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화연구(이론)-평화학/평화국가-평화헌법

평화헌법 만들기

김승국

Ⅰ. 평화헌법과 평화 경제

  1. 평화헌법에 의한 경제성장

    1) 일본

中山伊知郞은 「日本経の動向と物価」라는 논문(24∼26쪽)에서 ‘일본이 2차 대전 이후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한 원인이 평화헌법 제9조 및 평화헌법과 관련된 경제개혁에 있음’을 아래와 같이 밝힌다.

첫째로 전후(제2차 대전 이후)에 특별한 요인이 일본 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했다는 사고방식이다. 그 가장 큰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헌법 제9조일 것이다. 군사비라는 것이 감소하였다. 전전(제2차 대전 이전)의 통계를 보면 압니다만, 국가예산 가운데에서 군사비의 비율이 대체로 25∼30%가 평균이었다. 물론 전쟁이 터져 50%, 60%가 되었다.
그런데 전후의 방위비가 지금은 6∼7%이다. 국민 총생산에 대한 비율은 대체로 1% 이하의 국방비이다. 따라서 큰 국방비에서 작은 국방비가 되었다. 그 대신에 민간의 투자를 상당히 왕성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의 이유이다.

둘째로 전후에 3대 개혁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제개혁이 있었다. 제1의 경제개혁은 농지개혁인데, 이것은 소작농을 자작농으로 바꾼 것이다. 언뜻 보기에 대수롭지 않은 변화인 듯하나, 농민이 자신의 토지에서 생산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자극을 받았다. 그리하여 농업생산이 왕성해지고 식량생산의 기초를 뒷받침하여 부흥의 원인을 이루었다.

제2의 경제개혁은 재벌의 해체이다. 재벌 해체는 역시 하나의 커다란 성장의 자극이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전후에 재벌이 해체되어 누구라도 유효한 발명․발견이 있으면 이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런 기술의 수입이 장려되었다. 그리고 생산을 왕성하게 하려는 의욕이 강해졌다. 이게 경제성장의 한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제3의 커다란 개혁은 노동조합의 육성이다. 노동조합은 전후에 처음 나온 게 아니지만 일본의 모든 관청․회사에 ‘인정받은 노동조합’이 1946년부터 등장했다. 노동조합이 맨 처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인플레이션에 대항하여 ‘먹고살 만한 임금’을 얻는 것이었으며, 경영자 쪽도 이러한 임금을 승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이게 어떤 효과를 가져왔느냐 하면, 국민 전체에 구매력을 주었다. 바꿔 말하면 국내 시장을 육성하였다. 국내 시장의 육성으로 농촌에 대한 세탁기의 보급, 일반 가정에 대한 텔레비전의 보급이 이루어졌다. 지금은 수출이 왕성하므로 국내 시장이 직접적으로 문제되지 않지만, 국내 시장을 밀쳐놓고 수출만으로 나라가 번영하는 게 경제적으로 절대 불가능하다. 이처럼 근본은 국내 시장의 육성이므로, 어쨌든 임금을 되도록 많이 얻는 노동조합운동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헌법의 문제를 별도로 하더라도 전후의 3대 개혁이라는 것이 경제성장의 커다란 원인이 되었다. 일본의 경제성장을 밖에서 보고 논의하는 사람은 모두 맨 처음에 이런 요인을 건너뛴다. 그러나 차츰차츰 나아가는 사이에 이러한 단기적인 ‘전후의 특유한 사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요인’이 아무래도 일본에 있을 법하다는 점을 느낄 것이다.

전전․전후를 통하여 일본의 경제성장의 원인이 된 Long Range Factor, 즉 장기 요인을 든다. 장기 요인의 첫 번째는 저축률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어쨌든 (일본인들의) 저축률이 상당히 높다. 일본은 전전․전후를 통하여 전체 선진국의 평균 저축률의 두 배 이상을 나타냈다. 이게 일본이 외자에 의지하지 않고 (국내의) 저축만으로 발전을 이룬 이유이다.

제2의 장기 요인은 상당히 풍부한 노동력의 공급으로 혜택을 입었다. 노동력이라고 해도 결코 인간의 숫자뿐만 아니라 교육이 있다. 교육받은 노동인구를 이 정도로(풍부히) 갖고 있다는 게 매우 드문 일이다. 게다가 장기간에 걸쳐 (풍부한 노동력의) 공급이 확보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경영자가 세계의 경영자 중에서 가장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제3의 장기 요인은, 그 노동력이 상당히 근면하다는 점이다.

앞에서 中山伊知郞이 언급하듯이 전쟁이 없는 상태 아래서 노동조합 운동으로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게 된 2차 대전 이후에, 일본은 비로소 경제의 고도성장을 달성하고 세계의 기술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전전의 일본은 비서구권에서는 가장 선진된 나라였으나, 서구에 대해서는 기술 면에서 도저히 적수가 아니었다. 그러던 일본이 2차 대전 후 오늘날 세계의 기술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평화헌법을 채택함으로써 국내 자원을 소비적인 군사목적으로 소진할 이유가 없게 된 대신에, 그것을 평화산업과 이를 위한 기술개발, 그리고 각종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을 위해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구미 각국들이 국방에 막대한 국가예산을 쏟아 놓고 있는 사이에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에 사실상 무임승차함으로써 구미 각국의 기술수준을 따라잡겠다는 숙원을 실현시키기 위해 전력투구한 결과가 오늘의 일본 경제의 번영을 가져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는 농지개혁에 의해서 농촌에 옛날부터 뿌리박혀 온 반봉건적 소작제도가 거의 자취를 감춤으로써 빈부격차가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이중 곡가제, 농수협의 육성, 농업 하부기구의 정비, 지방공업의 육성과 지방 교통시설의 확충 등을 통하여 도시와 농촌 사이의 소득격차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고, 이로써 국내 시장이 크게 확충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셋째로 전후의 평화․민주헌법 아래서 노동조합의 세력이 강화되어 부의 균등배분과 국내 시장 확대에 적지 않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농가소득 향상의 여파로 도시의 노임수준이 높아짐으로써 자본재에 대한 노동의 대체, 즉 기술혁신이 기업의 성쇠를 좌우하는 변수로 등장하게 되었고, 이것이 일본의 기술수준을 구미와 손색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하는 데 매우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일본 경제가 참다운 의미에서 번영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설사 미 점령군에 의한 타율의 산물이었다 하더라도, 민주․평화헌법의 시행과 농지개혁․노동조합의 활성화 등을 바탕으로 한 일련의 정치․경제적 개혁에 의해서였으며, 그 의의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주종환, 1994, 415-417)

평화헌법과 함께 이룩된 정치․경제적 개혁(농지개혁․재벌 해체․노동조합 활성화)이 경제성장의 단기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이 단기적인 요인이 경제성장의 장기적 요인(높은 저축률․질 높고 근면한 노동력을 풍부하게 공급받음)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면 평화헌법으로 국방비를 대폭 절감(전전의 군사비 비율 60%에서 전후의 군사비 비율 6%로 절감)한 평화배당금(peace dividend)을 기술개발․사회 인프라 확충에 전용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이끌어 냈다는 말이다.

이를 정치 경제학적으로 재해석하면 ① 평화헌법이라는 상부구조에 의해 ‘평화 경제의 기초(하부구조)를 이루는 생산관계’가 형성되고(농지개혁․재벌 해체․노동조합운동의 활성화와 함께 군비축소형 생산관계가 형성됨) ② 이 생산관계가 경제성장의 장기적 요인을 촉발함으로써 생산력의 급증을 유발하여 ③ 국민 모두가 비교적 골고루 잘사는 평화국가(자위대 창설에 이은 군사대국화로 이러한 평화국가의 像이 점차 일그러졌지만…)가 되었다.

    2) 코스타리카

평화헌법이라는 상부구조가 평화 경제의 생산관계를 형성한 데 이어 생산력의 급증․평화 경제를 위한 자본축적을 유발함으로써 잘사는 평화국가로 거듭난 사례는 일본에 그치지 않는다.

코스타리카는 일본 평화헌법 제9조보다 더욱 강력한 평화헌법 제12조를 지니고 있다. 코스타리카의 평화헌법 제12조는, 교전권을 부인한 일본의 평화헌법 9조보다 더욱 강력한 평화의 의지를 지니고 있다.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는 “항구적인 제도로서의 군대를 금지한다. 다만 공공질서의 감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찰력은 보유한다. 대륙 간 협정에 의하거나 국가방위를 위해서만 군대를 조직할 수 있다. 군대․경찰력은 어느 경우이든 문민권력에 언제나 종속해야 하며, 단독 또는 집단적으로 심의하는 것도 성명․선언을 내는 것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항구적인 제도로서의 군대를 금지한다.’는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가,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는 일본헌법 제9조보다 강력하다.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보다 ‘군대를 금지한다.’는 쪽이 강하다. 일본 헌법 제9조가 군대를 금지한다는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자위대라는 전력을 보유할 틈을 제공했다. 그런데 코스타리카는 군대 금지의 조항이 있으므로 손쉽게 비무장 중립국가가 되었다. 일본은 막강한 전력을 지닌 자위대가 있었기 때문에 비무장 중립국가가 될 자격을 상실했다. 코스타리카는 자국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주변 국가들도 평화롭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적극적 비무장 중립’을 내걸고 주변 국가들의 분쟁해결까지 도맡았다. 코스타리카가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점에서, 일본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코스타리카는 1949년부터 지금까지 70회의 헌법개정이 있었다. 이렇게 개헌이 빈번하게 이루어졌지만 군대 폐지 조항을 바꾸려는 개헌안은 제출된 적이 없다. 코스타리카는 헌법 제정 뒤 ‘병사의 수만큼 교사를 둔다.’는 국민적 합의 아래 군사예산을 교육예산으로 돌려버렸다. 이로써 국가예산의 3분의 1이 교육비로 충당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이만큼 교육에 예산을 할애하는 나라는 코스타리카밖에 없다. 그 결과 중남미에서 가장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다. 국방비를 거의 제로(zero)로 만든 국가재정의 여유분으로 사회복지․교육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중남미 국가 중에서 가장 소득수준이 높고 사회복지가 충실하다. 사회복지를 충실히 하는 데 군대 폐지가 한 역할이 크다. ‘제아무리 가난해도 군대는 보유해야 한다는 제3세계 국가들’과는 발상 자체가 다르다. 코스타리카의 역대 대통령들은, 비(非)군사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피땀을 흘려 가며 자국의 정책을 다른 나라에 호소하는 가운데 비무장 영세중립을 주변국들로부터 인정받았다.(김승국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88호, 2005)

    3) 남북한은 일본 ․ 코스타리카와 같은 평화국가가 될 수 없는가?

코스타리카가 ‘비무장 중립 평화’를 위해 ‘자주’를 지킨 점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모범 사례가 될 것이다. 코스타리카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평범한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이런 길을 걸은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코스타리카도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국가들에 에워싸여 격동의 역사를 헤쳐 나오면서도 ‘군대 없는 평화 국가’를 형성해 왔다. 1959년의 쿠바 혁명은 ‘군대 없는 코스타리카’에게 커다란 위기를 안겨 주었다. 미국의 앞마당인 쿠바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이 즉각 공세적인 자세를 취했고 이에 따라 중남미 정세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곧이어 1962년 쿠바에 설치한 소련의 공격용 미사일 시설을 에워싸고 미국과 소련 사이에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나아갔다. 이윽고 1979년 인구 250만의 작은 나라 니카라과에서 광범위한 국민의 지지를 얻은 혁명정권이 등장하여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니카라과의 혁명을 주도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은 미국의 눈엣가시이었다. 미국은 FSLN을 거세하기 위한 군사적 공작을 코스타리카에서 하려 했으나, 코스타리카 정부의 선방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정황을 한반도에 대입하면,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을 전복하기 위한 군사적 공작을 미국이 남한 정부에 제안했으나 보기 좋게 ‘퇴짜 맞은’ 꼴이다. 불행하게도 남한의 역사는 코스타리카와 반대의 길을 걸었다.(김승국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88호, 2005)

코스타리카의 경우 평화헌법에 따른 적극적인 평화 외교를 펼치면서 ‘영세 비무장 중립 선언’을 제도화했으며, 그 결과 ‘군사비 부담이 없는 경제발전’을 성취했다. 일본 역시 평화헌법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여기에서 남․북한이 일본․코스타리카처럼 평화헌법에 의한 경제성장의 가능성 여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제성장이 불가능하다면 어떠한 요인 때문이며, 가능하다면 어떠한 요인 때문인가를 가려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한반도의 분단체제에 따른 분단헌법’을 남북한이 제정한 요인 때문에, 평화헌법에 의한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요소가 있다. 남북한의 분단헌법은 ‘평화 경제를 위한 자본축적-경제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분단헌법이라는 상부구조가 ‘평화 경제의 기초(하부구조)를 이루는 생산관계 형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된 3大 개
혁(농지개혁․재벌 해체․노동조합운동 활성화)과 같은 ‘평화 경제를 위한 개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부구조가 분단헌법이다.

남북한의 분단헌법이 존속하는 한 군비축소형 생산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 군비축소형 생산관계가 경제성장의 장기적 요인을 촉발함으로써 생산력의 급증을 유발할 수 있을 텐데, 현재의 분단헌법 아래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비록 분단헌법의 악조건 속에서 남한이 경제발전을 이룩했으나, 그 발전은 인간적․내발적 발전이 아닌 ‘박정희 개발독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불균등 발전(구조적 폭력을 수반하는 비평화적인 불균등 발전)’이다. 구조적 폭력을 수반하는 비평화적인 불균등 발전이므로, 남한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사는 평화국가를 이룰 수 없다. 최근 들어 신자유주의형 개발 모델이 남한 땅을 엄습하여 평화국가는 엄두도 못 낼 지경이 되었다.

‘분단헌법+신자유주의’의 2중고 속에서 남한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사는 평화국가는 한갓 유토피아가 되었다. 북한 역시 ‘분단헌법+경제난’의 2중고 속에서 북한 인민 모두가 골고루 잘사는 평화국가를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므로 남북한이 평화헌법에 의한 경제성장을 도모함으로써 평화국가로 거듭나려면 각기 분단헌법을 철폐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와 같은 결단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분단헌법을 넘어 평화헌법으로 나아가는 길을 다음 장에서 모색한다.

Ⅱ. 분단헌법을 넘어 평화헌법으로

  1. 남북한 분단헌법의 상극

남한 헌법 제3조의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영토조항과, 북한 당 규약의 ‘전국적 범위에서(남한 포함) 민족해방과 인민 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한다.’는 규정이 상호 모순을 일으킨다. 이렇게 남북한은 각기 상대방의 체제를 부정하는 상호 적대적인 헌법질서 아래에 있으며, 일방이 타방의 헌법질서를 흡수하는 통일을 전제하고 있다.

남한의 헌법 안에서도 모순 관계가 드러나는데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은 제4조의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한다”, 헌법 전문의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와 모순관계이다. 평화적인 통일을 하겠다면서(제4조),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위한 영토조항(제3조)을 두는 것은 상호 모순이다.

이 밖에 남한 헌법의 제1조 2항(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6조(헌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와 북한 헌법의 제1조(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전체 조선 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이다)․제9조(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제11조(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조선 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는 상극관계이다.

  2. 분단헌법을 통일헌법으로 전환하자는 논의

이와 같은 상극관계를 드러내는 분단헌법을 지양하는 통일헌법 논의가 많이 이루어졌다. 장명봉은 남한 헌법의 제3조 영토조항의 개선과 제4조 통일조항의 새로운 해석, 북한 쪽 당 규약의 대남 관련 규정의 개선을 제안한다.(장명봉, 2000, 92-98)

이경주는 ‘남북한 당국 간의 통일논의를 비판적으로 견제하여 남의 민중과 북의 인민이 통일의 최대 수혜자가 되도록 견인하는 비판적-내재적 접근방법’을 권유한다. 그는 통일의 수혜자가 통일한국의 다수의 민중이 되기 위해서 통일헌법 논의가 정치적 통합 쪽보다 사회경제적 통합에 더욱 큰 무게를 두어야 한다며, 통일된 사회의 역사적 과제로서 인권의 확립 문제를 제기한다.(이경주, 1999, 226-230)

국순옥은 통일국가 헌법이 지행해야 할 규범으로 “남(남한)의 신식민지 종속국가 독점자본주의 체제나 북(북한)의 가부장적 관료독점 국가사회주의 체제는 선택의 대안이 될 수 없다.”라고 지적하면서, “제3의 길, 즉 보다 자유롭고 보다 평등한 인간개체의 결합에 의하여 자주적으로 조직된 협동사회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국순옥, 1993, 57)

Ⅲ. 결론: 기존의 통일헌법 논의에 평화의 가치를 넣는 평화헌법 만들기

위와 같은 통일헌법 논의의 풍부함․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방향이 주로 남북한 체제의 통합에 중점을 두는 한계가 발생한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평화의 가치를 넣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남북한이 각기 평화국가를 지향하는 평화헌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뒤 두쪽의 노력을 합성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남북한의 단순한 정치적 통합이 아니라, 남북한이 평화국가 연합을 이루는 평화헌법을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러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일본의 평화헌법과 코스타리카의 평화헌법을 준거 틀로 삼아 ‘한반도형 평화헌법’을 상정하면 좋겠다. 일본․코스타리카 평화헌법의 정신은 받아들이지만,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는 조항(일본헌법 제9조)과 ‘항구적인 제도로서의 군대를 금지한다.’는 조항(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은, 남북한의 군사적 대립 때문에 수용하기 어렵다.

한편 일본․코스타리카의 평화적 생존권에 관한 조항을 폭넓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일본․코스타리카 평화헌법의 비전(非戰, No More War)의지를 평화헌법에 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침략전쟁 부인, ‘합리적 방어의 충분성’ 원리(고르바초프 정권이 취했던 안보원칙)에 입각한 전수(專守)방위, 군비축소, 군에 대한 문민통제, 비무력적 방법에 의한 국제공헌, 무기수출 금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사전 예방, 비핵화․비핵지대화, 중립화(영세중립․무장 중립․비무장 중립), 영토․주권 존중, 상호 불가침, 내정 불간섭, 호혜평등,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보장 등이 평화헌법의 주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평화헌법은 평화통일의 진행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즉 국가연합 단계의 평화헌법 내용과 연방제 단계의 평화헌법의 내용은 다를 것이다. 국가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혼효된 6․15 공동선언의 제2항을 중심에 놓는 평화헌법이 현 단계에서는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6․15 공동선언의 완성태가 평화헌법으로 외화되는 게 좋다.

한반도형 평화헌법의 중점은, 분단으로 왜곡된 국가권력의 성격을 평화 지향적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분단체제가 낳은 강권(强權, Gewalt)․구조적 폭력 등의 ‘분단 Gewalt’를 지양하는 평화헌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남북한 사회의 인간적․내발적 발전을 보장하는 경제통합이 평화헌법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 경제통합에 있어서 시장, 시장 경제, 시장-국가권력-시민(인민)사회의 관계를 평화적으로 정립하는 게 관건이다. 또한 남북한의 평화공존․남북 공동체를 위한 평화헌법이 되어야 한다.
-------
[참고 자료]

1. 활자 매체

* 국순옥 「남북통합과 국가형태․국가체제 문제」 {公法 硏究} (한국 공법학회 발행) 제21집 (1993)
* 이경주 「통일헌법의 기본방향」 {민주법학} (민주주의 법학 연구회 발행) 제16호 (1999)
* 장명봉 「남북한 헌법질서와 한반도 통일논의」 {사회과학 연구} (동국대 사회과학 연구원 발행) 제8호 (2000)
* 주종환 {한국 현실경제와 이론} (서울, 일빛, 1994)
* 中山伊知郞 「日本経の動向と物価」 {士報} 701호 (1971년 1월)

2. 인터넷 매체

* 김승국 「코스타리카의 중립화」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88호(2005. 6. 21.)
-------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305호에 실린 필자의 글「잘사는 평화(7)」(2008.1.6)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