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
명(明)ㆍ청(淸) 교체기에 일본은 화이변태(華夷變態)로 선회했는데, 조선은 일본처럼 화이변태를 선택하지 않고 ‘숭명배청(崇明排淸)’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숭명배청’에 매달린 조선 정부가 선뜻 화이변태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지정학적인 요인 때문이지 않을까? 당시 천하를 지배한 중국의 코 앞에 조선이 위치해 있고, 일본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조선의 화이변태는 그만큼 어려웠을 것이다. 지정학의 측면에서 본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조(朝)-중(中) 관계가 ‘탈(脫)중국-화이변태’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1. 조(朝)-중(中) 관계;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지정학적인 조건
지정학은 지리학과 다르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관으로서 일국의 정치지도자들이 국가 외교전략 혹은 국방전략을 수립할 때 국내의 정치이념 및 목적과 그것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자국이 처해 있는 군사 지리적 환경과 국제관계 등 제요인에 대한 고려사항을 연구하는 학문이다.(서상문, 270~271)
이와 같은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전통적인 조-중 관계를 ‘순망치한(脣亡齒寒)’ ‘순치상의(脣齒相依)’ ‘순치지방(脣齒之邦)’ ‘순치관계(脣齒關係)’ ‘일의대수(一衣帶水)’ ‘일수상격(一水相隔)’ ‘보거상의(輔車相依)’로 설명할 수 있겠다.
[중국의 지척에 있는] 한반도는 동북아의 지형상 전략적 요충에 자리 잡고 있는 까닭으로 주변 국가들에 의해 항상 진출과 침략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한반도는 중국에 있어서 두부(頭部)를 가격할 수 있는 망치로써 전통적으로 인식되어 왔고, 일본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비수(匕首)로 묘사되어 왔었다. 중국이 전통적으로 한반도의 안보를 그들의 안보권과 직결시켰던 것은 순치관계니 순망치한이라는 등의 표현에서도 잘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박치정, 33~34)
여기에서 ‘전통적’이라 함은 과거부터 중국이 인접하고 있는 한반도를 인식하는 ‘천하관(天下觀)’과 관련되는 것이다. 중국은 고래로부터 대동적(大同的) 외교의 관점에서 한반도를 자신의 속국 또는 조공국으로 간주하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전통적 시각은 현대에 와서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이른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든지 일의대수(一衣帶水)라는 표현은 바로 이러한 중국인들의 대한반도관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이는 안전보장의 차원에서 논의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대교린(事大交隣)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데에도 이러한 관점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의 중국과 한반도는 조공을 매개로 하는 상호교류 관계를 통하여 동양적 국제정치 질서를 형성해 왔다. 여기서 중국은 형의 입장에서 아우를 돌보아 주고 한반도는 동생의 입장에서 형을 받드는 위계질서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진행되어 온 형제지간의 관계로 인해 자연스럽게 중국은 한반도를 자신의 속방 또는 속국으로 간주하게 되었고, 한반도의 조선 조정은 중국을 중원의 대국 또는 상국으로 섬기게 되었다.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단면은 청조 말 북양대신(北洋大臣)이었던 이홍장(李鴻章)의 표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중국과 귀국과의 관계는 일가(一家)요, 또한 동삼성(東三省)의 방어를 위하여 상호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귀국의 우(憂)가 곧 중국의 우(憂)이다.”
중국 혁명의 국부(國父)인 손문(孫文) 역시 조공국에는 조선이 포함된다고 하였으며, 장개석(蔣介石)도 이와 유사한 시각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요구를 주장하였다.
모택동(毛澤東)도 1936년 7월 16일 미국 언론인 에드가 스노우(E. Snow)와의 회견에서, 한반도는 중국이 상실한 하나의 식민지이며 또한 한반도가 중국의 세력권내에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중국의 외교관계를 전담했던 주은래(周恩來)도 1940년 중ㆍ일 전쟁(1884~1885년)에서 중국이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였다고 언급하였다.
이상과 같이 중국의 전통적 대한반도관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서도 잠재적 또는 현시적으로 연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박치정, 31~33)
따라서 순망치한을 거론할 때 ‘사대-조공-책봉’을 함께 고려해야한다. 예컨대 광해군이 중립외교를 펼칠 때, 순망치한의 관계 속에서 명나라에 대한 ‘사대-조공-책봉’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신흥세력으로서 새로이 순망치한의 열쇠를 쥐게 된 후금과 명나라(전통적으로 ‘사대-조공-책봉’ 관계를 맺고 있는 명나라) 사이에서 ‘외줄타기의 중립ㆍ균형 외교를 전개할 시ㆍ공간이 광해군 정부에게 주어져 있었느냐’는 질문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현재의 <중국-한반도 관계(중국ㆍ북한 관계, 중국ㆍ남한 관계), 미-중 관계 속의 한반도 위상, 미-일-한 군사공동체 對 중국-북한 군사 공동체 관계> 속에서 중립화 통일을 모색할 때에도 제기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전통적인 순망치한’과 ‘현재의 순망치한’이 만난다. 전통적인 순망치한을 고려하면서 현재의 순망치한을 재해석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중국을 중립화 통일 쪽으로 끌어들이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의 ‘북한-중국 순망치한 관계’를 재조명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전쟁을 통해 남한 땅을 미국에 빼앗겼으므로 순망치한 관계는 북한으로 제한된다. 중국-남한은 군사ㆍ안보적인 순망치한 관계라기보다 경제적인 교류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2. 북한-중국의 순망치한 관계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를 설정함에 있어 다른 나라와는 달리 반드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명제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순치(脣齒)’ ‘혈맹(血盟)’ 등으로 표현되는 불가분의 특수한 역사․ 배경과 관련된 문제이다.
북한과 중국과의 특수한 관계는 다음과 같은 배경에 연유하고 있다.
첫째, 지리적 인접성을 들 수 있다. 양국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선으로 하여 1,350㎞에 달하는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어 안보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관계를 갖고 있다.
둘째, 역사적인 상호관계를 들 수 있다. 양국은 오랜 기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생활양식 등 모든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해왔다.
셋째, 혈맹적 관계를 들 수 있다. [북한의] 노동당은 항일시기부터 중국 공산당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는가 하면, 한국전쟁 당시에는 중국이 참전하여 북한을 기사회생시킨 바 있다. 이 인연으로 북한과 중국은 그야말로 혈맹관계를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북한 연구학회, 409~410)
이러한 ‘혈맹적 순치관계’의 배후지는 중국 동북지방(東三省, 만주)으로서, 대륙을 바라보며 중립화 통일을 생각할 때 가장 주목해야할 곳이다.
이홍장(李鴻章)이 이미 “일본이 조선을 침공하면 동삼성(東三省), 즉 만주가 위험하여 이른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니 그 후환이 이루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고 언급했다.(김용구, 237)
중국의 동북지방, 만주는 북한ㆍ러시아ㆍ몽골과 인접하고 동해와 황해를 사이에 두고 한국과 일본을 마주보고 있는, 동북아의 핵심지대(Heartland)이다. ‘동북[만주]을 지배하는 자가 동북아를 제패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동북지방은 전략 지리적으로, 그리고 경제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중국이 동북공정과 동북진흥 계획을 통해 이 지역에서 물적ㆍ이념적 토대를 공고히 한다면 동북지방은 다시 동북아의 핵심지대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동북지방의 지정학적 역할과 위상의 변화는 분단의 해소와 통일을 지상과제로, 생존의 조건으로 안고 있는 우리에게 만만치 않은 시공간상의 압박으로 다가올 것이다.(홍면기, 57ㆍ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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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자료>
* 김용구『세계관 충돌과 한말 외교사, 1866~1882』(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1)
* 박치정「초기 조ㆍ중 관계의 형성과정 연구」『中國硏究』제21집(2002.12)
* 북한연구학회 엮음『북한의 통일외교』(서울, 경인문화사, 2006)
* 서상문「지정학적 관점에서 본 마오쩌둥의 6.25 개입동기」『STRATEGY 21』제19호(2007년 봄ㆍ여름호)
* 홍면기『영토적 상상력과 통일의 지정학』(서울, 삼성경제연구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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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평화 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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