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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주역으로 푸는 한반도 평화통일-수정판 『周易』으로 푸는 한반도 평화통일‘否괘에서 泰괘로의 평화적 이행’을 중심으로 김승국(평화 만들기 대표/ 「문명전환」 준비위원회 위원장) 『주역』 속의 ‘평화’에 더욱 역동적으로 접근하기 위하여 否(비)괘에서 泰괘로의 ‘점진적인 이행’을 살펴본다. 否괘에서 泰괘로 象이 전변(轉變)하면서 평화적으로 이행(한반도의 경우 평화통일 쪽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기술한다. 이 글의 전체 내용을 보려면 아래의 첨부파일을 열어보세요. 더보기
주역으로 푸는 한반도 평화통일 『周易』으로 푸는 한반도 평화통일 ‘否괘에서 泰괘로의 평화적 이행’을 중심으로 김승국(평화 만들기 대표) 『주역』 속의 ‘평화’에 더욱 역동적으로 접근하기 위하여 ‘否(비)괘에서 泰괘로 의 이행’을 살펴본다. 否괘에서 泰괘로 象이 전변(轉變)하면서 평화적으로 이 행(한반도의 경우 평화통일쪽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기술한다. 아래의 첨부파일을 열면 이 글의 전체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더보기
[신동학-주역] 하도를 풀이함 [신동학-주역] 하도를 풀이함 주역의 하도(河圖)를 칠판에 설명한 것입니다. 아래의 사진을 보시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보기
고양 평화포럼 토론문 첨부파일을 열어 보시면, 김승국이 제62회 고양 평화포럼에서 토론자로서 발표한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더보기
無爲의 자리에 마을 민주 공화국이 들어선다 無爲의 자리에 마을 민주 공화국이 들어선다 아래의 첨부파일을 열어 보세요. 더보기
주역 ‘坤’괘에 나오는 ‘君子’의 함의 주역 ‘坤’괘에 나오는 ‘君子’의 함의 김승국 앞에서 라는 글 속에서 건괘의 군자가 평화의 담지자( Peacemaker)가 될 수 있는지를 탐색했는데, 이번에는 동일한 관점에서 라는 글을 싣는다. 먼저 곤괘에 등장하는 ‘君子’를 아래와 같이 예시한다; ----- 坤:元亨,利牝馬之貞。君子有攸往,先迷後得主,利西南得朋,東北喪朋。安貞,吉。 彖傳: 至哉坤元,萬物資生,乃順承天。坤厚載物,德合无疆。含弘光大,品物咸亨。牝馬地類,行地无疆,柔順利貞。君子攸行,先迷失道,後順得常。西南得朋,乃與類行;東北喪朋,乃終有慶。安貞之吉,應地无疆。 象傳: 地勢坤,君子以厚德載物。 文言: 「直」其正也,「方」其義也。君子敬以直內,義以方外,敬義立而德不孤。「直、方、大、不習无不利」,則不疑其所行也。 文言: 君子「黃」中通理,正位居體,美在其中而暢於四支,發於事業,.. 더보기
역경을 에워싼 노자와 공자의 해석 차이 제가 역경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노자와 공자가 역경의 해석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역경의 해석은 공자의 전유물 처럼 여기는데, 노자와 장자도 역경에 천착했던 것같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역경을 읽은 공자와 노장자(노자와 장자)는 역경의 해석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乾(乾卦) 중심으로 역경(주역은 건괘를 앞장세운다)을 받아들이고 노자는 坤(坤卦) 중심으로 역경(坤卦를 앞장세우는 歸藏易을 중시한 듯)을 받아들여 [道德經]을 저술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메모가 담긴 첨부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정정; 위의 그림 중 '설괘(設卦)전'을 '설괘전(說卦傳)'으로 바로 잡습니다.----------- * 金景芳•呂紹綱 지음, 안유경 역주 『周易全解 (上)』 (서울, 심산출판사, .. 더보기
동양문헌 속의 ‘평화’ (14) - 주역과 ‘평화’ 6 동양문헌 속의 ‘평화’ (14) 주역과 ‘평화’ 6 김승국 정리 * 출처=김석진 지음『대산 주역강의 (3)』(파주, 한길사, 2004) 45쪽 더보기
동양문헌 속의 ‘평화’ (14)-주역과 ‘평화’ 6 동양문헌 속의 ‘평화’ (14) 주역과 ‘평화’ 6-元亨利貞의 ‘利’ * 출처=윤재근『통어 500』(서울, 나들목, 2013) 53쪽 * 출처=王弼•韓康伯 注, 신상후 옮김『周易正義 Ⅰ』(서울, 전통문화연구회, 2014) 108쪽 더보기
동양문헌 속의 ‘평화’ (13) - 주역과 ‘평화’ 5 동양문헌 속의 ‘평화’ (13) 주역과 ‘평화’ 5 김승국 정리 歐美의 思考로는 IT 세상의 요구를 결코 따라갈 수 없고 『周易』과도 通話할 수 없다. 歐美의 사고[Thinking]는 저것[彼]과 이것[是]을 둘로 생각하여 分別하라는 ‘1+1=2의 思考(Thinking)’가 바탕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본래의 思惟란 피시(彼是)를 하나로 생각하여 融和하라는 ‘1+1=∞(무한대)의 思惟’가 바탕을 이룬다. 融和란 피시(彼是)가 하나[一]가 되는 어울림[和]이다. 피시(彼是)의 둘이 서로 생기고[相生]-서로 이루고[相成]-서로 드러나고[象形]-서로 기대고[相傾]-서로 어울리고[相和]-서로 따르는[相隨] 融和의 생각하기[思惟]가 본래부터 우리가 일구어 온 思惟의 道이다. 우리가 일구고 가꾸어 온 思惟..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