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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도시-평화 마을/3세계 숍

[커피 장사 수기 (31)] 막걸리의 영성?

커피 장사 수기 (31)

 

막걸리의 영성?

 

김승국(커피공방 뜰의 점장)

 

마음이 울적하여 가게 근처의 식당에서 밤 늦게 막걸리 한잔을 걸쳤다. 막걸리를 마시니 커피를 마실 때 보다 더 좋은 발상이 떠올라 나는 역시 막걸리 체질임이 재차 확인되었다. 가게에서 낮에 각성 효과를 높이는 이성적인 커피를 마실 때 보다 훨씬 훌륭한 발상이 떠올라 나는 역시 막걸리 체질인가보다.

 

내가 막걸리 체질임을 아는 지인들이 ‘김박사가 막걸리 체질이므로 커피 공방 대신 막걸리 공방을 차리는게 좋았을 걸...’하며 아쉬워하는 것이 올바른 조언인 듯하다. 지금이라도 커피장사 그만두고 막걸리 공방을 차리면 어떨까...막걸리의 영성이 커피의 이성(각성효과)를 능가하므로...

 

어쨌든 막걸리의 영성에 힘입어 여러 가지 발상이 우후죽순처럼 떠올랐는데 그걸 다 기록할 수 없어서 아래와 같이 제목 중심으로 정리한다;

 

1. 채운산장에서 주말에 운영할 커피 숍을 ‘주막형 카페’로 한다. 박정희 정권이 새마을 운동을 펼치기 직전의 농촌 가옥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채운산장에 옮겨 놓아, 조선시대 이후 민중들이 거주한 전형적인 시골집을 지어(가건물 형태로) 그걸 카페로 이용한다. 이 시골집 카페의 메뉴판은 19세기 민중들이 사용하던 주걱에 메뉴명을 기록한다. 삿갓쓴 도인이 커피를 팔고, 과거 시험 보러 상경하던 과객의 분위기를 손님들이 느끼게 한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커피와 막걸리의 이미지를 잘 결합시키는 ‘주막 카페’를 시도한다.

 

2. 철저한 옛날 시골풍의 주막 카페를 중심으로 21세기의 新人類를 배출해내는 공동체를 꾸린다. 고전적인 주막 카페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21세기의 새로운 인류 공동체 像을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인사들이 되도록 한다.

 

3. 주막 카페에 출입하는 新人類의 생활상을 앞당겨 구현하는 커피 숍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를 위해 친환경 실내장식을 한다. 커피 숍의 모든 기구를 되도록 친환경 물품으로 교체한다. 환경을 훼손하는 기계, 기구, 용품의 사용을 금지하여 ‘주막형 친환경 커피 숍’이 되도록 한다.

 

4. 주막 카페에서 新人類 중심의 소통공간(community center)를 조성한다.

 

식당에서 막걸리 마시면서 순식간에 떠오른 상념들은 휘발성이 강해서, 가게로 귀환한 뒤 정리하려니 모두 날아가 버리고 겨우 ‘주막 카페’의 발상만 남아서 위와 같이 겨우 정리해냈다. 이것도 정리해놓지 않으면 머릿속의 뜨거운 상념열(想念熱)에 의해 날아가기 때문에(휘발성 상념) 재빨리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겨야한다.

 

정신차리고 정리하다보니 막걸리이 영성 끝발이 줄어들고 이성적인 두뇌활동으로 되돌아온듯하다. 휘발성 상념의 잔영(殘影)이 없는 듯하여 일기장을 닫으면 하나의 단상이 떠올라 정리하고 일기장을 닫으면 몇분뒤 또 하나의 단상이 떠오른다. 이렇게 연달아 떠오를 때 마다 급하게 일기장 있는 쪽으로 달려가 겨우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1) 채운산장의 카페 이름을 ‘돈키호테’로 정하면 어떨까? 존 스튜아트 밀(Mill)이라는 철학자기 돈키호테와 같인 사람들의 천재적 발상을 중요시했듯이, 이 땅(한국)의 돈키호테들은 모두 카페의 주요 고객(VIP)로 모시는 개념이다. 돈키호테의 기질을 지닌 예술인, 문학인, 철학자들을 모시는 카페를 운영하면 어떨까.

 

  2) 채운산장의 커피 숍을 제3세계 민중들의 지혜가 담긴 보고(寶庫)로 삼는다. 제3세계 민중들이 만든 수공예품, 민예품, 기호식품, 음식을 판매함과 동시에 국내 거주 제3세계 이주민들의 능력을 발휘하는 장소가 되게 한다.

 

  3) 채운산장 뒤편에 있는 암반에 커다란 구멍을 뚫고 그 안에 토굴을 만들어 ‘토굴 카페’를 조성한다. 박원자 지음『인생을 낭비한 죄』에 나오는 고승들이 수행한 토굴(남아 있는 수행자 토굴 중 해발고도가 가장 낮은 곳)을 카페로 이용하려는 생각을 여러번 해본적이 있기 때문에, 채운산장에 토굴 카페를 만드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듯하다. 이 토굴 카페가 실매장식 비용이 가장 적게 들고 가장 환상적이지 않을까. 토굴 안에 전등 몇 개만 설치하고 핸드드립 도구만 들여놓고(에스프레소 기계는 생략) 핸드드립 전문점을 표방한다(커피 이외의 茶도 취급한다). 최고의 맛과 향기를 내는 핸드드립 전문점을 차리는 것이다. 채운산장 주인이 분양하려는 뒤편 암반의 한 귀퉁이 5~10평을 구입한 뒤 굴삭기로 파내어 토굴을 만들면 좋겠다.(2012.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