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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도시-평화 마을/3세계 숍

[커피 장사 수기 (53)] 약속을 지키지 않은 과객들

커피 장사 수기 (53)

 

약속을 지키지 않은 과객들

 

김승국(커피공방 뜰의 점장)

 

2011년 10월 22일에 길거리를 지나가던 과객(過客) 두 분이 우리 가게를 찾아와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고 제안했으나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고 흐지부지되었다.

 

첫 번째 과객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살다가 우리가게가 있는 산들마을로 이사 온 여성으로서 영어 관련 동아리를 운영하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그래서 우리 가게에서도 마을 주민을 위한 영어학습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으므로 당신과 함께할 수 있겠노라고 화답했다. 그 여성 과객이 만족하는 표정을 지으며 가게를 나간 뒤 감감 무소식이다. 과객은 역시 과객인가보다. 과객이 진객(珍客)이 될리 만무하지...

 

두 번째의 과객은 50대의 씩씩한 여성인데, 첫 번째보다 우심하고 뻔뻔스럽다. 이 여성은 여군 출신으로 여기저기에서 자원봉사에 열중하고 있는 기독교 신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 가게를 들른 날에도 독거노인을 위한 도시락을 배달하고 왔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유치원 원장을 25년간 하면서 장애아동 상담․치유에 힘을 쏟았다며 이 방면의 일도 겸하면 참 좋겠다고 강조했다. 여군 출신답게 등치도 크고 목소리도 우렁차서 지금도 군대에 복귀하면 부하들을 잘 다룰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핫 초코를 즐겨 마시는 그 여성 과객은 나에게 다가오더니 커피공방 뜰에서 자신이 진행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① 마을 주민들이 우리 가게에 와서 커피를 마시도록 유도한다.
② 자연 화장품의 메이크 업(make up) 시연 통하여 여성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도록 하겠다.
③ 독거노인 위문 노래마당을 우리 가게에서 열겠다.
④ 장애아동 상담 치유 프로그램을 돌리겠다.
⑤ 경증(輕症) 장애아동을 정상 아동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
⑥ 점심시간에 국수․만두를 팔아 수익을 남긴다.
⑦ 일요일 오후에 교인들의 모임을 우리 가게에서 갖는다.
⑧ 요일별로 진행될 프로그램을 선전하는 프랜카드를 만들어 내걸자.

 

이렇게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며 나의 가슴을 부풀리게 해놓고 끝내 부도수표를 남발하는 꼴이 되었다. 자신과 함께 일을 도모할 동료를 소개하기도 하고 심지어 함께 움직일 목사님을 우리 가게에 모시고 오는 등 요란한 행적을 몇 달간 벌리며 지내지만 지금은 종적을 감췄다. 자신은 현재 한나라당 소속(중앙위원회 국방안보분과 부위원장)이지만 예전에는 민주당 소속이었고 상대방의 인품에 따라 당․소속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고 안색도 바꾸지 않고 강조했다. 나를 향하여 “사장님이 빨갱이 당이라도 인품이 좋으면 함께할 수 있다”고 나를 사로잡는 호언장담을 듣고, 굴러오는 대어(大魚)를 낚았다며 쾌재를 불렀는데...이럴수 있나? 이러한 마당발 과객의 거짓말 공약(空約)을 믿고 우리 가게가 살길을 찾았다고 콧노래를 부른 내가 바보이지...(201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