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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마르크스_ 정치경제학

무기의 황당무계한 퇴폐

김승국

칼도어(Mary Kaldor)는 현대의 군사기술이 진전된 결과 ‘황당무계하고 이상야릇한(baroque) 퇴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칼도의 논문 「Warfare and Capitalism」(1982)은, 마르크스 {자본론}의 ‘상품의 2중성’ 즉 상품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논점에서 핵무기 문제를 끄집어낸다. 핵무기 등의 무기가 전쟁에서 사용된다는 의미에서 사용가치를 지닌다.

그렇지만 핵무기 등의 무기는 국가를 독점적인 매수자로 상정하므로 시장에 참여하지 않는다. 무기는 다른 모든 상품처럼 시장을 통해 실현되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모든 상품과 같이, 상품의 사용가치를 높여 교환가치를 낮추는 ‘부단한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다. 무기의 생산자들은 유일한 고객인 국가를 상대로 무기의 질, 사용가치 즉 기술적 향상만을 지향하는 ‘특수한 경쟁’에 그친다. 기술향상의 경쟁도, 이전의 무기보다 개량된 후속기종을 내놓는 개량경쟁에 머물 뿐, 전혀 다른 무기
의 개발경쟁을 기피한다. 국가예산에 의한 정치적 결정으로 가격이 매겨지므로 정상적인 가격이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펜타곤에 납품된 전투기의 재떨이 한 개가 수백 달러가 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칼도어는 이어 생산수단, 생산관계, 생산양식 등 마르크스주의의 용어를 원용하여 전쟁과 군사 문제를 분석하면서 ‘전쟁수단’ ‘전쟁관계’ ‘전쟁양식’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다. 이들 개념에 의해 독창적인 현대전쟁 이론과 이에 맞설 평화의 대항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대의 핵군비 경쟁에서는, 핵무기 체계를 (옛날 무기처럼 실전에서) 실험하고 사용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 유일한 시험방식이 있다면 (컴퓨터를 사용한) 핵전쟁 모의훈련(시뮬레이션)뿐이다. 이러한 모의훈련의 적합성 여부를 어느 누구도 모른다. 여기에서 현대무기 체계의 황당무계한(baroque) 퇴폐가 생겨난다. 모의훈련 이외에 현실적으로 무기를 사용할 길이 없으므로, 현대자본주의는 역사상 처음으로 ‘참수(斬首)’된다. 현대무기가 퇴폐해 가는 요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군사기술 개발의 심화 과정에서 숙명적으로 ‘과잉 기술화=기술의 황당무계함’ 이 생긴다.
(200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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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345~346쪽을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