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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중립화, 영세중립

코스타리카의 비무장 영세중립---남북통일에 주는 함의ㆍ시사점

김승국


코스타리카의 정식명칭은 Republica de Costa Rica이고 통칭은 Costa Rica이다. Costa Rica는「풍부한(Rica) 해안(Costa)」이라는 뜻이며,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이 땅에 상륙했을 때 조우한 先住民(인디헤나; Indígena)이 금세공(金細工)의 장식품을 몸이 지니고 있었던 데에서 이 이름이 붙었다. 공식적인 영어표기는 Republic of Costa Rica이고 통칭은 Costa Rica이다. 우리말로 ‘코스타리카 공화국’이라고 표기하면 정확하며 이 글에서는 ‘코스타리카’라는 국명을 사용한다.


중앙 아메리카 남부에 위치하는 이 나라는, 북쪽의 니카라과, 남동쪽의 파나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남쪽은 태평양을 북쪽은 카리브해를 향하고 있다.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통치를 받아오다가 1838년에 독립했다. 수도는 상 호세(San José). 인구는 2003년 3월 현재 415만 명이며, 그 중 스페인계 백인이 94%, 아프리카계 흑인 3%, 先住民(인디헤나) 1%, 중국계 1%, 기타 1%이다. 1970ㆍ80년대의 니카라과 혁명 이후, 니카라과에서 건너온 이주민이 150만 명 정도된다. 가톨릭 신자 85%, 개신교 신자(Protestant) 14%, 기타 1%의 기독교 국가이다. 남한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5만㎢의 작은 나라이지만, 평화의 대국, 생태의 대국이다. 생태 평화(Eco Peace)의 대국이다. 풍부한(Rica) 해안(Costa)을 갖춘 ‘풍부한(Rica) 평화(Paz)=Paz Rica’의 국가, 평화를 지향하는 평화국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비무장(군대 없는) 중립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평화국가이다.


그러면 코스타리카가 ‘비무장(군대 없는) 중립 평화국가’가 된 배경ㆍ경과를 알아본다. 먼저  비무장(군대 없는) 중립국가의 의미를 살펴본다.


Ⅰ. 비무장 중립국가의 의미


‘비무장 중립 국가’는 ‘비무장+중립’의 ‘국가(평화국가)’를 의미한다. ‘비무장’은 ‘군대가 없는’ ‘군대를 제도적으로(법률ㆍ선언 등을 통해) 폐지한’ ‘상비군이 없는(경찰은 있을 수 있음)’ ‘평시의 무장을 포기한 상황(국가의 존립이 위협받을 때에는 재무장을 시도할 수도 있음)’ 등의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중립’ 역시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무장의 상태에 따라 ‘무장 영세 중립(스위스ㆍ오스트리아)’ ‘비무장 영세중립(코스타리카)’으로 나뉜다. 무장한 중립국가가 상대적으로 많으며, 비무장 중립국은 코스타리카ㆍ파나마ㆍ산마리노ㆍ리히텐슈타인ㆍ바티칸 뿐이다<일본은 헌법 제9조에 따라 비무장을 명언했지만 중립은 아니므로 비무장 평화주의를 법률적으로 표방하는 나라이다(현실적으로는 중무장 국가)>. 이렇게 ‘비무장’과 ‘중립’의 조건을 둘 다 갖추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비무장 중립국가의 숫자가 줄어든다. 


  1. 비무장(비군사적인) 중립국가 코스타리카


스위스의 변호사인 크리스토프 발비(‘탈군사화 협회’의 대표)는 군축과정을 ‘탈(脫) 군사화’, 군대가 폐지된 상태를 ‘비(非) 군사화’라고 부른다. 그는 세 개의 기준에 따라 군대 없는 국가를 선정한다. 비군사화의 기준은 ① 헌법에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고 명언明言한다(코스타리카ㆍ파나마). 평시에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거나(리히텐슈타인) 경찰을 두고 있지만 군대에 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다 ② 실제의 제도로 경찰ㆍ세관ㆍ국경 경비대와 군대를 구별한다 ③ 현실적으로 무기ㆍ군부대를 보유하지 않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기준을 통과한 비군사적인 나라(군대 없는 나라)는 27개국이다.


이들 군대 없는 나라 27개국 중에서 중립정책을 취하고 있는 나라가 코스타리카이다. 중립국가 코스타리카가 헌법에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며 비군사화의 길을 명언했으므로 비군사적인 중립국가이다. ‘비무장 중립국가 코스타리카’라고 통칭(通稱)할 수 있지만 더 구체적으로 ‘비군사적인 중립국가 코스타리카’가 적절한 것 같다.


‘군대 없는 중립국가 코스타리카’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코스타리카의 군대는 폐지되었지만 준 군대(準軍隊; 군대에 準하는)의 경찰력이 있다’는 비판(물론 ‘군대 없는 코스타리카’를 주창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음)이 있기 때문에 약간의 무리가 따른다. 군대 없는 중립국가 코스타리카>비무장 중립 국가 코스타리카>비군사적인 중립국가 코스타리카의 범주를 설정하고, 상황에 맞게 이 세 가지 범주를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필자 역시 이 세 가지 범주를 상황ㆍ문맥에 따라 사용한다.


Ⅱ. 코스타리카의 ‘비무장 중립’


코스타리카의 경우, 스위스ㆍ오스트리아의 무장 중립과 달리 비무장(비군사적) 중립을 선택한 점이 특징이므로 ‘비무장’이 중요한 관건이다. 역사적인 순서로 보아도, 먼저 비무장의 길을 걸은 뒤에 중립을 선언했다. 또 헌법에 규정된 비무장의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중립도 훼손되므로, 비무장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1. 비무장의 길; 휘겔레스의 결단


1948년 대통령 선거의 부정과 관련하여 야당 지도자인 휘겔레스가 반란(쿠데타)을 일으키는 바람에  내전이 발생했다. 이 내전은 6주일간 지속되었으며, 쌍방의 희생자가 2,000명에 이르렀다. 내전 끝에 훼겔레스가 승리했다.


내전에서 이겨 정권을 장악한 휘겔레스는 국민 해방당(PLN)을 창설했으며, 이 국민 해방당이 코스타리카의 비무장 중립을 주도한다<기독교 사회 연합당(PUSC)이라는 보수 정당은 비무장 중립정책을 반대하거나 비판적이다. 코스타리카의 정치는 PLN과 PUSC가 번갈아 집권하는 양당제로 운용된다>. 1948년 4월말에 휘겔레스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그는 반란군의 사령관에 지나지 않았다. 휘겔레스는 기본적으로 친미(親美) 정치가이었지만, 쿠데타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의 입장 때문에 곤경을 치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18개월의 기간을 정해놓고 혁명평의회를 운영한다는 구상이었다. 이 구상에 따라 휘겔레스의 좌우에 있는 정적을 제거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휘겔레스는 좌익세력을 탄압(인민 전위당ㆍ노동자 위원회의 비합법화, 좌익정당 당원의 공직추방)하는 한편 구(舊)정부 간부의 자산을 몰수하고 국외로 추방한다. 이렇게 좌우익 세력을 무력화한 휘겔레스는 대담한 개혁을 시도한다. 개혁의 핵심인 헌법제정의 중요한 사항으로 군대를 폐지하는 조항을 넣는다. 이는 칸트(Immanuel Kant)의『영구 평화론(Zum ewigen Frieden)』에 나오는 ‘상비군 폐지’를 현실세계의 국가권력이 실행한 것으로, 사상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물론 코스타리카에 앞서 군대를 폐지한 나라가 있었다. 1920년대에 니카라과, 도미니카가 군대를 폐지했다. 이들 두 나라는 정계대립~내전~미국의 개입~미군의 일시점령이라는 악순환을 겪었다. 미국은 두 나라의 내전의 원흉이 군대라고 판단하여 군대를 폐지하고 군대 대신에 국가 경비대를 신설했는데, 미국의 충견(忠犬)인 국가 경비대를 통해 소모사와 같은 독재가가 탄생한다. 두 나라는 미국의 외압에 의해 군대를 폐지한 것으로, 자력으로 군대를 폐지한 코스타리카와 완전히 다르다. 코스타리카의 정치집단ㆍ국민의 힘으로 군대 폐지의 헌법을 제정한 것이, 니카라과ㆍ도미니카의 他力的인(미국에 의한) 군대폐지와 다른 점이다. 특히 휘겔레스와 같은 친미 정치인이 미국의 예상되는 압력을 넘어 군대를 폐지한 결단은 높이 평가된다.


  2. 코스타리카의 비무장 헌법


군대 폐지의 조항이 들어 있는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The army as a permament institution is proscribed. For vigilance and the preservation of the public order, there will be the necessary police forces. Only through continental agreement of for the national defense may military forces be organized; in either case they shall always be subordinate to the civil power; they may not deliberate, nor make manifestations or declarations in individual or collective form.”
“상비(常備)기관으로서의 군대는 금지된다. 공공질서의 감시ㆍ유지를 위해 경찰력을 둔다. 미주(美州)의 협정에 의하거나 국가의 방위를 위할 때만 군사력을 조직할 수 있다. 그 어떤 군사력도 언제나 문민권력에 종속된다. 군대는 개인적ㆍ집단적인 형식의 성명ㆍ선언을 토의하거나 발표해서는 안 된다.”


헌법 12조의 ‘상비(常備)기관으로서의 군대는 금지된다’에서 ‘군대’를 명시하면서 군대를 금지ㆍ폐지시킨 점이 코스타리카 비무장 중립의 출발점이다. 이 출발점은 일본 헌법 9조의 출발점과 다르다. 일본 헌법 제9조의 조문<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해당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그밖에 전력은 이를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에서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은 이를 보유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으나, 코스타리카 헌법과 같은 ‘상비군 폐지’ 조항이 없기 때문에 자위대의 중무장화의 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미주(美州)의 협정에 의하거나 국가의 방위를 위할 때만 군사력을 조직할 수 있다’는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의 유보조항은, 일본헌법 제9조의 ‘국권의 발동에 해당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보다 철저하지 못하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코스타리카의 헌법은 비상시에 군대를 조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147조에 의하면 대통령ㆍ각료로 구성된 정부 평의회가, 국회에 국가방위 비상사태의 선언과 징병의 승인을 요청하고, 제121조에 의해 국회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여 승인(비상시의 군대조직에 대한 승인)할 수 있다. 비상시의 군대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일본헌법 제9조에 뒤진다. 일본헌법 제9조가 법규적으로 더욱 철저하다.


코스타리카 헌법의 12조와 일본의 헌법 9조 모두 평화헌법이지만, 헌법 제정의 배경이 다르다. 일본 헌법은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 군정이 ‘다시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수 없게 원천봉쇄’한 타력(他力)에 의한 헌법인데 비하여, 코스타리카의 헌법은 자력적인 헌법이다. 그러나 미국의 입김이 강한 미주 기구(OAS)ㆍ미주 상호원조 조약(리오 조약)에 의존하는 게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친미국가인 코스타리카가 군대 없는 상태의 국가안전을 미국주도의 국제기구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인 고뇌가 내재되어 있다(코스타리카가 OASㆍ리오 조약과 관련을 맺지만, OASㆍ리오 조약이 일으키는 전쟁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3. 코스타리카의 경찰은 準軍隊?


코스타리카의 경찰력에 대한 평가가 학자ㆍ평론가마다 다르지만, 인색한 평가를 위해 ‘코스타리카의 경찰력이 準軍隊의 수준에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의 글을 아래와 같이 인용한다.


코스타리카의 경찰력은 현실적으로 어떤 것일까? 국제적으로 정평이 있는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의『Military Balance 2000-2001(Oxford Univ. Press, London, 2000)』에 의하면, 
전체 치안병력(準軍隊) 8,400명(인구의 0.22%)
이중에서 시민 경비대 4,400명(전술부대ㆍ특수부대 포함)
국경 경비대 2,000명
지방 경비대 2,000명<小火器(輕기관총ㆍ소총)만 보유>이다.

코스타리카의 경찰법에는, 분명히 일본의 경찰법과는 다른 규정이 보인다. 그것은 코스타리카의 경찰이 군대의 측면을 가지고 있는 데에서 파생된다고 생각된다. 시민 경비대(Guardia Civel)의 경비대Guardia라는 용어는, 군대(Ejercito)와 경찰(Policia)의 중간의 강도(强度)를 갖는 ‘치안기관’이다. 경비대(Guardia)는, 중남미에서 역사적으로 상당한 중장비를 갖거나, 군대 바로 그것일 경우도 있다.

[코스타리카의] 시민 경비대는, 로켓 발사기(發射器) 90밀리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의 경찰(권총, 라이플 등의 小火器 보유) 이상의 장비를 갖추고 있다. 지방 경비대는 小火器만 보유하고 있다. 또 치안ㆍ첩보ㆍ對테러 특수부대도 존재한다. 많은 장교들이 미국ㆍ한국ㆍ대만ㆍ이스라엘의 군사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고 한다.

미소 대결 시대에 미국의 서반구 지배를 위해서 만들어진 미주 기구(OAS)와 리오 조약에 코스타리카의 안전을 연계시키는 게 문제이다. 또 2002년 10월에 (마약 박멸의 구실을 내세운) 미군의 중남미 파견계획인「콜롬비아 계획」에 근거하여, 함선 15척을 코스타리카에 장기간 기항하게 하고 싶다는 미국정부의 요청을, 코스타리카 정부가 최종적으로 승인하였다.


코스타리카의 경찰이 準軍隊임을 밝히는 新藤通弘(신도미찌히로)은, ‘군대 없는 코스타리카’를 미화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하여 위의 글을 썼다고 밝힌다.


新藤通弘의 準軍隊론은 ‘중남미의 경찰 경비대(Guardia)의 준(準)군대화’를 지적하여 설명하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으나, 군대와 경찰의 구분에 대하여 소홀한 것 같다.


경찰은 군대와 동일하지 않다. 경찰은 대내적 실력(對內的 實力)이며, 국내의 치안유지를 담당한다. 편제도 무기도 이에 적합한 것이다. 경찰관은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civilian)이며 실력행사를 할 때 자기를 포함한 사람ㆍ물건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한다. 한편 군대는 경찰력의 보완으로 대내적인 치안출병(治安出兵) 등에 쓰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대외적(對外的) 실력이며 조직ㆍ무기 등의 규모가 경찰과 비교할 수 없다. 최우선 사항은 작전목적의 달성이며 희생자를 발생시키는 점에서도 경찰과 다르다. 군대의 지고(至高)의 의무는 승리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강해지기 위해서는 확고한 통솔력ㆍ통일성(統一性)이 요청된다. 봉건적 신분사회를 연상케 하는 계급ㆍ명령의 절대성ㆍ우선성(優先性)이 불가피한 요소로 등장한다.


新藤通弘이 말하듯이 1970~1980대에 코스타리카의 경찰이 準軍隊의 모습을 보였을지 모른다. 1973년의 세계불황 탓으로 라틴 아메리카에 공산정권이 계속 탄생했다. 그 무렵 니카라과의 공산정권[산디니스타 정권]은, 미국의 가상적국(假想敵國)이었으며 (자국의 영토 안에 콘트라Contra 기지 건설을 강요받은) 코스타리카에게도 가상적국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코스타리카 경찰은 군복을 입고 계급도 군대식이었다. 그러나 니카라과 공산정권이 1989년에 종식되자, 코스타리카 경찰이 시민을 지키는 본연의 임무에 주력하면서 준 군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 


  4. 몬헤 대통령의 중립 선언


    1) 중립 선언의 경과


코스타리카의 중립은, 1983년 몬헤 대통령의 중립 선언에 의해 확립되었다. 그러면 중립 선언은 어떠한 경위로 결정되었으며 어떤 내용을 갖고 있을까? 국민 해방당의 몬헤가 1982년 5월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코스타리카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부딪치고 있었다. 대외채무는 26억 달러이었으며 커피 등의 수출 가격도 부진했다. IMF(국제 통화 기금)의 지시에 의한 재정긴축 정책을 앞선 정권과 동일하게 실시할 필요가 있었다. 수도 산호세에는, CIA가 지원하는 ‘콘트라(Contra;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권에 반대하는 무장 세력)’라고 부르는 민주혁명동맹(ARDE)이 사령부와 방송국을 가지고 있었고 북부에서는 전투 기지를 설치하고 있었다. ARDE는 코스타리카의 영토 안에서 자유롭게 니카라과에 출격하고, 코스타리카로 귀환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이러한 활동은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의 중대한 위반이다]. 몬헤는 대통령 취임 이후 이러한 콘트라의 반(反) 산디니스타 활동을 ‘비밀리에, 억제하고, 주의 깊이 한다면 허가하겠다’는 모호한 태도로 갖고 있었다. 몬헤 정권은, 반공주의와 중립정책 추구의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미국이 코스타리카에 막대한 원조를 주기 때문에 미국에 협력하지 않을 수 없어서, 콘트라의 코스타리카 영토내의 활동에 특별히 관대했다.


그러나 ‘콘트라의 활동을 용인하는 것은 코스타리카의 전통적인 중립 정책에 모순된다’는 비판이 국내에서 높아졌다. 콘트라의 존재를 둘러싼 좌우의 대립이 격화하고 몇 건의 테러 사건이 일어났으며, 쿠데타 소문까지 나돌았다. 더욱이 콘트라의 폭력사건으로 농민 6명 이상이 살해된 사건이 북부지역에서 1983년 중반에 일어났다. 국민 해방당 안의 좌파는, ‘인민 동맹(좌익 정당)ㆍ노동조합ㆍ일반시민의 콘트라 국외추방 요구’를 배경으로, 중립을 유지하도록 우파의 몬헤에게 압력을 넣었다. 정권 내부의 대립도 격화했다. 그래서 콘트라의 활동에 대한 무언가 강력한 규제가 필요해졌다. 이러한 움직임에 밀려 몬헤 대통령이 1983년 9월 ‘영세적ㆍ적극적ㆍ비무장적인 중립’을 대통령 선언으로 발표한 것이다.


이 대통령 중립 선언은 ① 코스타리카를 중미(中美) 분쟁[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권을 에워싼 분쟁]으로부터 격리한다 ② 코스타리카는, 두 나라 사이의 분쟁을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 ③ 제3국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 ④ 어떠한 무력분쟁에도 휘말려들지 않고 중립외교 정책을 진척시킨다 ⑤ 여러 국가 내부의 무력분쟁에 대하여 항구적으로 중립을 지킨다 ⑥ 전쟁 상태의 당사자에 대한 작전기지를 코스타리카 영토 안에서 이용하는 것, 무기·병사의 수송, 병참 활동, 활동을 위한 사무소의 설치를 금지한다 ⑦ 분쟁 당사자에 대한 적대행위 혹은 지원행위를 삼간다 ⑧ 군비 확장에 반대하고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한다 ⑨ 서방(西方)의 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한다 ⑩ 이러한 중립 정책은 영세적(永世的)인 것이다 ⑪ 코스타리카의 안전보장은 미주기구(OAS)와 미국 상호원조 조약[리오 조약]에 의존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2) 법률적인 근거
  

몬헤 대통령은, 중립선언의 내용을 헌법에 집어넣으려고 했지만 국회에서 3분의 2에 미달하여 부결되었다. 그래서 대통령 선언을 했다. 이 선언의 법률적인 유효성에 대하여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코스타리카 헌법 제7조는 조약ㆍ국제협정ㆍ약정은 국회의 승인을 얻음으로써 유효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립 선언은 국제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지만, 국회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따라서 법률적으로 어디까지나 몬헤 대통령의 결의 표명이며, 뒤이은 정권의 새로운 선언에 의해 변경될 수 있는 성격을 지닌 것이다. 이 중립 선언은,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법적인 근거는 갖고 있지 않다.


    3) 중립 정책의 내용


1983년 11월 17일에 몬헤 대통령이 발표한「코스타리카의 영세적 ‧ 적극적ㆍ비무장적 중립에 관한 대통령 선언(이하 ‘중립선언’)」의 내용을 선언문의 기호(A,B,C...)에 따라 분석한다.


중립선언의 (A)는 “나[몬헤 대통령]는, 국가의 대표로서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군사적 분쟁에 대하여, 코스타리카의 중립을 선언한다. 이 선언은 아래와 같은 특징을 지닌다...”로 시작한다.
중립선언의 (B)는 “코스타리카 공화국 정부가,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영세적 ‧ 적극적 ‧ 비무장적인 중립선언에 수반되는 의무를 존중하는 동시에 다른 나라의 준수를 이끌어내겠다고 결의할 것을 나[몬헤 대통령]는 선언한다”고 쓰여 있다.
중립선언의 (C)는 “코스타리카 헌법 제139조 2항「대통령의 권한」에 따라 코스타리카와 외교관계를 갖는 모든 국가에 이 선언을 통지할 것을 결정한다”고 되어 있다.


이처럼 영세적 중립 ‧ 적극적 중립 ‧ 비무장적인 중립이라는 중립의 세 가지 핵심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 중립선언의 내용을 살펴볼 때, 이 선언이 제시되기 3개월 이전인 1983년 9월 15일에 공적인 논의에 부치기 위해 공지된「코스타리카 국민 및 국제사회를 향한 공화국 대통령의 코뮤니케(이하 ‘코뮤니케’)라는 문서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 영세적인 중립


중립선언 (A)의 Ⅰ는 ‘코스타리카의 중립은, 영세적이며 일시적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군사적 분쟁에 대하여 적용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 ‘국제법의 원칙들’에 따른 영세중립을 실행하겠다는 의도를 알 수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중립선언의 다음과 같은 항목에 들어 있다.


‘중립의 신뢰강화’라는 항목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영공 및 영해를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영역이 전쟁에 말려든 당사자를 위해 군사작전 기지로 사용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우리들은 가능한 노력을 할 의무가 있다. 즉 Ⓐ 분쟁상태에 있는 당사자에 대한 모든 지지ㆍ원조를 금지할 의무 Ⓑ 군대ㆍ탄약ㆍ군수물자 보급부대 수송을 위해 우리나라 영토의 통과를 용인하지 않을 의무 Ⓒ 교전 당사자와의 공중용(公衆用)이 아닌 통신용 무선시설의 유지ㆍ설치를 용인하지 않을 의무 Ⓓ 교전 당사자를 위해 전투부대를 편제하거나 징병용(徵兵用)사무실을 개설하는 것을 저지할 의무 Ⓔ 우리나라 국토에 침입해 온 전투원을 무장해제하고, 전쟁터에서 가능한 한 격리시켜 유치(留置)할 의무가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중립의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 교전당사자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공평한 정책을 취하는 게 우리들의 의무이다.”(위의 인용문 중 Ⓐ Ⓑ Ⓒ 등의 부호는 중립선언의 원문에는 없지만,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 넣었다)


‘중립의 의무’라는 항목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 전쟁을 절대적으로 개시하지 않을 의무 Ⓑ 무력의 행사, 위협 또는 군사적 보복을 하지 않을 의무 Ⓒ 제3국간의 전쟁에 참가하지 않을 의무 Ⓓ 우리나라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물질적 ‧ 법적(法的) ‧ 정치적 ‧ 도덕적인 모든 수단을 통해 우리나라의 중립과 독립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옹호할 의무 Ⓔ  군사적 분쟁에 현실적 ‧ 외견적(外見的)으로 말려들지 않도록, 중립에 기반을 둔 외교를 추구할 의무 Ⓕ 영세중립국으로서의 우리들의 의무를, 다른 여러 나라 내부의 무력분쟁에도 확장시켜 적용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의무는 스위스ㆍ오스트리아의 국제법상의 영세중립 본보기로 삼은 의무 사항들이다.


일반적으로 영세적 중립이란 Ⓐ 어떠한 군사적 분쟁에 대해서도 중립이며 Ⓑ 전시에는 전시 중립법상의 중립의무(영세중립의 제1차적 의무)를 선택의 여지없이 받아들이고(보통의 국가의 경우 전시중립의 선택은 자유) Ⓒ 평시에도 분쟁에 휘말려들지 않는 중립외교를 할 의무(보통의 국가에게 의무가 아니나 영세 중립국의 고유의 의무로서 제2차적 의무 또는 사전적事前的 활동이라고 부른다)를 지는 국가의 국제법상의 지위를 의미한다.


코스타리카 중립선언의 ‘중립의 신뢰강화’ 항목에서 열거된 의무는 영세중립의 제1차적 중립의무에 해당되고, ‘중립의 의무’ 항목에서 열거된 의무는 영세중립의 제2차적 의무에 해당된다.


    ⓑ 적극적인 중립


코스타리카가 제창하는 적극적인 중립이란, 영세 중립국이면서 자국의 현재의 모습(제도 ‧ 이데올로기)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으며, 유엔이나 기타의 미주기구(美州機構)라는 집단적 안전보장 기구에 가맹하여 평화 ‧ 인권보장을 위해 협력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유엔에 가맹하지 않는 소극적 영세중립과 대비(對比)된다. 적극적 중립이라는 표현은, 적극적인 중립주의를 의식한 것이다.


코스타리카의 적극적 중립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적극적 중립의 정의를 중립선언의 (A) Ⅱ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코스타리카의 중립은 적극적이다. 이는 이데올로기 및 정치의 영역에서 불편부당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코스타리카는 서구 민주주의를 공유해왔으며 앞으로도 공유할 정치적ㆍ사회적 개념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한다. 이 적극적 중립은 유엔ㆍ미주(美州)기구ㆍ미주 상호원조 조약[리오 조약]의 구성원인 코스타리카의 몫이며, 아래의 모든 문제에 관한 권리와 완전히 양립한다. ‘모든 문제’란 국제적인 평화ㆍ안전의 유지, 분쟁의 평화적인 해결을 향한 활동들, 더욱 공정한 경제적ㆍ사회적 질서의 달성, 인권ㆍ기본적 자유의 촉진ㆍ존중에 관한 문제이다.”


둘째, 국제분쟁ㆍ평화문제에 대한 코스타리카의 입장ㆍ구체적인 대응에 관하여 Ⓐ 중립선언의「중개ㆍ조정ㆍ인도적 견해」항목에 언급되어 있으며 Ⓑ 커뮤니케의「우리들의 국제적인 자세」항목에도 기술되어 있다.   


셋째, 코스타리카의 인권주의에 관한 것이다. 인권을 비무장ㆍ평화와의 관계에서 생각하는(‘군사’에 의거하지 않는 평화적 생존권의) 시각이 보이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중립선언의 ‘[인간의] 전면적 발전으로서의 평화’라는 항목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국민의 영혼 속에 깊이 뿌리 내려 있는 평화에 대한 사명은, 군대의 폐지에 의해 엄청나게 커졌다...군국주의는 [코스타리카] 공화국을 파멸시킬 것이다. 군국주의가 사라짐으로써 [코스타리카] 공화국이 강고해졌다...다른 국민이 군대를 갖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들은 군대를 보유하지 않기 위해 위험한 쪽을 선택한다. 우리들이 군대를 현재도 갖지 않고 앞으로도 갖지 않을 것을 나[몬헤 대통령]는 확약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선언한다.”

군사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적 생존권의 시각은, 인간의 생명(권) 존중의 사상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넷째, 인권의 국제적 보장에 관한 코스타리카의 태도와 관련하여 코뮤니케의「인권에 대한 우리들의 특별한 애호」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며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다섯째, 코스타리카의 중립은 군사적 중립을 의미하며 이데올로기ㆍ정치적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코스타리카가 선택해온 체제의 이데올로기는, 서구적인 자유민주주의 내지 사회 민주주의이며 공산주의[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권]에 대하여 관용적이지 않다. 이 점은 적극적 중립의 한계로서 ‘참된 중립이 아니다’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으로 보아 중요한 것은 군사적 중립을 실현ㆍ확보하는 일이며, 체제적인 이데올로기 문제는 각국(인민)의 자유선택(민족적 자결)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 비무장적인 중립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에서 말하는 비무장은, 상설 제도로서의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제1항). 군대를 대신하는 조직으로, 치안 ‧ 국경경비용 시민경비대(Civil Guard)가 설치되어 있다(제2항). 경찰대(Police forces)라는 다른 명칭이 있다. 그러나 제12조에서 유의해야할 점은 제3항으로 군대의 보유는 완전히 금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지역적 집단 안전보장 제도인 미주기구(OAS)나 미주 상호원조 조약(리오 조약)이라는「대륙 협정」의 요청, 또는 자국을 방어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상설적이지 않은 군대라면 보유할 수 있다. 이는 헌법상 해외파병의 권리ㆍ개별적 자위권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정책으로 코스타리카는 무력에 의한 자위보다는 미주(美州)의 지역적 집단 안전보장 기구 속에서 무력에 의존하지 않는 안전보장을 선택해오고 있다. 또 미주 기구나 리오 조약의 가맹과 관련하여, 군사적 협력을 유보한다. 이 점에 관하여 중립선언 (A)의 Ⅲ에서 “코스타리카의 중립은 비무장적이다. 코스타리카의 대외적 안전보장은 국민의 자유의지ㆍ국제법규, 코스타리카가 가맹한 집단적 안전보장 제도에 기초를 두고 계속하여 유지하게 한다. 이 집단적 안전보장 제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 상설제도로서의 군대를 유지할 것을 요청하거나 Ⓑ 타국(他國)의 군사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코스타리카의 무력을 사용할 것을 요청하지 않는다[요청해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다.
무력적인 개별적 자위권-영세중립의 관계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4) 중립 정책에 대한 평가


『非同盟ㆍ中立』이라는 저작에서, 중립의 의무로 아래의 다섯 가지 항목이 거론되고 있다.

전시의 경우 ① 묵인 의무(자국 국민이 받는 불이익을 묵인한다) ② 피지避止 의무(일방의 교전국에 직접ㆍ간접의 원조를 하지 않는다) ③ 방지 의무(교전국이 전쟁목적을 자국에 유리하게 이용하는 것을 방지한다). 평시에는 ④ 침략적인 군사 블록에 가담하지 않으며 ⑤ 자국 영토에 외국 군사기지를 두지 않는다.


현재의 코스타리카는 위의 5가지 중립의무를 거의 모두 지키고 있다. 그러나 네 번째 항목(침략적인 군사 블록에 가담하지 않는다)과 관련된 중립선언의 단서 조항<코스타리카의 안전보장은 美州기구(OAS)와 미국 상호원조 조약에 의존한다>,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의 유보 조항(美州의 협정에 의하거나 국가의 방위를 위할 때만 군사력을 조직할 수 있다)이 비무장 중립을 위태롭게 할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① 진보세력의 평가


전 세계의 진보세력이 코스타리카의 중립정책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특히 일본의 평화운동 단체ㆍ운동가ㆍ이론가들이 ‘군대 없는 평화국가 코스타리카’를 찬미(?)하는 가운데 중립정책을 상찬(賞讚)한다. 여기에서 냉정한 평가를 위해 두 학자(澤野義一과 新藤通弘)의 평가를 소개한다.   
      

      ② 澤野義一(사와노요시까즈)의 평가; 새로운 형태의 비군사적 중립


코스타리카의 경우 해당정부가 자주적으로, 외교관계를 갖는 여러 외국에 ‘중립선언’을 일방적으로 통지했다. 이 점은, 오스트리아의 경우와 비슷하다. 코스타리카의 ‘중립선언’은 오스트리아와 유사하지만, 오스트리아와 달리 외국에 대하여 영세중립의 승인을 요구한 의사(승인의사)가 불분명하다. 그러므로 코스타리카의 영세중립은, 법적 성격의 영세중립이 아니라 정치적 성격의 영세중립이라고 볼 수 있다. 비무장 영세중립을 스스로 약속했지만, 다른 나라의 승인을 요구하지 않은 코스타리카의 일방적인 ‘중립선언’은, 다른 나라의 승인을 요구한 오스트리아와 다르며, 새로운 형태의 법적인 영세중립이라고 할 수 있다. 코스타리카의 영세중립은, 코스타리카 스스로 평시(平時)이든 전시이든 준수해야할 법적인 의무가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평시에는 특별한 법적 관계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제3국에 무력분쟁이 발생하는 전시의 경우에, 제3국(다른 나라)은 전시 중립법 즉 ‘중립선언’의 중립법을 준수할 법적인 의무가 생긴다. 이와 동시에 제3국은 코스타리카에 대하여 중립의 준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③ 新藤通弘의 평가; 방어적 중립


중립선언의 동기가 콘트라(Contra)의 부당한 국내활동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들의 강력한 요구에서 나온 것이며, 격화되는 중미(中美)분쟁이라는 각국내의 무력분쟁에 코스타리카가 휘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방어적인 중립’이었다. 즉 코스타리카가 조정역(調停役)으로 관여하고, 중미(中美) 지역의 화평(和平)을 자주적으로 실현할 목적을 가진 중립선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스위스ㆍ오스트리아 등의 국가간 전쟁에 대한 중립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④ 新藤通弘이 들려주는 중남미 좌익 인사들의 일반적인 평가


新藤通弘은 쿠바人 연구자ㆍ푸에르토리코(Puerto Rico) 독립운동가와 코스타리카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쿠바人 연구자는 ‘코스타리카는 군대를 갖고 있지 않지만 미국이 여차하면 지켜주므로 군대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푸에르토리코 독립운동가는 ‘코스타리카가 군대를 갖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현실의 코스타리카의 행동을 보면, 중립이 아니며 적극적인 평화외교라고 말할 수 없다’고 엄격한 비판을 했다. 이러한 견해는, 중남미 좌익 일반의 견해라고 생각된다.
 

    5) 코스타리카 중립선언의 국제적인 수용


스웨덴 팔머 수상은 “우리들(스웨덴 사람들)은 코스타리카의 평화를 향한 사명과 반(反)군국주의적인 태도에 감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참된 만족을 갖고 자신들이 사는 도시에 이 정도까지 뿌리 내린 사랑과 평화를, 그리고 나라의 상설 기관으로서의 군대의 존재를 헌법상 금지하는 데 이른 것을 평가하고 싶다. 또 대단히 의의 깊은 것은 중앙 아메리카 지역의 심각한 분쟁에 대하여, 코스타리카가 중립을 유지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유력지인『르 몽드 디플로마틱(Le Monde diplomatique』은 몬헤의 중립선언을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하여 불가결한 공헌’이라고 평가했다. 오스트리아의 외무부가 몬헤의 중립선언에 관한 학생ㆍ시민용 선전책자를 작성했다. 당시의 유엔 사무총장이 코스타리카의 중립을 세계의 ‘평화의 본보기’라고 칭찬했다.


이렇게 코스타리카의 중립이 국제적으로 인지된 것이, 국내의 호전파(好戰派)뿐만 아니라 미국ㆍ니카라과의 직접적인 군사행동을 견제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이러한 국제정세를 무시할 수 없게 된 미국이 1984년 9월에 코스타리카의 중립을 정식으로 인지하게 된다.


      ① 澤野義一의 평가


코스타리카의 중립선언에 대하여 외국의 반응으로서 ‘지지’ ‘찬성’ ‘환영’ 등이 있었다.


      ② 新藤通弘의 평가; 중립선언이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다


중립선언은 국제법적인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일반적인 중립국가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래서 Diana Kapiszewski가 편집한『Encyclopedia of Latin American Politics』(Oryx Press, Westport, 2002),『Al sur del rio bravo: monografias de paises de america central y del sur』(Editora Politica, La Habana, 1991),『ラテンㆍアメリカ事典』(ラテンㆍアメリカ協会, 1996년 판)에 코스타리카를 중립국가로 기재하고 있지 않다. ‘몬헤 대통령이 외교적 측면에서 비무장 중립을 주창했다’는 정도이다.


코스타리카가 중립국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비상사태 때 징병제를 통해 군대를 조직할 수 있다 ② 사실상의 국방군인 국가 경비대 및 지방 경비대가 중화기 등을 보유하고, 경비대의 예산이 이웃나라 니카라과의 군사비의 3배(2005년 일본 외무성의 데이터)가 되는 등, 비무장이라는 이미지로부터 괴리되어 있다 ③ 중립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안전보장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고 코스타리카가 미주기구(OAS)에 가입되어 있다 ④ 1965년에 일어난 도미니카 내전 때 미국 평화 유지군의 일원이 되어, 도미니카 공화국의 입헌파 정권을 전복하게 하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 반공국가의 군대와 함께 코스타리카의 무장경찰을 파병한 적이 있다. 


Ⅲ. 남북한의 통일에 주는 함의와 교훈


  1. 함의


    1) 군사에 의하지 않는 중립-평화헌법


코스타리카는 처음부터 비무장 평화헌법 만들어, 군사에 의존하지 않는 중립의 가치를 헌법에 넣었다. 평화헌법을 최대의 방어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비무장 중립을 담은 평화헌법으로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군사에 안보를 의존하는 보통의 국가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을 코스타리카가 해 냈다. 군대 없이 경찰력만으로도 안보ㆍ치안 유지가 가능하다는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paradigm)을 제시한 것이다.  
 

    2) 남북한의 평화통일과 관련하여


그러면 코스타리카와 달리 남북한의 무장대결이 심각한 한반도에서 비무장 중립을 통한 평화통일이 가능한가? 필자가 보기에 한반도의 현 상태에서 비무장 중립은 어렵고 무장 중립이 불가피하다. 남북한이 군비축소를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중립이 바람직하다. 더 나아가 중립에 비핵화를 가미하는 비핵ㆍ중립화 방안을 추천한다. 일단 핵무기를 없앤 뒤에 재래식(통상) 무기를 줄여가는 중립을 지향하는 게 좋을 듯하다.


    3) 친미반공 국가도 중립정책 펼칠 수 있다


코스타리카의 비무장 중립 정책을 그대로  한반도에 적용하기 어렵다. 역사적 맥락, 지정학적인 위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스타리카가 친미 외교정책을 펼치면서 비무장 중립을 이룩해냈으며 중립선언을 한 몬헤 대통령이 반공주의자인 점으로 미루어보건대, 친미국가인 한국도 중립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친미ㆍ반공국가인 코스타리카가 중립정책에 성공했는데, 이와 동일한 친미국가인 한국도 중립을 이루어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한반도 중립’ 제안을 반미로 바라보거나 미국이 인정하지 않으면 중립을 이룩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했으나, 코스타리카의 (미국의 승인 없는) 중립화 성공사례를 통하여 이러한 선입견을 버려야할 것 같다. 한반도 중립을 이루어내는데 진보적인 정부가 필수적이라는 선입견도 버려야할 것 같다. 코스타리카의 반공ㆍ보수 정부(몬헤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도 중립선언을 했으니, 이명박 정부와 같은 친미ㆍ반공 정부도 의지만 있으면 중립선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4) 미군철수 촉진효과


한반도의 중립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미군철수가 이루어져야 한다. 외국 군대가 주둔하는 것과 중립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립 카드는 미군철수를 촉진하는 효과를 지닌다. 중립이 미군철수의 우회로인 셈이다. 이 우회로의 길목에 서서 중립카드를 미국에 내밀면 미군철수를 거부하기 어렵다. 코스타리카 역시 자국에 콘트라(Contra)기지를 두려는 미국의 의지를, 중립카드를 활용하여 꺾었다. 그러므로 한국정부도 외교역량을 발휘하고, (미국의 한반도 전략 변경에 따른) 주한미군 체제 변경의 틈새를 파고들어 중립카드를 활용하면, 미군철수 촉진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5) 정부의 평화의지가 중요


평화헌법이 있어도 헌법의 평화조항이 실현되지 못한 사례가 많다. 일본의 경우 평화헌법 제9조를 정부(자민당 정부) 스스로 유린했다. 이처럼 평화헌법을 수행할 정부가 없으면 안 된다. 코스타리카 정부가 국민들의 평화의지를 수렴하여 ‘병사의 수만큼 교사를 둔다’ ‘총을 버리고  책을 고쳐 든다’ ‘軍의 막사ㆍ국방시설을 박물관으로 만들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헌법조항 대로 ‘상비군 폐지’를 실행했다. 정부의 평화의지가 없으면 중립은 공염불이 된다.       
 

    6) 평화국가


코스타리카의 정부ㆍ국민이 단결하여 비무장 중립을 실현했고, 이를 통해 평화국가를 지향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2. 교훈; 코스타리카의 중립에서 배울 점


    1) 중립을 향한 고난의 길


본래 중립정책의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 중립을 선언했다가 중도에 포기한 국가가 많기 때문이다. 무장 중립도 어려운데 비무장 중립은 더욱 어렵다. 국가가 있는 한 군대는 필수이므로, 군대를 제도적으로 폐지한 뒤 중립을 선언하는 2중의 도전은 고난의 행군을 거치지 않으면 실현 불가능하다. 중립을 향한 고난의 길을 걸은 코스타리카의 정부ㆍ국민들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2) 코스타리카의 탈미 중립외교로부터 배우자


코스타리카의 경우 가장 큰 고난은 ‘탈미(脫美)’이었다. 미국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비무장 중립을 실현해야 하는데, 미국에 도전하면 경제적인 타격을 입게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솔로몬의 지혜가 발휘되었다. 몬헤 대통령이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중립선언을 한 뒤, 미국의 경제적인 타격을 모면하면서 비무장 중립을 실현해나간 ‘탈미 외교’를 구사했다. 이러한 탈미외교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겠다.
 

한편 코스타리카에 군대가 없기 때문에 국가 유사시의 안보를 맡길 곳이 없어서, 미주기구(OAS)나 리오 조약에 의존한다는 중립선언의 단서조항에서 탈미(脫美)가 퇴색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결정을 내린 몬헤 대통령의 고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방식으로 안전보장 장치를 마련한 채(미국 주도의 OAS나 리오조약에 안보를 맡김) 비무장 중립을 관철해낸 코스타리카 정치 지도부의 ‘뱀같이 교활한 외교술’을 한국의 정치 지도부도 배워야하지 않을까?


    3) 민중들의 평화의 힘(people's peace power)
 

미국ㆍ영국 등의 연합군에 의한 이라크 전쟁 중 미국 정부에 협력한 국가들의 명단에 코스타리카가 끼어 있는 점을 발견한 코스타리카의 대학생 로베르또 사모라(Roberto Zamora)가 ‘비무장 영세중립 정책에 反하는 것’이라고 재판을 제기한 적이 있다. 이를 접수한 코스타리카의 최고 재판소는 2004년 9월에 ‘이라크 전쟁에 대한 협력은 헌법위반이 된다’는 판결을 내렸고, 코스타리카의 나라 이름이 협력국의 명단에서 삭제되었다. 국민이 자국의 비무장 영세중립 정책의 참된 의의(意義)를 정확히 이해하고, 정부를 향해 헌법조항을 실현하라고 요구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이처럼 중립평화를 견고하게 지키려는 코스타리카 국민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비무장(비군사적인) 중립이 그나마 유지되어 왔다. 코스타리카의 중립 정책이 흔들릴 때마다 평화애호 국민들이 교정해주었다. 1980년대 초반 니카라과 분쟁에 휘말려들어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가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위기 탈출에 이은 몬헤 대통령의 중립선언’을 이끌어낸 것도 결국 ‘민중들의 평화의 힘(people's peace power)’이다.


중립을 향한 ‘민중들의 평화의 힘(people's peace power)’이 존재하지 않으면 한반도의 중립화가 불가능함을 강조하면서 이 글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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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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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器を持たない鬪士たちの國コスタリカ」『週間金曜日』409号 (200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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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세중립 통일 협의회가 2009년 12월 11일 개최한 학술회의(주제; 영세중립국들의 외교정책이 남북통일에 주는 함의와 시사점)에서 필자가 발표한 글의 원본이다.
* 이 글에는 원본의 각주가 생략되어 있다. 생략된 각주를 보려면 [평화만들기(http://peacemaking.kr)]의 450호에 실려 있는 동일한 제목의 기고문을 참고할 것.
* 필자는 평화 활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