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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평화공동체(도시, 마을)

노자, 장자의 평화 공동체와 평화 경제

김승국

Ⅰ. 무위의 평화 공동체

노장(노자․장자)은 임금도 관리도 없는 문명 이전의 무위자연(無爲)을 선망한다. ‘무위’는 ‘무인위(無人爲)’ 또는 ‘무치(無治)’를 뜻하며, ‘자연’은 문명 이전을 의미한다. 노장이 살았던 당시의 민중들은 수백 년간 지속된 전쟁과 착취로 유랑민이 되어 도둑이 되지 않으면 처자식을 노예로 팔아 먹는 난세에 진저리를 내고 있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천하에 무엇을
요구하기보다는 자신들을 괴롭히지 말고 잊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소망은 자유와 해방이었다. 이것은 ‘격양가(擊壤歌)’의 소망이기도 하다. 그들의 소망이란 지극히 소박하여 임금이 누구인지, 관장이 누구인지 모르고 아무 간섭 없이 농사를 짓고 우물을 파서 등 따뜻하게 먹고 마시는 것 뿐이었다.(기세춘, 2006, 407-408)

임금이 누구인지, 관장이 누구인지 모르고 아무 간섭 없이 농사를 짓고 우물을 파서 등 따뜻하게 먹고 마시며 격양가를 부르는 ‘무위의 평화 상태’를 고대 중국의 민중들이 염원했다. 이러한 ‘무위의 평화 상태’를 민중들이 집단적으로 실현하면 ‘무위의 평화 공동체’가 이룩되며, 이게 잘사는 것의 요체이다.

노장의 무위의 평화 공동체는, 유가․법가의 ‘유위(有爲, 부국강병)에 의한 평화 공동체’와 큰 차이가 있다. 무위의 평화 공동체는 무치를 기본 덕목으로 삼는다. 노장이 말하는 무치의 평화 공동체는 공동소유제를 필수조건으로 삼는다. 국유제나 사유제는 공동체 사회를 이룰 수 없다. 공동체론에서 소유의 문제가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소유 문제와 관련된 노장의 아래와 같은 논술을 통하여, 무위의 평화 공동체가 갖춰야 할 평화 경제체제를 모색한다.

① 무위자연의 성인은 재물을 사유하지 않는다. 남을 위할수록 자기는 더욱 부유하고, 남에게 덜어 줄수록 자기는 더욱 많아진다.({노자(老子)} 81장) ② 순임금이 그의 스승인 승(丞)에게 물었다. “도를 터득하여 소유할 수 있을까요?” 승이 답했다. “네 몸도 네 소유가 아니거늘 어찌 도를 소유할 수 있겠는가?” 순임금이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면 누구의 소유란 말입니까?”라고 묻자, 승이 말했다. “이것은 천지가 너에게 맡겨 놓은 형체이다. 생명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 놓은 음양의 화합이다. 본성과 운명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 놓은 순리(純理)이다. 자손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 놓은 허물이다.”({장자(莊子)} 외편(外篇) / 지북유(知北遊)) ③ 남월(南越)에 한 고을이 있는데 이름을 건덕(健德)이라고 했다. 건덕의 백성은 어리석고 순박하며, 사심이 없고 욕심이 적었으며, 경작할 줄은 알지만 사유(私有)할 줄은 모르며, 남에게 주는 것은 알지만 보답을 구하지 않고, 의(義)에 따르는 것도, 예(禮)에 순종하는 것도 모른다. 제멋대로 함부로 해도 결국은 대도(大道)로 나아갔다. 살아서는 즐겁고 죽으면 장사 지냈다. 원컨대 군주께서도 나라를 버리고 세속을
털어버리고 무위자연의 대도와 더불어 서로 손잡고 나아가기 바란다.({장자} 외편/ 산목) ④ 대동(大同)세계에서는 사사로운 자기가 없다(無己). 자기가 없는데 어찌 소유를 얻으려 하겠는가? 소유를 가르치는 자는 옛 군자요 무소유를 가르치는 자는 천지의 벗이다.({장자} 외편/ 재유)

위의 논술을 읽고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노장의 무소유․무위 평화 공동체를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는 있는데, 이를 집단적(공동체적)으로 실현하는 경제체제가 가능한가? 무위의 평화 공동체를 지탱하는 평화 경제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한 대답, 즉 ‘무위의 평화 공동체를 위한 평화 경제의 길’이 노자 80장에 제시되어 있는데, 그 전문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小國寡民(나라는 작고 백성도 적어야 한다)
使有什伯之器而不用(백성들이 갖가지 기계를 가졌다 한들 사용하지 않으며)
使民重死 而不遠徙(백성들은 죽을 때까지 공동체에서 멀리 쫓겨나지 않는다)
雖有舟輿無所乘之(비록 배와 수레가 있으나 탈 일이 없고)
雖有甲兵無所陳之(비록 무기와 병사가 있다 한들 배치할 곳이 없다)
使人復結繩而用之(사람들이 옛날처럼 새끼줄로 의사표시를 하게 하고)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음식을 달게 먹고 옷을 아름답게 입고 거처를 안락하게 하며)
樂其俗(법이 아니라 옛 풍속대로 즐거워한다)
隣國相望(이웃 나라를 서로 바라보며)
鷄犬之聲相聞(개와 닭의 울음소리를 서로 듣지만)
民至老死 不相往來(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1. {노자} 80장 분석

홍성화는 「老子小國寡民論의 社會經濟史的 기원」에서 {노자} 80장을 네 가지로 분류하며 설명한다.

    1) ‘使民重死而不遠徙…民至老死 不相往來’는 농업공동체 사회를 지향한다

이 구절은 두 가지 측면에서 파악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① ‘遠徙(이주를 멀리한다)’가 의미하는 것 ② ‘不相往來’가 의미하는 것이다. ‘使民重死而不遠徙’라는 구절은 전국 시대에 횡행했던 徙民(民의 이주)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된다. 전국 시대의 사민(徙民) 정책은 ‘작(爵)’과 ‘복(服)’을 통한 새로운 읍제적(邑制的) 질서의 확립, 병농(兵農) 분리 등을 목적한 ‘부국강병책’이었다. 결국 ‘遠徙(이주를 멀리한다)’의 의미는 ① 백성들이 ‘사(徙)’하지 않을 정도로 생산의 안정이 담보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② 당시에 횡행하던 사민정책, 즉 전국 시대 각국 부국강병책에 의해 백성의 거주지를 이리저리로 옮기거나, 국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재편되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 다음으로 ‘民至老死 不相往來’의 의미이다. 이 구절은 거주지를 빈번하게 옮기는 상업 종사를 지양하고, 바로 백성이 정주함으로써, 농업을 영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민(民)’은 ‘공(工)’․‘상(商)’을 포함한 일반 피지배자 전체를 막연하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적으로 농민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자} 80장의 ‘雖有舟輿,無所乘之’는 거주지를 빈번하게 변동시키는 상업의 종사에 대한 우려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民至老死 不相往來’라는 구절은 ① 상업의 종사로 인한 주곡(主穀) 생산에 대한 방해와 향촌 공동체의 유대의 파괴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는 것이고 ② 주곡 생산에 집중함으로써 농업생산력의 안정을 도모하였던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민(寡民)’의 의미는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재생산 단위가 축소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구성원 역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적극적으로는 당대에 활발하게 시행되었던 사민정책과 같은 인위적인 거주지 재편을 반대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빈번한 사민정책의 실시와 백성들의 상업 종사로 인한 거주지 변동을 지양하고, 정주를 통해 소규모 농업 공동체로의 복귀를 지향
한 것이다.

    2) ‘使有什伯之器而不用…雖有舟輿無所乘之, 雖有甲兵無所陳之, 使人復結繩而用之’는 이기(利器)와 문자에 대한 성찰을 나타낸다

전국 시대 이후의 경우, 이기(利器)의 사회적 기능은 생산력의 증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방 단위에 보급을 통하여 향촌의 통치를 공고히 하고, 보다 풍요한 삶의 보장을 통해 국가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여, 여기에 다시 수탈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문자 역시 그 사회적 기능은 의사표현과 그 소통의 수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사물의 질서를 이념적으로 정당화하였다. 그러한 문자의 보급은 지식의 보급으로 연결되었고, 지식에 의해 ‘노심자(勞心者)’와 ‘노력자(勞力者)’의 구분을 성립시켰다. 문자와 마찬가지로 지식 역시 사회․경제적 재생산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필수적인 기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자 에서는 이미 문자와 ‘什伯之器’ 그 자체의 폐기는 이미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인식하였으며, 그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도로 축소 ― 의사소통의 경우 ‘結繩’ ― 함으로써, ‘자연’으로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인식하였다.

    3) ‘甘其食,美其服,安其居,樂其俗’은 이상(理想)사회론을 반영한다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은, ‘(王이 백성들에게) 그 고을(其)의 음식을 달게 여기게 하고(甘其食), 자기 고을(其)의 복장을 아름답게 여기게 하며(美其服), 그 풍속에 편안하게 하고, 그들의 주거지를 즐기도록 해 줘야 하는 이상사회’를 지향한다.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은 모두 동사와 목적어 사이에 ‘其’를 넣고 있다. 이 ‘其’는 원래 스스로 그러한, 다시 말해서 개별적인 자연 향촌의 고유한 ‘그 지역의 음식’․‘그 지역의 복식’․‘그 지역의 주거 형태’․ ‘그 지역의 풍속’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즉 ‘소국과민(小國寡民)’을 통해 인간의 고유한 감각 등이 회복될 뿐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변형된 제국(帝國)의 통일정책에 따른 파괴에서 벗어나서, 자연촌락의 각각의 개별적 고유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고, 그 ‘其’됨의 회복이야말로 ‘자연’의 회복인 것이다. 통치자의 사민정책과 사회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스스로 그러한(自然)’ 인간의 제 감각과 향촌의 고유한 질서가 사라졌는데, ‘소국과민(小國寡民)’을 통해 인간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국 시대의 국가는 경제적으로는 ‘사민분업(四民分業)’을 기반으로, 사회적으로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차이를 조정하고 매개하는 것을 통해 그 정당성을 획득하였다. 그러므로 ‘소국과민(小國寡民)’을 통한 백성들의 농업으로의 집중은 이 모든 차이를 무화(無化)시킴으로써, 기존 국가 지배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처럼 국가의 향촌 지배의 정당성이 사라질 때, 비로소 원래의 향촌이 지녔던 ‘자연’을 회복할 수 있다.

    4) ‘小國寡民…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의 규모

‘소국(小國)’이라고 할 때, 그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가 추론해 볼 수 있는 단서는 ‘隣國相望’하는 거리를 ‘닭과 개가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는 정도’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국(國)’의 규모는 닭과 개의 소리가 들리는 정도로 상정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는 없으리라. 닭과 개가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는 거리는 현실적으로 ‘인읍(隣邑)이 상망(相望)’할 정도의 거리, 즉 읍(邑) 정도의 규모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 시대에 들어와 邑과 ‘國’의 규모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을지라도, 노자 에서 상정하였던 ‘國’의 규모는 실제로는 邑 정도의 규모였던 것이다. 邑의 구조는 예전의 촌락보다 우월한 것이어서 백성들이 즐겨 이주할 수 있는, 그 당시로서는 모범적인 촌락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邑 내에 이(里) 단위로 부락이 편성되어 있고, ‘천맥(阡陌)’으로 경지가 바르게 구획되어 있으며, 가옥과 생활용구가 잘 구비된 형태가 전국 시대의 모범적인 邑의 구조였던 것이다.
이처럼 재생산 단위가 邑 정도로 축소된다면, 국가라는 상급 공동체에 대한 공납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며 단지 邑 공동체를 유지하는 정도, 즉 邑 단위의 공동작업에 대한 정도로 필요노동 부분의 잠식은 그치게 될 것이다. 그 나머지 부분은 백성들의 재생산 부분으로 투하될 수 있을 것이다. 재생산 단위가 축소되면서 상급단위에 대한 공납이 줄어드는 효과뿐만 아니라, 국내의 노동력 재분배와 지휘를 둘러싼 여러 행정처리 역시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는 행정처리의 양 때문에 분리될 수밖에 없는 노심자(勞心者)와 노력자(勞力者)가 분리될 여지를 축소시키는 것이며, 그에 따라 서주(西周) 이래 지배층으로 군림해 온 관료층의 존립 근거가 소멸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면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의미는 국가라는 형태를 완전히 배제한 아나키스트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 공동체라는 형태를 유지하면서, 다만 재생산 규모를 가능한 한 최소한 규모로 축소하는 정책이라고 보아야 한다.

Ⅱ. 지역 공동체가 해답

위와 같은 노자 80장 분석에 나오는 지역 공동체(小國․邑․향촌․자연 촌락)는 ‘인간답게 두루 잘살 수 있는 평화 공동체’를 가리키며, 이 평화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평화 경제가 가능함을 일러준다. 국가가 아닌 지역 공동체에 평화 공동체․평화 경제의 해답이 있음을 암시한다.

노장(노자․장자)이 말하는 지역 공동체의 단위는 ‘속(屬)’이었다. 屬은 삼향(三鄕) 또는 십현(十縣)을 묶어 그 경내의 백성들이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공산(共産)․공생(共生)함으로써 유랑하는 일이 없도록 한 것이다. 장자의 ‘연속기향(連屬其鄕)’은 노자 19장의 ‘영유소속(令有所屬)’과 같은 맥락이다. 屬이란 원래 인구 5∼10만의 오늘날 군(郡) 정도의 지역 자치 단위를 말하는 것이다. 당시 군사 조직도 속 단위로 편성되었는데 한 소속(所屬)은 약 3,000명 정도였던 것 같다.(기세춘, 2006, 419, 421쪽)

노자의 ‘영유소속’은 당시 수백 년간 지속되어 온 전란으로 땅을 잃고 유랑하는 백성이 넘쳐나는 실정에서, 이들 유랑민을 속 단위의 지역 공동체에 수용하여 부양을 책임지게 함으로써 구제하는 정책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백성들 각자가 소속 공동체를 떠나거나 다른 공동체로 유입되는 것을 통제할 필요에서 시행되었다.(기세춘, 2006. 423)

{장자} 外篇/ 馬蹄에 “덕이 지극한 세상에서는 거동이 편안했고 생활이 순박하고 한결같았다. 당시에 산에는 길이 없었고 못에는 배와 다리도 없었고 각기 마을을 지역 공동체인 屬으로 결집하여 살았다. 가족처럼 만물과 어울려 벗이 되었으니, 어찌 군자와 소인의 차별을 알겠는가? 그러나 성인(군왕)이 나타나 절름발이가 뛰듯 인(仁)을 만들고 발꿈치를 들고 달리듯 의(義)를 만들어 천하에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는 문구가 나온다.

군왕․국가가 나타나 屬이라는 지역 공동체에 갈등을 유발했는데, 갈등유발의 주범이 유가의 인(仁)․의(義) 이데올로기임을 이 문구는 강조한다. 이 문구는 평화 공동체의 단위가 국가가 아닌 지역 공동체(屬)라는 무정부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노장은 공맹(공자․맹자)의 왕도를 반대하고 무정부주의적 소국연합 내지 연방제를 선호했다.(기세춘, 2006, 424)

노장(노자․장자)은 소규모 지역자치 공동체를 지향했다. 이 점에서 부국강병 주의를 주장한 법가(法家)는 물론이거니와 소국 연방제적인 왕도주의를 주장한 유가들과는 첨예하게 대립된다. 2400년 전 노장의 무정부적 공동체는 너무도 혁명적인 것으로 19세기 서양의 아나키즘을 연상하게 한다. 이것은 19세기에 푸리에(F. M. C. Fourier)가 시험한 1,620명 소규모
산업공동체인 팔랑주(Phalange)의 효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노장이 성인과 왕도를 부정하고 소규모 지역 공동체의 자주독립을 주장한 것은 마치 국가는 인격이 없는 팔랑주의 ‘연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아나키스트들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기세춘, 2006. 417)

Ⅲ. 난제들

노장은 屬이라는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大同(큰 도리가 행해지는 공평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대동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노장의 세계관을 현대 사회에 적용할 때 아래와 같은 난제가 뒤따른다.

① 현대와 같은 대국과민(大國過民)의 세상에서 노자 80장의 ‘소국과민(小國寡民)․무위(無爲)의 평화 공동체’ 및 이를 위한 평화 경제가 가능한가? 노장의 농업공동체인 屬과 푸리에의 산업공동체인 팔랑주를 중심으로 21세기의 평화 경제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가? ‘21세기의 屬․팔랑주’가 성립 가능하다고 가정할 경우, 시장경제라는 복병을 이겨낼 수 있는가?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시장경제가 아닌 어떠한 대안경제체제로 ‘屬․팔랑주의 평화 경제’를 이룩할 수 있는가? 현대 경제의 시장 구조와 노장의 무위-무소유 평화 경제가 어울리는가? 평화․지역 공동체의 가장 큰 장애물은 시장 및 (시장을 엄호하는) 국가가 아닌가?

② 인간은 욕구하는 동물인데, 무위-무소유의 평화 공동체․평화 경제를 이룩할 수 있는가?

③ 노장의 소국과민의 생산관계를 통해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가?

위의 ①은, 인류평화의 영원한 난제이며 평화 경제의 영원한 숙제이다. 난제의 근원에 있는 시장․국가는 끊임없이 평화 공동체를 위협한다. 더욱이 21세기의 벽두에 횡행하는 신자유주의는 지구촌 차원에서 평화 공동체를 파괴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평화 파괴의 주범임이 세계 곳곳에서 증명되고 있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평화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운동가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들 운동가들은 ‘신자유주의 때문에 파괴된 평화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는 암호가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지역․평화 공동체에 있음을 절감’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시장․국가의 암초에 걸려 노자 80장과 같은 대동세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소국과민-국가-세계화의 3각 관계의 중간에 있는 국가를 건너뛰어 소국과민에서 세계화로 직행하는 전략이 요청된다. 계륵과 같은 국가를 우회하여 지역화(지역 공동체를 통한 평화 만들기)와 세계화를 연결하는 통로를 만드는 전략 없이 평화 경제체제 수립은 난망이다. 이 통로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평화 공동체 만들기 작업(몬드라곤 공동체, 지역화폐 사용하기, 제3세계 중심의 內發的 발전 모델 등)이 진행 중이다. 이들 작업이 아직은 암중모색이지만, 지역 공동체가 해답이라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는 것같다. 이미 ‘지역 공동체가 세계평화 공동체의 발신지라는 믿음체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 믿음체계를 중심으로 ‘소국과민-無爲 평화 공동체의 세계화’를 이루어 내고, 이 바탕 위에서 평화 경제체제를 수립하는 길만 남아 있다.

그러면 ②의 난제에 대답할 차례이다. 욕심덩어리인 인간이 무위-무소유의 평화 공동체․평화 경제를 이룩하는 것 역시 난제 중의 난제이다. 인간의 소비욕구가 어우러진 시장을 통하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한 현대 경제체제에서, 무위-무소유의 평화 공동체․평화 경제는 엄감생심(焉敢生心)인 듯하다. (욕구 및 욕구 충족의 체계로서의) 시민사회와 무위-무소유의
평화 공동체․평화 경제는 상충된다. 욕구의 확대 재생산을 중심적인 가치로 생각하는 근현대의 경제학을 근원적으로 수정하지 않고 무위-무소유의 평화 공동체․평화 경제를 내오는 것은, 동굴 속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암중모색이 가능하다. 암중모색의 차원에서 무소유의 사원(寺院) 경제, 사원 내의 무소유 평화 공동체, 소욕지족(少欲知足)의 경제학, ‘연기(緣起) 평화 공동체의 경제학’을 생각할 수 있겠다.(菅谷章, 2000, 44-56) 단순히 생각에 그치지 않고 타이의 사회참가형 불교 공동체 운동, 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 운동, 간디(Gandhi)의 스와라지(swaraj) 운
동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반 일리치(Ivan Illich)의 ‘고유한(vernacular) 노동’을 즐기는 공생(conviviality)사회론, 폴라니(Karl Polanyi)의 시장 자본주의 비판에서도 이론적인 전거를 찾을 수 있겠다.

③의 난제와 관련하여 노장이 강조하는 소지역(마을․촌락․향촌․邑․屬) 공동체를 통해 생산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몬드라곤 공동체의 ‘생산관계를 통한 생산력 제고’를 거론할 수 있다. 이러한 ‘소지역 평화 공동체의 세계화(세계적인 연결망, glocal peace network)’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라는 상위의 공동체가 ‘소지역 평화 공동체의 세계화’를 저해하는 게 문제이다. 국가체제가 있는 한, ‘소지역 공동체 경제’가 국가경제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국가가 장애물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국가라는 장애물을 넘어 풀뿌리 지역 공동체의 세계화를 이룸과 동시에 평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평화’라는 관문을 거쳐야 한다. 이 관문을 열기 위한 ‘지역의 평화’론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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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기세춘 {동양고전 산책(1)} (서울, 바이북스, 2006)
* 홍성화 「老子小國寡民論의 社會經濟史的 기원」 {대동문화 연구} 제35집, 1999
* 菅谷章 {社會科學と佛敎思想} (東京, 日本評論社,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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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311호에 실린 필자의 글「잘사는 평화 (10)」(2008.2.25)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