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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종교적인 접근

핵무기와 神(2)-미국 대통령의 핵무기관

김승국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첫 번째 핵무기가 떨어졌다. 그 당시 일본은 군사적으로 무기력해져 있어서, 미국이 굳이 핵무기를 투하하지 않아도 일본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이 핵무기를 투하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핵무기를 만드는 맨하탄 계획을 추진하고 핵무기 투하를 승인한 트루만(Harry S. Truman) 대통령은 핵무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 핵무기의 최종 사용권자인 미국 대통령들이 핵무기에 대하여 어떠한 관점은 가졌나? 핵무기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유효한 수단이고, 핵무기를 통한 정의의 전쟁(Just War)가 온당하다고 믿는 미국인들의 핵무기 신앙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핵무기와 신앙(기독교 신앙) 체계가 연결되는 그루터기에 무엇이 있나?

명백한 운명



이러한 물음에 대한 명백한 답변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단어에 있다.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명백한 사명ㆍ팽창의 天命)이란,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이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할 당시 민주 공화당(Democratic Republicans), 특히 주전파(Warhawks)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는 19세기 중ㆍ후반의 미국 팽창기에 유행한 이론으로, 미 합중국은 북미 전역을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지배하고 개발할 신의 명령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이는 팽창주의와 영토 약탈을 합리화하였다.



이 논리는 1845년 뉴욕 시의 한 저널리스트 존 오설리번(John O'Sullivan)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그는 서부로 계속 팽창해 나아가 대륙 전체로 확대하여, 손에 넣는 것은 우리의 명백한 운명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수백만 인구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하여 신이 베풀어 주신 것이고 주장하였다. 같은 해 12월 2일에는, 미국 대통령 제임스 K. 포크가 미국은 더 활발하게 서부로의 팽창을 계속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명백한 운명이라는 말은 1840년 정치가와 정부의 리더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는데, 이는 시민들로 하여금 북아메리카 대륙 전체로 영토를 확장하고 이를 응원하는 것이 그들이 운명이라고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이론상으로는 자격 있는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민주적인 자치 정부의 꿈을 이루려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이것은 아메리칸 원주민과 비유럽계 조상을 가진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었다.



많은 미국 개척자들은 그들의 국가의 자유와 이상이 매우 중요하며 또한 영토 확장을 통해 새로운 땅에 그것들을 전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명백한 운명과 더불어 도덕적, 정치적 그리고 대개 인종적 우월성에 대한 다른 많은 성명은 아메리카 인디언을 배척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유사한 여러 독트린(백인의 책무와 같은)이 유럽인을 비롯한 세계 전반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대한 식민 정복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던 것도 이와 의견이 일치한다.



이와같은 명백한 운명은 핵무기 개발ㆍ사용의 논리와 연결된다. 명백한 운명(사명)에 의한 대외침략 노선의 연장선상에서 핵무기를 사용해도 좋다는 논리이다. 미국은 신에 의해 축복받은 나라, 신에 의해 뽑힌 ‘특별한 사명(special mission)’을 가진 나라이므로, 일본과 같은 악(惡)의 국가를 핵무기로 징벌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를 집행하는 미국의 수장(首長)인 대통령에게 신의 이름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신의 이름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믿음은, 트루만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대한 핵무기 투하에 대하여 “신에 감사한다”고 언명한 것과 연결된다. 신에 감사하는 심정으로 히로시마에 핵무기를 투하한 미국 대통령의 핵무기 신앙을 심층적으로 파악해야, 미국 정부의 핵전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신의 이름으로 핵무기를 투하하는 미국 대통령은, 핵전쟁이라는 제전(祭典) 즉 핵전쟁 놀음을 주재하는 사제이다. 미국 대통령이 ‘핵 제전(核 祭典)의 목사ㆍ신부’라는 뜻이다. 미국의 명백한 운명, 신이 미국에게만 내려주는 특별한 사명에 따른 핵전쟁 제전을 집행하는 사제가 미국 대통령이라는 말이다.



구리 바야시 데루 오(栗林輝夫)가 쓴『アメリカ大統領の信仰と政治』에 의하면 대통령은 목사와 동일하다(12쪽). 대통령은 사제ㆍ목사ㆍ예언자이며 일본의 천황 역할을 겸한다(15ㆍ16쪽). 미국은 신에 의해 축복받은 나라, 신에 의해 뽑힌 ‘특별한 사명(special mission)’을 가진 나라, 교회의 혼을 지닌 나라이다(13쪽). 이런 나라의 대통령은 파시즘ㆍ공산주의ㆍ테러리즘을 악[악의 축]으로 단죄하고, 이것들과의 영적인 싸움을 국민에 호소한다. 사악한 세력과의 성전(聖戰)이, 미국에 부여된 신의 사명(mission)이다(18쪽). 미국 대통령은, 종교적인 수사법을 동원하여 정치연설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애국정신을 고무시키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한다(20쪽). 애국주의와 신앙을 연결시킨 독특한 미국의 시민종교(civil religion)를 ‘미국교(美國敎)라고 부를 수 있다(21쪽). 미국에는 국교에 해당되는 종교는 없으나, 그 대신 국민이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종교가 있다. 이는 애국주의와 성서적 기독교를 교합한 미국교(美國敎)이며, 미국교를 최초로 구현한 인물이 워싱턴 대통령이다(39쪽).



이러한 미국교(美國敎)의 수장인 미국 대통령인 트루만이 명백한 사명에 따라 일본에 핵무기를 투하했다. 그 이후의 미국 대통령 역시 소련ㆍ악의 축(Axis of Evil) 국가들(북한 등의 7개 나라)에 대한 핵전쟁을 ‘성전(聖戰)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사명’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믿었다.



1. 트루만 대통령



유명한 침례교 신자이었던 트루만 대통령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원폭)이 작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만세를 불렀다.(栗林輝夫, 2008, 5) 트루만 대통령은 1945년 8월 10일의 라디오 성명을 통하여 “핵무기를 가진 미국은 이제 세계평화에 특별한 책무를 지닌 나라가 되었다. 일본ㆍ독일이 아닌 미국이 ‘그 책임을 진 것을 신에게 감사하고 신의 인도를 기원한다’고 말했다.(栗林輝夫, 2008, 12)
 


  1) 트루만 대통령에 대한 비판



히로시마에 대한 핵무기 투하 소식을 듣자마자 ‘신에 감사한다’고 말한 트루만 대통령의 핵무기 신앙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에서 이루어졌다.



미국의 신문『Omaha Morning World Herald』(August 8, 1945)는 “원폭(原爆; 원자폭탄)이라는 ‘악마의 장치’를 신의 이름으로 분식(粉飾)한 트루만 대통령이 ‘사이비 종교’를 믿고 있다”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미국의 역사를 다시 써야한다면서 정치적인 수정을 시도한 ‘수정주의(Revisionism)’의 역사가들은, 원폭투하 당시의 문건을 공개하며 원폭투하의 책임자들(트루만 대통령 등)의 역사적인 죄를 묻기 시작했다.(栗林輝夫, 2008, 56)



이들 비판세력들은 “뉴른베르크 재판ㆍ東京재판에서 시민의 학살에 가담한 자들이 ‘인도에 반하는 죄’로 고발되었으므로, 무고한 히로시마ㆍ나가사키 시민에게 핵무기를 투하하라고 명령을 내린 트루만 대통령도 재판에 회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트루만 대통령은 ‘뉘우칠 것이 절대로 없다’ ‘그런 것을 논의하는 것은 쓸모 없는 짓이다’고 일축했다. 이러한 자세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에게 일관되게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원폭 사용을 비판했던 아이젠하워를 제외한 닉슨, 레이건, 부시(조지 H. W. 부시)는 ‘사죄요구란 터무니 없는 말이다’며 1990년대의 수정주의 역사관을 일축했다.(栗林輝夫, 2008, 57)



2. 아이젠하워 대통령



트루만에 이어 대통령에 취임한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 대통령은, 핵무기와 관련하여 트루만과 다른 관점이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한 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는 전쟁의 비참함을 직접 경험했다. 그는 미국이 원폭실험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일본의 항복은 시간문제이어서 원폭과 같은 대량파괴무기를 저항하지 않는 일본시민들에게 사용하면 미국은 엄청난 도덕적인 책임을 지게된다’며 반발했다. 아이젠하워는 일본에 대한 원폭투하에 반대했던 극소수의 군인중 한사람이었으며, 히로시마ㆍ나가사키에 대한 원폭투하는 전술상 불필요할 뿐 아니라 기독교 도덕에도 어긋난다고 생각했다.(栗林輝夫, 2009, 113~114)



아이젠하워는 핵무기 투하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첫째, 일본인들은 항복할 준비가 되었으므로, 그토록 끔찍한 것으로 가격할 필요가 없다. 둘째, 나는 우리나라가 그 같은 폭탄을 사용한 최초의 국가가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는 트루먼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Jonathan Glover, 156)



히로시마ㆍ나사사키의 참화에 대한 기억이 생생했던 시대에, 아이젠하워는 핵무기 제한 교섭에 나섰다. 1953년 10월, 교회여성의 모임에 출석한 그는, 핵폭탄의 위협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미국도 핵무기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핵 에너지의 평화적 전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栗林輝夫, 2009, 116)



1950년대에 아이젠하워는 냉전의 주술에서 해방되기 위해 핵무기 개발경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소련과의 국제협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불행하게도 미국ㆍ소련 양국은 오히려 군사동맹을 만들어 원자폭탄에서 수소폭탄ㆍ핵탄두 개발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양국이 대륙간 탄도탄을 만드는 등 ‘철(鐵)의 장막’이 강화되었다. 평화의 기회(chance)를 강조한 아이젠하워는 군축ㆍ핵무기의 제한교섭이 가능하며, 핵무기를 국제관리 아래에 두고  핵에너지를 평화연구에 전용하면 냉전을 종식시키는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젠하워는 군ㆍ산(軍ㆍ産) 복합체의 등장을 경고하고 핵전쟁 위기를 강조하면서 “핵무기 개발경쟁 종지부 찍자”고 역설했다.(栗林輝夫, 2009, 119~121)
 


3. 레이건 대통령



1984년에 재선된 레이건 대통령은, 기독교의 복음파ㆍ종교우파와 밀착하면서 반공주의를 표방한 미국의 위대한(?) 사제이었다. 레이건의 반공주의는 단지 외교상의 정책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종교문제이었다. 레이건은 공산주의에 대한 승리이야말로 기독교의 승리라고 믿었다. 레이건은 소비에트(소련)가 근원적인 ‘악의 제국’이므로 몰락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성서ㆍ신의 역사계획에 반대하며 신(神)의 대의(大義)를 어기므로 붕괴시켜야한다는 것이다. 레이건은 미국의 반공주의 정책을 신학적으로 미국ㆍ소련간의 화해 불가능을 주창했다. 이러한 공산주의와의 투쟁은, 궁극적으로 미사일ㆍ핵무기의 숫자가 아니라 ‘영적(靈的)인 싸움’에 의해 승패가 결정된다고 역설했다. 공산주의가 神과 자유에 대한 불구대천의 원수이므로 반드시 멸망시켜야한다고 말했다. 소련과의 평화공존은 불가능하므로 소련과의 핵무기 제한교섭을 잘못이라는 것이 레이건의 관점이었다.(栗林輝夫, 2009, 193~196)



4. 부시 대통령



미국 기독교의 복음파 신앙은 부시의 성격에 맞았다. 복음파의 묵시록적(黙示錄的) 신앙은, 역사를 선(善)과 악(惡)의 끊임 없는 투쟁으로 보면서 善과 惡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선택을 강요한다. 부시는, 이라크ㆍ이란ㆍ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反테러 전쟁에서는 미국측에 서든지 악의 축 국가측에 서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전세계를 향해 윽박질렀다. 이러한 사고는 복음파의 종교적 세계관 그 자체로서, 정치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善과 惡만을 인정하고 그 중간에 회색지대를 인정하지 않는다.(栗林輝夫, 2009, 246~247)



부시는 신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불렀다고 생각했다. 신의 부름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는 신의 부름을 받아 이라크 전쟁을 개시하고 북한에 대한 핵전쟁 계획인 NPR(핵태세 수정보고)을 수행했다. 복음파의 상투어인 by God's calling(신의 부름을 받아), through holy spirit(성령에 의해), accepting God's plan in heart(신의 마음을 혼으로 받아들여) 이러한 일을 수행한 것이다.(栗林輝夫, 2009, 248)
 


부시 정권은 ‘제국’ 미국을 상징하는 권력체이다. 이 제국 미국의 권부인 부시 정권은 북한 등의 악의 축 국가를 타도・ 붕괴하기 위한 궁극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핵전략을 구축했다. 새로운 핵전략을 대표하는 것은 2002년 3월에 작성한 핵태세 수정 보고서(NPR: Nuclear Posture Review)이다.
NPR은 ① 통상무기와 같은 수준으로 ‘사용하기 쉬운 핵무기’를 지향하는 ② 아주 위험한 핵사용 계획을 축으로 하는 ③ 공격적인 새로운 핵전략이다. 이런 위험한 핵사용 계획을 부시 정권 아래에서 추진한 주요한 인물 두 사람을 아래에 소개한다.
그중 한사람은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의 핵무기 개발부서 부책임자인 스티븐 영거(Stephen Younger)라는 인물이다. Younger가 2000년 6월 하순에 발표한 「 21세기의 핵무기」 는 주로 (북한 등을 상대로 사용할 벙커 버스터 핵폭탄 등의)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중점이 있다. Younger는 로스알라모스 연구소 직원 수백 명이 모인 비공개 모임(security immersion: 안전 침례)에서 북한 등을 향해 쏠 소형 핵무기의 위력과 중요성을 역설했다.
Younger는 미국의 핵전력을 재편하여 근대화해야 하는데 그 방향은 사용하기 쉬운 핵무기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핵무기와 첨단 정밀무기를 조합하는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핵의 위력이 적은 핵무기의 역할을 증대시킬 것을 제안했다.
또 한사람은 키스 페인(Keith Payne)이다. 그는 보수적인 연구 집단인 ‘미국 공공정책연구소(NIPP)의 소장으로서 1980년대에 미・ 소 핵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논문을 쓴 인물이다. Payne 지휘 아래에 작성된 NIPP의 보고서 「 미국의 핵전력과 군비관리의 원리・ 요건」이 부시 정권 등장 직전인 2001년 1월에 공표되었다. 이 보고서는 ‘미・소 대결 시대의 냉전형 핵태세에서 벗어나서 불량국가를 가상적인 핵공격 목표로 상정해야 함’을 강조했다. 문제는 이 보고서가 부시 정권 측이 NPR을 작성할 때 중요한 대본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면 조그만 연구 집단인 NIPP의 보고서가, 부시 정권이 중시하는 NPR의 청사진이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 의문을 푸는 열쇠는 부시 대통령 자신의 핵무기론에 있다. 부시 대통령은 9 ・11 (테러)사태 이전부터 Payne의 핵전략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부시 정권의 핵전략(NPR)은 Payne의 주장에 공감한 부시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Younger와 Payne의 제언에 따라 만들어진 NPR은, 북한 등의 불량국가를 상대로 사용하기 쉬운 핵무기(벙커 버스터와 같은 소형 핵무기)를 퍼부어 그들 나라를 붕괴시키자는 것이다. NPR의 내용은 이미 국내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생략하고 다만 ‘NPR 안에 제국 미국의 핵무기 사용 계획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新原昭治『「核兵器使用計劃」を讀み解く』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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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자료>

* Grace Halsell 지음, 越智道雄 옮김『核戰爭を待望する人びと』(東京, 朝日新聞社, 1991)
* Jonathan Glover 지음, 김선욱 외 옮김『휴머니티(Humanity)』(서울, 문예출판사, 2008)
* 栗林輝夫『原子爆彈とキリスト敎』(東京, 日本キリスト敎團出版局, 2008)
* 栗林輝夫『アメリカ大統領の信仰と政治』(東京,キリスト新聞社, 2009)
* 薄井雅子『戰爭熱症候群』(東京, 新日本出版社, 2008)
* 新原昭治『「核兵器使用計劃」を讀み解く』(東京, 新日本出版社,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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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평화 활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