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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안보-군사/비핵화-비핵지대화

‘비핵-중립-미군철수’운동을 위한 논의

김승국

핵시대는 핵문명을 동반하는데, 북한의 핵무기보유 선언(2 ・10 선언)을 계기로 한반도에 제2의 핵시대가 도래했다. 2 ・10 선언은 한반도에 제2의 핵문명을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핵문명을 비핵의 문명으로 전환하는 것은 시대의 과제이다. 비핵・중립을 위한 문명사적인 전환이 한반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비핵의 세계관을 가다듬어야 한다. 남북한의 사회구성체를 ‘비핵(非核) 사회구성체’로 바꾸고, 비핵 민족주의에 입각한  비핵지대화 전략을 내와야 하고 이를 위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1.  비핵 사회구성체를 향하여

  (1) 플루토늄 사회의 지양

핵시대는 구체적으로 ‘플루토늄 시대’를 말한다. 그리고 플루토늄 시대를 반영하는 ‘플루토늄 사회’는, 인간 사회의 에너지 중 적지 않은 부분을 플루토늄에 의존하는 사회이다. 플루토늄이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된 사회를 말한다.

한반도 역시 플루토늄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남한의 영해・영공・주한 미군기지에 수시로 배치・전개되는 미국의 핵무기 속에 플루토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플루토늄의 순환<플루토늄이라는 핵물질의 취득∼제조∼경제적・군사적 이용∼재처리의 순환>에 의해 한반도의 진운이 결정되는 사회상을 한반도에서 보여주고 있으며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이런 사회상의 극단적인 형태이다.

그래서 플루토늄이란 위험물질을 관리하는 ‘위험 사회(Risikogesellschaft)’를 비핵의 사회로 바꿔야 한다. 온 민족이 플루토늄 사회를 지양함과 동시에 ‘비핵평화의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플루토늄 사회를 비핵 사회구성체로 전환시키는 노력이 평화운동의 핵심인바, 이와 관련된 비핵지대화 논의가 긴요하다.

  (2) 한반도 비핵지대화 논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의 난관을 극복하면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실행할 지평이 열린다.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없는 ‘미국의 핵우산, 핵무기 탑재 미군 함정・잠수함의 한반도 영해 진입, 핵무기 탑재 미군 공군기의 남한 영공・주한 미 공군 기지 진입의 금지’를 실행조건으로 한다.

위의 실행조건은 모두 미군철수와 연관된 사항이다. 한반도 비핵지대화의 실행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 다만 주한미군이 철수한 다음에도 미국이 무해(無害) 통행권을 주장하거나, 현재의 필리핀에서처럼 VOA(방문국 지위 협정)을 통해 미군의 일시적인 주둔을 강행하면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형해화되기 쉽다. 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동아시아 비핵지대화가 필수적이다.

  (3) 동(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 논의
    ① 필요성
이철기 교수는 동(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은 제시한다:
“첫째, 동북아시아 평화 및 안보와 관련해 핵문제가 긴급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경우 미국・러시아・중국이라는 세계 3대 핵보유국이 역내 국가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남북한과 일본의 잠재적 핵보유국이 존재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는 핵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군축은 핵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는 참다운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둘째, 점증하고 있는 일본의 핵무장을 방지하기 위해서 동북아시아에 비핵지대를 창설하는 것이 절실해지고 있다. 일본은 ‘비핵 3원칙’을 채택한 바 있으나, 핵무장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셋째, 동북아시아에서 핵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역내 모든 국가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공정한 규제의 틀이 필요하며, 그것은 비핵지대 창설을 통해 역내 모든 핵무기를 공동으로 규제함으로써만이 가능하다. 넷째, 한반도 비핵화가 보다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한반도 비핵화를 동북아시아 지역으로 확대하는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이철기 「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 구상」 {통일시론} 제3권 제1호(2000년 봄) 99∼100쪽>.

    ② 기본 원칙
동북아 비핵지대화와 관련하여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동북아 비핵지대화는 궁극적으로 인간 안보와 민중안보의 원칙에 기여한다는 목표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자주적 공동 안보의 원칙이다. 동북아 비핵지대화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군사력과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지 않는 동아시아의 공동 안보 질서 창조를 위한 노력이라는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셋째, 비핵지대화운동은 미사일 방어체제(MD)에 대한 반대를 본질적 요소로 포함하는 실천이다. 넷째, 비핵지대화는 친환경적 공동 안보 전략을 추구하는 원칙에 기초하고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이것은 원자력산업을 우회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비핵지대화 개념에는 반대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섯째,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위한 한・일간의 공동 노력을 이끄는 비전은 전 지구적 평화운동과의 연대의 원칙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싶다<이삼성 외 지음 {한반도의 선택} (서울, 삼인, 2001) 52∼54쪽 요약>.

    ③ 몇 가지 논란거리3)
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 조약의 성패 여부는, 미국 등 핵강대국이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하여 핵 선제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핵 선제 불사용(先制不使用)’ 보장에 있다. 핵무기가 군사적・정치적으로 힘을 갖고 있는 한 비핵지대화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비핵지대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핵보유국이 기득권을 양보하여 핵무기가 주는 위협을 없애야 한다. 그러므로 남북한・일본・몽골의 비핵지대화 선언과 더불어 미국・러시아・중국의 핵 선제 불사용 선언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에서 동북아시아에 드리워진 미국의 핵우산을 어떻게 배제하느냐가 관건이다. 미국이 마지못해 동북아시아의 비핵지대화를 인정하더라도 핵우산을 거두어들이지 않을 공산이 크다. 미국의 핵우산을 인정하는 동북 아시아 비핵지대화의 한계를 감수하느냐 마느냐가 첫 번째 논란거리이다.

두 번째 논란거리는, 중국의 핵정책이다. 중국은 이미 핵 선제 불사용 정책(핵을 갖지 않는 나라에는 무조건적으로 핵공격을 하지 않는다)을 발표했다. 이 정책이 동북아시아에 적극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이 일방적으로 밝힌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이 지켜질지 아닐지를 검증할 길이 없기 때문에,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여타 국가들의 희망사항으로 끝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논란거리는,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 따른 핵무장 여부이다. 일본의 비핵 3원칙이 법제화되지 않은 점, 일본이 보유한 막대한 플루토늄이 핵무기 제조로 연결될 수도 있는 점, 일본이 과거 청산을 게을리 하며 군사 대국화로 나아가고 있는 점이 동북아 비핵지대화의 장해 요인으로 대두될 것이다.

네 번째 논란거리는, 북한의 핵문제이다.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싸고 1994년 한반도에서 전쟁 일보 직전까지 내몰고 갔던 악몽을 잊을 수 없다.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을 결사적으로 저지하려는 미국과 핵무기 개발 자율 선택권(Option)의 폭을 최대한 넓혀 생존을 도모하려는 북한의 ‘핵 시소게임’이 중단되지 않는 한, 한반도를 에워싼 비핵지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섯 번째 논란거리는,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동북아 비핵지대화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미국의 핵우산․주한미군의 존재를 인정한 한반도 비핵화선언이 허수아비로 된 지 오래이다.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핵폐기물의 농축을 금지하는 정도밖에 기능하고 있지 못하다. 북한의 핵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한반도 비핵화선언이 동북아 비핵지대화의 씨앗을 부풀리기에는 동력이 부족하다.

여섯 번째 논란거리는, 동북아시아의 냉전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군사동맹 조약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미・일 상호 안보조약, 조(북한) ・중(중국)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그대로 두고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원만하게 출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일곱 번째 논란거리는, 미국의 비핵지대 관련 기준 및 안보 전략이 동북아 비핵지대화와 상충된다는 점이다. 미국은 ‘비핵지대 설립이 기존의 안보 협정에 장애를 주어서는 안 되며, 비핵지대는 국제법에서 인정하는 항해 자유의 원칙 등의 권리에 제한을 가해서는 안 되며, 다른 국가의 기항과 영공 통과를 포함한 통행권을 보장하는 기존의 권리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등 일곱 가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일곱가지 원칙과 동북아 비핵지대화 구상이 부딪칠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논란거리이다. 남태평양 비핵지대화 조약을 무시한 미국의 핵 탑재 함정・잠수함이 태평양 바다를 누비고 다니는 바람에 라로통가 조약이 유명무실화된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러시아・중국의 전폭적인 협조 없이 동 북아 비핵지대화는 성사되기 어렵다. 미국 등의 핵강대국이 동북아시아를 겨냥하여 사용하려는 핵무기의 처치 방안 및 이들 국가의 핵정책에 변화를 가져올 전략 없이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거론한다는 게 무의미하다. 또한 동북아 비핵지대화의 흐름이 한반도 평화통일의 궤도와 무관하지 않음도
의미심장하게 새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결국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위해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장치는 다자간 안전보장 틀이다. 그리고 이러한 안전보장 틀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후견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동북아 비핵지대화는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민족 구성원의 평화로운 생존과 직결된 과제이다. 핵이 없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대외적인 환경 조성의 일환으로, 동북아 비핵지대화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동북아 비핵지대화 구상으로 연결시킬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

2. 비핵지대화 운동론

  (1) 운동의 목표

‘비핵지대화+영세 중립화+미군철수 운동의 3위1체’로 탈미(脫米) ・자주・평화의 길을 찾는 게 비핵지대화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2) 외국에서 교훈 얻기

위와 같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외국의 모범사례에서 교훈을 얻는 게 중요하다.

    ① 뉴질랜드에서 배우기
미국과 앤저스(ANZUS) 동맹을 맺은 뉴질랜드의 경우 1980년대에 반핵운동이 크게 고조되었다. 이러한 운동의 지지를 얻어 1984년에 집권한 뉴질랜드의 롱기(David Lange) 노동당 정권은, 동맹국(미국) 핵함선의 기항 거부를 선언하고 1987년에는 엄격한 비핵법을 제정하는 등 철저한 비핵정책을 추구했다. 이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동맹관계 정지 등의 제재조치를 받아,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안전보장의 모색이 여의치 않게 되었다.

뉴질랜드에서 대미 동맹(對米 同盟)과 비핵정책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지만 자국의 안전보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대미 동맹을 지키려면 미국의 핵정책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비핵정책을 수행할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는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남한 정부가 앞으로 비핵정책․ 비핵지대화 정책을 추구할 때 닥칠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 장애물을 뉴질랜드는 어떻게 다뤘느냐가 관심거리이다.

뉴질랜드의 경우나 남한의 경우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미국은 핵함선을 포함한 자국 군함 등의 동맹국 항만 등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핵무기의 소재를 밝히지 않는 NCND 정책(핵무기・핵물질의 보유를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정책)을 핵전략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뉴질랜드에서와 같은 비핵정책의 철저한 추구는 미국의 핵전략과 정면충돌하며,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정면도전하는 일이 된다. 남한 정부가 동아시아 비핵지대화를 위해 비핵정책을 철저하게 추구할 경우 한미동맹에 정면도전하는 꼴이 되므로 정권의 운명을 걸고 싸우지 않는 한 관철하기 어렵다.

우리의 타산지석(他山之石)인 뉴질랜드의 롱기 정권은 동맹 정책과 비핵정책 사이의 균형을 모색했다.5) 뉴질랜드의 사례는, 한미동맹의 핵우산 속에서 비핵정책을 추구해야 하는 딜레마 때문에 고민할 남한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대미 동맹과 비핵정책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면서 비핵지대화로 나아간 틈새외교(한미동맹을 비핵화하는 틈새외교)를, 뉴질랜드에서 배우라고 남한 정부에 요청하고 싶다.

그 당시 앤저스동맹의 가입국가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반핵운동의 고양에 힘입은 호크(Bob Hawke) 노동당 정권이 등장했다. 노동당 정권의 수립에 공헌한 반핵운동 세력이 철저한 비핵정책을 추구하라고 호크 정권에 압력을 넣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하여 호크 정권은 대미(對美) 동맹을 우선시하는 가운데 미국의 핵전략과 양립 가능한 비핵정책을 모색했다. 호크 정권의 이러한 대응은, 뉴질랜드의 탈미 지향적인 비핵동맹(비핵 앤저스 동맹: ANZUS라는 핵동맹으로부터의 이탈) 정책과 대조적이다.

여기에서 비핵정책을 수행해야 할 남한 정부에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고 싶다;
제1단계로 오스트레일리아 방식의 ‘미국과 친화력을 갖는 비핵정책’을 선택한 다음에 제2단계로 뉴질랜드 방식의 탈미 지향적 비핵정책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정권의 운명을 내놓고 탈미 지향적인 비핵정책을 수행하려면 국민들의 적극적인 성원이 필수요소인 바, 이에 대비한 국민적인 비핵-비핵지대화 운동(반핵운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뉴질랜드 정부가 대미 동맹에 도전장을 내면서 비핵정책을 수행한 배경에, 국민적인 비핵지대화운동(반핵운동)이 있었다. 철저한 비핵정책을 수행하라고 정부에 압력을 넣은 뉴질랜드 국민들의 비핵지대화운동이 선행했기에, 철저한 비핵정책이 가능했다. 뉴질랜드에서처럼 시민사회의 비핵지대화 운동과 정부의 비핵정책이 연동됨을 교훈으로 삼아, 남한의 시민사회 안에서도 철저한 비핵지대화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②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핵무기 폐기에서 배우기
1993년 3월 24일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대통령인 데 클라크(Frederik Willem de Klerk)는 ‘남아공이 과거에 핵폭발 장치를 개발했으나 그 뒤 폐기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핵무기를 가진 나라가 자진해서 핵포기 선언을 한 적이 없는 전례를 깼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

남아공은 1974년부터 주변정세와 관련하여 핵폭발 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남아공이 지배하는 나미비아에 인접한) 앙골라, (남아공의 이웃 나라인) 모잠비크에 친소(親 소련) 정권이 들어선 다음 반정부 게릴라와 내전상태에 빠졌다. 아프리카 남부 지역에 공산주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남아공은, 게릴라 측을 지원하는 형태로 앙골라・모잠비크에 개입한다. 격전을 치룬 앙골라에는 쿠바군이 5만 명이나 주둔하는 상태가 되어 이들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억지력 보유 차원에서, 남아공이 핵무기 개발에 나선 것이다.

남아공을 에워싼 국제환경의 악화가 핵무기 개발을 재촉했다면, 국제환경의 완화가 핵무기 폐기를 이끌어냈다. 1980년대 후반에 소련의 권력을 장악한 고르바초프의 노력에 힘입어 1988년 앙골라-쿠바-남아공 사이에 정전 체제가 구축되고 남아프리카 지역의 냉전구조가 크게 완화되었다.

1989년 1월부터 쿠바군이 철수를 시작하면서 쿠바군에 의한 남아공 침공위기가 제거되었기 때문에, 핵폭발 장치에 의한 남아공의 독자적인 핵억지론도 존재가치를 상실했다.

이러한 국제환경의 완화에 앞선 1986년부터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Apartheid)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져, 백인독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핵무기 보유의 명분이 약화되었다. 여기에 남아공의 국제사회 복귀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남아공
은 인종차별 정책으로 인한 국제적 고립으로 경제발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남아공이 아프리카 대륙의 주도권을 쥐려면 국제무대에 복귀해야 했으며, 이를 위해 인종차별 정책과 핵무기 보유 정책을 모두 파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두 정책을 파기하는 개혁을 추진한 클라크 대통령이 1989년 9월 취임했다. 그는 취임 2주일 뒤부터 핵무기 폐기 작업을 개시했다. 그는 관계자들을 행정부로 불러들여 “나는 남아공을 국제사회의 일원(一員)으로 복귀시키고 싶다. 이를 위해 체제의 민주화와 핵폭발 장치의 폐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방침에 따라 원자력 공사, 국영 무기 공사, 남아공 군대에 의한 핵무기 해체 계획의 책정위원회가 발족했다. 이 위원회의 해체 보고서를 대통령이 승인함에 따라 1990년 6월에 핵무기 해체 작업이 개시되어 1991년 6월에 완료되었다. 핵무기 해체를 완료한 직후인 1991년 7월 10일, 남아공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맹하고 11월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 팀을 받아들였다. 이윽고 1993년 3월 24일, 핵무기 해체에 관한 모든 문서를 파기했다.

남아공의 핵무기 보유∼해체 과정은 북한에 몇 가지 교훈을 안겨준다고 생각한다. 김정일 위원장도 남아공의 대통령처럼 “나는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一員)으로 복귀시키고 싶다. 이를 위해 체제의 민주화와 핵폭발 장치의 폐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날을 앞당기기 바란다. 북한이 리비아 방식의 핵프로그램 포기를 거부했으므로 남아공 방식을, 북한 핵문제 해결의 대안 중 하나로 채택하기 바란다.(2005.7.20)<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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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핵문제』(파주, 한국학술정보, 2007) 296~312쪽을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