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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마르크스_ 정치경제학

마르크스 평화론의 구도에 관하여

김승국

1. 혁명과 평화

평화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접근방식을 한마디로 말하면 ‘혁명에 의한 평화’이다. 마르크스의 혁명에 의한 평화론은 ‘현상유지를 위한 평화론’과 다르며, 평화 그 자체를 혁명의 목적으로 보는 ‘평화를 위한 혁명론’도 아니다.

세계평화 ・국제적 평화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를 마르크스에 묻는다면, 그는 “세계혁명에 의하여 달성할 수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공산당 선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개인에 의한 다른 개인의 착취가 폐지되는 것과 같은 정도로 한 국민에 의한 다른 국민의 착취도 폐지될 것이다. 한 국민 내부의 계급의 대립이 없어짐과 아울러 국민들 상호 간의 적대관계도 없어질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유인들의 연합(Verein freier Menschen)’ 자본주의의 노동방식인 통합노동(combined labour)이 아닌 연대노동連帶勞動(결합노동結合勞動; associated labour)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자유로운 결사結社(die freie Assoziierung der Arbeiter)’, 즉 ‘Assoziation’으로서의 ‘공산주의’는 세계적 규모로 실현될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의 실현에 의하여 국가는 사멸(死滅)하고 인간의 자기소외(疏外)가 극복되어 땅(지상)에 평화가 깃든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평화구상은 ‘(세계공산주의) 혁명에 의한 평화’이며 ‘Assoziation’이 이러한 평화의 담지자(Träger)이다.

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발상은, 일종의 종말론적(終末論的) 발상 또는 지복천년왕국(至福千年王國)을 대망(待望)하는 발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1872년 9월 2일 제1 인터내셔널의 ‘헤이그 대회에 관한 연설’에서 ‘혁명에 의한 평화’의 구상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밝힌다: “노동자는, 새로운 노동조직을 수립하기 위하여, 머지않아 정치권력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일을 소홀히 하고 가볍게 여긴 고대의 기독교도들처럼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왕국을 잃을 것이다.”

2. 노동과 평화

마르크스에 따르면 “아무도 배타적인 활동 영역을 갖지 않고 각자가 원하는 어떤 분야에서나 자신을 도야시킬 수 있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사회가 전반적인 생산을 조절하기 때문에 사냥꾼, 어부, 목동 혹은 비판가가 되지 않고서도 내가 마음먹은 대로 오늘은 이것을, 내일은 저것을, 곧 아침에는 사냥을, 오후에는 낚시를, 저녁에는 목축을, 저녁식사 후에는 비판을 할 수 있게 된다.”이것이 목가적(牧歌的) 사회분업에 입각한 마르크스 평화론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마르크스의 이와 같은 목가적인 평화론은,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이사야 11:6~8)는 ‘천국(天國)의 평화’와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르크스는 또 {고타강령 비판}에서 “공산주의 사회의 보다 높은 단계에서 개인이 노예와 같이 분업에 의해 예속되는 상태가 소멸되고 이에 따라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소멸된 뒤, 노동이 단지 생활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제1차적인 생활욕구로 된 뒤,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도 증대하고 협동적(協同的)인 富가 모두 샘[泉]처럼 분출하게 된 뒤-‘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좁은 지평은 완전히 극복되고 사회는 자기의 깃발에 각 사람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각 사람에게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라고 쓸 수 있다.”고 밝히면서, 공산주의에 의한 지고(至高)의 평화상태를 예견한다.

협동적인 富가 샘처럼 분출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분업노동(특정한 직업)이라는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는데, 그러한 노동이 아닌 필요에 따라 소비물자를 분배받는 사회가 가장 평화로운 사회이다.

이때의 ‘노동’은, 고한노동(苦汗勞動)의 성격을 불식시킬 수 없는 ‘labour’로부터, 제작 ・창작 ・창조활동 내지 유희의 뉘앙스를 포함한 ‘Work’로 탈바꿈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시간의 단축을, ‘필연의 왕국’에 기초하여 ‘자유의 왕국’의 영역이 확대되는 중요한 지표로 생각한다. 마르크스는 필요노동(필요노동 시간)의 극소화와 자유시간의 극대화를 통하여, 즉 labour의 극소화와 Work의 극대화를 통하여 공산주의의 이상적인 상태를 이룩하려는 생각을 굳힌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주의’란, 지상에 지복천년왕국(至福千年王國)이 도래하는 것이며,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하는 labour를 숙명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나라가 아닌, 자유롭게 각기 개성적인 제작-창조활동(Work)에 흥겨워하는 神들의 나라, 즉 인간역사의 종언이다. 마르크스 자신은 공산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인류의 전사(前史)가 끝나고 ‘인류의 본사(本史)’가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영구전쟁永久戰爭 상태에 있는(in ewigem Kriegszustand) 인류의 전사(前史)가 막을 내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고한노동(苦汗勞動; labour)으로부터 해방되어 영구평화永久平和 상태에 있는(in ewigem Friedenszustand) 인류의 本史(공산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의 지양(Aufhebung der Arbeit)298)을 통하지 않고는 평화를 누릴 수 없다.

마르크스의 이상향,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주의, 노동자들에 의한 ‘노동자들의 왕국’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의하여 실현된다. 마르크스는 1871년 9월 25일 ‘국제노동자협회 창립 7주년 축하회에서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러한 변혁(Veränderung)이 실현되기에 앞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필요해지는데, 그것의 첫째조건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군대이다. 노동자 계급은 전장(戰場)에서 자기를 해방할 권리를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우리들은 가능한 한(限) 평화적인 방법에 따라(auf friedlichem Wege) 싸울 것이지만 필요하다면 무기를 들고 당신들에 대항하여 싸울 것이다.”

1872년 9월 8일의 국제노동자협회의 ‘헤이그 대회에서의 연설’을 보면, 영국 등에서 의회를 통한 평화이행(平和移行)의 가능성을 마르크스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럽대륙의 핵심부분에서는 강력혁명(强力革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륙의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강력(强力)이 지렛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들 나라에서] 노동의 지배를 수립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강력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물론 마르크스의 주관적 의도에 즉(卽)하여 말한다면, 이 ‘강력(强力)’의 행사는 일시적 ・과도기적인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도 가능한 한(限) 민주주의적인 형태를 띠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독재의 형태로서 파리코뮨에 주목한다. 마르크스는 당대의 파리코뮨과 같은, 민주주의 형태를 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서 평화의 계기를 발견한다.

평화는 공산주의와 이의 초기 단계인 사회주의에 내재한다. 평화는 상호 부조와 공동 노동 속에서 결합된 사회주의 공동체 혹은 공산주의 공동체의 사람들 내지는 민족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평화는 전쟁의 결여 상태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생활의 적극적 관계이다. 평화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그에 따른 사회적 관계의 필연적 귀결이고 따라서 사회주의적 생산양식 혹은 공산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닌 내적 합법칙성의 필연적 귀결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적 소유 ・자본주의 ・제국주의 때문에 전쟁이 발생하는 반면, ‘노동’과 노동의 담당자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독재)에 의하여 평화가 도래한다. 레닌이 {전쟁과 혁명}에서 밝혔듯이 “노동자의 혁명을 통해서만 [자본가들이 수행하는]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의하여 평화가 도래한다’는 명제를 재확인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만국(萬國)의 노동자의 동맹이 끝내 전쟁을 절멸시킬 것이다. ‥‥경제적 궁핍과 정치적인 광기(狂氣)를 동반하는 구사회(舊社會)와 대립한, 하나의 새로운 사회의 국제적인 원칙은 평화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에서는] 어떠한
국민에게도 동일한 원칙, 즉 [자본이 아닌] 노동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전쟁과 평화의 대립’의 배후(背後)에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있으며, 노동이 평화를 보장한다. 달리 말하자면 전쟁과 평화의 대립의 배후에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인 대립이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에 의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에 의하여 평화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3. 평화혁명과 폭력혁명

마르크스에 있어서 소유에 대한 폭력(“소유는 일종의 폭력이다”:MEW 4, p.337.)과 정치적 폭력(또는 국가권력)의 구별은, 부르주아지가 정치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을 때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소유로서의 폭력과 정치적 폭력이 점차 일치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와의 적대관계가 형성된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미 부르주아지의 수중(手中)에 있는 정치적 폭력(die politische Gewalt)을 전복시켜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스스로 강력(强力)으로, 곧 혁명적인 강력으로 바뀌어야 한다.’(MEW 4, p.338.) 그러므로 마르크스에 의하면 공적(公的)인 폭력(die offizielle Gewalt)과 혁명적 강력(强力)
사이의 원칙적인 차이는 없다(MEW 4, p.347). 소유가 폭력의 한 형태인 사회에서만 프롤레타리아트의 Gewalt는 혁명적인 강력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마르크스의 Gewalt 개념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합성할 수 있다: ① 정치적 폭력, 공적인 폭력 ② 소유로서의 폭력(Gewalt als Eigentum) ③ 부르주아지의 반동적인 폭력(die reaktionäre Gewalt der Bourgeoisie) ④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인 강력(die revolutionäre Gewalt). 이 혁명적인 강력은 변혁된 생산관계의 산물이며, 강력이 평화적으로 이행될 가능성이 여기에 내재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혁명에 의한 평화’를 이룩하는 데 강력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위에서 언급한 마르크스의 ‘혁명’은 ‘노동자 혁명’을 뜻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노동자 혁명의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계급으로의 고양, 민주주의의 쟁취이다.” 이를 위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차례차례로 빼앗고(entreißen), 모든 생산도구들을 국가의 수중(手中)에,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가능한 한 신속히 생산력의 총체(總體)를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이것은 물론 처음에는 소유권과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에 대
한 전제적(專制的)인 침해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빼앗다(entreißen)’ ‘전제적인 침해’는, ‘노동자 혁명에 의한 민주주의의 쟁취(=평화)’를 이룩하는 데 필요한 강력(强力)을 상징한다.

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강력에는 파리코뮨에서와 같은 무력항쟁뿐만 아니라, 파업 등과 같이 프롤레타리아가 동원할 수 있는 물리적인 힘도 포함된다.

마르크스는 이 강력이 ‘혁명에 의한 평화’의 동력이라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강력에 기반을 둔 마르크스의 ‘혁명’에 폭력지향적인 측면과 평화지향적인 측면이 동전의 양면처럼 내재하여 있다. 부르주아지로부터 자본을 ‘빼앗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강력은, (이를 물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폭력지향적이다. 그러나 동일한 강력이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새로운 평화로운 사회를 잉태할 것이기 때문에 평화지향적이다. 마르크스는 ‘혁명’과 ‘강력’을 짝짓기 하면서 폭력지향적인 측면과 평화지향적인 측면의 변증법적인 종합을 고려한다. 한때 블랑키주의자(Blanquist)의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가 혁명적 테러리즘을 강조하는 등 폭력혁명론에 준(準)하는 언급을 하는 한편 혁명의 평화적인 이행에도 관심을 가진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마르크스는 평화적 변화의 가능성도 생각했지만 정치적 혁명이 폭력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혁명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폭력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첫째, 마르크스는 변증법적(辨證法的)인 합(合)[종합]의 쟁취는 언제나 급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평화적 변화에 함축된 점진성은 이러한 변증법적 종합에 의해 배제된다. 둘째, 부르주아는 한 계급으로서 자신들의 소멸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프롤레타리아를 폭력[강력]혁명으로 몰아가게 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들은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질서를 강력에 의하여 전복(der gewaltsame Umsturz)함으로써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공산당 선언}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하는 혁명에 있어서, 강력의 혁명적인 힘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Gewalt’가 역사의 조산부임을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공적(公的)인 사회를 형성하는 상층부 전체의 폭파’가 필요시(必要視)되는 이유는, 마르크스의 국가관에서 두드러진다. 마르크스는 현존하는 국가를 부르주아지의 계급이익을 옹호하고 유지하기 위한 기구로 보았다.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계급은 동시에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계급이기도하며, 그들은 피지배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하기 위한 폭력기구인 국가를 자신들의 손에 넣는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의 지배적 지위를 전복하여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권력을 수립하여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가능케 하기 위하여서는, 자기 자신의 혁명의 폭력[강력]에 의하여 기존의 폭력지배 기구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한편 프랑스 혁명사 연구를 계기로 ‘정치적인 Gewalt의 행사’에 착안한 마르크스는, 정치적인 Gewalt를 혁명전략의 주요 부분으로 상정한다.

마르크스의 ‘정치적 Gewalt=혁명적 강력(革命的 强力)’은, 이처럼 자신의 정치이론으로부터 도출되는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혁명적 강력론(强力論)은, 일체의 예외도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을 교조적으로 사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언설(言說)을 자세히 검토하면, 그들이 혁명의 방식에 관하여 매우 유연한 견해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인터내셔널의 역사적 경험의 축적을 중요시한 마르크스는, 혁명에 있어서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역할 및 여러 국가들의 정치 ・경제구조의 구체적 성격에 대응하는 ‘혁명의 평화적 가능성에 관한 사상’을 발전시킨다.

{공산당 선언}에서 강력 혁명론(强力 革命論)을 주장한 엥겔스는 {공산주의의 원리}에서 ‘사적 소유의 폐지는 평화적인 방법으로(auf friedlichem Wege) 가능한가’라는 물음(제16問)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렇게 되면 좋을 것이며, 공산주의자들은 물론 그렇게 되는 것을 누구보다도 덜 반대할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혁명이 고의(故意)로 또 자의적으로 일으켜지는 것이 아니며, 혁명이란 언제 어디서나 개별적인 당파들이나 계급 전체의 의지 및 지도에 전혀 좌우되지 않는 정세의 필연적인 결과였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또한 그들은, 거의 모든 문명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이 폭력적으로(gewaltsam) 억압받고 있으며 공산주의자들의 반대자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혁명을 목표로 전력투구(全力投球)하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만일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때문에 마침내 혁명으로 내몰리게 된다면,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지금 말로써 옹호하는 것 못지않게 행동으로써 프롤레타리아들의 임무를 옹호할 것이다.”

이 경우 ‘혁명’이라는 말이 필연적으로 ‘강력혁명(强力革命)’을 함의하는 것처럼 쓰이고 있으나 {공산당 선언}의 강력 혁명론(强力 革命論)은 ‘폭력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을 억압하고 있던 당시 유럽 제국(諸國)의 정치정황을 근거로 한 주장이다. 이럴 때 ‘과학적’ 사회주의는 ‘평화적인 방법’을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과학적’ 사회주의는, 사태의 진전을 이성적으로 제어하는 것을 본래의 임무로 삼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강력 혁명의 평화적 ・이성적 가능성’을 전제로 마르크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은 경우 폭력 혁명론의 예외를 인정한다.

① 계급적 균형이 이루어졌을 경우

마르크스 ・엥겔스는 현실의 국가 속에서 정치권력이 늘 불평등한 방식으로 배분되는 것이 아님을 인식했다. 때에 따라서는 국가를 특정한 한 계급을 위한 ‘집행 위원회’로 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즉 사회에 있어서 여러 계급이나 이익집단이 정치권력의 지배를 에워싸고 항쟁하며 정치권력을 자신의 손아귀에 독점하려고 서로 투쟁할 때, 국가가 이러한 투쟁을 조정하고 타협을 위한 기반 ・규칙을 설정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

엥겔스는 이러한 상황을 예외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예외적인 현상이지만 투쟁하는 계급들이 서로 세력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외견상 두 계급의 조정자로서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한동안 획득하게 되는 시기가 있다.”

이와 같이 예외적으로 계급적 균형이 형성될 때 굳이 폭력혁명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② 의회 진출의 경우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보통선거권이 도입되고, 독일에서도 1890년에 사회주의 진압법(鎭壓法)이 폐지되어 여러 나라에서 불완전하나마 노동자 계급이 어느 정도의 정치적 발언권을 획득하게 되자, 폭력[강력]혁명론이 차츰 자취를 감췄다. 이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의 국가론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엥겔스는 사망하기 몇 달 전에 마르크스의 {프랑스에 있어서의 계급투쟁(Die Klassenkämpfe in Frankreich)}의 신판(新版) 서문을 쓰면서 ‘폭력[강력]혁명’의 고삐를 느슨하게 풀어놓음과 동시에 노동자 대표가 의회활동에 관여하는 일에 축복을 보냈다.

‘자각한 다수자에 의한 혁명’을 제시한 엥겔스는 “기습공격의 시대, 의식 있는 소수자가 의식이 없는 대중들의 선두에 서서 수행하던 혁명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하면서 젊은 시절의 강경한 혁명론에서 한발 물러선다. 엥겔스는 ‘다수자 혁명(多數者 革命)’을 위하여 노동자 대중은 선거권을 활용해야 한다고 권유하면서 “우리들이 의회에 진출하게 되리라는 것은 틀림없고 지금 논쟁거리는 어느 문(門)으로 들어가겠는가 하는 것뿐이다”고 말했다.

엥겔스는 또 “세계사(世界史)는 익살맞게도 모든 것을 전도(顚倒)한다. ‘혁명가들’이며 ‘전복자(顚覆者)들’인 우리들이 비합법적 수단이나 전복으로 거두는 성과보다 합법적 수단으로 거두는 성과가 훨씬 많다.”고 강조함으로써, 의회진출 등의 합법적 수단을 평화로운 혁명(평화 혁명)의 방편으로 수용한다. 이처럼 의회진출을 통하여 평화 혁명의 길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을 때 폭력혁명을 거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 ・엥겔스의 관점이다.

③ 이행의 다양성

마르크스 역시 권력의 변동에 있어서 폭력 행사가 필수적이 아닌 점을 승인했다. 1872년 제1인터내셔널 헤이그 대회 이후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장악이라는 목표에 이르는 길이 동일하지 않음을 밝히며 ‘이행의 다양성’에 관하여 언명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주의(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길은 다양하기 때문에 ‘폭력 행사의 불가피성’을 배제하고 혁명을 논할 수 있다. 즉 폭력 ・내전 없이 철저한 사회 ・경제적 변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민주주의적 전통을 갖춘 나라에서는 폭력혁명 없이 사회주의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영국과 같이 의회주의가 발전한 나라에서는 평화혁명이 가능하지만, 독일 등의 대륙의 국가들의 경우 ‘강력에 의한 혁명’이 불가피하다고 언급한다: “각 나라의 제도 ・습관 ・전통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미합중국 ・영국처럼 노동자가 평화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나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 네덜란드도 같은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대륙의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는 강력(强力)이 혁명의 지렛대가 되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만일 노동의 지배체제가 확립되어야 할 것이라면, 노동자가 장차 호소할 것이란 바로 이러한 강력뿐이다.”

혁명의 국민적 성격과 관련하여 마르크스가 지적한 혁명의 평화적 이행 문제는, 평화혁명인가 폭력혁명인가 하는 경직된 양자택일의 판단에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 국가 수립에 있어서 ‘혁명의 평화적인 이행과 혁명적인 강력(强力) 행사에 변증법적 연관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혁명과 관련하여 언급하는 ‘Gewalt’를 해석할 때, (평화혁명과 폭력혁명의) 구분에 집중하기에 앞서) ‘혁명에 의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필요한 강력’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계급사회의 평화

전쟁은 계급사회의 합법칙적 현상으로서 종국적으로 착취 계급이 자신의 지배를 확고히 하고 확대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이에 반해 평화는 공산주의의 합법칙적 현상으로서, 노동자 계급의 투쟁은 이 평화를 목표로 한다. 마르크스는 착취와 억압, 빈곤, 권리의 박탈을 제거하는 동시에 모든 종류의 전쟁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는 것이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사명임을 강조하였다.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존재와 발전, 사회주의 국가의 일관된 평화 정책은 마르크스의 다음과 같은 교의가 옳았음을 입증한다: 즉 ‘오직 노동자 계급만이 전쟁을 그 뿌리에서부터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오직 노동자 계급만이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정치적으로 불합리한 낡은 사회와 대립하여 하나의 새로운 사회 질서를 창조할 수 있다. 이 새로운 사회질서 속에서만 평화라는 원칙이 가능하다.’

계급사회에서 평화는 전쟁을 보완하는 또 다른 형태의 정치이다.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 평화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기초하며, 그 사회적 내용을 규정하는 것은 지배착취계급의 이해와 계급사회의 적대성이다. 이처럼 평화 역시 계급성을 띠며, 반동적일 수도 있고 민주적일 수도 있다. 계급사회에서 전쟁과 평화는 결코 절대적인 대립물이 아니다. 양자는 정치가 수행되는 형식에 의해서만 구별되며, 정치의 내용은 동일한 것이다. 계급사회에서 평화는 전쟁과 달리 근본적으로 인민대중의 이해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평화에의 갈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 왜냐하면 평화라는 것은 잇따른 전쟁 사이의 막간휴식에 불과하고 대개는 전쟁의 결과물이자 나아가서는 새로운 전쟁의 준비기이기 때문이다. 평화는 억압과 무력, 우월한 군사력 혹은 일시적인 힘의 균형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유리한 조건하에서, 다시 말해 진보적인 계급세력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에 그것은 정의로운 평화일 수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정의의 전쟁 ・부정의(不正義)의 전쟁, 진보적 전쟁 ・반동적(反動的) 전쟁을 구분했는데 평화의 경우에도 이러한 구분이 가능하다고 본다. 착취계급의 이데올로기 공세로 전쟁과 평화의 본질적인 차이가 희석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 보다 못한 평화(강화조약 ・휴전협정 ・제국주의의 강압에 의한 평화협정 등)’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계급사회에서는 평화 또한 진보적이고 민주적일 수도 있고 반동적이고 전제적일 수도 있으며, 따라서 정의로울 수도 부당한 것일 수도 있다. 정복자와 억압자들에 의해 강요된 평화적 독재, 제국주의적인 약탈과 무력의 평화, 식민지 내지 신식민지에 대하여 그 민족과 국가의 정당한 요구를 희생시키는 대가로 지불되는 이른바 ‘친선정책’과 평화조약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부당한 평화로 평가된다. 민족의 이해와 자주적 결정권과 사회적 진보에 대한 인정, 그리고 국가 간의 동등한 권리에 바탕을 둔 평화는 정당한 것이다.

5. 국제평화와 민족문제

마르크스는 계급대립의 지양을 통하여 국가 간의 전쟁이 폐지되고 영구적인 평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계급투쟁은 지속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전쟁도 평화를 위한 수단으로 해석될 수 있다.

평화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국제적 ・대외적인 원칙이다. 이 원칙은 사회체제의 차이를 불문하고 모든 민족 사이에 우호적인 관계를 실현시키고 국제법, 국가 간의 조약 ・협정을 토대로 국가 사이의 관계를 조정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마르크스는 ‘세계혁명’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제평화를 교란하는) 전쟁을 회피한다. 마르크스는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을 성장시키기 위하여, 각국(특히 유럽 선진국)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약소국이나 약소민족에 대한 자국의 침략 ・정복전쟁 ・간섭전쟁에 반대할 것을 요청한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국제평화 문제를 다룬 마르크스는 민족적 억압에 대하여 강력하게 비판하며, 민족해방 투쟁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국제평화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기본적인 원리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이다: “여러 나라 노동자 계급의 단결이, 궁극적으로 국제적인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틀림없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각국의 노동자는 자국 정부(自國 政府)의 침략 ・정복전쟁 ・간섭전쟁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 주장이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만약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하여 서로 다른 국민들 사이의 협력이 필요하다면, 민족적 편견을 갖고 약탈전쟁을 위하여 인민의 피와 재화를 탕진하는 대외정책으로 거대한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까?”

여러 국민들 사이의 우의를 확립하기 위하여 단순한 도덕과 정의의 준칙을 국제간의 관계에 들어맞게 하는 것이 요청된다: “사인(私人; Privatperson)의 관계를 규제해야 할 도덕과 정의의 단순한 법칙을, 여러 국민들 사이의 교통(Verkehr)에 있어서 지고(至高)의 준칙으로 유효하게 만드는 것”이 요구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각국의 노동자들이 약탈전쟁으로 민중의 고혈을 쏟아 붓게 만드는 대외정책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약소국의 민족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국제평화를 수립해야 한다. 그러므로 혁명적 노동운동은 사람들 간의 관계를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덕과 법률의 소박한 법칙이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지고(至高)의 법칙으로 통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 대외관계의 수립을 위한 투쟁은 노동자 계급 해방을 위한 투쟁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제1 인터내셔널 시기의 마르크스가 채택한 중심과제 중의 하나가, 간섭전쟁에 대한 반대와 민족적 억압에 대한 비판 ・민족해방투쟁 지원이었다.

이러한 차원에서 마르크스는 1861~1865년의 남북전쟁 당시에 노예해방의 기치를 든 북군(北軍)을 지지했다. 마르크스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이 전쟁에 간섭하는 것을 반대하라고 노동자들에게 요구했다.

마르크스는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민족은 자유로울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영국의 아일랜드에 대한 ‘강제적 병합’을 ‘자유롭고 평등한 연방’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또 필요하다면 아일랜드의 영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분리를 강제하는 것이 영국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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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마르크스가 본 전쟁과 평화」의 제4장 2절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40호에 실려 있다.
* 김승국『마르크스의「전쟁‧평화」론』(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197~221쪽에도, 위의 글이 실려 있다. 
* 기술적인 문제로 각주를 생략했으니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