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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도시-평화 마을/3세계 숍

[커피 장사 수기 (96)] 상담 카페


커피 장사 수기 (96)


 

상담 카페

 

 

김승국(커피공방 뜰의 점장)

 

 

오랜 논의 끝에 우리 가게에서 상담 카페로 병행하기로 하고 ‘상담 카페 뜰’이라는 새로운 프랜카드를 부착했다.

 

 

삶에 지친 주민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격려하며 가능하다면 대책도 같이 모색하는 상담 카페를 통해 평화 마을 만들기의 기초작업을 할 수 있을 것같다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상담 카페를 시작했다. 부부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자녀들의 교육문제, 학교 폭력, 삶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에 대하여 경청하면서 마음 속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역할은 마을 만들기 차원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주민들의 ‘한(恨) 풀이’를 우리 가게에 와서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넋두리 같은 주민들의 이야기라도 진지하게 경청하면서 함께 해결해나가자고 격려하는 해우소(解憂所; 절간의 화장실을 의미하는 解憂所가 아님) 역할을 하길 바랐다. 주민들의 우환(憂患)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면서 마을 주민과 소통하는 커피 숍이 되길 희망하면서 상담 카페의 문을 열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상담 카페가 존재하며, 상담 카페에 온 손님이 상담하길 원하면 전문가가 손님의 말씀을 경청하면서 상담에 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물론 상담에 임하는 손님의 커피 값은 비싸다. 상담료가 커피 값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상담 카페이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존재하므로 결코 낮설지 않다.

 

 

이렇게 좋은 뜻으로 시작했지만, 상담 카페는 결국 실패했다.

 

 

실패한 이유를 굳이 든다면, 첫째 준비부족이다. 상담 전문가가 상주하면서 상담에 임하지 못하여 상담 희망자는 우리 가게에 와 있는데 상담 전문가를 불러올 수 없었다.

 

 

둘째, 상담 프로그램을 실행하지 못했다. 말로만 집단 상담 교육 프로그램을 돌려 상담사를 양성한다고 했을 뿐 실행을 하지 못했다. 양성된 상담사들이 돌아가면서 상주하며 상담에 임하는 체제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셋째, 일부 주민들이 상담 카페를 사주 카페로 오해하는 등 상담 카페에 대하여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점이다(차라리 내가 주역풀이하는 하는 방법을 배워 사주 카페를 차렸으면 돈이나 벌었을 것이라는 뒤늦은 후회아닌 후회를 하게 되었다).

 

 

넷째, 한국 사람들은 고민거리가 생기면 술을 마시며 해결(남성의 경우)한다거나 수다떨면서(여성의 경우) 해소하는 기법이 발달되어 있어서 일본인들처럼 고민거리를 가슴에 않고 다니면서 상담 카페로 가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이 슬기롭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일본사람들에 비하면 피상적으로 살아간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다섯째, ‘커피’와 ‘상담’의 짝짓기에 실패한 점이다. ‘커피’와 ‘상담’이 서로 어울리는 개념이라는 개념설정에 실패한 점이다.

 

 

여섯째, 상담 카페를 주도할 체계가 분명하지 않은 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악착같이 상담 카페를 체계 있게 진행하여 커피 공방 뜰의 영업에도 도움을 주겠다는 각오가 부족한 점이다. 상담 카페를 한번 해볼까 하는 정도보다 약간 강한 의지를 갖고 시작했기 때문에 실행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상담 카페의 실행팀을 튼튼히 꾸리지 못했다.

 

 

평화 마을 만들기의 지름길을 발견할 수 있는 상담 카페의 실패는 나에게 뼈 아픈 일이다. 일산이라는 지역에서 지역형 평화운동의 새로운 모델(평화 마을 만들기의 모델)을 개발하려고 커피 숍을 개설한 목적에 어울리는 상담 카페의 실패는 평화 마을 만들기의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상담 카페의 실패로 커피 숍 개설의 목적을 절반쯤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어 상담 카페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시도한 ‘북 카페(우리 가게를 북 카페로 활용한다)’ 구상마저 실패하는 바람에 커피 숍을 평화 마을 만들기의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초심이 흔들렸다. 그래서 가게를 내놓고 ‘명예로운 후퇴 작전’을 개시한 것이다.(2012.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