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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중립화, 영세중립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30)--- 지정학적인 조건 ④

김승국


지정학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그 방향을 전환하려는 노력은 이미 1950년대 테일러(G. Taylor)에 의해 시도된 바가 있다. 그는 세계평화의 진흥을 목표로 한 지평화학(geopacifics)을 제창하였다. 지평화학은 현실의 지리적 기반에 입각하여 자유와 인간성에 관한 가르침을 행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였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인간성에 기초한 지정학이었다.(안영진, 143)


이와 같은 ‘지평화학’의 입장에서, 한반도(동북아라는 림랜드 속의 추축지대ㆍ전략적 요충지대)의 분단사(分斷史)를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가운데, ‘평화적인 경계 만들기’에 관한 필자의 의견을 제시한다.


1. 한반도의 분단과 지정전략(이영형, 419~421)


동북아 Rimland 공간에 위치하고 있는 한반도는 아시아 열강들의 주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열강들의 지정전략 차원에서 한반도의 분단이 제기되곤 했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제기되었던 한반도의 분단사는 16세기 말부터 그 유래가 보여진다.


  1)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선봉으로 한 일본군이 침략하자, 조선 왕조는 중국의 명나라에 침략자들을 물리쳐 주도록 요청했다. 중국이 개입하여 일본군이 남부지역 일부만을 점령하는 데 그치고,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교착 상태가 지속되자, 도요토미는 일본이 충청-강원-전라-경상도 등 남부 4개도를 점령하고, 나머지 4개도(함경-평안-황해-경기도)는 조선의 왕이 지배하도록 하자는 제의를 하였다. 이 제의를 중국과 조선 양측이 거부하였고, 1598년 도요토미가 사망하자 일본군은 조선으로부터 철수하였다. 이때 제의된 분단선은 북위 38도선에서 45마일 정도 남쪽에 이어진 선이었다.


  2) 한반도의 분단 논의는 1894년 다시 제기되었다. 1894년에 발생한 동학란이 진압되자 조선왕은 중국과 일본군의 철수를 요구하였으나, 그들[중국ㆍ일본군]은 이 요구를 묵살하였다. 그리고 그들간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양 군대간의 충돌이 예상되지 영국이 중재에 나섰다. 1894년 7월 영국 외상인 킴벌리(Kimberly)경이 ‘극동의 평화를 위하여 조선을 중립화하든지 청(淸)과 일본이 조선을 분할하여 점령하자’고 제의하였다. 결국 청ㆍ일 전쟁이 이 분쟁을 종식시켰다.


  3) 1896년과 1903년 러시아와 일본은 북위 38도 또는 39도선에서의 한반도 분할에 대해서 논의했다. 러시아의 주요 목적은 부동항의 획득이었다. 일본은 러시아가 38도 이북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이남은 일본의 영향권으로 하자고 제의하였다. 러시아는 조선 전체를 점령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일본의 제의를 거절하였다. 일본은 러시아와의 일전을 예상하고, 전쟁 준비를 하게 된다. 이의 일환으로 ‘영일동맹 조약’을 체결하였다. 궁지에 몰린 러시아는 1903년 10월 한반도의 39도선 이북은 어느 나라의 군대도 주둔하지 않는 완충지대로 하고, 그 이남 지역은 일본의 영향권으로 인정하겠다는 제의를 하였다. 일본은 이에 대하여 한-만 국경지역에 남북으로 50마일씩 100마일의 비무장지대를 설치하자는 역제의를 하였다. 러시아가 이 제의를 거부하자, 일본은 1904년 2월 10일 대러시아 전쟁을 선포하였다. 러ㆍ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여 러시아는 조선에서의 영향권을 잃게 되었다.


  4) 한반도 분할 제의는 1945년 8월 15일 현실로 나타났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처리과정에서, 미국은 소련의 남진을 봉쇄하기 위해서 38선에 의한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을 제의하였고, 소련이 이를 수락하여 분단이 현실화되었다. 동북아 Rimland 공간에서 강력한 지정전략을 구사하는 게임 참가자들에 의해서 한반도가 분단된 것이다.


결국,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주변 강대국의 지정전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화되었고, 분단된 한반도의 한민족이 서로를 불신하여 왔다. 따라서 한반도의 과제는 선명해진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안겨다 주는 장점을 유용하게 활용하면서, 그리고 주변 4강의 지정전략을 세밀하게 분석 및 대응하면서 [중립화] 통일과 동북아 시대를 준비할 수 있는 전략을 부단히 개발해야 할 것이다.


2. 평화적인 경계 만들기


한반도가 동북아의 Rimland에 위치한 지정학적인 위상 때문에, 16세기~20세기에 되풀이된 강대국들의 한반도 분할ㆍ분단 발상 자체를 근절하는 대안이 요청된다. 여러 가지의 대안 중의 하나로 한반도를 중립지대로 만들어 통일시키는 중립화 통일 방안을 생각할 수 있겠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안겨다 주는 장점을 유용하게 활용하면서 중립화 통일을 준비하는 발상연습이 필요하다. 그러한 발상연습으로 ‘평화적인 경계 만들기’를 시도한다.


중립화 통일을 논의할 때 등장하는 ‘경계’는 ① 남북한의 분단선(DMZ) ② 한반도 주변의 해상 교통로(Sea Lane)ㆍ육상 교통로(Land Lane)이다.


  1) DMZ


[1953년의] 종전은 38선에 가까운 경계의 설정을 낳았다. 그것은 외국 국가가 추진하고 결정한 것이었다. 오늘날까지 경계를 사이에 두고 매우 제한된 유출입만이 미 주둔군의 지원으로 통제되고 있으며, 국경선[분단선; DMZ]은 중무장되어 있다. 남한 진영에서는 지뢰가 도로에 매설되어 있고, 다리는 요새화되었으며, 검문소마다 기관총이 설치되어 있다. 북한 국경은 접근 불가능하다. 전쟁은 기술적으로 아직도 진행 중이고, 오늘날에도 전쟁이 어느 순간에나 발생할 수 있어, 한반도에는 아직도 공포가 존재한다.
미국은 한국 경계선에 대한 긴장을 완화시키는 정책을 자신들의 지구 지정학 코드를 진전시키는 수단으로 평가했다. 조시 W. 부시가 취임하자 미국은 대북 강경책을 채택하여, 3개국[남북한ㆍ미국] 간의 전체적인 그림이 변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언급했으며,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제작 능력에 관심을 기울였다. 강경한 미국의 주장은 북한의 태도를 경직시켰고 국경[DMZ]간의 상품과 인적 교류를 증가시키려는 협상에 제동을 걸었다.
한반도 사례는 사실상 변화가 없는 군사화된 경계의 하나이다. 그 경계는 한국전쟁에서 시작된 가장 폭력적인 형태의 것으로, 극단적인 지정학 영향의 산물이다. 경계의 확립, 설정, 통제는 냉전의 한 구성요소이다. 경계 레짐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미국의 관심에 초점을 둔 새로운 지정학적 맥락에 의해 방해받고 있다. 지금까지 한반도 경계의 특성은 좀 더 개방적인 경계의 문제들로 나아가려는 남북한 국가에 의해 간헐적인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세계 규모에서 작동하는 지정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콜린 플린트,  250~252)


이처럼 세계 규모에서 작동되는 지정학의 산물인 DMZ의 경계(분단선)를 허무는 ‘평화로운 경계 만들기’ 발상이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필자의 ‘점(点)-선(線)-면(面) 이행 전략’을 제시한다.


한반도 평화통일의 제1차적인 점(거점)을 비무장 지대(DMZ)의 세 곳(금강산, 철원, 개성)으로 상정하고, 이 세 개의 점을 잇는 선을 중심으로 면을 확장해 나아간다는 구상이 ‘점-선-면 이행 전략’이다. 중국은, 심천 등의 해안선 특구에 개혁개방의 점(거점)을 먼저 조성하고(제1단계), 선(특구들 사이의 선)을 이어(제2단계) 개혁개방의 면(공간)을 만든 다음, 내륙으로 개혁개방의 면(공간)을 확대(제3단계)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 역시 비무장 지대에서 시작되는 점-선-면의 3단계 이행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반도 평화통일의 점-선-면 이행은, 금강산에서 성공한 경제-안보 연계 모델을 바탕으로, 3단계에 걸쳐 ‘DMZ의 소(小) 평화 지대를 한반도 전체로 확장’하는 게 바람직하다.(김승국, 17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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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자료>
* 김승국『잘사는 평화를 위한 평화 경제론』(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 안영진「지정학의 르네상스에 대한 一考」『地理學 論究』23호(2003.2)
* 이영형『지정학』(서울, 엠-에드, 2006)
* 콜린 플린트(Colin Flint) 지음, 한국지정학 연구회 옮김『지정학이란 무엇인가(Introduction to Geopolitics)』(서울, 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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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평화 활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