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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중립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51) ---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 (12) 김승국 국제적인 보장 영세중립을 해석함에 있어서 제기되는 문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논쟁적인 문제는 보장에 관한 문제이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중립 보장국가들이 그들의 조약상의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흔히 나타나는 자발성의 부족이다. 만약 중립조약이 마음대로 조약국에 의해 거부할 수 있는 것이라면 영세중립은 붕괴되고 말 것이다. 영세중립이 어디에서 설립되든지 간에 그 중요 목적은 보장국 간의 질투와 침략을 제거하는 데 있었다. 영세중립은 중립을 보존하고자 하는 국가들 간의 상호 보장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황인관, 17~18) 한반도 중립화에 대한 국제적인 보장 문제는 단순한 서류상의 보장체제와 형식의 의미를 훨씬 넘어 21세기 평화체제 및 통일문제의 성격, 전도, 경로, 귀결과 너무나 중요하게 직결되..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43)---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 (4) 김승국 중립 지향적인 군사구조 ➁ 앞에서 드러난 ①항과 ②항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하여 ①항과 관련된 문제를 먼저 제기한다. 1. 고종 정부의 군사력이 부족하여 중립화에 실패했나 고종은 1903년 8월 러일 간의 전쟁이 임박했다는 소문을 듣고 러일 양국에 특사를 파견하여 유사시 한국을 ‘전시 중립국’으로 간주해줄 것을 요청하는 외교교섭을 추진하였지만 양국은 이를 완전히 무시하였다. 일본은 전시국제법에 있어서 중립국 선언은 스스로 이를 지킬 결심과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이 과연 그러한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빈정거렸다.(정용화 외, 62) [이에 앞선] 조선 정부의 제1차 영세중립 시도는 조병식(趙秉式) 특사를 통해 1900년 8월 일본 정계의 중진 近衛篤麿(‘고노에 아즈마로’라고 읽기도 하..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40)---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 (1) 김승국 총론; 이행표의 구조 앞에서 분단 이후의 중립화론을 소개했다. 이 중립화론 중에서 실행 가능한 것들을 중심으로 통일을 이루는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분단체제에서 중립화 통일체제로 이행)’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과 같은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표를 그렸다.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표;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478호에 실린 글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 (1)]에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표'가 있으니 참고할 것. 1. 중립화 통일 이행표의 구조 1) 주체 중립화 통일의 실행주체를 남북한, 남한, 미국, 주변국가로 설정했다. 이 주체들이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을 위해 수행할 과제는 무엇인지, 과제의 단계마다 무엇을 해야해야하는지를 파악..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39) --- 1945년 이후의 중립화 통일론 김승국 제2차 대전 이후에 제기된 중립화론은 단순한 중립화론이 아니라 중립화 통일론이라는 점에서 구한말의 경우와는 뚜렷하게 다른 특성을 갖는다. 중립화와 더불어 분단된 한반도를 통일시키는 이중의 과제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중립화론을 검토할 때에는 이와 같은 복합적 성격에 유의하여 일반적 중립화론의 경우와는 다른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중립화 통일론은 그것이 제기된 국제정치적 배경에 비추어 크게 세 단계로 대별될 수 있다. 첫 단계는 미ㆍ소 군정 말기에 미소 공동위원회의 결렬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그 대체방안의 하나로 제기된 것인데, 미국 관변에서 검토된 것과 국내 중도파 인사들 간에 논의된 것 등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둘째 단계는 한국전쟁을 계..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37) ...1882∼1904년의 한반도 중립화론 (4) 김승국 1. 이노우에 코와시의 한반도 중립화론 조선내의 보(保)ㆍ혁(革) 갈등이 빚은 임오군란은 결과적으로 청(淸)의 대조선 우위권 확보의 전환점이 되었다. 뜻밖의 임오군란으로 한반도 진출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이게 된 일본은 곧 바로 이를 만회하기 위한 묘안을 찾고 있었다. 임오군란 발발 직후 동경에서 청나라와 조선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담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때 청ㆍ일 양국 간에 쟁점으로 부각된 것이 ‘淸ㆍ韓 종속관계’였다. 淸 측은 [조선에 대한] 파병과 정치개입의 명분으로 속방론[屬邦論; 조선은 청나라의 속방이다]을 들고 나왔고 일본은 [조선의] 독립론을 주장하였다. 조선을 둘러싼 이러한 양국 간의 상반된 주장은 급기야 일본 조야의 초미의 관심사로 되었고 이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淸의 ..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36) --- 1882∼1904년의 한반도 중립화론 (3) 김승국 1. 일본의 기만적인 중립화 안 1) 무쓰 무네미쓰의 중립화 안 1894년 8월 17일 일본 정부의 각의에서 무쓰 무네미쓰(陸奧宗光; 1844~1897년) 외무대신은 다음과 같은 조선 지배 책략ㆍ조선 중립화 방안을 제출했다. (갑) 일본정부는 이미 내외에 대하여 조선이 하나의 독립국이라는 것을 표명하고 또한 그 내정을 개혁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므로 금후 일ㆍ청 교전이 종국에 가서 승리가 과연 우리에게 돌아 온 후라고 하더라도 전과 다름없이 조선을 자주국으로 방임하고 자타가 공히 추호도 간섭하는 바 없이 장차 조선의 운명은 그들의 자력에 일임하는 것이 그 한 방책이요. (을) 장차 조선을 명목상으로는 하나의 독립국으로 하더라도 일본은 직접간접으로 영구히 또는 어떠한 장기간에 걸쳐 그 독립..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35) --- 1882∼1904년의 한반도 중립화론 (2) 김승국 1. 고종 정부의 중립화 추진 조선의 영세중립 필요성은 1880년대 초반부터 제기됐으나, 조선정부가 영세중립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검토한 것이 아니고, 외국이나 학자의 수준에서 주장되었다. 더 나아가 조선의 정세도 영세중립 정책이 필요한 국제적 환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 정부는 영세중립에 대해 무관심한 상태였다. 그러나 고종은 1891년 6월 조선의 지정학적 요인이 스위스와 유사한 점을 감안하여 국제적 보장 아래 조선의 영세중립 문제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러시아, 미국, 영국 등은 조선의 영세중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중국이 조선의 영세중립을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고종의 영세중립 노력은 실패하게 되었다. 고종의 영세중립 정책 실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반도를 ..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34) --- 1882∼1904년의 한반도 중립화론 (1) 김승국 스위스가 영세중립국가가 된 1815년을 영세중립의 원년(元年)으로 삼아 한반도 중립화의 조건을 탐색하려는 필자의 방침에 따라, 앞에서 1815년 이전의 중립화론을 펼쳤다. 이제 영세중립 원년(1815년) 이후의 조선 역사 특히 임오군란(1882년)~러일전쟁(1904년) 기간에 제기된 중립화론(주1)을 소개하면서 ‘중립화의 가능조건’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1. 중립화의 가능조건 중립화가 가능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춰야한다; ① 중립화 대상 국가는 자위력을 갖춰야하는바 군비가 충실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재정자립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② 지정학적 위치가 국제중간지대로서 전략상의 요충이거나 열강 간의 완충지대이어야 한다. ③ 중립화 국가는 대내적으로 중립화를 위한 거족적이며 초당적인 국민..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33) --- 지정학적인 조건 ⑦ 김승국 브레진스키가『거대한 체스판』에서 언급하는 유라시아 관리(관할ㆍ통제ㆍ분할통치ㆍ개입) 전략을 다음과 같이 폭넓게 해석할 수 있겠다; ① 미국은 유라시아라는 경락을 누르고 있어야 전 세계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한 군사정치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 ② 유럽과 아시아가 뭉치면 미국의 국익이 위협받게 된다. ③ 따라서 유럽과 아시아가 뭉치지 못하도록 분할통치 하는 전략을 수행한다. ④ 유라시아의 요충(要衝)인 중동의 석유자원을 미국이 영원히 틀어쥐고 있어야하며, 이를 위해 전쟁도 불사(不辭)한다(이라크 전쟁이 대표적인 사례). ⑤ 중동의 원유를 전 세계로 실어 나르는 해상 교통로(Sea Lane)를 미군이 지킴으로써 원유의 유통망을 움켜쥔다. 원유의 해양 수송로 장악을 통해, 원유에 의존하는 국..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32) --- 지정학적인 조건 ⑥ 김승국 한때 남북한 사이에 전쟁 분위기까지 자아낸 천안함 사건은, 미국ㆍ중국이 해상권력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터졌다. 앞으로 미국ㆍ중국 사이의 ‘해상권력 갈등’이 깊어지면 동중국해ㆍ남중국해에서 천안함 사건과 같은 일이 터질지 모른다. 동중국해ㆍ남중국해의 해상 교통로(sea lane)를 통제해온 미국에 중국이 도전장을 낸 상태이므로, 해상교통로를 에워싼 눈에 보이지 않는 파고가 미국ㆍ중국 사이에서 높아져 가고 있다. 여기에서 분쟁지향적인 해상교통로를 평화지향적인 자원 수송로로 변환시키는 일이 중요한데, 이와 관련된 필자의 대안을 소개한다. 1. 해상 교통로 첫째, 아시아[동아시아]의 분쟁ㆍ전쟁 지향적인 자원 수송로를 평화 지향적인 자원 수송로로 전환시켜야 한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자원 수송로는 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