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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칼럼-에세이

평화사경 (86)-묵자의 고난과 나의 꼬라지


평화 사경 (86)

묵자의 고난과 나의 꼬라지



김승국




묵자의 저서인『墨子』의「公輸」편에 아래와 같은 글이 있다; 

"楚王曰 善哉 〭 吾請無攻宋矣 〭 子墨子歸 過宋天雨 庇其閭中 守閭者不內也 〭 故曰 治於神者 衆人不知其功 爭於明者 衆人知之 〭 "

위의 문장을 우리말로 해설하면 다음과 같다;

"초나라 왕이 말했다. '좋소, 나는 송나라를 공격하지 않겠소.'  묵자는 이렇게 초나라의 공격을 중지시키고 돌아가는 길에 송나라를 지나게 되었는데 마침 비가 내려서 그 곳 마을 문 안에서 비를 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마을 문지기가 그를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옛 말에 이르기를 '사람들은 다스림이 신묘한 이의 공은 모르고 싸움에 밝은 이의 공로는 알아준다.'고 말하는 것이다."

비를 피할 곳이 없었던 평화운동가 묵자의 고난이 왜 2015년의 元旦에 떠올랐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元旦을 맞이하여 '내 팔자가 좀 펴지려나, 평화운동가로서의 내 신수가 좀 나아지려나...'고 생각한 끝에『墨子』「公輸」편의 이 문구가 떠올랐다.

지난해 너무나 反평화적인 사회현상•정치적인 움직임(박근혜 정권의 치졸한 정치행각)을 지켜보면서 평화는 언감생심임을 절감했다.

경제•사회•정치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한국사회를 평화적으로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이 미약한 현 상황 속에서 평화운동가 개인의 삶은 너무나 초췌해져 간다.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평화운동가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쟁종결 이후 평화의 사도로 추앙받아야함에도 비를 피할 곳이 없었던 묵자가 이 시대의 평화운동가로 환생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묵자는, 초나라 임금의 송나라 공격 계획을 중단시킨 위대한 평화운동가이다. 그런데 평화운동가의 노력에 힘입어 평화를 되찾은 송나라를 지나가던 묵자가 비를 피하고자 했으나 마을 문지기로부터 거절당했다. 평화의 사절로 융숭하게 대접하기는커녕 비를 피할 곳도 제공하지 않은 야박함 보다 묵자의 초라한 행색이 나의 가슴에 더욱 강하게 사무친다. (非평화적인 신자유주의의 폭우를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고난이 더 옥죄오는) 나의 꼬라지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묵자의 비참함 못지않게 남루한 나의 생존방식이 서글프다. 비를 피할 곳이 없던 묵자의 초라함과 내 모습이 겹쳐져 보이는 것 같아 비통함을 가중시킨다. 전쟁광인 초나라 임금을 신묘하게 다스려 평화를 이룩한 묵자의 공(功)을 몰라 비 피할 곳도 제공하지 않았지만, 싸움에 밝은 초나라 임금의 공로는 알아주었던 춘추전국 시대의 세태. 이러한 세태를 닮아가는 이 시대의 평화운동가는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해 허덕이며 살아가지만, 전쟁지향 세력은 공로를 인정받아 호화롭게 지내는 '역행'이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