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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중립화, 영세중립

‘비핵-중립-미군철수’로 한반도의 난국 타개를

김승국

부시 정권 등장 이후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대북 (핵)선제공격-북한 죽이기 작전 계획을 일격에 물리치기 위한 극약처방이 북한의 핵무기보유 선언(2 ・10 선언)이다.

현재 북한 핵문제를 에워싼 한반도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단기적인 방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단기적인 방안의 승부처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있다. 그런데 단기적인 방안들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이후의 행보를 막연하게 추정할 뿐이다. 이러한 ‘막연함’은, 중장기적인 밑그림 없이 단순히 6자회담 복귀를 기대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필자가 아래에서 제시하는 중장기적인 밑그림은, 1994년의 제네바협정(‘제1의 제네바협정’)의 요체인 ‘소극적 안전보장(NSA: Negative Security Assurance)'을 확장한 ‘제2의 제네바협정’을 체결하는 데 중점이 있다. NSA는 핵보유국(미국)이 비핵국가(북한: 제1의 제네바협정 체결 당시 북한은 비핵국가이었음)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보증이다. 그러나 NSA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미국은, 핵태세 수정 보고(NPR: Nuclear Posture Review) 등을 통한 대북 핵 선제공격을 추진해왔다. NPR이 NSA를 죽인 순간에 제1의 제네바협정은 사망선고를 받았다. 사망선고를 받은 제1의 제네바협정을 되살리면서 북한 핵문제를 총체적으로 해결하는 제2의 제네바협정을 일괄 타결해야 한반도의 난국이 풀린다.

제2의 제네바협정은, 제1의 제네바협정의 소극적 안전보장(NSA)에 비핵+중립+미군철수라는 ‘적극적 안전보장(PSA: Positive Security Assurance)’을 추가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이렇게 비핵+중립+미군철수를 중심으로 제1의 제네바협정에서 제2의 제네바협정으로 이행하는 구도를 나타낸 것이 <표 2; 생략>이다.

1. 제1단계

<표 2>은 3단계의 이행표이지만 북・미간의 이견극복 속도에 따라 얼마든지 단축할 수 있다. 제1단계의 이행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6자회담에 나온 미국의 첫 화두는 NSA의 재확인이어야 한다. 북한에 핵 선제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시 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파기를 원하는) 북한 측의 ‘원(怨)을 풀어주는 과정’ 없이 6자회담의 지속은 불가능하다. 이어 6자회담이 한두 차례 열리면 미국이 NPR의 적용대상에서 북한을 제외한다는 선언과 함께 북한 죽이기 작전 계획들(5029 등)의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의 대량 살해를 노린 벙커 버스터 핵폭탄의 사용 계획도 포기한다고 선언해야 한다.

미국의 북한 죽이기 작전 계획 때문에 켜켜이 쌓인 북한의 ‘한(恨)’을 풀어주는 갈등해소-해원(解寃)이 없으면, 6자회담은 단명에 그칠 것이다. 얼마나 한이 쌓였으면 ‘미국이 우리를 업수이 여기기 때문에 자위적 차원에서 미국에 맞서보려고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는 한스러운 발언을 김정일 위원장이 했을까?(2005년 6월 17일 정동영 장관을 면담한 김정일위원장의 발언)

북한이 수십 년 동안 미국으로부터 업수이 여김을 당한 ‘한’을 풀기 위해 만든 핵무기는 ‘한의 핵무기’이다. 이 ‘한의 핵무기’를 없애기 위한 6자 회담이 열리면 ‘북한의 한 풀어주기’를 갈등해소 방안으로 삼아야 한다. 조선 사람들의 체질에 맞지 않는 미국식 제로 섬 게임(zero sum game)에 입각한 갈등해소(conflict resolution)방법으로는, 60년 동안 쌓인 북한의
한을 풀어줄 수 없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조선 사람들의 갈등해소 방법을 미국이 터득하는 가운데 북한의 ‘한’을 풀어줘야 북한 핵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북한을 업수이 여긴 가해자 미국이, 피해자인 북한의 한스럽고 아픈 곳을 살펴주는 상생의 정신을 발휘하지 않는 한, 제1의 제네바 협정에서 제2의 제네바 협정으로 이행할 수 없다. 미국이 북한의 아픈 곳을 살펴주기는커녕 아픈 곳을 찌르며 ‘폭정의 전초기지’ 타령을 하는 한, 제1의 제네바협정도 지킬 수 없다. 북미간에 상생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NSA에 비핵-중립-미군철수 구상을 얹는 ‘북한 핵’ 해결-평화 체제 구축의 길이 열린다.

다행히 6자회담에서 조선식 갈등해소법인 ‘원 풀어주기’와 ‘한 풀어주기’가 이루어진다면, 비핵-중립-미군철수의 3위1체를 통한 제2의 제네바협정이 가시권에 들어올 것이다.

가시권을 확보하기 위해, 우선 비핵의 차원에서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실천해야 한다. 이어 중립을 위해 ①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뒤에 예상되는 국제원자력 기구(IAEA)의 북한 핵사찰에서 당사국들(특히 미국)의 중립적인 태도가 긴요하다.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 사찰 때처럼 IAEA가 미국 편에 서면 중립성을 잃게 되며 북한의 반발이 뒤따르므로, 영변 지역 등에 대한 핵사찰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② 제2의 제네바협정 체결 과정에서 6자회담을 비핵화 추진기구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 기구의 중립적인 성격이 매우 중요하다. ③ 비핵화를 추진할 6자회담의 중립성을 강화하는 가운데 한반도의 비핵-중립화를 추진한다. ④ 오스트리아 방식의 중립화를 도입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유도하고 그러한 노력 끝에 주한미군의 제1단계 철수를 매듭짓는다. 그리고 미군철수를 위해, 전 세계 미군의 재편 작업(GPR)에 의한 주한미군의 1단계 철수 시간표에 끌려 다니지 말고, 민족주체의 역량으로 주한미군의 1단계 철수를 내리먹인다.(주1)

위와 같은 비핵-중립-미군철수를 유기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 ‘비핵+중립’과 ‘중립+미군철수’를 합성하는 발상이 필요하다.

  (1) 비핵+중립

비핵+중립의 과정은 미국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북한도 적절한 시점에 핵무기를 철폐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이 2005년 6월 17일 정동영 장관과의 면담에서 밝혔듯이 비핵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2)이므로, 북한 쪽의 당위이다. 중립 역시 국책에 해당되므로 북한 쪽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 1980년 10월 10일 조선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
방안」을 발표하면서 남북이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3대 원칙에 따라 ‘어떠한 정치군사적 동맹이나 블록에도 가담하지 않는 중립국가로 되어야한다’고 역설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중립은 국책이다. 김일성 주석이 제3세계 비동맹운동을 이끌면서 비동맹 중립을 제창했기 때문에, 김정일 정권이 비동맹 중립의 ‘중립’ 정책을 한반도에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김일성 주석이 1993년 4월 7∼9일의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 회의 연설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전 민족 대단결 10대 강령」을 발표하면서 ‘전 민족의 대단결로 자주적・평화적・중립적인 통일국가를 창립하자’고 제안했으므로, 김정일 위원장이 중립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북한은 비핵+중립의 가치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
문제는 한-미-일 군사 공동체가 비핵+중립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한-미-일 군사공동체 중에서 비핵+중립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쪽이 남한 정부이다.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창한 노무현 대통령의 초심 속에 중립의 맹아가 엿보이지만, 미국의 위력 앞에서 꼬리 내린 균형자론 속에는 중립은커녕 종속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만일 ‘동북아 균형자론’의 불씨가 아직도 살아 있다면 이를 비핵+중립과 연결시키는 연습을 남한 정부가 해볼 만하다.

햇볕 정책의 창안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스트리아 중립방안을 제의한 적이 있으며 남한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주도한 적이 있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의 연장선상에서 비핵+중립에 접근해도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문제는 미국과 일본 쪽에 있는데, 미국은 예전에 주한미군 철수를 강구하면서 한반도 중립화 방안을 내부에서
검토한 적이 있으므로 비핵+중립의 울타리 안에 들어올 수 있다.

아무튼 한-미-일 군사공동체를 비핵+중립 쪽으로 유인해내기 위해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실현하고, 이를 총괄하는 기구로서 6자회담을 활용하면 된다. 6자회담의 성격을 비핵+중립 쪽으로 서서히 전환시키는 방안을 강구하면 된다. 한-미-일 군사공동체를 6자회담이라는 절구통 속에 집어넣고 비핵+중립의 방아를 찧는다면 한-미-일의 탈출구를 봉쇄할 수 있다.

2. 중립+미군철수

한반도 주변의 지정학적인 역학관계 때문에 한-미-일의 탈출구를 봉쇄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핵+중립, 중립+외국군 철수에 성공한 해외의 사례가 있으므로 비관적으로 생각할 일이 아니다. 비핵+중립의 모범국가로 스위스(재래식 무장 중립)와 코스타리카(비무장 중립)를 들 수 있으며, 중립+외국군 철수의 모범국으로 오스트리아를 들 수 있다.
수백 년 동안 지속된 내전을 끝내고 주변국의 침입을 막기 위해 1536년에 영세중립을 선언한 스위스는, 1815년에 영세중립국으로 공인받은 다음 평화로운 상태에서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이다. 스위스는 영세중립 국가이지만 재래식 무장을 하고 있다. 제2차대전 때 독일 편에 선 오스트리아는, 패전 이후 소련군・연합군에 의해 점령당한 악조건을 벗어나기 위해 ‘외국군 철수’ 차원에서 중립 정책을 펼친 끝에 영세중립 국가가 되었다(1955년에 영세중립 국가 선언). 군대 없는 나라인 코스타리카는 1983년에 비무장 영세 중립을 선언했다. 미국의 앞마당에 위치한 코스타리카는 미국의 압력을 뿌리치는 가운데 비무장 영세 중립국이 되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했다. 그 결과 스위스와 달리 무장하지 않은 영세 중립국가로 되었다. 코스타리카에는 군대가 없으며 경비대(시민 경비대 4,300명・지방경비대 3,200명)가 있을 뿐이다.

한반도의 경우 지정학적인 역학관계 때문에 코스타리카와 같은 중립 정책을 지키기 어렵다. 어쩔 수 없이 무장 중립을 견지할 수밖에 없으므로 스위스식 무장 중립, (외국군을 철수시키는 데 유리한) 오스트리아식 중립을 따르는 게 좋다. 따라서 북한 핵문제의 당사자인 북한 당국이 스위스식 무장 중립(또는 오스트리아식 중립)에 비핵을 가미하는 정책을 수행하면서 미국을 그쪽으로 유인하는 게 바람직하다.

북한의 대변인으로 알려진 김명철 씨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김정일의 시각은 스위스식 무장중립론’이라고 언명했다.(주2) 그렇다면 스위스의 재래식 무장(비핵) 중립을 북한이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북한이 2 ・10선언 이후에 ‘핵무장 중립’을 고려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나, 핵무장은 원론적으로 비핵+중립 정신을 훼손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북한이 선호하는 스위스식 비핵+중립 모델에 오스트리아의 중립+외국군 철수 모델을 중첩시키면 고차원의 평화구축 방안이 나올 듯하다. 북한이 바라는 외국군(미군) 철수를 에돌아 관철하는 방편으로 중립화(중립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전제로 미군철수가 이루어져야 한다)를 추진하면 예상 밖의 성과를 얻을 것이다.

스위스・코스타리카의 비핵+중립과 오스트리아의 중립+외국군 철수를 접합한 ‘비핵+중립+외국군(미군) 철수’의 한반도화를 이룩하는 고리는 오스트리아의 중립 정책이다. 오스트리아는 제2차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 패전국가가 되었다. 패전국가의 관리 체계에 따라 소련군과 연합군이 동시에 오스트리아에 진주하는 수모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세중립 정책을
채택했다. 오스트리아가 외국군의 철수를 목적으로 한 영세중립 정책에 성공한 모델을 한반도에 적용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실천하는 게 제1단계의 관건이다. 이와 관련하여 셀리그 해리슨(Selig Harrison)의 저서 코리아 엔드게임 에 나오는 ‘한반도 비핵 중립화-미군철수의 방법론’을 참고하기 바란다.

필자가 비핵+중립에 미군철수를 중첩시킨 이유는, 주한미군의 60년 주둔 체제가 북한 핵무기 보유의 근본원인이기 때문이다. 남한 땅에 주둔한 주한미군이 주일미군과 합세하여(최근에는 자위대가 가세함) 북한 붕괴용 군사행동을 가속화하는 가운데 수난자인 북한의 임계점이 터진 것이 2 ・10 선언이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인 ‘비핵’과 국책인 ‘중립’을 북한 당국이 실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주한미군・한미동맹이다. 주한미군의 대북 핵전쟁을 예방하는 ‘비핵’과 한미동맹을 지양하는 ‘중립(어떠한 정치군사적 동맹이나 블록에도 가담하지 않는 중립)’이 어울려 비핵+중립을 실현하는 전제조건은, 주한미군의 철수에 있다. 필자가 비핵+중립+주한미군 철수의 3자 관계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제2단계; 생략

*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핵문제』(파주, 한국학술정보, 2007) 313~323쪽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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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위의 문장에서 나오는 ‘중립적 태도’ ‘중립성’ ‘중립화(영세중립)’를 총화한 개념을 ‘넓은 의미의 중립’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넓은 의미의 중립’은 ‘좁은 의미의 중립(제도로서의 중립/중립제도)’을 포괄한다. ‘중립적 태도’ ‘중립성’은 일상적인 의미의 중립과 관련된 자세・성격을 뜻하고 ‘중립화’는 중립의 제도를 말하므로 그 지평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중립은 주로 전시에 적용되는데 전쟁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는 전쟁당사국 어느 한편을 지원하거나 편의를 제공할 수 없으며, 엄정한 중립을 유지함으로써 전쟁종료와 함께 그 효력이 상실된다. 중립화와 유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영세중립은, 그 국가의 정치적 독립과 영토의 통합이 주변국가와 국제적 협정을 통하여 영구적으로 보장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영세중립은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국가만을 그 대상으로 하는 데 반해, 중립화는 국가를 포함한 국제하천・국제수로・북극・남극 등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주2)) Kim, Myong Chol. 2001. 「Kim Jong Il's Perspectives on the Korean Question」 {The Brown Journal of World Affairs Winter/Spring} 2001 Vol. Ⅷ, Issue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