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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한반도 통일-평화협정

‘북한 인권’을 에워싼 문제제기 ・고려사항

김승국

Ⅰ. 문제 제기

  1. 인권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뜻한다. 그러므로 인권(인간의 권리)의 주체인 인간에 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어떠한 인간론을 통하여 인권에 접근하는지를 밝혀야 한다. 자본주의 인간론, 사회주의 인간론, 고대 그리스의 인간론, 중세의 인간론, 근대 서양의 인간론, 동양사회의 인간론의 함의가 다르므로, 어떤 인간론에 따라 인권을 거론하는지를 먼저 밝혀야 한다. 즉 어떤 주체를 앞세워 인권을 논의하는지를 말해야 한다.

  2. 개별 인간의 인권 못지않게 인간집단에서의 인권이 중요하다. 여러 유형의 인간집단이 있겠지만, 사회적 ・정치적 의미의 인간집단으로서 시민 ・국민 ・인민 등을 들 수 있다. 시민 ・국민 ・인민의 범주가 각 국가사회마다 다르므로 시민 ・국민 ・인민의 권리 ・의무 관계를 먼저 규명하면서 인권을 이야기해야 한다.

  3. 위와 관련하여 북한에 시민사회가 존재하는지도 거론하는 게 바람직하다. 남한을 포함한 서방세계에서 말하는 인권은 주로 시민사회의 인권이다. 북한의 인민사회와 남한 ・일본 ・미국 ・유럽의 시민사회의 구성원리 ・사회 형성의 역사적 맥락이 다르다면, 시민사회의 인권론을 그대로 인민사회에 적용하기 어렵다. 적용의 착오를 인정할 경우, 시민사회의 인권론으로 인민사회의 인권을 비판할 자격이 자동적으로 상실된다.

  4. 서방의 시민사회 지향적인 인권은 기독교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르주아 시민의 사적(私的) 소유를 국가권력이 침해할 수 없다는 자유주의적 인권론의 사상적 배경 중의 하나가 기독교 사상이다. 근대 자본주의 발달사와 함께 하는 근대 자유주의 인권론의 중층적인 결합 아래 ‘자연법적인 천부(天賦) 인권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실정법적인 인권론’이 법제화된다. 이러한 법제화는 사실상, 홉스(Hobbes)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관계’를 질서 잡기 위해 나선 국가권력이 시장의 질서에 따라 만든 것이다. 시장이라는 현실세계의 경쟁 ・투쟁관계 속의 인권상실을 바로 잡기 위해 법제화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시장의 강자(强者)가 보유하는 강력(强力: Gewalt) ・시장의 폭력을 본원적으로 제거하는 데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는 인권론의 한계라기 보다 인권론의 배후에 있는 자본주의(부르주아 시민사회)의 한계이다.

이러한 자본주의를 지양하기 위해 나온 사회주의는 유감스럽게 인권론을 정립 ・실행하는 데 소홀했다. 북한 역시 사회주의 전통과 맥락을 같이 하므로, 국가 ・인민사회 차원에서 인권을 심각하게 다룬 경험이 많지 않은 것 같다.

  5. 북한뿐 아니라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들이 전반적으로 인권에 둔감하다. 아시아의 자본주의 국가들도 인권의식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현상은, 서양에서 유입된 ‘인권’ 담론이 동양사회에 체질화되어 있지 않거나, 동양의 인간론과 잘 융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양 사상사에는 서양 방식의 인권론이 없으며, 동양 사회의 구성원리가 개인의 인권보다는 상생 ・공생의 공동체에 의존하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상생 ・공생의 공동체는 천지(天地)와 공존한다. 즉 천지인(天地人)의 3각 관계 속의 인간이 누려야 할 인간다움을, 인권이 아닌 음양오행(陰陽五行) ・원형이정(元亨利貞) ・자비(慈悲) ・도(道) ・중용(中庸) ・성(誠) 등에서 찾았다. 주역의 원형이정(元亨利貞)이 표상하는 세계관 ・불교의 세계관은 서양의 세계관과 다른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인간의 권리(인권) 의식도 달라진다. 불교의 세계관을 나타내는 ‘연기(緣起)’에 따른 인드라 망 속에서 서양의 인권(부르주아 시민사회의 이해관계를 질서 지우는 인권)이 적용될 공간이 비좁다.

서양의 인권은 서양인의 합리적인 이해관계, 서양 시민사회 구성원의 경제생활에서 나타나는 ‘제로 섬 게임(zero sum game)’의 반영물이다. 그런데 동양인은 제로 섬 게임에 입각하여 살지 않으며 대대(對待) 관계 속의 공생 ・상생 ・공존을 모색한다. 동양인은 체제(자본주의 체제 ・사회주의 체제)와 무관하게, 개인의 이해 ・개인의 인권보다 가족 공동체 ・국가 공동체 ・민족 공동체를 중시한다. 이렇게 삶의 기본 원리가 다르므로 서양의 인권개념을 기계적으로 동양사회에 적용할 경우 매우 신중해야 한다. 인권의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인권개념을 동양사회에 적용했을 때 적용국면에서 나타나는 특수성을 깊이 고찰해야 한다.

  6.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가치관(자유주의 가치관)과 북한의 주체사상 사이에 ‘문명의 충돌(?)’과 유사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권론을 무리하게 적용하면 예상치 않은 부작용을 낳는다. 북한의 국가론 ・인민사회론 ・민족론과 미국 등의 국가론 ・시민사회론이 다른 지평을 무시하고, 미국식의 자유주의 인권을 맹목적으로 적용하면 곤란하다. 특히 북한의 민족론은 북한 인민 개개인이 민족의 구성원이라는 의식이 강하므로 미국의 인권의식과 다르다.

  7. 인권 담론의 요소인 ‘인권 對 국권(國權)’의 대립 ・종합관계가 북한에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가? 생각건대 북한의 국권은 ‘자주 국가론’을 반영하는 바, 이에 맞서는 인권을 제기하면 기각당하기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북한 인민들이 실제로 인권 對 자주 국가론을 대립적으로 보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고난의 행군을 거듭하고 있는 북한 인민들이 보기에 자주 국가론의 위력이 인권담론보다 크지 않을까? 이게 북한의 현실이라면 ‘자유주의 가치관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권론’을 무리하게 북한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

  8. 북한의 체제 전환(regime change)을 겨냥한 ‘북한 연착륙(soft landing)’ 차원의 인권 문제 제기가, ‘북한 경착륙(hard landing)-무력에 의한 북한 붕괴’와 맞물려 있는 지점에 유의해야 한다.


Ⅱ. 고려 사항

  1. 북한의 인권침해 사례를 중심으로 즉자적(卽自的)으로 북한인권 문제를 이해하는 것보다 북한을 에워싸고 있는 제반 환경(국제정세 ・북한 국내의 정황 ・인민의 생활현장 ・인민들의 의식구조 ・북한인의 세계관 ・북한사회의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대자적(對自的)인 이해가 바람직하다. 북한의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내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북한 인권의 담지자인 북한인민의 주체적인 입장을 역지사지 하지 않는 방법은 이미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국제정세와 관련하여 북한이 제국 ‘미국’에 의해 ‘악의 축 국가’ ‘불량국가’로 일방적으로 낙인찍혀 있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 위협론’을 빙자한 북한 붕괴 전략이 수립되어 있는 국제정세 속에서 북한 인권이 제기되고 있는 시공간(時・空間)을 생각해야 한다. ‘악의 축 국가’ ‘불량국가’로 일방적으로 낙인찍는 배제 행위 자체가 국제적인 인권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점, 북한 위협론을 제기하는 미국 스스로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점, 즉 ‘미국 위협론’이 ‘북한 위협론’보다 더 엄중한 점을 고려하면서 북한 인권문제를 다뤄야 한다.

  2. 인권 문제를 빙자한 전쟁논리가 횡행하고 있는 험악한 세상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를 앞세워 코소보 사태에 ‘인도적 개입(humanistic intervention)’을 했다. 코소보의 인권 사태를 없앤다는 명분을 내세운 인도적 개입은 전쟁으로 연결되었다. 인도적 개입은 명분일 뿐이고 실제로는 유고 연방 해까지 고려한 전쟁이었다. 인도적 개입이 전쟁의 명분으로 되어 있는 ‘새로운 전쟁(new war)’ 경향이 북한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인도적 개입의 빌미를 제공한 인권 문제가 코소보 전쟁으로 이어졌듯이,북한인권 문제가 전쟁의 간접적인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인권이 북한의 체제전환의 수단 ・체제전환용 무력동원의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예방해야 한다.

  3. 북한의 사회 구성체와 인권의 연관성을 논의해야 한다. 북한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가, 북한 사회구성체 안의 인민의 권리 ・의무가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를 알고 인권을 따져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공권력이 작동되는 경로 속에서 인민의 인권(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침해당하고 있는지, 침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민들이 인내 또는 묵종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권력과 인민관계 속에서 인권침해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 북한 인민들이 북한의 국가권력에 대하여 자발적으로 동의하는지, 수동적으로 동의하는지를 분간하는 것
도 의미 있다. 만일 북한의 국가권력이 인민들의 묵종을 강요한다면 그때의 억압이 인권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규명되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이 있다면 그것과 인권의 관련성도 분석의 대상이다.

  4. 앞에서 북한 사회에 대한 역지사지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북한사회가 실제로 준전시 ・전시 상황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미국의 북한붕괴 전략 ・군사행동으로 말미암은 북한사회의 초비상 상태의 일상화는 준전시 ・전시 상황을 말해준다. 이러한 전시 상황 속에서 인권이 원론적으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일반적으로 전시 상황이 되면 인권을 거론한 겨를이 없으므로 인권이 제2차적인 덕목이 된다. 전시 상황에서는 ‘군사’가 제1의 덕목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인권이, ‘군사’에 밀려 지킬 필요가 없는 덕목에 그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북한의 군민(軍-民) 관계 속에서 규명되어야 한다.

  5. 북한의 군(軍)-민(民) 관계를 대변하는 선군정치 아래에서 정말로 인권이 보장되는가? ‘군사’ 담론이 주류인 사회에서 인권은 의무사항인가 한갓 선택사항인가를 알아보아야 한다. 선군정치를 주도하는 북한군이 ‘연안장정 당시의 모택동 군대’처럼 인민을 극진하게 보살피는 군대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전시 상황 아래의 군대처럼 ‘군사’를 우선시하고 ‘인권’을 배제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

  6. 평화적 생존권 차원에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게 바람직하다. 기아의 위협을 받고 있는 북한 사회의 평화적 생존권을 논의하면서 인권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평화적 생존권과 인간안보(human security)의 연계성도 검토할 만하다.

  7. 인간안보 차원에서 북한 인권을 거론해 보자. 1991년의 걸프전 이후 미국 주도의 이라크 경제제재로 이라크 아동 수십만이 사망하거나 중병이 걸린 사실은, 인간안보와 인권 문제의 관련성을 거론할 계기를 제공한다. 이러한 관점을 북한에 적용한다면, 몇십 년 동안 미국의 북한 경제제제로 북한의 어린이와 인민들의 기아 ・질병 ・사망이 가속화하는 중대한 인권문제가 야기되었다면, 이러한 국제적인 인권문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8. 국가권력이 존재하는 한 인권침해 사례가 발생한다. 국가권력이 인권을 법제화하여 국민 ・인민의 인권을 겉으로 보장하지만, 속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손(국가권력 ・시장의 힘)으로 인권을 침해한다는 논의가 많다. 북한은 이러한 논의의 예외지대인가 묻는다. 예외지대가 아니라면, 어떠한 형태의 인권 담론이든지 북한 당국이 겸허하게 수용하고 시정해야 할 것이다.

* 출처=[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57호(2006.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