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
1. 지정학이란?
지정학은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인간과 그 공간환경 간의 상호 작용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학문 분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지정학은 국가를 하나의 공간현상으로 파악하고, 그 행위를 영토, 기후, 유기적ㆍ무기적 자원의 양 및 분포와 같은 제반 특성들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인구성장과 그 분포, 사회ㆍ문화적 속성, 경제활동, 정치구조와 같은 인문적 요소들을 고려하여 분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리적 공간환경을 의미하는 ‘지오(geo)’는 이러한 공간환경적 속성의 위치, 도달범위 그리고 근린관계 등과 관련하여 파악되며, ‘정치(politic)’는 전통적으로 국민-주권-영토의 삼위일체의 핵심으로서 주권의 범주와 연결되어 왔다. 이렇듯 지정학은 정치지리학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행위가 공간에 작용하며, 정치적 과정 자체는 공간에 작용하는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결국 공간적 환경요소를 통하여 표출된다는 논지를 견지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정학은 지리를 국가의 대외발전을 설명하는 틀로서 활용하고 있으며, 나아가 외교나 군사정책 등의 이슈를 응용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하나의 방법론이자 지식체계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안영진, 136)
2. 지정학의 이론
여러 가지 지정학의 이론 중에서 한반도에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마한(Alfred T. Mahan)의 ‘해양권력(sea power)’론
약 1840년 경부터 미국민들은 ‘명백한 숙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지정학적 관념을 창출하여 공간적 팽창을 합리화했다. 미국민들은 리오그란데 강 이북의 멕시코 땅을 빼앗는 것을 신의 섭리를 완성하기 위한 사명의 일환으로 간주했으며, 서부 나아가서 태평양으로의 팽창에도 같은 지정학적 관념을 적용했다. 1890년 마한은『해양권력이 역사에 미친 영향(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 1660-1783)』이라는 책에서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새로운 의미의 ‘명백한 숙명’을 제창했다.
마한은 ‘이제 대륙적 팽창이 완수된 만큼, 미국은 해양제국의 건설을 위한 기지의 확보에 매진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마한은 지구의 4분의 3을 덮고 있는 바다를 순항할 수 있는 해양권력을 국가의 성장, 번영 그리고 안전에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마한은 미국이 해외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의 억센 경쟁에 뛰어들고 대해군을 건설하고, 해외 해군기지를 확보하고 또 서반구 외의 지역에서 식민지 획득으로 영토 팽창을 해야 한다고 확신했다.(한국정치학회, 83~84)
2) 맥킨더(Halford John Mackinder)의 심장지역(Heartland)론
영국의 지정학을 대표하는 학자는 핼퍼드 맥킨더이다. 독일 지정학의 깊은 영향을 받았던 그의 이론은 마한과 대조적으로 대륙세력을 강조했다. 맥킨더의 주장은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체스판 위에서 러시아와 벌이고 있던 영국의 ‘거대한 게임(Great Game)’을 반영했다.
1904년 맥킨더는「역사의 지리적 추측」이라는 논문을 통해 ‘추축지대(Pivot area; 시베리아 전체와 중앙아시아의 대부분을 일컫는 개념)’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맥킨더는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Democratic Ideals and Reality)』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맥킨더는 ‘심장지역(Heartland)’이라는 개념을 통해, 육로수송에서의 발전, 인구증가 그리고 공업화 등을 고려하여, 발트 해로부터 흑해를 거쳐 동유럽까지를 유라시아(심장지역)의 전략적 첨부지역으로 포함, 핵심지역을 확대했다. 맥킨더는 “동부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심장지역을 지배하고, 심장지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섬(World-Island)를 지배하며, 세계섬을 지배하는 자가 전 세계를 지배한다”고 보았다.(한국정치학회, 85~86)
그는 유라시아 대륙의 반도부에 위치하고 있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중국해안까지 펼쳐진 연속된 띠 모양의 ‘내주 또는 연변의 초승달 지대(inner or marginal crescent)’와 영국, 일본 그리고 남북 아메리카 대륙 등으로 구성되는 ‘외주 또는 도서 초승달 지대(outer or insular crescent)’를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지대는 심장지역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이영형, 256)
3) 스피크먼(N.J. Spykman)의 주변지역(Rimland)론
스피크먼은 1944년『평화의 지리학(The Geography of Peace)』을 통해 매킨더가 강조한 심장지역의 취약점들을 열거하면서, 전시나 평시를 막론하고 심장지역과 주변지역의 결합을 막는 것이 미국의 전략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피크먼은 ‘유럽의 역사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지역 국가군과 내륙의 러시아와의 대립과 지배권 다툼의 역사’라고 규정하고 “주변지역을 장악하는 자는 유라시아를 지배하고,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자는 세계운명을 지배한다”고 주장했다.(한국정치학회, 90~92)
스피크먼은 맥킨더의 이론이 수송체계의 발달로 인하여 ‘하트랜드[심장지역]’의 중요성이 감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트랜드’의 잠재적인 힘을 지나치게 과대 평가하고 있음을 비판하였다. 스피크먼은 맥킨더가 지적한 ‘내주 또는 연변의 초승달 지대(inner or marginal crescent)’를 ‘림랜드(rimland; 연변지대)’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하트랜드’ 제국이 아닌 ‘림랜드’ 국가가 유라시아를 지배할 수 있다는 반대 이론을 제기하였다.
‘림랜드’는 해양세력과 대양세력 간의 치열한 각축의 무대이며, 연결 공간이다. 따라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간의 끊임없는 충돌이 일어나는 ‘림랜드’를 통제하는 자가 세계를 통제한다고 생각했다.(이영형, 256)
3. ‘동북아’라는 림랜드 속의 한반도
해양세력과 육지세력이 충돌되는 동북아 지역은 림랜드에 포함된다. 지정학 연구는 ‘패권’의 이름과 함께 한다. 소련체제의 붕괴와 동시에 맥킨더가 강조했던 ‘하트랜드(heratland)’에 대한 중요성은 상실되었지만, 스피크먼이 강조했던 ‘림랜드(Rimland)’의 중요성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동북아 지역에서 미ㆍ일ㆍ중ㆍ러시아가 지역 헤게모니 장악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이영형, 258)
해양세력과 대양세력간의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는 무대는 동북아시아이고, 이 동북아시아의 ‘하트랜드(심장지역)’는 한반도이다. 한반도라는 축(Pivot)’ ‘추축지대(Pivot area)’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의 전쟁과 평화가 결정되는 측면이 있다. 한반도가 동북아시아의 램랜드 속의 지정학적인 축(Pivot)이기 때문에, 임진왜란ㆍ병자호란 이후 줄곧 국제대리전의 전쟁터가 되었다. 이러한 한반도를 광해군처럼 중립ㆍ균형 외교를 통해 평화적으로 관리하면 한반도ㆍ동북아시아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으나, 인조 이후의 서인ㆍ노론 정권이 펼친 숭명배청(崇明排淸)의 일방적인 종속 외교를 전개하면 망국과 (망국 이후의) 분단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따라서 현재의 분단체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며 중립화 통일을 성취하려면, 한반도라는 ‘림랜드의 축’을 ‘평화의 축(Pivot of Peace)’으로 전환시켜야한다. 부시 정권에 의해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낙인 찍힌 북한을 ‘평화의 축’으로 변환시키기 위해 미국 스스로 노력해야한다. 미국의 패권을 확장하기 위한 ‘림랜드’론을 ‘동북아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중립화 통일을 위한 이론’으로 뒤엎어 분단체제를 청산하는 작업이 긴요하다. ‘림랜드’론과 같이 미국의 패권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을 지양하고 ‘동북아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중립화 통일을 위한 지평화학(geopacifics; 地平和學)’을 새로 정립하는 일이 중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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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자료>
* 안영진「지정학의 르네상스에 대한 一考」『地理學 論究』23호(2003.2)
* 이영형「동북아 국제관계의 지정학적 해석」『동북아 연구』5(2000.12)
* 한국정치학회 엮음『정치학 이해의 길잡이 (5)』(파주, 법문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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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평화 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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