있다.(2011.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