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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중립화, 영세중립

코스타리카의 비무장 ・비동맹 중립

김승국

1. 군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의 사회상

중남미 하면 군사독재가 연상된다. 1970~80년대 군부 파시즘으로 홍역을 치른 중남미. 이런 중남미 군사독재 현상의 열외지역이 한군데 있다. 이름하여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는 현재 ‘무기를 갖지 않은 투사들’의 나라이다. 이 나라를 평화의 땅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스타리카의 정치지도자와 국민들이 합심하여 평화를 위한 투쟁을 하여 성공한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평화의 투사’들이 사는 코스타리카를 찾아가 보자.

중남미의 지도를 보면 코스타리카는 미국의 준식민지 국가인 파나마와 미국에 의해 혁명이 좌절된 니카라과의 틈바구니에 있다. 코스타리카라고 해서 미국의 입김에서 자유스럽지 않았다. 미국의 개입으로부터의 자유가 평화를 약속해 주는 제3세계 나라들과 거의 비슷한 국제적인 환경을 지닌 코스타리카가 자주(미국의 입김으로부터의 자유)에 의한 평화를 구가한 내막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코스타리카는 인구 360만 명, 면적 5만 1,032평방의 작은 나라이다. 민족 구성은 스페인계 백인이 95%, 아프리카계 3%, 원주민 2%이며, 가톨릭 신자가 전 국민의 85%, 개신교 신자가 15%를 차지하는 백인 계통의 기독교 국가이다.

이 나라는 평화를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간 역사를 지니고 있다; ①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② 1838년 중남미 연방에서 탈퇴 ③ 1890년 중남미에서 처음으로 완전 자유선거 실시 ④ 1948년 6주간의 내전. 내전 종결 후 군대의 폐지를 선언 ⑤ 1949년 11월 평화헌법 시행 ⑥ 1955년 여성에 의한 투표 개시 ⑦ 1980년 유엔 평화대학 창설 ⑧ 적극적인 영세 비무장 중립을 선언 ⑨ 아리아스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앞에서 보듯이 코스타리카는 민주주의, 평등, 평화를 위한 행진을 계속해 왔다. 그중에서도 스위스같이 영세중립국을 선포한 것이 이채롭다. 영세중립국의 대명사 스위스는 실제로는 무장국가였으며, 최근에 유엔에 가입하면서 보통국가로 되었다. 생각건대 군대 없는 코스타리카가 유일하게 비무장 영세중립의 원론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그럼 코스타리카의 평화헌법을 훑어보면서 군대 없는 평화의 나라의 참모습에 접근해 보자.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는 “항구적인 제도로서의 군대를 금지한다. 다만 공공질서의 감시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찰력은 보유한다. 대륙 간 협정에 의하거나 국가방위를 위해서만 군대를 조직할 수 있다. 경찰력[또는 군대]은 어느 경우이든 문민권력에 언제나 종속해야 하며, 단독 또는 공동으로 심의하는 것도 성명 ・선언을 내는 것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주1)

이처럼 코스타리카의 (평화)헌법 12조는 교전권을 부인한 일본의 평화헌법 9조보다 더욱 강력한 평화의 의지를 지니고 있다. 일본도 평화헌법을 갖고 있고 코스타리카에도 평화헌법이 있다. 그러나 두 나라의 평화헌법의 제정과정이 다르다. 일본은 점령국가 미국에 의해 평화헌법이 만들어진 반면, 코스타리카는 국민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평화헌법을 만들어냈다. 또 일본은 평화헌법 아래에서 자위대라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코스타리카에는 국경 경비대 등 필요 최소한의 인원이 있을 뿐이다. 코스타리카는 명실 공히 군대를 폐지했다.

더욱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는 점이다. 내전이 계속되는 중남미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곧바로 평화를 상실한다. 그래서 코스타리카는 평화의 목청을 높이기 위해 국민적인 차원의 평화교육에 주력했다.

코스타리카의 어린이들은 꼬마 시절부터 평화교육을 받는다. 초등학생들은 학교 수업시간에 평화교육을 받으며 민주주의적인 대화에 의한 분쟁 해결 방식을 몸에 익힌다.

그리고 자국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주변 국가들도 평화롭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적극적 비무장 중립’을 내걸고 주변 국가들의 분쟁해결까지 맡는다. 코스타리카가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점에서, 일본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코스타리카에 평화의 철학이 없었다면 이런 위업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이 나라가 평화헌법을 시행한 것은 1949년. 고작 6주간의 내전이었지만 약 2000명이 사망했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군대를 폐지했다. 헌법 12조는 ‘항구적 제도로서의 군대를 금지한다’고 강조한다. 헌법제정 뒤 ‘병사의 수만큼 교사를 둔다’는 국민적 합의 아래 군사예산을 교육예산으로 돌려버렸다. 이로써 국가예산의 3분의 1이 교육비로 충당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이만큼 교육에 예
산을 할애하는 나라는 코스타리카밖에 없다. 그 결과, 중남미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다. 단지 읽기 쓰기만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고, 국민 모두가 매우 실천적인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것이다.

교육을 중시하는 표어 중 ‘트랙터는 전차보다 도움이 된다’ ‘병영을 박물관으로 바꾸자’ ‘소총을 버리고 책을 갖자’ ‘트랙터는 바이올린에로의 길을 연다’는 문구가 돋보인다. 실제로 코스타리카의 옛 병영이 역사박물관으로 되었다. 전차는 파괴하면 그만이지만, 트랙터를 사용하여 밭을 경작하면 풍요로워진다. ‘농민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우아한 생활이 가능하다’는 표어를 반세기 이전에 내걸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얼마나 멋진 표어인가?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일본처럼 ‘평화헌법이 있기 때문에 그냥 그것으로 좋다’고 방관하지 않았다. 중남미 분쟁이 격화된 1983년. 당시의 몬헤 대통령은 ‘영구 비무장 적극적 중립’을 선언했다. 몬헤 전 대통령은 회고담에서 “미국 국방성과 CIA의 첩보원이 찾아 와서 중립선언을 그만두든지 연기하도록 요구했다. 나는 거절했다.”고 말하며 중립선언을 했을 당시 미국 쪽에서 압력이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은 중남미를 자국의 마당으로 생각한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견본처럼 여겨진다. 한데 미국의 생각을 따르지 않는 나라가 있으면, 해병대를 파견하여 침략하는 게 미국의 수법이다. 미국의 무릎 밑에 있는 코스타리카에도 당연히 압력이 가해졌다. 그러나 코스타리카는 이런 압력을 뿌리치고 평화의 길을 선택했다.

코스타리카는 1949년부터 지금까지 70회의 헌법 개정이 있었다. 이렇게 개헌이 빈번하게 이루어졌지만 군대폐지 조항을 바꾸려는 개헌안은 제출된 적이 없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휘겔스 전 대통령의 처 카렌 씨가 말하듯이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군대가 필요 없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을까? 보통사람들을 붙잡고 “정말로 당신들은 군대를 필요치 않는가?” 물어 보아도 “군대가 없어서 불안감을 느낀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군대가 없는 쪽이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이유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타인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격당할 일이 없다.
  2) 군대를 보유하면 다른 나라에 간섭하게 되거나, 다른 나라로부터 간섭을 받아 무력공격을 받기 쉽다. 우리들은 다른 나라에 간섭을 하지 않으며 우호적으로 지내기 때문에 공격받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없다.
  3) 무력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만 산더미같이 낳는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타협하여 해결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논의하지 않고, 무력행사를 당한 때의 일만을 문제 삼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4)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선 예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 세계의 완전한 평화가 꿈이라고 생각할지라도, 상대방과 관용을 갖고 지내는 게 중요하다.
  5) 군대를 갖지 않고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는 나라를 상대로 갑자기 무력행사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전 세계의 민주국가를 적으로 돌리는 꼴이 될 것이다.
  6) 군대에 쓰이는 돈을 교육이나 의료에 돌리면 오늘날처럼 평화롭고 안전한 생활이 가능하다. 이런 생활을 버리고서 군대를 갖고 싶은 생각이 없다.

코스타리카의 인구는 340만이 채 되지 않는다. 코스타리카에는 근대산업에 필요한 지하자원이 거의 없다. 그래서 당연히 국가재정 기반이 취약하다. 예전에는 농업국가로서 환금(換金) 작물로 외화를 벌어들였으나, 최근 세계시장에서 농산물 가격이 떨어져 국제경쟁력이 저하되었다.

이렇게 나라 살림이 여의치 않은 코스타리카는 국방비를 거의 제로(zero)로 만든 국가재정의 여유분으로 사회복지 ・교육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중남미 국가 중에서 가장 소득수준이 높고 사회복지가 충실하다. 사회복지를 충실히 하는 데 군대폐지가 한 역할이 크다.

이런 점에서 ‘제아무리 가난해도 군대는 보유해야 한다는 제3세계 국가들’과는 발상 자체가 다르다. 코스타리카 역시 예전에는 미국의 입김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에, 외국으로부터의 침공이 있을 때 미국이 적극적으로 방어해 주겠다는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다.

1987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아리아스 대통령은, 미국의 이러한 유혹을 에워싸고 국론이 양분된 상태에서 비무장을 제창한 끝에 당선되었다. 아리아스는 (이미 영세 비무장 중립 노선을 천명한) 몬헤 대통령의 후계자로서 여성과 학생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그는 당선된 다음 국경경비대의 무장마저 경무장으로 바꿨다.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가 펴내는 권위 있는 자료 {Military Balance} (1995~96년 판)의 코스타리카 편을 보자. 1994년도의 국방지출은 3,600만 달러이지만, 덧붙인 설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코스타리카에 군대는 없다. 국방지출 예산 액수는 경찰, 해상 경찰, 국내 치안과 관련된 것이다.”

코스타리카에는 군대가 없는 대신 ‘경비대’가 있다. 즉 시민 경비대 4,300명과 지방 경비대 3,200명이다. 합계 7,500명이 북부, 남부지구의 국경경비를 포함하여 코스타리카 전 지역을 지키고 있다. 이를 위해 초계정 7척과 세스나기 4대 이외에 최소한의 자위용 소화기는 있으나, 전차(탱크)와 기관총은 1대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럼 코스타리카의 국방비의 변화와 이에 따른 국민 1인당의 부담액을 살펴보자.
1985년도 국방비=3,800만 달러(국민 1인당 부담액=15달러)
1993년도 국방비=3,400만 달러(국민 1인당 부담액=11달러)
1994년도 국방비=3,600만 달러(국민 1인당 부담액=11달러)

이렇게 10년 전에 비해 국방비도 줄고 국민 1인당 부담액도 감소추세이다. 한국의 국민 한 사람이 부담하는 국방비에 비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그래서 그런지 코스타리카의 하늘에는 전투기가 전혀 떠다니지 않고 땅에도 국방색 군복을 입은 현역군인들을 볼 수 없다. 물론 예비군도 없다.

코스타리카의 역대 대통령들은, 비(非)군사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피땀을 흘려가며 자국의 정책을 다른 나라에 호소하는 가운데 비무장 영세중립을 주변국들로부터 인정받았다. 코스타리카의 정치지도자들이 적극적인 평화외교를 펼치면서 ‘영세비무장 중립 선언’을 제도화함으로써 ‘군사비 부담이 없는 경제발전’을 도모한 점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군대의 폐지 즉 ‘비무장 중립’의 자세는, 이웃나라 니카라과의 내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중남미의 격동기인 1980년대. 니카라과의 사회주의 정권을 깨부수고 반혁명 무장세력(Contras)을 지지한 미국은 공공연하게 니카라과 정세에 개입했다. 미국은 니카라과의 배후에 있는 코스타리카에 경제원조 등을 미끼로 삼아 미군기지를 세우려고 했을 것이다. 보통의 나라 같으면 미국의 제의를 넙죽 받아들여 니카라과의 혁명을 전복시키기 위한 미군 상륙을 허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코스타리카의 국민과 지도자들은 이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이점이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화-자주의 의지’이다.

코스타리카가 ‘비무장 중립 평화’를 위해 ‘자주’를 지킨 점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모범사례가 될 것이다. 코스타리카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평범한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이런 길을 걸은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코스타리카도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국가들에 에워싸여 격동의 역사를 헤쳐 나오면서도 ‘군대 없는 평화국가’를 형성해 왔다.

1959년의 쿠바 혁명은 ‘군대 없는 코스타리카’에 커다란 위기를 안겨 주었다. 미국의 앞마당인 쿠바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이 즉각 공세적인 자세를 취했고 이에 따라 중남미 정세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곧이어 1962년 쿠바에 설치한 소련의 공격용 미사일 시설을 에워싸고 미국과 소련 사이에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나아갔다.

이윽고 1979년 인구 250만의 작은 나라 니카라과에서 광범위한 국민의 지지를 얻은 혁명정권이 등장하여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니카라과의 혁명을 주도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 전선(FSLN)은 미국의 눈엣가시였다. 미국은 FSLN을 거세하기 위한 군사적 공작을 코스타리카에서 하려 했으나, 코스타리카 정부의 선방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정황을 한반도에 대입하면,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을 전복하기 위한 군사적 공작을 남한 정부에 제안했으나 보기 좋게 ‘퇴짜 맞은’ 꼴이다. 불행하게도 남한의 역사는 코스타리카와 반대의 길을 걸었다.

2. 코스타리카에 있어서 비무장 ・비동맹 영세중립의 기본구도

코스타리카의 ‘비무장 ・비동맹 영세중립’의 기본구도를 알기 위해서는, 1983년 11월 17일에 발표된 「코스타리카의 영세적 ・적극적 비무장 중립에 관한 대통령 선언(이하 ‘중립선언’)」을 보면 된다(이 ‘중립선언’을 전 세계 각국이 환영 ・지지했지만, 미국만 유일하게 불쾌감을 나타내며 지지를 거부했다).

  1) 코스타리카 중립선언의 법적인 성격

코스타리카의 경우 해당정부가 자주적으로, 외교관계를 갖는 여러 외국에 ‘중립선언’을 일방적으로 통지했다. 이 점은, 오스트리아의 경우와 비슷하다. 코스타리카의 ‘중립선언’은 오스트리아와 유사하지만, 오스트리아와 달리 외국에 대하여 영세중립의 승인을 요구한 의사(승인의사)가 불분명하다. 그러므로 코스타리카의 영세중립은, 법적 성격의 영세중립이 아니라 정치적 성격의 영세중립이라고 볼 수 있다. 비무장 영세중립을 스스로 약속했지만, 다른 나라의 승인을 요구하지 않은 코스타리카의 일방적인 ‘중립선언’은, 다른 나라의 승인을 요구한 오스트리아와 다르며, 새로운 형태의 법적인 영세중립이라고 할 수 있다. 코스타리카의 영세중립은, 코스타리카 스스로 평시(平時)이든 전시이든 준수해야 할 법적인 의무가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평시에는 특별한 법적 관계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제3국에 무력분쟁이 발생하는 전시의 경우에, 제3국(다른 나라)은 전시 중립법 즉 ‘중립선언’의 중립법을 준수할 법적인 의무가 생긴다. 이와 동시에 제3국은 코스타리카에 대하여 중립의 준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澤野義一 {非武裝中立と平和保障}(東京, 靑木書店, 1997) 71~77쪽 요약>

  2) 코스타리카 중립선언의 내용 분석

‘중립선언’(B)에는, ‘코스타리카 공화국 정부는 국제법의 원칙에 의거하여 영세적 ・적극적 ・비무장적 중립선언에 따르는 의무를 존중하는 동시에 다른 나라도 준수하도록 하겠다고 결의한다’고 쓰여 있다. 이처럼 영세적 중립 ・적극적 중립 ・비무장적 중립이라는 중립의 세 가지 핵심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

    ㉠ 영세적 중립<澤野義一 {非武裝中立と平和保障} 78~79쪽 요약>

‘중립선언’(A)의 Ⅰ는 ‘코스타리카의 중립은, 영세적이며 일시적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군사적 분쟁에 대하여 적용된다’고 강조한다.
중립선언의 ‘중립의 신뢰강화’라는 항목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영공 및 영해를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영역이 전쟁에 말려든 당사자를 위한 군사작전 기지로 사용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우리들은 가능한 노력을 할 의무가 있다. 즉 분쟁상태에 있는 당사자에 대한 모든 지지와 원조를 금할 의무, 군대나 탄약 또는 군수물자 ‘보급’부대 수송을 위해 우리나라 국토의 통과를 용인하지 않을 의무, 교전 당사자와의 공중용(公衆用)이 아닌 통신용 무선시설의 유지 내지 설치를 용인하지 않을 의무, 교전 당사자를 위해 전투부대를 편제하거나 징병용(徵兵用) 사무실을 개설하는 것을 저지할 의무, 우리나라 국토에 침입해 온 전투원을 무장 해제하고, 전쟁터에서 가능한 한 격리시켜 유치(留置)할 의무가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중립의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교전 당사자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공평한 정책을 취하는 게 우리들의 의무이다.”

중립선언의 ‘중립의 의무’라는 항목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전쟁을 절대적으로 개시하지 않을 의무, 무력의 행사, 위협 또는 군사적 보복을 하지 않을 의무, 제3국 간의 전쟁에 참가하지 않을 의무, 우리나라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물질적 ・법적(法的) ・정치적 ・도덕적인 모든 수단을 통해 우리나라의 중립과 독립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옹호할 의무, 군사적 분쟁에 현실적 ・외견적(外見的)으로 말려들지 않도록 중립에 기반을 둔 외교를 추구할 의무가 있다. 더욱이 영세중립국으로서의 우리들의 의무, 여러 나라 안의 무력분쟁에도 확장하고 적용시킬 의무가 우리들에게 있다.”

중립선언의 ‘중립의 신뢰강화’ 항목에 열거된 의무는, 영세중립의 제1차적 중립의무에 해당되고 ‘중립의 의무’ 항목에 열거된 의무는, 영세중립의 제2차적 의무에 해당된다.

    ㉡ 적극적 중립<澤野義一 {非武裝中立と平和保障} 80~83쪽 요약>

코스타리카가 제창하는 적극적 중립이란, 영세중립국이면서 자국의 제도 ・이데올로기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으며, 유엔 ・미주기구(美州機構)라는 집단적 안전보장 기구에 가맹하여 평화 ・인권보장을 위해 협력할 의무를 의미한다. 이는 스위스처럼 유엔에 가맹하지 않는 소극적 영세중립과 대비(對比)된다.

코스타리카는, 인권을 비무장 ・비군사(非軍事)에 의한 평화와의 관계에서, (군사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적 생존권의) 시각에서 본다. 중립선언의 ‘[인간의] 전면적 발전으로서의 평화’라는 항목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국민의 영혼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는 평화에 대한 사명은, 군대의 폐지에 의해 엄청나게 커진다. 군국주의가 사라짐으로써 코스타리카가 강고해졌다. 우리들은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 위험한 쪽을 선택한다.”

군사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적 생존권의 시각은, 인간의 생명(권) 존중의 사상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코스타리카의 중립은 군사적 중립을 의미하고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 비무장적 중립<澤野義一 {非武裝中立と平和保障} 83~86쪽 요약>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에서 말하는 비무장은, 상설제도로서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제1항). 군대에 대신하는 조직으로, 치안 ・국경경비용 시민경비대(Civil Guard)가 설치되어 있다(제2항). 이를 경찰대(Police forces)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제12조 3항에는 미주기구 등의 요청이나 자국 방어상 필요할 경우 상설적이지 않은 군대를 보유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무력에 의한 자위보다, 무력에 의존하지 않는 안전보장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코스타리카에서 군대의 보유가 금지되어 있으므로 전차 ・전투기 ・군함 ・미사일 등 통상 전투무기가 없다. 무기가 있다면, 초계정 ・헬리콥터 몇 대 이외에 자동소총 등 소화기(小火器)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시민경비대가 증대(1949년에 1,200명, 1978년에 3,200명, 1985년에 12,600명)함으로써 경비대의 군사화 경향 즉 ‘준군대(準軍隊)’로 ‘정규군화(正規軍化)’하는 경향이 있다. 코스타리카의 경비대가 ‘정규군화’하고 있지만 ‘영세적 ・적극적 ・비무장적 중립’ 정책이 (불철저하지만) 유지되고 있다. 중남미 이웃 나라의 군사비가 전체 예산의 20% 이상인 데 비하여 코스타리카는 5%(GNP의 1%)이다(전체 예산 중 교육비는 30%).

이처럼 코스타리카의 ‘비무장’은 이웃 나라에 비하면 ‘비군사화’로 보이지만 완전한 ‘비무장’ 상태가 아니다. ‘비무장적’ 중립이라기보다 ‘비군사적’ 중립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하다.
(2004.10.10)

*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171~185쪽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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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의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army as a permament institution is proscribed. For vigilance and the preservation of the public order, there will be the necessary police forces. Only through continental agreement of for the national defense may military forces be organized; in either case they shall always be subordinate to the civil power; they may not deliberate, nor make manifestations or declarations in individual or collective f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