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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도시-평화 마을/3세계 숍

[커피 장사 수기 (7)] 구멍 난 양말 속의 환부(患部) ‘발꿈치’

커피장사 수기 (7)

 

구멍 난 양말 속의 환부(患部) ‘발꿈치’

 

김승국(커피공방 뜰의 점장)

 

위의 사진은 닳고 닳아 동그랗게 구멍 난 양말을 신은 나의 발꿈치이다. 구멍 난 양말을 신은 발꿈치는, 어설픈 자영업자 김승국의 환부(患部)이다. 질병 때문에 상처 난 환부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고난의 삶을 이어가는 자영업자 김승국의 생활고를 드러내는 환부이다. 나의 현재의 삶이 완벽하게 투영된 환부이다.

 

이 환부 속에 신자유주의의 구조적 폭력이 내재한다. 신자유주의의 말단에서 신음하는 자영업자들은 시장의 폭력에 짓눌리다가 끝내 폐업하는 사례가 많다. 강자 중심의 시장구조에서 약자인 자영업자가 살아남는 확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고달픈 현실을 이기려면, 정상적인 양말이 구멍이 날 정도로 발꿈치를 쉴 새 없이 움직여야한다. 그래야 겨우 먹고 산다. 나와 같이 열(熱)나게 발꿈치를 움직여 양말이 구멍이 날 정도가 되어야, 시장의 구조적 폭력을 이겨냄과 동시에 폐업을 겨우 모면한다.

 

이렇게 폐업을 모면하게 해준 구멍 난 양말은 나에게 소중한 물건이다. 혹시 자영업자의 생활상을 집약한 박물관이 세워진다면, 나의 구멍 난 양말이 귀하게 전시될 것이다. 그럴 경우 정상적인 양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한 존재가 될 것이다.

 

아주 비싼 나의 유물인 ‘구멍 난 양말’은, 춘추전국 시대의 ‘구천용귀(屨賤踊貴)’라는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주1)

 

구천용귀(屨賤踊貴)는 정상적인 신발이 싸지만, 발꿈치를 잘린 사람들의 신발이 비싸다는 뜻이다. 이 문구를 나의 구멍 난 양말 쪽으로 억지로 끌어들이면, ‘정상적인 양말은 오히려 천(賤)하여 값이 싸고 구멍 난 양말은 귀(貴)하여 값이 비싸다’.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의 구천용귀(屨賤踊貴)인 ‘정상적인 양말이 싸고 구멍 난 양말은 비싼’ 희한한 현상이 바로 나의 신체(발꿈치)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구멍 난 양말을 신은 나의 발꿈치는, 신자유주의 시장의 구조적 폭력을 온몸으로 안고 몸부림치는 자영업자들의 환부를 표상한다.

 

춘추전국 시대의 아랫것들(subaltern)은, 2천5백가지의 죄목으로 고난을 당하면서 구천용귀(屨賤踊貴)의 신발을 신고 다녔다. 이와 비슷하게 신자유주의 시대의 아랫것들(필자와 같은 자영업자들)은, 신자유주의 시장의 갖가지 가혹한 형벌(신자유주의 시장의 잔인한 구조적 폭력) 때문에 고난을 당하면서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다닌다.(201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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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1) 춘추전국시대에는 전쟁과 착취에 더하여 형벌이 너무 가혹했다. 周禮에 의하면 당시의 형별은 얼굴에 먹물을 뜨는 묵형(墨刑), 코를 베는 의형(劓刑), 불알을 거세하는 궁형(宮刑). 발꿈치를 자르는 월형(刖刑), 목숨을 끊는 사형(殺刑) 등 오형이 있고, 五刑의 죄목은 각각 500가지로 도합 2천5백가지 죄목이 있었다고 한다.
공자 당시 제나라 안자(晏子)는 嚴刑주의 실정을 "구천용귀(屨賤踊貴)"라는 말로 표현했다‘온 나라의 시장에서는 정상인의 온전한 신발은 값이 싸고, 죄를 지어 발꿈치를 잘린 병신들이 신는 뒤축 없는 신발이 비싸다’는 뜻이다. 즉 형벌이 가혹하여 형벌을 받은 병신이 성한 사람보다 더 많다는 것을 풍자한 말이다.
(左傳/昭公3년):
晏子曰 此季世也.
안자왈, 지금은 말세입니다.
國之諸市 屨賤踊貴.
나라마다 장터에서는 온전한 신발은 싸고,
발꿈치가 잘린 죄인들의 신발이 더 비싼 형편입니다.
<기세춘「공자․묵자와 평화」『평화만들기(http://peacemaking.kr) 118호(2004.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