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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마르크스_ 정치경제학

‘핵시대’ 개념과 사회구성체

김승국

1. 핵시대의 개념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함으로써 한반도는 제2기의 핵시대에 접어들었다. 한반도에서 제1기의 핵시대는 미국이 1958년 처음으로 한반도에 핵무기를 도입하면서 열렸으며, 1992년의 남북한 비핵화선언과 더불어 미군의 전술핵무기를 철수함으로써 마감한다. 제1기의 핵시대이든 제2기의 핵시대이든 전 세계 차원의 ‘핵시대’ 개념에 속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하기 위해 미국이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1945년 이후의 시대를 핵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핵시대는 역사학적인 시대구분은 아니며, 다만 핵문명의 위기를 강조하기 위한 시대구분이다.

역사는 최초의 핵전쟁, 더욱 정확하게는 ‘인류절멸의 첫 범행’을 경계로하여 ‘히로시마 이전’과 ‘히로시마 이후’로 나누어져야 한다. 히로시마 이후의 역사는 ‘히로시마 기원(紀元)’으로 시작되는 ‘핵시대’로 규정되어야 한다. ‘핵시대’란 (생활주변의) 불을 사용하는 시대가 아니라, ‘핵의 불’이 출현한 시대이다. 또 ‘핵의 불’의 파괴력이 거대하기 때문에, 사회・사회구
성체, 국가・문화, 역사의 모든 것이 절멸될 가능성이 생겨난 시대이다.

다른 한편 핵시대가 출현함으로써 히로시마・나가사키를 원점(原點)으로 삼아 인류의 생존 그 자체, 역사의 존속 그 자체를 요구하는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대중운동이 장기간 발전되어 왔으며 또한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대국중심주의(大國中心主義) 역사관이 비판받고, 소국(小國) ・비동맹 제국(諸國) ・비정부 조직(NGO)의 인민대중이 세계사의 주체로 등장했다. 이러한 새로운 현실을 근거로 세계사상(世界史像)도 혁신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계급사회 성립 이래 세계사는 단지 빈・부 투쟁의 역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빈・부 투쟁을 포함하는 ‘삶(生)-죽음(死) 투쟁의 역사’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즉 세계사는 ‘인민을 수탈・살육해온 죽임의 세력인 지배계급・지배적인 대국(大國)’ 對 ‘생존을 위해 고투해온 삶의 세력으로서의 인민・인류’의 투쟁의 역사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역사관에 의거하여 전 인류를 생존을 위한 투쟁에 동원할 수 있는 ‘핵시대의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창조하고 보급해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인류는 핵시대의 위기를 극복하여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2. 핵시대의 역사이론

핵시대의 역사이론은 다음과 같은 특징과 과제를 갖고 있다. 이 특징・과제들을, 한반도의 제2기 핵시대에 적용해보면 좋을 듯하다.
① 지배계급 또는 침략주의적 대국에 의한 절멸에 저항하여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해온 인류의 전 역사(全歷史)에서, 핵시대라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귀중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② 지금까지의 역사이론은 이미 지난 일(Geshehen)에 관한 역사(Geschichte)의 이론이었으나, 핵시대라는 동시대의 현재도 연구해야 한다. 따라서 역사를 종말케 하려는 핵대국의 정부 특히 미 제국주의와 그 동맹국 정부의 핵정책과 대결하지 않고는, 핵시대의 역사이론 자체가 존재이유를 상실한다.
③ 핵시대 이전의 역사이론은 역사를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는 무한한 과정으로 파악하여 미래가 존속하는 것을 무조건 상정했다. 그러나 핵시대와 더불어 미래가 없어질 가능성이 생겨나 ‘미래의 절멸’ 내지 ‘미래세대의 절멸(futurecide)’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핵시대 역사이론의 곤란한 과제의 하나는 미래에 관하여 예측하는 일이 용이하지 않다
는 점이다.
④ 핵시대의 역사이론은 시간적・역사적으로, 과거・현재(동시대) ・미래를 대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공간적・지리적으로, 전 지구적(全地球的) ・전 세계적・전 인류적인 시야를 가져야 한다. 핵에너지의 출현 자체가 지구・세계・인류를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시대에 있어서 인류의 생존・생활의 특징은, 인류가 전 지구적 규모의 기아・환경파괴・민족적 억압・난민 학살・통상전쟁 등 무수한 대량학살(genocide)의 그물코에 걸려 있다는 점이다. 이 대량학살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핵에 의한 대량학살・생명의 절멸(biocide) ・생태절멸(ecocide), 미래세대의 절멸・만물절멸(omnicide)이 위치하고 있다. 인류는 각지의 자치체・공동체 주민・계급・계층・민족 등 무수한 집단의 형태로, 또 그것들의 집단을 통하여, 피라미드의 저변에 있는 대량학살의 무수한 형태의 하나하나를 저지하고 극복함에 의해서만, 핵에 의한 대량학살・만물절멸을 저지할 수 있다. 인류가 핵에 의한 만물절멸을 저지할 수 없다면, 피라미드의 저변에 있는 대량학살의 무수한 형태를 저지하는 노력과 세력도 모두 헛것으로 돌아가 버릴 것이다. 핵시대의 역사이론은 이와 같은 ‘대량학살의 網(네트워크)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를 붕괴시키기 위해, 자치체・공동체・지방・국가・지역 등의 차원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새로운 역사상(歷史像)을 형성해야 한다.

3. 핵시대의 사회구성체

핵병기의 파괴력이 일체의 생명・생존 가능성, 생산관계, 사회구성체 자체, 정치, 문화를 모두 파괴・소멸시킬 정도로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에 근거하여 생산력(생산력의 여러 요인들 중에서 자연과학의 역할이 더욱더 커지고 있다)의 성격에서 출발하여 그것에 조응하는 생활양식,생산관계, 사회구성체, 상부구조, 계급투쟁 등의 새로운 형태를 탐구하는
입장이 중요하다.

이처럼 핵시대의 사회구성체를 심층적으로 파악하여 ‘비핵시대의 사회 구성체’로 전환시켜야 하는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한반도의 제2기 핵시대의 사회구성체 역시 비핵시대의 사회구성체로 이행해야 평화통일의 길이 열릴 것이다. 이러한 길을 모색하기 위해 먼저 핵시대의 사회구성체를 언급한다.

핵시대의 사회구성체에 관한 논의를 ① 생산의 잠재력(Produktionspotenz)으로서의 자연과학의 발전 ② 자연과학이 직접적 생산과정에 적용된 결과로서의(기술을 포함한) 생산력(Produktivkraft) ③ 이에 조응할 수밖에 없는 소유관계 및 이 소유관계에 의해 지배계급이 행사하는 경제적 권력(ökonomishe Macht) ④ 경제적 권력의 상부구조이며, 집중적인 표현이기
도 한 (지배계급이 주도하는) 국가의 정치권력(politishe Macht) ⑤ 경제적 권력의 상부구조임과 더불어 정치권력을 움직이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권력(ideologishe Macht) ⑥ 정치권력의 연장이며 이데올로기적 권력에 의해 행사되는 군사적 폭력(militärishe Gewalt)이라는 6가지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한반도의 제2기 핵시대 사회구성체에 관한 논의에서 위의 6가지 차원이 필수적인 고려사항은 아니지만, 정치경제학적인 분석을 할 경우 선택적으로 적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핵시대의 정치경제학을 위한 인간-자연 관계 설정’을 기술한다.

4. 핵시대의 정치경제학을 위한 인간-자연 관계 설정

상품의 물신적(物神的) 성격과 그 비밀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자연 및 개인들 상호에 대한 관계(ein historish
geschaffnes Verhältnis zur Natur und der Individuen zueinander)’를 극도로 왜곡시켜 소외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든다. 이러한 소외가 극에 달한 핵시대는 제국주의 최고・최후의 단계로서 핵의 물신화 현상이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핵의 물신화 현상은, 죽음의 神 ‘타나토스(Thanatos)’가 유혹하는 핵시대의 억압구조를 벗어나, 삶의 충동이 넘쳐흐르는 에로스(Eros)의 세계, 즉 핵이 없는 저곳(Utopia)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핵시대의 파행구조는 생산관계를 더욱 모순덩어리로 만드는데(북한의 핵무기 보유로 인한 생산관계의 모순 증폭), 노동과정에서 (핵시대의 제물인) 노동계급의 삶을 질곡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그들을 죽음의 계곡으로 내몰고 있다. 특히 제3세계의 근로대중은 주어진 분업 체계에 따라 죽도록 노동하여 생산력을 높여도 노동의 산물이 자신에게 돌아오기는커녕, 핵제국주의의 맹주인 다국적 기업의 머슴으로 전락한다. 이는 핵시대의 왜곡된 생산관계로 인한 소외현상을 더욱 가중시킨다. 이처럼 핵시대 근로대중의 삶의 질서는 ‘자연에 대한(Zur Natur)’ 인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설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핵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인간과 자연의 불행한 만남(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소외됨)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핵에너지의 물리적 결정체인 핵병기는 결국 자연을 파괴하기 때문에, 핵폭발로 인하여 인간도 파멸하고 자연도 파멸하는 ‘인간・자연 공동멸망’을 재촉하게 되어 생활세계를 엉망으로 만든다.

한편 핵시대의 자본제적(資本制的)인 생산・축적운동이 인간-자연 관계에 각인하는 새로운 문제를 더욱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핵시대의 생산과정의 기술적 성격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가치를 자기증식하는 운동체로서, 또는 대상화된 노동에 그와 같은 형태를 부여하는 역사적인 사회관계로서 파악되는 자본의 운동을 핵시대에 걸맞게 재조명해야 한다. 즉 핵시대를 지탱하는 자본과 자연과의 모순관계를 규명하여 핵시대의 자본운동이 확대재생산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축소재생산의 길을 걸을 것인가를 예견해야 한다.

위와 같은 관점 아래에서, 핵무기보유 선언 이후 북한의 국가자본이 확대재생산될 것인지, 축소재생산될 것인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어법으로 말하면, 핵무기보유 선언 이후 북한 경제의 발전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5. 핵물리학과 관련하여

핵물리학은 핵시대의 생산력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핵시대의 생산력 중에서 자연과학(핵물리학)의 역할이 커지기 때문이다. 핵물리학・핵에너지의 출현을 ‘시대를 구획하는 지점’으로 위치 짓고, 이 지점을 ‘죽임의 생산관계’로 연결지으면 새로운 시야가 열릴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핵물리학의 차원에서 북한의 핵보유의 실상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① 핵물리학이라는 획기적인 과학혁명의 출현 ② 핵물리학의 적용에 따른 기술혁명으로서의 핵에너지 출현 ③ 현존하는 생산관계가 핵시대에 조응하지 않는 점 ④ 핵시대의 정치적 상부구조 역시 핵시대에 조응하지 않는 점 ⑤ 이데올로기도 핵시대에 조응하지 않으며, 아직도 ‘낡은 사고 양식’에 사로잡혀 있는 점 ⑥ 그 결과 핵강대국의 지배층・권력자가 핵 에너지를 핵무기, 즉 ‘인류 절멸 장치의 세계 체계’라는 절멸적(絶滅的) 폭력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는 점)을 유의하면서, 제2기 핵시대의 사회구성체를 중층적으로 논의하고 ‘비핵시대의 사회구성체’를 예비해야 할 것이다.(2005.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