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
1. 동아시아 비핵 지대화의 필요성
이철기 교수는 동북아시아(동아시아) 비핵 지대화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은 제시한다.
“첫째, 동북아시아 평화 및 안보와 관련해 핵문제가 긴급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경우 미국 ・러시아 ・중국이라는 세계 3대 핵보유국이 역내 국가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남북한과 일본의 잠재적 핵보유국이 존재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는 핵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군축은 핵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는 참다운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둘째, 점증하고 있는 일본의 핵무장을 방지하기 위해서 동북아시아에 비핵 지대를 창설하는 것이 절실해지고 있다. 일본은 ‘비핵 3원칙’을 채택한 바 있으나, 핵무장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셋째, 동북아시아에서 핵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역내 모든 국가들에 동등하게 적용되는 공정한 규제의 틀이 필요하며, 그것은 비핵 지대 창설을 통해 역내 모든 핵무기를 공동으로 규제함으로써만이 가능하다.
넷째, 한반도 비핵화가 보다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한반도 비핵화를 동북아시아 지역으로 확대하는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이철기 「동북아시아 비핵 지대화 구상」 {통일시론} 제3권 제1호(2000년 봄) 99~100쪽>
2. 이미 제시된 동아시아 비핵 지대화안
1970년대부터 북한, 소련, 일본 사회당 등이 정책선언이나 지도자의 연설 형태로 [동아시아 비핵 지대화에 대하여] 산발적인 제안을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들은 냉전체제하에서 현실성과 구체성이 결여된 정치적 선전의 성격이 짙었다.
이와 달리 비핵 지대의 범위와 성격 및 실현방식 등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방안도 민간차원(Track Ⅱ)에서 제안되었다. 첫째, 1972년 파이팅(Allan Whiting)은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저지할 목적으로 동경을 중심으로 반경 2,400킬로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미국 핵무기의 철수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중국과 소련의 핵무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둘째, 커닝햄(William Cunningham)도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저지하기 위하여 1975년 미 ・소 ・중 3개국이 혹은 남북한 ・미 ・소 ・중 ・일 6개국이 합의하여 한반도 비핵 지대를 창설할 것을 제의하였다. 셋째, 핼퍼린(Morton Halperin)은 1975년 남북한이 상호 무력 불사용에 합의한 뒤 한반도 비핵 지대 조약을 체결하고 미 ・소 ・중 ・일이 이 조약을 존중할 것을 제안하였다. 마지막으로, 마에다 하야시는 1966년과 1979년 각각 남북한이 핵 ・화학 ・세균무기의 사용을 금지하고 한반도 평화지대를 설치하는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일본은 비핵 3원칙을 준수하며 유엔이 이를 보장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전의 제안들이 일시적이고 산발적이었던 것에 비해, 1990년대 들어서는 비핵 지대 문제가 진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논의되었다. 대표적인 방안이 미국 죠지아 공과대학의 엔티콧(John Endicott) 교수가 중심이 되어 추진 중인 「동북아 제한 비핵 지대(Limited Nuclear Weapon Free Zone in Northeast Asia: LNWFZ-NEA)안이다.(주1)
LNWFZ-NEA 개념은 1991년 가을 미 ・소의 전술핵 철수 선언이 계기가 되어 그해 11월부터 연구되기 시작하여, 이를 위한 여러 차례의 국제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LNWFZ-NEA에 관한 논의는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부차원의 논의가 시작된 것도 물론 아니다. LNWFZ-NEA에 대한 논의가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LNWFZ-NEA 개념이 핵 비확산 체제상의 신분이 다른 핵국과 비핵국의 활동을 함께 규제하려는 데서 오는 의무의 불균형성을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핵국을 포함시킴으로써 핵무기의 폐기와 재배치라는 군사전략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기되었다. 셋째, 동북아 지역이 지역 안보협력의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을 감안
할 때, 참가국의 수가 너무 많아서 합의가 용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넷째,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 역내 국가들 간에 쌓인 불신과 적대감의 정도가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전성훈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과 남북한 ・일본 3국 비핵 지대 창설}(서울, 통일 연구원, 1999) 53~58쪽 요약>
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성훈 박사는 남북한 ・일본이 참가하는 ‘3국 비핵 지대 창설’을 제안했다.(주2)
[전성훈 박사의 제안처럼] 동아시아 비핵 지대화를 위한 한반도와 일본 간의 공동 노력에서 동아시아 공동안보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적어도 세 가지다.
첫째, 한반도와 일본은 상호 군비경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잠재성이 내연해 있다. 그러한 한 ・일 간 군비경쟁의 가능성이라는 어두운 미래상의 한가운데 핵무장 경쟁의 가능성이 있다. 한 ・일 간의 핵무장 경쟁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제도화하는 노력, 이것이 동아시아 공동안보의 첫 번째 역사적 프로젝트로 선택되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공동안보는 거기에 참여하는 나라와 민족의 분명한 공통점을 바탕으로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한 그럼으로써 튼튼한 기초로 작용할 수 있다. 한반도의 남북한과 일본이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공통점은 다 같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으며 또 그것을 원칙으로 공개 선언한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한반도와 일본간의 공동안보는 바로 이 공통점으로부터 출발하여 이것을 제도화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셋째, 한국과 일본의 대미 안보 의존의 한 중심에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군사적 ・심리적 의존이 놓여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이 비핵 원칙을 지킨다는 것의 궁극적인 현실적 기초는 미국의 핵우산 제공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에 의한 ‘보호’를 전제로 해서만이 비핵 원칙을 지킬 수 있으며, 따라서 한국과 일본의 안보는 미국의 가공할 핵전력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한국인과 일본인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과 한국인은 서로 간에 상대방의 핵무장을 견제하는 것은 미국의 안보공약과 핵우산 제공이라는 인식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와 일본이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가운데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백년대계의 공동안보를 생각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두 나라가 다 같이 비핵 원칙을 지키면서 동시에 미국에 대한 의존을 축소시켜 나아가는 첫걸음은 비핵 원칙을 지키면서도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군사적 ・심리적 의존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두 나라 사이에 건설하는 일이다.
그 첫걸음은 분명 동북아 비핵 지대화이며, 그 출발은 바로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비핵 지대화를 위한 노력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도 여러 해 전부터 남북한과 일본 및 몽고 같은 비핵국가들이 주체가 된 동북아 비핵 지대화의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을 역설해온 우메바야시 히로미치(梅林宏道)의 제안(주3)은 문제의 본질을 짚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동아시아에는 유럽과 달리 다자적 안보 체제가 들어설 만한 토양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핵 지대화는 어렵다고 말할지 모른다. 이것은 비핵 지대화 건설이 다자적 안보질서 구축의 결과로서만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관해 일의 선후를 거꾸로 생각할 수 있다. 이미 적어도 원칙에 있어 비핵국가로 남겠다고 밝히고 있는 남북한과 일본 사이에 비핵 지대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이 비핵 지대에서는 주변의 핵무기 강대국들로 하여금 핵의 사용과 배치 등을 금하도록 하는 국제 조약을 확보한다는 목표는, 오히려 이 지역 모든 강대국들의 안보 정책을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다자적 안보 체제의 형성에 앞서서 진행될 수 있는 초보적인 국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동북아 비핵 지대화는 그런 의미에서도 이 지역에 본격적인 다자적 안보질서 형성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이삼성 외 {한반도의 선택}(서울, 삼인, 2001) 47~49쪽>
이 밖에 셀리그 해리슨이 ‘아시아 톰과 비핵 지대’ 구상<셀리그 해리슨 지음 / 이홍동 외 옮김 {코리안 엔드게임}(서울, 삼인, 2003) 425~431쪽>을, 이철기 교수가 ‘동북아시아 비핵 지대 방안’<이철기 「동북아시아 비핵 지대화 구상」 {통일시론} 제3권 제1호(2000년 봄) 104~106쪽>을 내놓고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또 梅林宏道는 자신의 ‘3+3안’을 법률화한 「동북아시아 비핵병기(非核兵器) 지대 모델 조약안」을 2004년 4월 28일(NPT 재검토 준비 위원회가 열린) 뉴욕에서 제안했다.(주4)
3) 동북아 비핵 지대화의 기본 원칙
동북아 비핵 지대화와 관련하여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동북아 비핵 지대화는 궁극적으로 인간 안보와 민중 안보의 원칙에 기여한다는 목표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자주적 공동안보의 원칙이다. 동북아 비핵 지대화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군사력과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지 않는 동아시아의 공동안보 질서 창조를 위한 노력이라는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셋째, 비핵 지대화 운동은 미사일 방어 체제[MD]에 대한 반대를 본질적 요소로 포함하는 실천이다. 넷째, 비핵 지대화는 친환경적 공동안보 전략을 추구하는 원칙에 기초하고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이것은 원자력 산업을 우회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비핵 지대화 개념에는 반대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섯째, 동북아 비핵
지대화를 위한 한 ・일 간의 공동 노력을 이끄는 비전은 전 지구적 평화 운동과의 연대의 원칙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싶다.<이삼성 외 {한반도의 선택} 52~54쪽 요약>
(200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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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140~147쪽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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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한반도의 DMZ를 중심으로 반경 약 2천 킬로미터의 원을 그려 그 속을 비핵 지대로 한다는 원형 지대 제안이다. 엔티콧 팀은 비핵 지대 내에 미국 영토가 물리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원형을 알래스카의 일부까지 늘리게 한 타원형 지대(실제로는 아메리칸 풋볼 모양)로 확대한 비핵 지대안으로 제안을 발전시겼다.
(주2) 전성훈 박사의 ‘3국 비핵 지대 창설 방안’을 보려면, 전성훈 지음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과 남북한 ・일본 3국 비핵 지대 창설} 87~97쪽을 참고할 것.
(주3) 우메바야시 히로미치는 원형 지대안이나 타원형 지대안 제안을 환영하면서도, 동북아시아의 역사와 상황의 긴급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제안하고, 그것을 ‘3+3안’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것은 동북아시아의 비핵국인 남한 ・북한 ・일본 3개국이 비핵 지대 조약을 체결하고, 주변의 세 핵무기 보유국 즉 미국 ・러시아 ・중국이 소극적 안보 보장 등을
포함한 비핵 지대 존중의 의정서에 참가한다는 제안이다.
(주4) 梅林宏道가 기초한 「동북아시아 비핵병기 지대 조약안」을 보려면, {Nuclear Weapon & Nuclear Test Monitor(核兵器・核實驗 モニター}(209~210호 /2004.5.15)을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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