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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평화국가-평화헌법

평화를 위한 헌법 개정

김승국

헌법상에 적극적으로 평화유지에 관한 조항을 두기 시작한 것은 제2차 대전 후의 일이다. 평화조항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일면(一面)에서는 평화정신의 선언이며 타면(他面)에 있어서는 전쟁의 금지규정이다. 평화정신의 선언은 서구적 민주주의 국가헌법에서는 대부분 전문(前文)의 형식으로 규정되고 있다. 1948년의 한국 헌법이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 평화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여’라고 하고, 프랑스 제4공화국 헌법이 ‘프랑스 공화국은 정복을 목적으로 하여 전쟁을 하지 않으며 또 어떠한 국민의 자유에 대하여서도 그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일본 헌법이 ‘일본 국민은 항구적인 평화를 염원하며 인간상호의 관계를 지배하는 숭고한 이상을 깊이 자각하는 것이며, 평화를 사랑하는 제 국민(諸國民)의 공정(公正)과 신의에 신뢰하여 우리들의 안전과 생존을 보지(保持)하려고 결의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적극적인 평화정신의 선언이라고 하겠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國權)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혁(威嚇) 또는 무력의 행(行)하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이를 방기(放棄)한다. 전항(前項)의 목적을 달성하여 육해공군(陸海空軍) 기타의 전력(戰力)은 이를 보지(保持)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交戰權)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여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무력의 행사와 무력에 의한 위혁을 모두 방기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일본 헌법의 규정은 전쟁과 기타의 무력행사의 방기를 어느 헌법에서보다도 철저히 규정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전쟁의 수단인 군비(軍備)를 완전히 폐지한 헌법으로서 유일한 것이라고 하겠다<김철수 「국제 평화주의 (하)」 {法政} 1976년 3월호, 12~15쪽 요약>.

필자는 일본 헌법 제9조의 정신을 따르는 평화헌법(주1)으로 남북한이 개헌하지 않으면, 진정한 평화국가 연합(평화 로드맵의 제2단계)-연방제 통일을 완수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남북한 교류 ・평화공존 단계(평화 로드맵의 제1단계)에, 남북한 각기 분단헌법을 폐기해야 하지만 지난(至難)한 과제이다.

1. 분단헌법의 지양(‘헌법 개정’의 제1단계)

  1) 국가보안법 폐기 운동

국가보안법 폐기운동은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으므로 이에 대한 특별한 설명은 생략한다.

  2) 국가보안법 폐기 / 분단헌법 개정

현행 헌법이 비록 분단헌법이지만 前文에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을 선언하고 있고 제4조에서 조국통일의 의지를 밝힘과 동시에 평화적 통일이 국가적 과제임을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위의 헌법 조항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통일 문제를 미국과 협의한다’는 내용(주2)과 배치되는 것이다. 위헌적인 요소를 담은 한미 상호방위조약 합의 의사록 제1항의 내용을 삭제하는 일이 분단헌법 개정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남한의 현행 헌법은 평화주의에 대해 국제적인 차원에서 규정하는 것 외에 남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전제로 하여 평화통일에 관한 중요한 규정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 헌법의 국제평화주의에 관한 헌법학자들의 해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체로 침략전쟁의 부인, 국제법 존중주의, 외국인의 법적 지위 보장에, 평화적 통일의 지향이라는 네번째 요소를 포함시킨다<서경석 「헌법상 평화주의와 그 실천적 의미」 {민주법학} 제25호(2004) 55쪽>.

그런데 헌법학계에서 다루어지는 평화개념이 지나치게 협소하다. 이는 헌법의 기본원리의 하나로 다루어지는 평화주의(혹은 평화국가 원리)의 내용이 매우 부실한 데서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헌법규정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결과로 인해 평화국가 원리의 내용이 주로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요소로만 분석되고 있다. 외국헌법에 들어있는 중요한 성과들을 해석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다. 즉, 평화파괴 행위의 처벌, 평화주의자의 보호,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군비의 방기 ・제한, 국제기관에의 주권 이양 등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해석론적 노력조차도 포기하는 실정이다<서경석 「헌법상 평화주의와 그 실천적 의미」 {민주법학} 제25호(2004) 58~59쪽>.

그러므로 분단헌법(남한의 현행 헌법)의 협소한 평화개념을 벗어나기 위해 당분간 ‘해석론을 통하여 확장된 평화개념’을 적용하고, 그 성과를 모아 분단헌법의 개정으로 나아가는 게 바람직하다.

  3) 분단헌법 폐기

평화통일 원칙과 관련하여서[필자 주: 남한의 현행 헌법]의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이해하는 방식이 특히 중요하다. 전투적 민주주의라는 혐의를 털어내는 헌법 개정 없이 주류의 해석태도를 고수하는 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북한체제의 바탕원리와 대립하게 된다[필자 주: 분단헌법의 상충 때문에 남북한이 평화공존 체제로 진입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헌법규정에 대한 규범조화적 해석은 북한의 붕괴에 이은 흡수통일뿐이다[필자 주: 흡수통일을 인정하는 쪽으로 해석될 여
지가 있는 헌법은 평화통일을 위해 폐기되어야 한다]. 현재는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거의 없다. 그리고 통일에 이르는 평화적 방법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결여되어 있다[필자 주: 통일에 이르는 평화적 방법을 헌법에 도입하기 위하여 현행 분단헌법을 폐기할 필요가 있다]. 7 ・4 남북공동 성명과 남북 기본합의서에 담겨 있는 평화적 통일 방법을 헌법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매우 절실하다<서경석 「헌법상 평화주의와 그 실천적 의미」 {민주법학} 제25호(2004) 59~61쪽>.
이처럼 평화통일에 걸림돌이 될 소지가 있는 현행 분단헌법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4) 남북한, 평화헌법 준비
남북한이 현행 분단헌법을 폐기한 다음에 평화헌법의 제정에 임해야 한다.

2. 평화헌법으로 개헌(‘헌법 개정’의 제2단계)

평화헌법에 기본적으로 들어가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일본 평화헌법 제9조’를 모델로 삼아 설명하는 게 좋을 듯하다. 평화헌법으로 개헌하는 데 필요한 필요조건을 아래에서 예시한다.

  1) 침략전쟁 포기

우리(남한)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 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라고 하고, 제5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하여 침략전쟁을 포기하고 있다. 그러나 ‘침략전쟁의 포기’를 담은 헌법 정신은 허울뿐인 사실이,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라크 침략전쟁을 벌인 미국의 요청에 부응하여 한국군을 이라크에 파병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헌법의 침략전쟁 포기 조항을 사수하는 법률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 헌법 제9조를 사수하려고 애쓰는 일본 국민들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우리도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혁 또는 무력의 행(行)하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이를 방기한다’는 일본 헌법 제9조의 정신을 따르는 쪽으로 개헌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평화국가 연합 단계에서는 상비군이 남아 있으므로 ‘상비군을 영구히 방기한다’는 일본 헌법 제9조를 적용하기는 어렵다. 위의 ‘상비군 폐지’ 조항은, 비무장 연방제를 지향하는 평화 로드맵 제3단계의 후반부에나 넣을 수 있을 것이다.

  2) 평화적 생존권(주3)

남한 헌법의 평화적 생존권에 관한 조항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 헌법 전문(前文)에 ‘… 평화애호의 전통을 자랑하고, …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 항구적인 세계 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라고 국제평화주의를 선언한 것과 제4조 1항에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것과 제5조에 국제법규의 존중 및 제9조 인간의 가치 및 행복추구권,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등의 규정은 모두 국민의 평화적 생존권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가 있다. 이것은 우리도 전 세계의 국민과 다같이 공포에서 면(免)하고 평화 속에 생존할 권리를 확인한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구병삭 「실전대비 주관식 특강」 {월간 고시} 1984년 9월호 199쪽>.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정한다. 평화적 생존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의 한 내용으로서, 각 개인이 무력 충돌과 살상에 휘말리지 않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권리를 말한다. 무력 충돌과 살상으로부터 자유롭지 아니하고는 언제든지 그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빼앗기거나 위협당할 수 있고, 이러한 경우 행복추구권의 다른 내용들을 실현하는 것 역시 기대할 수 없으므로, 평화적 생존권은 행복추구권의 가장 선차적이고 기본적인 내용이다. 평화적 생존권은 각 개인이 가해자가 되지 않음으로써 그 자신의 인간성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평화를 상실하지 않을
권리까지 포함한다. 평화적 생존권은 개인이 인간성 유지와 행복추구를 위한 전제로서 주권국가와 국제사회에 의하여 필수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침략전쟁에 참여하여 이라크 국민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데 가담하면, 우리 국민들은 그 의사에 무관하게 불법적 침공국가의 국민이 되고, 전쟁으로 인한 기아와 질병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정작 교전에 가담하지 않는 어린이와 노약자, 여성들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납부한 세금으로 대한민국이 이라크 국민들의 생존과 신체의 안전을 위협할 때,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고 타인과 공존하는 데서 자신의 인간다움을 확인하려는 우리 국민의 양심과 인
간성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그 평화적 생존권은 불가능하게 된다<이정희 「이라크전 파병은 위헌」 {인터넷 참여연대}(2003.10.23)>.

이처럼 헌법상 보장된 평화적 생존권이 이라크 파병 등으로 무참하게 유린되는 현실을 타개하는 뜻에서 평화적 생존권을 굳게 지키는 평화헌법에로의 개헌이 요망된다.

  3) 평화파괴 행위의 처벌

서독 기본법 제26조는 독일민족의 평화의욕과 평화보장 사상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평화파괴 행위의 처벌까지도 규정하고 있다. 이 제26조 2항의 보호법익(保護法益)은 ‘민족 간의 평화적인 공존’이다. 그리고 범인은 국가기관뿐만 아니라 내외국인(內外國人)을 포함한 개인도 또한 될 수 있으며, 구체적인 포태범(包胎犯, Gefahrdungsdelikt)이라고 하겠다. 동독 헌법 제6조 2항은 ‘신앙 ・인종 및 민족에 대한 증오의 표명, 군국주의적 선전과 전쟁의 선동 및 권리의 평등에 반(反)하여 행하여진 다른 모든 행위는 형법전(刑法典)의 의미에 있어서의 범죄이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전기(前記) 서독
기본법 제26조의 침략전쟁을 준비하는 행동의 범위를 보다 넓혀서 전쟁의 선동 또는 군국주의적 선전까지도 이를 처벌할 수 있는 행위로 한 것으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 국제법상의 평화파괴 행위 처벌법으로서는 베르사유(Versailles) 조약 제27조, 극동국제 군사재판소 조례 및 뉴른베르그 국제 군사재판소 조례 등이 있었고, 또 1954년 국제법 위원회가 채택한 ‘인권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범죄의 규약안’이 있다. 이 규약안은 전문(全文) 4조로 되어 있으며, ‘본 규약 중에 규정된 인류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범죄는 국제법상의 범죄이며, 이들 범죄에 관하여 책임을 지는 개인은 처벌된다’고 하고, 제2조에서 범죄의 구성요건을 나열하고 있다<김철수 「국제 평화주의 (상)」 {法政} 1976년 2월호, 16~17쪽>.

  4) 평화교란 행위의 처벌

헌법에 따라서는 평화교란 행위를 위헌이라 하여 자국민에 대하여 이를 명문(明文)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도 없지 아니하다. 이를테면 서독의 헷센 주(州) 헌법 제69조 제2항은 ‘전쟁을 준비할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위는 위헌이다’라고 하고 있고, 서독 기본법 제26조 제1항도 ‘국가 간의 평화적 공존을 교란하기에 적합한 행위 또는 평화적 공존을 교란할 의도로 행해진 행동과 특히 침략전쟁 수행의 준비는 위헌이다. 이런 행위는 처벌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형법에서는 ‘만일에 침략전쟁을 준비하게 하거나 이로써 전쟁의 위험을 발생케 한 때에는 종신 또는 10년 이상의 형벌에 처한다’(형법 제80조)라고 하고 있다. 동독 헌법도 그와 비슷한 것을 규정하고 있다<권영성 ・민경식 「평화주의의 헌법적 보장」 {아카데미 논총} 제8집(1980년) 11~12쪽>.

  5) 평화주의자의 보호

평화파괴 행위자의 처벌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평화주의자의 보호라고 하겠다. 중공헌법에 있어서는 ‘정의의 사업을 옹호하고, 평화운동에 참가하거나 또는 과학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박해를 받은 여하한 외국인에 대해서도 거류(居留)의 권리를 부여한다’(제99조)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평화운동 때문에 국외 추방된 자에게 거주권을 부여하는 것도 평화주의자의 보호라고 하겠다<김철수 「국제 평화주의 (상)」, 위의 책, 17쪽>.

  6) 양심적 병역거부권

평화주의자의 보호보다도 더 실효성이 있는 것은 양심적 반전주의자에 대한 보장이라고 하겠다. 서독 기본법 제4조 3항은 ‘아무도 자기 양심에 반(反)하여 무기로써 하는 군무(軍務)에 강제되지 않는다. 상세한 것은 법률로 정한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집총 군무 거부권을 규정한 것으로서, 이는 미국에서 입법상 인정되고 있는 양심적 반전주의자(Conscientious Objector)에 대한 보호보다도 강고하다고 할 것이다<김철수 「국제 평화주의 (상)」, 같은 책, 17쪽>.

헌법에 따라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하는 것이 없지 않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하는 것은 시민의 수준에서 평화주의를 관철하려는 법적 제도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적지 않은 국가들이 헌법 또는 법률로써 ‘누구든지 그 종교적 또는 양심적 신조에 반할 때에는 군복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거부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권 내지 양심적 반전권(反戰權)이다<권영성 ・민경식 「평화주의의 헌법적 보장」, 위의 책, 12쪽>.

  7) 평화에 대한 권리

평화에 대한 권리(right to peace)의 구체적인 표현으로는 국제법상의 평화권, 서유럽의 양심적 병역거부권, 일본에서의 평화적 생존권을 들 수 있다. 평화에 대한 권리의 국제법적 전개는, 2차 대전 후 학설과 선언 등 일련의 노력 이후, 1978년 유엔총회 결의 ‘평화적 생존을 위한 사회의 준비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the Preparation of Societies for Life in Peace)’으로 이어졌다. ‘모든 국민과 모든 인간은 평화 속에서 생존하는 고유의 권리를 가진다’는 선언은 1984년에도 재차 반복되었다. 1998년 광주 아시아 인권선언에서도 평화롭게 살 권리(right to live in peace)를 선언하고 있다. 전쟁과 내전, 군사화된 국가와 시민사회가 가하는 위협과 공포, 무질서와 국가폭력, 사회적 약자의 안전을 위시한 사회의 안전, 억압과 착취, 환경상의 안전, 파시즘과 식민주의 그리고 신식민주의, 인권탄압의 빌미로 작용하는 외자유치, 국가의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 등을 그 안에 담고 있다<서경석 「헌법상 평화주의와 그 실천적 의미」, 위의 책, 67~68쪽>.

  8)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각국 헌법은 또 평화보장을 위하여 국제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국가에 과(課)하는 의무로서 규정하고 있다(예: 네덜란드 헌법 59조, 포르투갈 헌법 91조, 1931년의 스페인 헌법 77조). 서독 기본법 제24조 3항은 ‘국제분쟁을 규제하기 위하여 연방은 일반적 ・포괄적 ・의무적인 중재재판에 관한 협정에 가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국제분쟁에는 법적 분쟁뿐만 아니라 정치적 분쟁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볼 것이며, 국제분쟁의 평화적 처리를 규정한 것으로 가치가 크다고 할 것이다. 인도 헌법 제51조에서도 ‘국가는 다음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국제평화와 안전의 추진 / 제 국민(諸國民)과 정당하고도 명예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일 / 국제 간의 처리에 국제법과 조약의무 존중의 염(念)을 함양하는 것 / 국제 간 분쟁의 중재에 의한 해결을 추장(抽獎)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관한 조약으로서는 국제분쟁 평화적 처리조약(1970년 10월 18일 헤이그), 국제분쟁 평화적 처리에 관한 일반 의정서(1928년 9월 26일 주네브), 국제사법재판소 규정(1945년 6월 26일 샌프란시스코) 등이 있다. 국제법상의 분쟁처리 방법으로서는 직접 교섭(negotiation), 주선(good offices), 거중조정居中調停(mediation, 중개라고도 한다), 국제심사(inquiry), 국제조정(international conciliation), 국제연합에 의한 분쟁처리와 국제재판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인정되고 있다<김철수 「국제 평화주의 (상)」, 같은 책, 17~18쪽>.

  9) 군비(軍費)의 포기(방기) ・제한

전쟁의 수단으로서의 군비에 관해서는 이를 제한 또는 방기(放棄)하는 것이 평화보장을 위한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프랑스 제4공화국 헌법에서는 그 전문(前文)에서 ‘상호조건을 유보하여 프랑스 국(國)은 평화의 조직과 방어에 필요한 군비의 제한에 동의한다고 규정하여, 단순한 전쟁방기(戰爭放棄)의 선언에서 국제평화기구에 의한 적극적인 평화의 유지에의 협력을 위하여 일보 전진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헌법 제9조에서는 ‘전쟁을 방기함과 함께 육해공군 기타의 전력을 보지하지 않는다’고 하여 군비를 완전히 폐지하고 있다. 서독 기본법 제26조 2항은 ‘전쟁수행을 위한 무기를 제조하고 운반하고 또 거래하는 것은 연방정부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그 상세한 것은 연방법률로 정한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제26조 1항의 평화교란 행위의 일종으로서의 무기의 제조 ・운반과 거래를 금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 군비의 정부에 의한 통제를 규정한 것이라고 하겠다. 스위스 헌법이 ‘연방은 상비군(stehende Truppe)을 둘 수 없다’(13조)고 규정하여 군비에 제한을 하고 있는 것도 이에 속한다고 하겠다. 국제법상으로 볼 때에도 군비축소와 핵무기 금지의 요청이 많으며, 그를 위한 국제회의가 빈번히 개최되고 있다<김철수 「국제 평화주의 (상)」, 같은 책, 18~19쪽>.

  10) 국제법규의 존중

국제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 국가(諸國家)가 국제법을 준수할 것이 요청된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헌법들은 국제법규의 준수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국제법규가 국내법규에 우월한다는 규정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국제법의 국내법에 대한 우월을 규정한 헌법으로서는 서독 기본법 제25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국제법규는 연방법의 구성부분이다. 그것은 법률에 우선하고 연방영토의 주민에 대하여 직접으로 권리의무를 발생시킨다’고 하고 있다. 네덜란드 헌법 제60조는 ‘(c) 국제법 질서의 발전이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조약에 의하여 헌법의 규정에서 떠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이 조약에 대한 동의는 국회 각원(各院)의 3분의 2 이상의 의결을 요(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김철수 「국제 평화주의 (상)」, 같은 책, 20쪽>.

  11) 영세중립

지금까지 영세중립을 지키고 있는 스위스의 경우는 1815년 비인 회의의 결과 이루어졌으며,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영국, 프랑스, 러시아, 포르투갈 등이 스위스의 영세중립을 승인하고 보장함으로써 유지되고 있다. 이에 비하여 1831년의 런던 조약에 의해서 이루어진 벨기에라든가 1867년 런던 조약에 의해서 이루어진 룩셈부르크의 영세중립은 제1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침입으로 깨지고 말았다. 제2차 대전 이후인 1955년 오스트리아의 영세중립도 국제적 선언과 자국의 선언이 있지만 국제적 보장이 불확실한 상태에 있다<권영성 ・민경식 「평화주의의 헌법적 보장」, 같은 책, 11~12쪽>.
(200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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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국가 간 평화노력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할 국내적 평화노력으로서 모든 국가의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헌법의 제정 노력은 동아시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일대 비약을 가져올 것임에 틀림없다. 그를 위한 준비로서 우리는 칸트가 말하는 영구평화를 위한 6개의 ‘예비조항(preliminary article)’ 과 3개의 ‘확정조항(definitive article)’들을 21세기 평화헌법에 필요한 평화권의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평화헌법 정신의 국내화의 한 계기로 만약 모든 국가들이 평화의 국내적 출발조건으로서, 그리고 국제적 연대의 조건으로서 평화조항을 자국 헌법에 삽입할 경우 우리가 꿈꾸는 자유와 평화의 결합, 즉 내적 공화주의의 확산을 통해 세계의 영구평화(perpetual peace)를 꿈꾸었던 칸트의 혜안이 우리 눈앞에 실제로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 점에서 일본 평화헌법의 고수 및 세계화는 아주 유용한 평화구축 경로일 수 있을 것이다<박명림 「남북평화협정과 한반도 평화」 {민주법학} 제25호(2004) 287쪽>.

(주2) 한미 상호방위조약 합의 의사록 제1항은 “한국은 UN을 통한 가능한 노력을 포함하는 국토통일을 위한 노력에 있어서 미국과 협조한다.”고 되어 있다. 이 조항은 ‘한반도 통일은 한미 간의 협의 사항’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동의가 없으면 한반도의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제아무리 남북한이 평화통일을 합의하더라도(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주도하는) 미국의 국익 ・안보이익에 어긋나면 통일을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주3) 종래의 평화주의는 집권자가 정한 객관적 제도의 보장으로 이루어져 개인이나 국민이 모두 평화롭게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기에 국민의 평화적 생존은 국가의 평화정책의 반사적(反射的)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인권이 있다는 인식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평화와 인권이 불가분의 관계로 파악됨에 따라 평화롭게 생활할 국민의 권리
보장이 선행되지 않고는 다른 인권도 보장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인권으로서의 평화적 생존권이란 평화 속에 생존할 권리를 말한다. 평화 속에 생존할 권리라 할 때에는 생존 그 자체의 문제보다는 생존을 위한 일정한 환경상태 즉 평화상태의 유지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이렇게 볼 때 평화적 생존권이란 평화가 유지되는 환경 속에 살면서 그 평화상태를 향수할 수 있는 권리라 할 수 있다<이명구 「헌법상 평화주의 조항에 관한 연구」 1989년 석사학위 논문 70쪽>.
이와 같이 평화적 생존권에 대하여 평화를 향수할 권리라는 점에서는 이의(異議)가 없으나 평화유지의 방법에 관해서는 견해가 갈라져 있다. 즉 평화적 수단에 의해서만 평화상태를 유지하고 향수할 권리가 있다고 하는 경우와 자위권의 발동을 요구하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평화적 생존권의 양론이 있다<구병삭 「실전대비 주관식 특강」 {월간 고시}1984년 9월호 201쪽>.
한편 평화적 생존권의 개념과 관련하여 그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대체로 세 가지 설(說)로 나뉜다. 첫째 설은 평화적 생존권은 국내 외국인을 포함한 국민 개개인의 인권이라고 한다. 둘째 설은 평화적 생존권은 국내 외국인을 포함한 국민 개개인의 인권이라고 한다. 셋째 설은 평화적 생존권을 민족적 기본권으로 보아 국제적 ・국내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 권리의 바탕 위에 민족적인 것을 둠으로써 재판의 경우에 개인의 권리침략을 주장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마지막 설은 위 두 설을 병합한 것으로, 그 주체는 민족 혹은 국민 전체로서 국가의 대외적 기본권인 동시에 국민 개개인의 인권이기도 하다고 본다<이명구 「헌법상 평화주의 조항에 관한 연구」 1989년 석사학위 논문 7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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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79~93쪽을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