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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평화 만들기의 대안

'경제-안보 연계' 발상

김승국

한국(남한) 경제의 숨통을 쥐고 있는 해상 교통로(Sea Lane)<주1>는 중동의 원유 수송로이다. 해상 교통로는 평시에 교역의 통로이지만 전시에는 전략적인 생명선(Strategic Line of Communications)이 되므로, 경제-안보의 측면에서 고찰해야 할 것이다.

해상 교통로를 지키는 미군의 임무(주2) 중에서 중동의 원유 수송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점에 비추어, 경제-안보적인 고찰이 더욱 중요해진다.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의 혈맥인 중동 원유 수송로를 장악하기 위해 혈전을 불사(不辭)하고 있다. 아프간 전쟁에 이은 이라크 전쟁은, 미국 자본주의-제국 ‘미국’의 생명선(life line)인 해상 교통로를 중동 지역에서 확장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다. 제국 ‘미국’은, 전쟁을 통한 ‘해상 교통로 사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게 팍스 아메리카(Pax Americana, 미국의 힘에 의한 세계 평정)의 진면목이다.

그런데 중동의 원유 수송로는 제국 ‘미국’만의 생명선이 아니다. 남한 ・일본 ・대만 등 동북아 주요 국가의 자본주의의 생명선이기도하다.(주3)  특히 일본 자본주의와 한국(남한) 자본주의의 생명선인 중동원유 수송로를 사실상 미군이 지키고 있다는 점(주4)이, 두 나라의 대미종속을 불가피하게 만든다.(주5)

한 ・일 양국 자본주의의 명줄인 중동 원유 수송로를 미국이 지켜주고 있는바, 이 생명줄은 놓아버리면 양국의 자본주의는 존립의 위협을 받는다. 양국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해 이 생명줄에 매달려 있는 한, 친미 세력에 의한 정치가 불가피하다.

만약 미국에 비판적인 정치세력이 집권하여 미국에 반기를 드는 대외정책을 펼칠 경우, 미국 측에서 ‘중동의 원유 수송로를 끊어버리겠다’고 선언하면 양국의 정치체제 ・자본주의 체제는 단말마의 질곡에 빠질 것이다. 중동의 원유 수송로라는 양국 자본주의의 젖줄을 끊겠다고 미국이 선언한 순간, 미국에 등을 돌린 정권은 사망선고를 받을 것이다.

남한의 민주노동당이 집권하거나 일본의 공산당이 집권해도, 친미정권의 굴레인 ‘중동의 원유 수송로’ 우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석유 자원이 전무한 한국 자본주의의 생명선인 ‘중동 원유 수송로’를 미국이 꽉 쥐고 있는 한, 한국은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렇게 ‘대미종속’의 그늘을 드리우는 해상 수송로(중동 원유 수송로)에만 매달리면,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아주 늦어지거나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평화통일의 대계(大計)를 수립하는 데 있어서 평화통일 지향적인 자원 수송로를 찾는 게 지상과제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중동의 원유 수송로라는 해상 수송로의 대안으로, 유라시안 대륙을 잇는 대륙 교통로(Land Lane)를 제안한다. 해상 수송로(중동 원유 수송로)의 또 다른 선택지(option)로서, 유라시안 대륙을 잇는 Eurasian Land Bridge를 ‘경제-안보 연계 카드’로 고려하는 게 한반도 평화 로드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2004.11.3)

*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231~235쪽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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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해상 교통로라는 용어는 영어로 Sea Lines of Communications로 표기되고 간단히 SLOC로 표기된다. SLOC는 정확히 정의하자면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군사적 차원의 의미에서 SLOC는 Sea lines of Communications의 약자로 작전부대와 작전기지를 연결하여 그 노선을 따라 보급품과 증원군이 이동하는 해상의 통로라는 개념으로서 병참선 ・군수선(軍需線)을 뜻한다. 이러한 배경을 포함한 SLOC라는 용어를 비군사적(非軍事的) 논거를 위해 사용하다 보니 Sea Lines of Communications로 풀어쓰게 된 것이다. 이는 곧 해상에서 인원과 물자를 수송하는 데 필요한 수로(水路)계통과 시설을 의미한다. 따라서 해상 교통로(SLOC)라는 보편적인 말에는 상업적인 목적과 군사적인 목적의 해상 교통로가 포괄되어 있다. 해상 교통로는 전시의 중요성이 보다 근본적인 고려사항이지만 평시의 경제적 중요성에 의하여 더욱 주목받게 된다. 어떤 선진공업 국가도 그리고 어떤 발전도상 국가도 해상으로 공급되는 물자 없이는 계속 발전하거나 살아남을 수 없다. 특히 기본적인 자원문제에 있어서 국가 간 상호의존은 매우 깊어서 그런 자원의 확보 자체가 경제안보라는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이다.<김종두 「戰後 일본의 국방정책 수립변천에 관한 연구」(한양대 박사학위 논문, 1992) 9쪽>

(주2) 미국 국가안전 보장법(The National Security Act)에서 규정하는 미 해군의 주요 임무는 해상 교통로를 지키는 것이다. 미국은 해상 교통로의 안전을 중요한 국가이익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해상 교통로 방어 임무는 미 해군의 부차적인 임무가 아니라 1차적인 임무인 것이다.

(주3) 일본 ・한국 ・대만의 경우, 주요 에너지 공급처와 공업생산품 시장으로서의 해로(海路)를 차단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그들 생존의 중요한 문제가 된다. 세 국가 모두 산업활동과 에너지 소비적인 생활양식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 자원을 석유수입에 의존하며, 수출지향적 경제체제는 판매시장 및 원자재 공급지와의 연결이 끊어지면 지속될 수 없다. 일본은
단지 몇 달 동안만이라도 외부와 차단된다면 생동하는 국가로서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의 해상운송 의존도도 일본과 다른 것이 없다. 한국경제는 해로가 봉쇄되면 붕괴될 운명이다. 대만의 해상운송 의존도도 한국과 거의 같고, 따라서 해로는 대만에 있어서도 생명선이다.<김달중 편 {한국과 해로 안보}(서울, 법문사, 1988) 682쪽>

(주4) 중동 원유 수송로는 대양(大洋) 해상 교통로에 해당된다. 대양 해상 교통로는 대양 작전 능력을 보유한 국가들이 수행하는 범세계적인 대양해상 교통로 보호개념이다. 지정된 해군 기동부대들은 평소 국제적 분쟁 억제와 해양 통제임무를 수행한다. 활동범위는 범세계적이며 상황에 따라서 대양과 대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국가는 유일하게 미국뿐이다.<김응진 「다자간 안보체제 구축에 따른 해상 교통로 보호 방안」 {國防大 정책과정 우수 논문집} 제7집(2001.12) 176쪽>
그렇지만 미군이 해상 교통로(중동 원유 수송로)를 전담하여 지키는 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말레이시아의 부수상 겸 국방부장관 나지브는 2004년 6월 6일 아시아 안전보장회의(영국국제전략 연구소 주최)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미국이 제창한 아시아 태평양의 지역해양 안전구상(RMSI)’과 관련하여 “실제의 선박에 대한 저지행동은 연안 제
국이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미국이 테러 대책을 명목 삼아 말라카 해협 주변에서 작전행동을 하는 데 대하여 강한 난색을 표명한 것이다.
한편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이 원유의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해외 원유 도입량의 60%를 중동에서 20%를 아프리카에서 들여오고 있다. 이들 원유는 모두 인도양~말라카 해협~싱가포르 해협~남중국해(South China Sea)~동중국해(East China Sea)를 거쳐야 한다. 이 해상 수송로는 수로가 혼잡하며, 폭이 좁은 해역의 경우 수심이 매우 낮다. 중국의 관심사는 이런 해협에서의 안전하고 자유로운 항해에 있지만, 중국의 기대와 달리 미군이 반테러전쟁의 명분으로 말라카 해협 등에서 군사작전을 펼치는 등 중국에 불안감을 주고 있다. 물론 이 해상 수송로는 한국 ・일본의 중요한 자원 수송로이기도 하다.
중국 ・일본 ・한국이 크게 의존하는 이 해상 수송로의 길목에 있는 센가쿠 제도(尖閣諸島, Senkaku Islands)를 에워싸고 중국 ・일본이 갈등을 빚고 있으며, 남사군도(南沙群島, Spratley Islands)를 둘러싸고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한국으로 원유를 실어 나르는 해상 수송로의 길목에 있는 센가쿠 제도와 남사군도가 잠재적인 국제분쟁 지역인 점에 유의해야 한다.

(주5)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한-미-일) 해상 군사동맹 체제’의 근간은, 미군이 해상 수송로(중동 원유 수송로)를 지켜주는 데 있다. 따라서 한국 ・일본 자본주의의 생명선인 중동 원유 수송로를 미군이 지켜주는 한, ‘동아시아(한-미-일) 해상 군사동맹 체제’ 안에서 미국 중심의 위계질서는 어쩌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