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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안보-군사/전쟁론, 전쟁관

제국의 핵무기에 대한 사회주의 국가의 대응

김승국

1. 제국의 핵에 대한 대응

제국(미국)에 대하여 사회주의 국가들과 제3세계 국가들이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사회주의 강대국인 소련・중국은 일찍이 핵무기를 만들어 미국의 핵무기에 대항해왔다. 제3세계를 대표하는 인도, 파키스탄도 핵무기를 통해 미국 중심의 핵무기 체제에 도전하고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이기도 하고 제3세계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2중적인 입지 속에서 제국(미국)에 저항하는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의 대응은, 사회주의 국가의 대응과 제3세계의 대응을 수렴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서 사회주의 국가의 대응에 이어 제3세계의 대응을 설명한다.

  (1) 사회주의 국가의 대응

사회주의 국가들의 대응을 설명하기에 앞서 사회주의권의 전쟁관을 소개한다. 전쟁관과 핵무기 전략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① 전쟁관

마르크스・엥겔스는 평화 지상주의자(Pacifist)가 아니었다.(주1) 그들은 모든 전쟁을 죄악시하여 반대하지 않았다. 미국의 남북전쟁과 같은 역사적 진보를 위한, 낡은 계급의 정치・경제적 지배에 대한 전쟁은 성원했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이러한 견해는, 인류절멸의 가능성을 지닌 핵시대에 안이한 것이다. 마르크스・엥겔스가 살던 시대의 무기 발달 수준이 인
류를 절멸할 정도가 아니었으므로 안이한 전쟁관을 가졌을 수도 있다. 만일 마르크스・엥겔스가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핵세례를 지켜보았다면 전쟁 자체에 대하여 그렇게 안이한 판단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르크스・엥겔스가 핵시대에 태어났다면 핵전쟁을 단연코 반대했을 것이다.

우리들은 21세기의 핵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핵시대 이전에 활동했던 마르크스・엥겔스의 전쟁론을 제한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전쟁론을 어느 정도까지 수용하여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의 핵무기 보유를 이해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 사회주의권의 전쟁론을 일별(一瞥)하는 게 의미 있는 일이다.

역사적 진보를 위한, 낡은 계급의 정치・경제적 지배에 대항하는 전쟁을 ‘정의의 전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사회주의권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정의의 전쟁(Just War)’에 대하여 관대한 입장이 있을 수 있고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부정의한 전쟁(Unjust War)’이라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사회주의권의 전쟁관의 분화와 관련이 있다.

사회주의권의 전쟁관은 ‘전쟁 불가피(不可避)론’과 ‘전쟁 가피(可避)론’으로 양분된다. 전쟁 불가피론은 ‘전쟁터에서 핵무기의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기울 수 있고, 전쟁 가피론은 ‘핵무기가 인류를 절멸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미국 등 서방과의 평화공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전쟁 불가피론에 서느냐 전쟁 가피론에 서느냐에
따라 핵전쟁을 용인하는 폭이 달라진다. 그러면 전쟁 불가피론부터 설명한 다음에 전쟁 가피론을 거론한다.

레닌은 제1차 대전을 소재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전쟁이론을 구성했다. 레닌에 의하면 공산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의 전쟁은 불가피하다. 레닌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병존하는 한, 양자는 평화 속에서 살 수가 없다. 그는 어느 한편이 종국에는 승리할 것이다’는 입장을 가졌다.

스탈린은 레닌의 전쟁 불가피론을 계승했으나, 스탈린의 사망 이후 집권한 후르시초프에 의해 전쟁 가피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후르시초프 역시 집권 초반에는 레닌의 전쟁 불가피론을 유지했으나, 미국과의 ‘쿠바 미사일 사건(쿠바에 소련의 미사일을 설치한 사건을 에워싸고 미・소간에 핵전쟁 위기까지 치달았다)’ 이후 입장을 선회하여 ‘핵무기 시대에서 미・소 전쟁이 아니라 미・소의 평화공존이 필요함’을 부르짖었다. 그는 평화공존이란 사회제도를 달리하는 나라들간의 전쟁이 없는 공존이지만 이것이 결코 투쟁 없는 평온과 우호의 관계가 아님을 단호하게 강조했다. 그가 지향한 것은 자살적인 핵전쟁의 모험을 피하라는 것이다. 후르시초프는 그의 평화공존 정책을 핵시대에 적용함에 있어서 ‘전쟁은 제국주의 시대에 불가피하다’는 레닌의 명제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렇다고 전쟁의 가능성을 부인한 것은 아니지만 가공할 핵전쟁의 위험을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소련 공산당 제20회 대회에서(1956년) 전쟁의 불가피성을 완곡하게 부인하면서 결론적으로 ‘전쟁은 숙명적으로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런데 핵무기 시대에 있어서의 전쟁 가피론에 대해 격렬하게 반박하고 나선 쪽은 중국 공산당이었다. ‘원자폭탄은 종이 호랑이’라는 인식에서 모택동은 후르시초프식 공산주의론을 반대했고, ‘제국주의가 존속하는 한, 세계에서 전쟁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레닌의 명제를 글자 그대로 고수했다. 모택동은 ‘정권은 총부리에서 나온다’는 말을 애용(북한의 선군정치도 이와 비슷한 발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하면서 전쟁을 정치투쟁의 최고 형태로 인식하여 혁명전쟁을 절대화했던 것이다.

이처럼 레닌의 이론원형을 열(熱)핵무기의 시대에 적응하도록 수정코자한 후르시초프와 그 원형 그대로 고수하려던 모택동 사이의 논쟁은 중・소 분쟁을 격화시키는 작용을 했다. 이와 같은 논쟁을 사회주의 문헌의 원전을 통해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이하 생략>
*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핵문제』(파주, 한국학술정보, 2007) 155~163쪽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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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마르크스・엥겔스는 군비에 반대하지도 않고 찬성하지도 않는다. 어떠한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 군비가 형성되는지를 문제 삼기 때문이다. 군비는 일정하게 주어진 사회적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지므로 군비의 성질이 역사적인 조건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마르크스・엥겔스는 늘 이러한 관점에서 군비문제를 다룬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군비에 찬성하고, 다른 경우에는 군비에 반대했다. 마르크스・엥겔스에 있어서 군비는 계급투쟁의 용구(用具)이다. 군비가 ‘어떤 계급의 용도로 쓰이느냐’는, 군비의 역사적 성질에 의하여 규정된다. 그러므로 ‘계급투쟁이 생산관계에 의하여 규정된다’는 마르크스의 이론은 군비에도 적용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위(自衛)를 위한 소규모의 상비군을 강조하면서, ‘군사력이 구체적으로 민중들 사이에 온존하는 민병제(民兵制)’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걸맞은 것이라고 밝힌다. 이 점에서 보면 마르크스는 자위권(自衛權) 자체를 부정하는 平和 至上主義者(Pacifist)와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김승국 「마르크스・엥겔스의 군비축소론」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