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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안보-군사/기지(미군-한국군 기지)

주한-주일 미군기지의 일체화 경향

김승국


얼마 전에 일본의 운동가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주일미군의 재배치 계획에 대하여 소상하게 알았으나 주한미군의 재배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한국의 운동가들 역시 주한미군의 재배치에 대한 반대운동에 열중하면서도 주일미군의 재배치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미국은 이미 ‘1국 중심(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과 주일미군이 주둔하는 일본이라는 개별국가 중심)의 군사전략’을 파기하고 ‘군사의 세계화’ 차원에서 ‘전 세계 미군의 재배치(GPR: Global Defense Posture Review)’를 추진하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일본의 민초들은 자기 나라에 있는 미군기지의 재배치만 놓고 싸우고 있으니 답한 노릇이다.


이러한 답답한 상황을 돌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주한-주일 미군기지의 일체화(一體化)’ 경향을 한국 ・일본의 민중들이 공동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인식의 바탕 위에서 한-일 민중 간의 미국 반대-미군기지 반대를 위한 투쟁의 일체화’를 이루어내야 ‘이론(인식)과 실천의 일체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 이게 한-일 민중연대의 가장 시급하고 중차대한 임무이다.


1. ‘주한 미군기지-주일 미군기지의 일체화’ 경향


그럼 주한미군기지와 주일 미군기지가 어떻게 일체화되어 가고 있는지를 알아본다. ‘주한 미군기지-주일 미군기지의 일체화’ 가능성은 미 ・일 안보조약 안에 있다.


미 ・일 안보조약은, 주일미군의 역할은 ‘일본의 안전’뿐만 아니라 ‘극동의 평화와 안전’이라는 포괄적 내용을 담고 있다. 미 ・일 안보조약 제6조는 “일본국의 안전에 기여함과 더불어 극동에 있어서 국제평화 및 안전의 유지에 이바지하기 위해 미국의 육군, 공군 및 해군이 일본국에서 시설 및 구역을 사용토록 허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72년 닉슨-사토 선언에서 “한반도의 안전은 일본의 안전에 긴요하다.”고 밝힌 것은 이러한 극동조항을 확인한 것이다. 미 ・일 안보조약과 공동선언에서 밝히고 있는 극동지역의 범위는 구체적으로는 필리핀 이북지역과 더불어 일본 및 그 주변지역으로 정의되는데, 여기에는 한국과 대만까지도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주일미군의 역할을 이원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전략적 세력균형자로서의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국지전쟁억지력, 대응력으로서의 역할이다.


전자의 경우는 요코스카에 사령부를 두고 있는 미 해군 제7함대,요코타에 사령부를 두고 있는 미 제5공군의 임무에 해당된다고 볼수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 오키나와 카데나에 사령부를 두고있는 해병 제3사단이다. 오키나와 미 해병대는 한반도, 대만해협은 물론 동남아와 인도양 방면에 항공기와 해상수송력을 사용하여 신속히 군사력을 전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오키나와 미 해병대는 기본적으로 미 ・일 안보조약에 의거해 일본의 방위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동시에 한 ・미 상호방위 조약에 따른 주한미군의 역할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안보와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주한 미 지상군과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의 경우가 둘 다 국지전쟁의 억지력, 대응력으로서 서로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일영 ・조성렬 [주한미군]서울: 한울, 2003, 166쪽).


2. GPR과 ‘주한미군기지-주일 미군기지의 일체화’


아시아 주둔 미군 10만 명의 85%를 차지하는 주한미군 ・주일미군이 긴밀하게 연계(주한미군기지-주일미군기지가 일체화)되어 가는 경향을 염두에 두고 GPR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초국적 기업이 종횡무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호위대(body guard)인 미군 역시 초국적 군대로 변모하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GPR이다. GPR은 ‘최첨단 과학(IT 산업 등)으로 무장한 미국 자본주의의 군사화’의 제2단계인 군사적 변환(military transformation)과 관계가 깊다(제1단계는 ‘군사혁신’이라고 일컬어지는 RMA이다). 클린턴 정권 당시 추진한 RMA(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 단계의 한-미-일 군사공동체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독립적으로 기능하는데 만족했다. 기껏해야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을 각기 기능별로
소통합(小統合)하는 구조에 그쳤다.


그런데 전쟁광 부시가 이끄는 정권은 중국을 더욱 강하게 포위하고 여차하면 북한을 붕괴시키기 위한 ‘전쟁의 일상화 체계’를 만들기 위해,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의 군사적 일체화’를 시도하려고 한다. 한-일 간의 역사적인 상흔 때문에 양국 간 군사 동맹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펜타곤이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을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의 한-미-일 군사 동맹’이 형성되어, 미-영 동맹에 버금가는 전쟁체제를 갖추게 된다.

이러한 구상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 ‘동북아사령부 설치 구상’이었고, 더욱 발상을 키운 것이 일본 수도권의 미군 ・자위대 기지군(基地群)과 한국 수도권의 미군 ・한국군 기지군(基地群)을 GPR에 따라 통합운영하자는 생각이다. 


이 무시무시한 발상은 럼스펠드의 머릿속에 있는 듯하며, 아직 공식적인 문건으로 나온 바가 없다. 그러나 미 1군단이 가나가와 현의 자마(座間)로 이동하면 ‘미군-자위대의 육 ・해 ・공군 총지휘(일체화) 센터’가 일본의 수도권에 형성될 것이다. 이 센터를 중심으로 북한 ・중국에 대한 감시 ・견제는 물론이고, 중동 등 전 세계의 분쟁에 개입하는 전쟁 장치가 마련될 것이다.


주한-주일 미군기지의 일체화가 아직 공식적으로 진행 중인 것은 아니지만, 그 잠재성은 충분히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GPR 속에 '주한-주일 미군기지 일체화의 잠재성’이 내재해 있다.


GPR 구상에 따르면 미국은 해외 기지를 전력투사 중추기지(戰力投射 中樞基地, PPH: Power Projection Hub=1급 기지), 주요 작전기지(MOB: Main Operating Base=2급 기지), 소규모 상주(常駐) 부대인 ‘전진 작전 거점’(FOS: Forward Operating Base=3급 기지), 소규모 연락요원 상주지(常駐地)인 ‘안보협력 대상지역’(CSL: Cooperative Security
Location=4급 기지) 등 4개 등급으로 재편한다. 여기에서 주일미군기지는 제1급 기지(PPH)로, 주한미군은 1급과 2급 사이의 1.5급 기지로 재편된다.


3. 1.5기지 ‘주한미군기지’


요즘 한국에서 연합 토지관리 계획(LPP: Land Partnership Plan),주한미군 재배치(평택으로 주한미군기지를 총집결), 주한미군 12,500명 철수 계획이 동시 진행 중이다. 이를 보면 주한미군의 양(숫자)은 줄이되 전력(戰力)을 증강함으로써, 북한 붕괴 ・중국 포위용 기동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1.5기지 구상’이 실현 중임을 간파할 수 있다.


주한미군기지의 1.5기지에로의 변환은 ‘2+3 체제’로 이루어질 것이다. 앞에서 ‘2’는 평택기지를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기지의 띠’와 ‘대구 ・부산의 병참 거점’을 합한 것이고, 뒤의 ‘3’은 ‘2’를 뒷받침할 용산기지(용산에 주한미군의 핵심 시설이 잔류함), 한강 이북의 연합훈련센터(스토리 사격장 등), 군산 공군기지를 합한 것이다. 여기에서 ‘인계철선(trip wire)’인 미 2사단이 평택으로 이전하는 계획은, 한반도에서의 전쟁계획과 직결된다. 즉 북한 장사포(長射砲)의 인질이 되어 있는 미 2사단이 GPR에 따라 인질상태에서 해방된 뒤에 북한과의 전쟁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전쟁 의지’가 배어 있다.


그럼 평택기지를 중심으로 북한과의 전쟁을 자유롭게 치를지 모르는 1.5기지인 ‘주한미군기지’를 아시아 태평양 차원에서 총괄하는 윗선은 어디이며 누구인가? 다시 말하면 ‘1.5기지로 재편되는 한국판 GPR를 누가 어느 쪽에서 총괄하느냐?’는 질문이다.

4. 1급 기지(주일미군기지)가 1.5기지(주한미군기지)를 통괄?


이 해답은, 주일미군기지의 재편(일본판 GPR)에 있다. 일본판 GPR 역시 ‘2+3 체제’로 이루어지는 듯하다. 위의 ‘2’는 (주일미군기지 ・자위대 기지가 총집결되는) 일본 수도권과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합한 것이고, ‘3’은 ‘2’를 뒷받침하는 미자와 기지, 이와쿠니 기지,사세보 기지를 합한 것이다. GPR의 1급 기지인 주일미군기지는 자위대와 일체화된 가운데 ‘2+3 체제’로 운영되면서 아시아 태평양 ・중동의 사령탑 역할을 할 것이다. 위의 사령탑은 미 1군단(가나가와현의 자마 시市 소재)이 맡을 것이며, 미 육군 4성 장군이 사령관에 취임할 것이다. 자마(座間)의 주일미군기지에 들어설 미 1군단(1급 기지의 지휘부)은 아시아 태평양 ・중동지역의 사령탑이므로, 당연히 주한미군(한 ・미 연합사령부: 1.5기지)을 통괄(統括)할 것이다.


아직 미-일 안보조약이나 한-미 상호방위 조약에 ‘미 1군단이 주한미군을 통괄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안보조약을 개정하지 않고도 합의 각서나 군사체계 등을 통해 ‘1급 기지가 1.5기지를 통괄함’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일본판 GPR(‘2+3 체제’)이 한국판 GPR(‘2+3 체제’)의 상위 범주임을 인정하면서, 양자의 GPR이 군사 전략상 일체화되는 자동 개폐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GPR 1급 기지의 사령관인 미 1군단 사령관(4성 장군)이 GPR의 1.5기지 사령관인 주한미군 사령관(한 ・미 연합 사령관)에게 사실상 작전지시(한반도에서의 전쟁에 관한 지시 포함)를 하는 ‘일체화’의 잠재성이 우려된다. 이런 우려는, 한-일 간의 MD(미사일 방어망) 연계, 한-일의 동시 해외(이라크)파병, 한국군의 지역 동맹군화(同盟軍化)-일본 쪽 ‘유사 7법 체제’ 사이의 연계 가능성에서 나타난다.


5. 대만-중국 분쟁 때 ‘주한-주일 미군기지 일체화 ’ 기능 작동?


이처럼 미군의 전쟁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주한-주일 미군기지 일체화’ 가능성은, 한반도에만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대만과 중국이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하는 사태에 돌입할 경우 ‘주한-주일 미군기지 일체화’의 기능이 작동될 것이다. GPR의 1급 기지인 주일미군기지가 자위대 기지와 일체화되어 지원할 경우 중국과 주적(主敵)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이때 GPR의 1.5기지인 주한미군은 지역동맹화한 한국군을 거느리고 역시 대만을 간접지원하면서 1급 기지와 1.5기지의 일체화를 도모할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예상되는 최악의 전쟁 시나리오이지만, ‘주한-주일 미군기지의 일체화’ 가능성을 지금부터 차단하지 않으면 근절하기 어렵다.


그러면 ‘주한-주일 미군기지의 일체화’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한-일 민중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지면 제약상 운동의 방법론을 제시할 수 없으나, 한-일 민중 간의 미국 반대-미군기지 반대를 위한 투쟁의 일체화’로 ‘주한-주일 미군기지의 일체화’를 끝장내는 수밖에 없다.

* 출처=[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43호(200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