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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평화 만들기의 대안

우리 민족의 생명선을 바꿔야 평화가 깃든다

김승국

일본-남북한-러시아 ・중국-시베리아를 잇는 ‘철(鐵)의 실크로드’는 경제-안보 연계 프로젝트의 핵심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프로젝트를 한반도의 평화정착으로 연결시킬 묘안은 없을까?

‘동아시아의 부흥’을 꾀할 ‘철의 실크로드’는 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올 새로운 자원 수송로가 되어야 하며 아시아의 자원을 평화롭게 공동 관리할 수 있는 길이어야 한다. 유럽의 경우 공동안보 틀(헬싱키 체제, CSCE 체제)은 자원의 공동관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앙숙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통한 유럽 통합의 길을 튼 것은 1952년에 출범한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ECSC)이다.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른 프랑스와 독일이 중심이 된 6개국 유럽 경제부흥의 생명선인 석탄과 철강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관리하자는 발상에 따라 ECSC가 출범했다. 이러한 발상은 오늘날 유럽공동체(유럽 평화 공동체)의 출발점이 되었다.

현재 유럽은 자원 ・경제 공동체를 대변하는 유로 달러를 강화하는 가운데, 공동안보를 책임질 유럽 공동군(軍) 창설을 본격화하고 있다. 경제통합과 협력안보의 총화를 통한 유럽 평화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원 공동체가 평화 공동체의 하부구조가 된 유럽의 성공 사례를 아시아에 적용하기 위한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아시아의 전쟁 지향적인 자원 수송로를 평화 지향적인 자원 수송로로 전환시켜야 한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자원 수송로는 중동원유 수송로<중동 →아라비아 해 →인도양 →말라카 해협 →남중국해(South China Sea) →동중국해(East China Sea) →일본 ・한국으로 이어지는 해상 교통로(Sea Lane)>이다. 그런데 이 해상 교통로를 미국의 군사력이 지켜주고 있는 게 문제이다. 최근 일본도 유사법제 등을 통해 이 해상 교통로를 독자적으로 지킬 뜻을 비치고 있어서 우려를 더한다. 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군 10만 명의 제1의 임무가 이 해상 교통로를 중국 등으로부터 지키는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또 하나의 문제는, 중국이 미 ・일의 해상 교통로 강화 움직임에 맞서는 해양전략을 가다듬고 있는 데 있다. 중국은 2001년 1월 新 해양전략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중국의 방어선을 G라인에서 B라인(Blue Line: 쿠릴 열도-마리아나 군도-파푸아 뉴기니)으로 확장한다는 내용이다. 랜드 연구소의 보고서 등 미국의 새 안보전략 관련 문서들은, 중국의 이러한 해상 교통로 확장에 대한 대응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B라인은 미 ・일 군사동맹의 해상 교통로와 중첩되므로 첨예한 갈등을
예고한다. B라인 등 아시아의 해상 교통로를 차지하기 위한 ‘미 ・일 동맹-중국 사이의 예고된 갈등’이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미-일 동맹군의 중국 ・북한 포위망을 거두어 내고, 그 대안으로 아시아의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하나의 동아리로 엮는 ‘평화 지향적인 새로운 자원 수송로’를 만들지 않으면 한반도의 통일은 물론 아시아의 평화도 요원하다. 한반도의 통일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해양세력(미국 ・일본)과 대륙세력(중국 ・러시아)을 잇는 ‘평화의 실크로드’를 통한 평화정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해양국가 영국과 유럽대륙의 2대 강국인 프랑스 ・독일 사이에 끼어 고전하던 베네룩스 3국이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아우르며 유럽의 평화에 기여한 점을 모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둘째, 아시아의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다툼을 화해시킬 공동 안전보장 틀이 긴요하다. 이 틀은 ‘아시아 경제권’을 ‘평화의 힘’으로 엄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세력 내의 안보 관계를 평화 지향적으로 바꿔야 한다. 우선 해양세력의 군사동맹(한-미-일 군사 공동체)을 평화동맹으로 대체하고 대륙세력의 군사적 관계(북-러 우호관계, 북-중 우호관계)에도 평화의 훈풍이 불도록 해야 한다.

한-미-일 군사동맹을 평화동맹으로 대체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아시아 주둔 미군 10만 명 체제이다. 즉 ‘미군 없는 아시아’를 만들지 않고서는 아시아인의 평화를 위한 공동 안전보장 틀, 동북아시아의 비핵 지대화 등을 안전하게 만들어낼 수 없다. 이것이 유럽의 안전보장 틀(CSCE)과 다른 점이다.

앞에서 언급한 ‘아시아 경제권’과 해양세력-대륙세력의 평화공존 구도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한 생명선이다. 분단 이후 지금까지 남한은 해양세력과의 동맹-중동원유 수송로를 생명선으로, 북한은 대륙세력(중국 ・러시아)과의 우호관계를 생명선으로 여기며 지내왔다. 그 결과 남북한의 생명선의 차이가 분단의 강화로 이어졌다. 이제 이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남북한 생명선의 통합을 통한 한반도 평화통일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남북한 생명선 통합의 방편 중 하나가 ‘철의 실크로드’이다.(200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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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235~237쪽을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